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쿠르르르르르….
하늘에 떠오른 각약각색의 광역 마법진들이 제각기 중첩되어가고, 강렬한 마나의 울음을 토해내고 있을 때.
- 크아아아아아!
포식자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육중한 몸뚱아리가 발걸음을 옮기고, 대지가 진동한다. 웅장한 발 구름 소리가 드넓게 퍼져나간다.
전장에 있던 모든 제국군이 경악했다.
"저 괴물은 뭐야?!"
"흑마법사! 흑마법사의 키메라 다!"
"뒤로 물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밟혀죽는다!"
"아아아악!"
제아무리 고된 훈련과 수많은 실 전경험으로 단련된 제국군이라 한 들, 저런 예상외의 괴물을 눈앞에 두고 평정을 유지할 인물은 많지 않았다.
금세 패닉이 일기 시작한다. 제국군의 전열이 출렁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붕괴하지는 않았다.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내지휘술 스킬이 영향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스로 병력을 통제 하에 둘 수 있었다.
나는 수정구를 쥐어들고 재차 지시했다.
"궁병대! 화살공격! 마법사들이 화력 발현 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한다! 놈을 저지해!"
- …명령을 따릅니다, 사령관 각하! 궁병대! 일제사격 준비!
간신히 도주만은 하지 않은 제국 군 병력이, 이를 악물고 활시위를 당긴다. 수만을 넘는 제국군 소속 궁병들이 화살을 조준했다.
나는 목소리를 마나로 강화하고 는, 크게 외쳤다.
- 쏴!
직후 화살의 비가 쏘아진다.
파파파파파파팟!
수만의 화살이 동시에 허공으로 쏘아지는 모습이란, 꽤 장관이었다.
전장 전역에서 일시에 울린 파공 성이 고막을 때렸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후드드드드득!
수만 발의 화살 중반의 반의 반 의 반도 안 되는 화살만이 포식자 에게 적중했다. 허나 궁병대의 화살 세례는 저 두터운 검은색 외피를 꿰뚫지 못했고, 그렇기에.
포식자의 화만 돋웠다.
- 캬아아아아아아아 j 놈이 포효를 내지른다. 공기가 쩌렁쩌렁 울리고, 재차 쇄도해오는 화살들이 음압으로 인해 힘없이 튕겨나간다.
내 표정이 절로 굳었다.
'음압으로 화살을 날릴 정도라 니….'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충격파를 일으켜 화살을 날려 보내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목청의 음파로만 화살을 무력화시키다니. 상상을 초월한 육체다.
저 육신은 얼마나 광오한 힘을 담고 있는 것인가.
경악으로 표정이 굳어졌지만 판단은 빨랐다.
'일반 병사들로는 놈에게 어떠한 해도 입힐 수 없다.'
최소한 오러, 혹은 마법으로만 놈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을 성 싶다.
나는 통신수정구를 통해 지시했다.
"보병대와 기병대는 양옆으로 빠져!"
- 병력! 좌우 산개! 산개하라! 저 괴물의 진로에서 물러나는거다!
오스카의 다급한 음성이 통신망을 울린다.
두두두두두두….
그 명령만을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이 황급히 양옆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어디에나 늦는 인물은 존재했다.
쿠웅! 콰직. 퍼석!
"아아아아악!"
"끄억."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 몇몇이 놈의 발에 밟혀 죽어나갔다.
거대한 육신은 가공할 만한 무게 를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에 굳이 힘을 주어 밟지 않아도 병사들이 납작하게 터져나갔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인간이 벌레처럼 무력하게 무언 가에게 밟혀죽는 광경이라니. 상상 조차 해본 적 없다.
쿵! 쿠웅! 쿵! 쿵! 쿠쿵!
포식자가 계속해 질주해온다. 이미 절반가량 접근해있는 상태. 놈의 발구름 소리가 더욱 커지고, 그에 비례해 더욱 강렬해진 위압감이 전 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나는 포식자의 모습을 자세히 살 피고, 확신했다.
'놈은 나를 노리고 있다.'
포식자는 줄곧 내가 있는 요새성 벽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다. 주변에 있던 기사와 병사들에는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역시 내가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하지만 나 혼자서 놈과 전투하는 건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조금이라 도 조력을 받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
"기사단! 놈의 발목을 노려!"
- 알았다. 볼로냐! 나를 따르라! 저 괴물새끼의 발목을 잘라내라!
두두두두두.
내가 수정구를 통해 지시하자, 베르겐이 수백의 기사단원을 이끌 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전투마에 탑 승해 내달리는 그들이 포식자의 양옆으로 붙어, 오러 서린 검날을 휘 두르기 시작했다.
부웅! 피익.
다수의 검격이 괴물의 발목 힘줄을 노린다. 괴물의 살갗이 갈라지고, 검은색 핏물이 피슉 올라온다.
