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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21화 (321/390)

321화.

"크아아아악!"

내 장검에 꿰뚫린 연방군 기사단 장이 비명을 내지른다.

나는 장검을 비틀었고. 콰드득, 철판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심장이 난자되었다.

서걱.

장검을 빼내었다. 연방군 기사단 장이 각혈하며 힘없이 쓰러진다.

"제기랄! 단장 각하께서 당하셨 다!"

"잡아! 결코 놓치지 마라!"

뒤늦게 달려드는 기사들. 놈들이 장검을 휘둘러 합공을 가해온다. 시야를 가리는 다수의 푸른색 궤적.

그 모든 것을 피해내고, 장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퍼버버벅!

찰나의 순간, 여섯 번의 연격 찌 르기를 가한다.

내 앞을 가로막던 적 기사 여섯 이거의 동시에 목이 베였다. 붉은 색 핏물이 치솟음과 동시, 놈들의 몸이 실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후드 득 쓰러졌다.

순식간에 적 기사 다섯을 처치했다.

나는 곧장 지면을 박차 도약, 기사들의 진형에서 벗어나며 중얼거렸다.

"이로써 다섯 번째인가."

다섯 개의 기사단을 급습했다.

다섯 명의 기사단장과 그들을 보 좌하는 부기사단장을 모조리 죽여 없앴고, 이십에 달하는 전대장급 지휘관을 제거했다.

사실상 다섯 개 기사단의 지휘능력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훅,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한 것 일까. 입에서 단맛이 느껴진다.

"슬슬 한계야."

뛰어가는 와중 시선을 내려 내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내가 입고 있는 제복은 이곳저곳 이 찢어져 있고, 그 균열 사이로 피부에 어린 크고 작은 상처들이 그득했다. 핏물이 배어 나와 제복의 곳곳을 붉게 적셔가고 있다.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몸에 뿌리 며 읊조렸다.

"역시 만만치는 않구나. 까딱하면 뒈질 뻔했어."

내 몸의 상처들. 유격전을 펼친 여파로 입은 것들이었다.

확실히 기사단의 지휘관 사냥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놈들은 나보다는 뒤떨어졌지만 나름대로 고격의 강함을 달성한 이들 이었으며, 그들을 보좌하는 차석과 전대장들 또한 그리 수준 낮지 않았다.

때문에 대량의 포인트를 소모해 능력을 극대화 시킨 나라 한들 위험 한순간이 꽤나 많았다.

방어진형을 구성하고 기다리던 적의 저항에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기사들에게 포위당해 역으로 사냥당 할 뻔하거나 하는 등.

죽을 뻔한 적이 여러 번이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로막는 적병을 향해 장검을 휘둘렀다.

콰앙!

푸화악, 터져나오는 피안개. 적병 이혼비백산해 도주한다. 일렁이는 피보라를 꿰뚫듯, 계속해 달려나갔다.

그렇게 적병을 베고 난자하며 얼마나 달려갔을까.

나는 마침내 적이 보이지 않는 무너진 성벽을 찾을 수 있었고, 잔 해 위에 올라서 숨을 골랐다.

"후욱, 후우…."

천천히 심호흡하며 손을 가슴팍에 가져다 대본다. 내 심장 속 남아있는 마나량이 느껴진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마나는 고갈 직전인건가. 확실히 무리하긴 했구만."

어느새 내 마나량은 거의 고갈 직전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벌써 수 시간 동안 적의 진형을 휘저으며 기사와 병사들을 도륙해댔으니 .

제아무리 234에 달하는 , 지성체의 격을 초월한 마나량을 지니고 있다 한들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털썩.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 마나포션을 마셨다.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기에, 휴식을 취하며 고갈된 마나를 보충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나포션을 섭취한 뒤 쯧,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간이 기별도 안 가는구만."

극도로 확장된 내 마나통은 너무나도 컸다. 상둥품의 마나포션 하나 를 모두 섭취했음에도, 심장 속 마나 전부를 채우기에는 아주 역부족 이었던 것이다.

이래서야 마나포션을 마시는 의미 가 없다.

"…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나직이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벽이 무너져 만들어진 잔해 언덕 위인지라, 시야가 꽤 높았기 때문에 전황을 확인하기 용이했다.

전황은 내가 날뛰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기사단! 방어태세! 전진을 멈추 고 사방을 경계해라! 언제 한지훈이 돌진해올지 모른다!"

"보병대! 한지훈을 찾아라! 이 근 방어딘가에 있을거다! 놈을 찾아 제압해!"

