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327화 (327/390)

327화.

나는 눈을 떴다.

몇 번이나 와봤기에 익숙한 공간 이다.

검은 암흑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무의 공간.

나는 이 공간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시스템 관리자의 공간."

처음 이 세상에 끌려들어 왔을 적 보았던 공간. 그곳에 다시금 끌 려 들어왔다.

그 말인 즉, 나는 죽지 않았다는 소리.

만약 내가 진정으로 죽었다면 이 기괴한 공간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거다. 그리 확신했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블랙 오케스트라]

역시나 보이는 것은 이 염병할 게임의 이름. 하얀색 홀로그램이 백 열하며 어둠속을 밝힌다.

나는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시금 홀로그램이 일변한다.

[시나리오 챕터 3를 완료했습니다.]

[중간 정산을 시작합니다.]

[유저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내 정보를 읽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는 내적인지 아군인지 잘 모르겠어."

저 시스템 관리자란 놈. 이번에는 나를 도와줬다.

이전에는 시련을 부여하고 적을 강화시키더니, 이번에는 포식자라는 강대한 적의 등장에 나를 도와 내 능력을 각성시켜줬던 것이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는 존재.

굳이 구분해본다면, 완전한 중립 아닐까.

문득 추측해본다.

'사실, 저 시나리오 관리자라는 놈은 일종의 인공지능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놈은 난이도가 쉽다면 상향시켰고, 난이도에 비해 시련이 어렵다면 내게 도움을 주었다.

마치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듯. 계속해 시나리오에 개입해 조율 해왔던 것이다.

별다른 사심도, 목적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균형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인 양말이다.

이래서야 저 시나리오 관리자란 것이 자율의지를 가진 존재인지 의심스럽다.

그렇게 나는 고뇌하며 홀로그램을 바라봤고.

- 띠링!

알림음과 함께, 홀로그램이 일변했다.

[유저의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유저 ID : 한지훈][제국 천인장][제국 북부 야전군 사령관]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상급)]

[스킬 : 기마술(상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몰입]

[엑스트라 스킬 : 전투예지]

[근력 100]

[민첩 282]

[내구 177]

[체력 164]

[마나 234]

(남은 포인트는 0pt 입니다.)

[보유업적]

- 백인장- 대적자 NPC 처치(1) - 가장 먼저 성벽을 오르다.

- 오러 각성….

[달성퀘스트]

- 척후조 퇴각전- 고지대 정찰- 고지대 거점 점령전- 고지대 거점 방어전".

엿같이 기다린 홀로그램창이다.

하긴, 길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능력치와 스킬, 그리고 업적과 퀘스트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쭉 이어져있으니까.

내심 감탄했다.

이렇게 길게 이어져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처절히 발악했는지를 느 끼니까.

나 열심히 살았구나.

- 띠링!

다시금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시나리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보상을 수여합니다.]

[목록에서 선택해 주십시오.]

[1. 포인트 500pt]

[2. 완전한 세계수의 수액(엘릭서)]

[3. 1등급 비밀 정보]

[4. 선택하지 않음.]

역시나 이번에도 보상이 존재했다.

선택 가능한 보상은 총 3개.

나는 목록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고민했다.

[1. 포인트 500pt]

가장 먼저, 포인트 500pt.

저 정도의 포인트라면, 내가 가 진 스킬이나 능력치를 막대히 상향 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능력은 유물로 증폭시키면 되니까."

나는 유물인 환상종의 핵으로 능력치를 폭증시켰었다. 모든 능력치 가 일시적이나마 300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포인트는 당장 필요가 없었다.

다음 보상을 살펴본다.

[2. 완전한 세계수의 수액(엘릭서)]

두 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보상 은 다름 아닌 엘릭서였다.

희석되지 않은 세계수의 수액.

죽지만 않는다면 모든 저주와 질병을 해제하고, 신체를 전성기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고귀한 영약.

"패스."

물론 이번에도 선택하지 않는다.

내 가장 절친한 우방이 다름 아닌 엘프들이다. 그들과 함께 한다면 엘릭서 하나 정도는 받을 만한 기회가 있을 터다.

혹시 모르지. 중앙대륙을 구원해 준 대가로 엘릭서를 내게 줄지도.

'아니면. 이미 먹었을 수도 있고.'

현실에서 나는 의식을 잃고 기절 한 상태일테니. 니디아가 내게 엘릭서를 먹이지 않았을까?