거의 처음으로 통한 공격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 표정은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얕다.' 신체강도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 지. 기사들이 대량의 마나를 소모해 만든 오러조차, 놈의 피부에 생채기 를 내는 것에 불과했다. 힘줄을 자 르는 것은 무리였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재생한다!'
푸쉬이이 익!
갈라졌던 피부가, 연기와 함께 순식간에 회복되어버렸다. 기사 수백이 가한 검격 따위 아무런 흔적 조차 남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신체에 해를 입힌 존재가 거슬렸던 것일까.
- 카오오오오오!
줄곧 내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 던 포식자가, 자신의 발목을 노리던 기사 둘을 양손으로 낚아챘다.
"악! 아아아악!"
갑작스레 전투마와 함께 하늘로 들어올려진 기사들이 공포에 비명 지른다. 포식자는 그 둘을 지면에 패대 기 쳤다.
퍼어어어어억!
기사가 전투마와 함께 바닥에 처 박혔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내려쳐진 것 인지, 오러로 전신을 강화한 기사가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후드드득.
내장과 육편조각 따위가 주변에 힘없이 떨어져내린다.
"…!"
"맙소사."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인물이 경악했다.
기사는 오러를 다루는 강자다. 오러로 강화된 신체는 막대한 근력 과 내구도를 가지며, 장검에서린 오러는 날의 절삭력을 극대화시킨다.
그런 기사를 단숨에 패대기쳐 죽여버리니, 감히 항거할 생각조차 사 라지는 것이다.
나는 으득 이를 갈고는 물었다.
"제피르! 마게브! 마법공격은 아직인가!"
- 마법은 거의 완성되었다. 하지만, 한지훈! 저 괴물은 너에게 거의 근접해있다! 자칫하면 광역마법에 함께 휘말릴 수 있어!
그 말 대로였다. 포식자는 이미 나에게 상당히 근접한 상태였다.
서로간의 거리가 대충 50m쯤 될 까. 광역마법의 화력투사 범위 내다. 이대로 광역마법을 발현한다면 나 또한 휘말리게 될 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크게 외쳤다.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갈겨버 려!"
- …제기랄! 알았다. 한지훈, 죽 지 마라!
번쩍!
천공에 떠오른 광역마법진들이 일시에 환한 빛을 발했다. 나는 이 를 악물고 남아있는 마나를 모조리 오러에 밀어넣었다.
화르르르륵!
내 장검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기운이 일렁임과 동시.
콰콰콰콰콰콰쾅!
광역마법이 완전히 발동되었다. 무수히 많은 투사체들이 나와 포식 자를 동시에 두들기기 시작했다.
충격에 시야가 흐릿해진다.
"안돼…!"
마이사는 비명 지르며 요새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지옥과도 같은 경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쾅!
광역마법의 세례. 무수히 많은 폭렬구가 쏟아져내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얼음송곳과 바람칼날 같은, 각종 속성마법의 무리가 공기를 꿰뚫고 공간을 절삭해갔다.
콰르르르르….
요새의 성벽이 무너져내린다. 직후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연기구름.
"한지훈!"
마이사는 으득 이를 악물고 전투 마를 박찼다. 그녀는 저 현장에 난 입해 한지훈의 안위를 살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앞을 가로막 아 제지하는 존재가 있었다.
"멈춰라, 마이사. 저곳은 위험하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엘프 여 검사, 엘븐 가디언 타냐였다.
그에 반항하듯 마이사가 외친다.
"한지훈을 살려야 해! 한지훈 은…!"
마이사는 무어라 말하며 그녀를 지나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말의 배를 박차도 그녀의 전투마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기수인 자신이 아닌 눈앞의 타냐를 따르는 것처럼.
타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이 사를 타이른다.
"오러도 다루지 못하는 네가 저기 가봤자 무얼 하지? 흥분을 가라 앉혀라, 왕녀. 지금 가봤자 짐이 될 뿐이다."
"하지만…!"
"그리고. 이름 없는 별은 죽지 않았다."
타냐의 말에 마이사는 그녀를 돌아봤다. 어느새 마이사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상태였다.
타냐는 그 모습에 픽 웃고는, 요새방향을 바라보며 확신하듯 말했다.
"세계의 주인공. '이름 없는 별' 의 운명을 타고난 그 사내다. 저런 흑마법사의 키메라 따위에는 결코 죽지 않아."
그녀의 말에 마이사 또한 시선을 돌려 요새방향을 바라본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크게 떠진다.
저 요새는 성벽이 부서져내린 여 파로, 흙먼지가 크게 일어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지만.
분명 보였다.
번쩍!
흙먼지 속 환한 존재감을 발하는 푸른색 광휘.
그것은 분명 오러의 광채였다.
그리고 저런 선명한 오러광을 발 할 수 있는 존재는, 마이사가 알기 로 단 한 명에 불과했다.
'한지훈….'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쿨럭!"