유물을 사용하며 내 몸이 완전히 망가졌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엘릭서 또한 막대한 귀 물이지만 그다지 선택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다음 보상을 살펴본다.

[3. 1등급 비밀 정보]

"… 역시 정보만한 게 없지."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이 괴상한 공간에서만 받을 수 있는 보상. 비밀정보.

포인트는 퀘스트나 업적을 통해 얻고, 세계수의 수액은 엘프를 통해 어찌어찌 얻을 방법이 있겠지만. 이 '비밀정보'만은 중간정산을 하는 지금이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생각해보면 나는 모든 보상을 항상 정보로만 받았었다. 그만큼 보상 으로 받는 정보가 꽤나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받았던 B등급 정보로 마이 사 슈베츠를 찾아내 아군으로 영입 했고.

그다음 받았던 2등급 정보로는 바네사를 찾아 유물을 정제해 활용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1등급 정보는 얼마나 유용한 정보일까?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주저 없이 1등급 비밀 정보 를 선택했다.

[1등급 비밀 정보]

[유저가 모르는 정보를 랜덤 해 금합니다.]

[1등급 정보에 한해 개방됩니다.]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 띠링!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1등급 비밀 정보를 얻었다. 이제 이 괴상한 공간 밖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가만히 서서 홀로그램을 주시하고 있을 때.

- 띠링!

재차 울리는 알림음. 다시금 홀로그램이 일변하고, 예정된 알림창 이 떠오른다.

[훌륭합니다! 정규 시나리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난이도를 상향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난이도 : 광기 (Lunatic)]

[상향 난이도 : 미지 (Unknown)]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역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난이도 상향 안내창. 반드시 나을 줄 알았다.

이 기괴한 공간에 올 때마다 꼭 난이도가 상향되었으니까.

헌데 상향된 난이도가 의외였다.

처음에는 악몽 (Nightmare), 그다음에는 광기 (Lunatic) 였으니 .

내심 다음 난이도는 지옥(Hell)따 위가 될 줄 알았었다.

헌데 미지라니?

미지(未知). 말 그대로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건 난이도가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시나리오 관리자도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는 뜻일까?

도통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뭐,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무엇이 바뀌는지는 앞으로 차차 알아나가면 될 일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홀로그램의 '거절' 버튼을 터치했다.

[유저의 '격'이상향된 것을 확인 했습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난이도가 변경됩니다.]

[적용 난이도 : 미지 (Unknown)]

"망할. 기대도 안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난이도 상향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럴거면 왜 수락 거절 선택을 하게 만들어놓았을까.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홀로그램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벤트 로그가 전량 폐기 됩니다.]

[전장의 안개가 완전 구현됩니다.]

[시나리오 불확실성을 강화.]

[무작위 변수가 추가됩니다]

나는 새로이 떠오르는 홀로그램 들을 지그시 노려봤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이지만. 입맛 이 쓴 것은 어쩔 수 없다.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음의 연속과 함께 문자열이 갱신되어갔다.

[적대 NPC 의 잠재력이 추가 상승합니다.]

[우호 NPC의 잠재력이 추가 하락합니다.]

[유저 보정이 하향 조정됩니다.]

[대적자 NPC 보정이 상향 조정 됩니다.]

[추가 시나리오 이벤트를 무작위 생성합니다.]

[시스템 관리자의 시나리오 개입을 '완전히' 허용합니다.]

마침내 홀로그램의 갱신이 끝나는 그 순간.

- 띠링!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적용 난이도 : 미지 (Unknown)]

[아무도 모르는 결말.]

[시나리오노챕터 -4-종장]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시야가 천천히 가라앉아갔다.

나는 눈을 떴다.

"윽…."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환한 빛이 동공을 찔러댔기 때문이다. 절 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한지훈! 일어난거야?!"

그리고 지척에서 익숙한 목소리 가 들렸다. 삐그덕 거리는 모가지를 돌려 간신히 바라보니, 익숙한 인물이 바로 옆에 있었다.

"마이사."

다름 아닌 마이사 슈베츠.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누워있던 침상 옆을 지키고 있었던 듯하다.

탁.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나 를 부축했다. 나는 인상을 와락 구 기며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굳어 삐그덕 거린다.

도대체 며칠이나 누워있던 것일까?

그해답은 마이사가 알려줬다.