기침이 나온다. 직후 입가를 따 라 주르륵 흘러나오는 핏물.
나는 온몸을 뒤덮은 요새의 잔해 를 걷어내고, 비척비척 일어섰다.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온다.
"엿같이 아프네…."
온몸에 통증이 인다. 피부 또한 충격과 파편 세례에 얻어맞아 난자 된 것인지, 이곳저곳에 생채기가 그 득하다.
그렇게 내가 간신히 일어서 몸을 추스르고 있을 무렵.
"그러게요. 많이 아프네요. 정말 죽을 뻔했어요."
"니디아."
내 옆에서, 나처럼 엉망이 된 니 디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하는 말이었다.
그녀가 온몸에 붙은 먼지들을 털 어내며 표정을 찌푸린다.
"이 옷. 아끼던건데. 이래선 다시 못 쓰겠네요."
"…."
죽었다 살아나서 옷 걱정이라니.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덕분에 살았다, 니디아. 네가 제때 방호벽을 쳐준 덕분에 죽지 않을 수 있었어."
"뭘요. 방호벽이 깨진 후에, 한지훈 씨가 나머지 투사체들을 쳐내지 않았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걸요? 서로가 서로를 도왔어요."
마법이 격돌할 때, 니디아가 전력을 다해 방호벽을 형성했다. 계속되는 충격에 방호벽이 결국 깨졌지만, 내가 나머지 투사체를 요격해냈고 말이다.
그리하여 나와 니디아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둘 모두의 힘을 합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죽어 쓰러졌으리라.
그만큼, 방금 전 광역마법 공격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제국의 마법사는 우수하네요. 이 정도의 화력이라니."
"마게브가 이끄는 엘프 마법사들 도 함께 가한 화력이다만."
"저희 엘프 마법사들과 보조를 맞 추는 것도 대단한 일이에요. 아무튼, 좋은 부하를 두셨네요."
방금 전 그 좋은 부하들에게 얻 어맞았지만.
"그보다도…."
한창 몸을 추스르던 그녀가 말꼬 리를 흐리고는, 어딘가를 바라본다.
눈가가 찌푸려진다.
"저 괴물,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이 정도의 화력에 직격당했는데도 죽 지 않았어요."
나 또한 그녀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를 따라 내 얼굴에도 절로 짜증이 어린다.
- 크르르르르르….
그곳에는 성벽 잔해 사이, 반쯤 파묻혀있는 포식자가 자리해있다.
아무리 마법저항력이 강력하다 한 들, 무려 일천에 달하는 전투마법사 들이 발현한 대규모 화력이었다. 때문에 나름의 타격을 입은 듯싶다.
하지만 그놈의 재생력이 문제였다.
치이이익-!
놈의 피부 곳곳에 자리해있던 상처들이 급격히 아물어간다. 반쯤 찢 어져 너덜거리는 팔이 붙고, 구멍이 뚫려 흘러나왔던 내장이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놈은 완전히 회복하고, 재차 이쪽을 노리게 될 터.
"마법공격도 시간벌이밖에 안되다니…."
크라함. 도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어낸 거냐.
작게 한숨 쉬고는, 장검을 쥐어들었다.
철그럭.
익숙한 쇳소리가 들린다.
나는 천천히 지금의 상태를 관조 해본다.
'마나는 완전히 고갈되었다.'
본래도 유격전을 펼치며 대량 소모했던 마나였다. 더해 간신히 회복 했던 약간의 마나조차 방금 전 광역 마법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조리 소모했었으니 .
남아있는 마나는 전무.
오러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포인트 또한 사라진 데다"
연방군의 공세에서 조금이라도 버 티기 위해, 가진 모든 포인트를 능력치에 갈아넣었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포인트는 단 하나도 없다.
능력의 향상도, 스킬의 상향도 불가능.
'신체 또한 너덜너덜해.'
게다가 방금 전 마법공격을 온전 히 막아내지 못했기에, 내 신체는 결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온몸의 관절이 삐거덕거리고, 움직일 때마다 신체 곳곳에서 고통이 달린다. 사지는 멀쩡하지만 내장과 관절이 진탕되어 있는 것이다.
지치고 소모된 나와 니디아.
반면 막대한 재생능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급격히 회복되어가는 포식자.
이런 상황이니,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솔직히 승산은 없다 봐야겠지.
하지만 나는 덤벼볼 심산이었다.
'내게 포기란 없다.'
가망 없는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 했음에도, 압도적인 적을 바로 앞에 두었음에도, 결코 위압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본래 나란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나약해지지 않는다. 죽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본 뒤 죽을거다.
"후욱."
심호흡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전신에 남아 있는 힘을 한계까지 뽑아올렸다. 감각을 한없이 날카롭게 벼려낸다.
그렇게 내가 전투의 기세를 끌어 올리고 있을 때.
- 띠링!
[시스템 관리자가 시나리오에 개 입합니다.]
갑작스레, 홀로그램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