"일주일 동안 누워있었어."

나는 마이사를 바라봤다.

그녀는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잠시 내 얼굴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엘프에게 고맙다고 하거라, 한지훈. 그대를 살리기 위해서 엘릭서를 사용했다고 한다."

"… 엘릭서?"

"그래. 엘릭서. 그것이 아니었다 면 유물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 을거라는데…."

"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예상대로 엘릭서를 섭취했다고 하니, 시나리오 관리자 보상으로 엘릭서를 선택하지 않은 건 역시 현 명한 선택이었다.

"몸은 좀 괜찮아?"

"뭐. 몸이 좀 굳은 것 빼고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정말 다행이야."

니디아가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 인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그녀의 언동은 평소와 달리, 보다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마치 최전선의 병사처럼 딱딱했 던 태도가 사라지고, 보다 여유로운 언동과 몸짓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그이유를 어렵지 않게 떠 올릴 수 있었다.

'마이사는 원했던 모든 것을 이 투었지.'

그녀는 자신의 숙원이었던 슈베 츠 왕국의 해방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원수였던 연방군을 제압하기까지했다.

고국의 복원과 원수의 처단. 원 했던 모든 것을 이루어낸 것이다.

덕분에 항상 그녀를 속박하던 사 명과 긴장이 사라지고, 그에 따라 행동과 몸짓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 었을 터.

긍정적인 변화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보다도 네가 내 침상을 지키 고 있을 줄이야. 많이 걱정했나 봐'?"

"…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 나. 엘릭서를 섭취했어도 일주일 동안 누워있었는데 ."

하긴 걱정할 만도 하다.

엘릭서를 섭취했음에도 장기간 사경을 헤맸다는 건 그만큼 위중한 상태였다는 뜻이니까.

유물사용의 후유증이 이다지도 클 줄이야.

앞으로는 유물의 사용에 주의해 야할 듯싶다.

나는 시선을 돌려, 내 시야 한켠에 떠올라있는 홀로그램들을 살폈다.

[서브 퀘스트 - '세계수의 수호' 를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200pt]

[추가 정산 포인트 : 10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0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300pt입니다.)

[업적 달성!]

[업적 : 환상종의 힘'을 달성했습니다! 포인트가 수여됩니다.]

[정산 포인트 : 10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300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400pt입니다.)

아무래도 내가 기절했던 동안 지연되어있던 퀘스트와 업적 처리가 방금 전 처리된 듯하다.

'대박이네.'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다.

400포인트, 대량의 포인트다.

이 정도의 포인트가 있다면 원하는 능력치를 마음껏 상향시켜, 지금 보다도 훨씬 강대한 무력을 발할 수 있게 될 터.

그렇게 내가 안내창들을 살피고 있을 때. 미간을 찌푸리던 마이사가 문득 말해왔다.

"한지훈. 지금 바로 움직일 수 있나?"

그에 팔다리를 움직여보니, 조금 뻣떳하긴 하지만 단순히 걷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물음에 수긍했다. 그러자 마이사가 한숨 쉬며 알려왔다.

"엘프여왕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아."

"니디아를? 왜?"

"중앙대륙을 구원해준 감사로, 한지훈 네게 선물을 주겠다는군."

"오. 그래?"

그렇다면 당장 가줘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침상에서 벗어났다.

하얀색 환자복을 펄럭거리며 신발을 신고 있으니 , 못마땅한 듯 미 간을 찌푸리고 있던 마이사의 불만 어린 표정이 보인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거지?

그녀가 한숨 쉬며 물었다.

"그 엘프를 만나는 게 그리 좋은 거냐?"

"보상을 준다는데, 좋지 그럼."

안 좋을 리가 없다.

'잘 하면 엘릭서도 받을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솔직히 내가 중앙대륙에서 연방 군을 몰아내고 세계수를 지킨 것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이미 엘릭서 하나를 내게 사용했 다 한들, 또 다른 엘릭서를 보상으로 내줄지 모른다.

반기는 것이 당연한 일.

마이사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내 몸을 부축했다.

"가자. 도와줄게."

아직도 유물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탓인지, 거동이 아직은 불편하다. 때문에 나는 니디아의 부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니디아가 있는 세계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곧 엘프여왕의 보상을 받을 수있다.

과연 니디아는 보상으로 무엇을 내주려 할까?

절로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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