"놈 또한 격전으로 지쳤다. 금세 놈의 마나가 고갈될 터. 놓쳐서는 안된다!"

한창 성벽을 공략하던 연방군이 전투를 중지하고 지역방어로 돌아섰다. 덕분에 전투는 일시적인 소강상 태. 제1성벽은 아직까지 함락당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노을이 질 무렵. 하늘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슬슬을 때가 되었는데 ."

나는 여전히 마이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서 있을 때.

- 부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연방군 본진이 있는 동쪽은 아니었다. 세계수가 있는 방향, 서쪽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이 뿔피리 소리. 분명 아군인 제국군의 것이리라.

고개 돌려 서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노을이 저물어가는 저지평선 너머, 모래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다.

안구에 마나를 집중해 시각을 강화. 보다 자세히 그쪽을 살폈다.

그러자 확인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

지평선 너머에서 달려오는 아군 증원.

수천에 달하는 기사들이 선두를 맡고 있으며, 그 뒤에는 수만의 기 병대와 십수 만의 보병대가 전진해 오고 있다.

무수히 많은 수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 한지훈! 그대, 잘 해주었다. 앞 으로는 본녀에게 맡기고 한숨 푹 쉬 어라.

품속에 넣어놨던 통신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이사의 목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늦었잖아, 임마."

아군의 증원이 드디어 요새지역에 등장했다.

"기사단 전진! 양 갈래로 나뉘어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적 병력을 분 쇄하라!"

마이사가 말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낭랑한 목소리가 통신수정구를 통해 전군에 전파된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지도를 훑는다. 엘프들이 제공한 마법지도였다.

마이사의 지휘가 계속된다.

"기병대! 요새를 크게 우회, 적의 본진을 노려라. 보병대는 적의 본진 전방이다! 엘프는 요새 내부로 진입 해 요새를 지원한다!"

"각하! 남쪽 요새에서 출두한 지원군은 어찌하시겠습니까?"

"남쪽의 병력은 수가 적기에 전투에 투입해서는 안된다. 결정적인 순간까지 전투를 회피하는 대신, 적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내 놈들을 압 박하라."

"명령을 따릅니다!"

"좋아. 전진해! 요새의 아군을 구 원하고, 가증스러운 연방 놈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거다!"

마이사의 지시에 따라 제국과 엘프 연합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단이 전진하고, 기병대가 우 회했으며, 보병대가 정면으로 밀고 들어갔다. 엘프 전사들이 요새 안으로 진입한다. 대량의 병력이 새로이 등장해 기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공성전의 전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적의 증원이 전진해옵니다!"

"적 기사단 조우! 요새 인근 아군 병력이 쓸려나가고 있습니다!"

"놈들의 보병대가 정면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아군 양익! 적 기병대입니다!"

"방어태세를 갖춰라! 본진을 지켜야 한다!"

"요새 내부에 엘프 전사들이 진입 해옵니다! 망할…!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연방군 사령부 막사에서는 참모들 의 고함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요새를 공략하느라 한창 기운이 빠진 연방군이 갑작스레 적의 대규모 공격에 당하게 되었으니 .

연방측이 쓸려나가는 것은 필연이었다.

"기사를 상대하는 건 오직 기사뿐 이다! 기사단을 움직여! 적 기사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불가능합니다! 아군 기사들 거의 전부가 요새 내부에서 엘프 전사들 과 교전 중입니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기사전력이 전무합니다!"

"정면! 보병대와 조우! 접전 중입 니다!"

"아군 전투마법사는 뭘 하는거냐! 적 보병대를 향해 화력투사해!"

"요새 공략에 대부분의 심력을 사용했기에, 당장은 마법을 발현할 수 없습니다."

"빌어 처먹을!"

갑작스레 전황이 반전되었다.

제국의 기사단이 요새 인근의 연방군을 청소했다.

일만에 달하는 엘프 전사들이 요새 내부로 진입해 남아있는 제국군 병력을 지원했으며.

보병대와 기병대는 요새에서 떨어 져 있는 연방군 본영을 노리고 밀어 닥쳤다.

병력이 빠르게 갈려나간다.

"아군 4제대, 5제대! 완전히 붕괴 되었습니다. 지휘할 수 없습니다!"

"본진이 흔들립니다! 적 기병대의 돌진이 너무 거셉니다!"

"전방 전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령관 각하! 어찌해야 합니까?!"

참모들의 아우성. 그에 헤르베르 트는 으득 이를 갈았다.

그는 직감했다.

'패배했다.'

헤르베르트의 시선이 지도 위, 방금 전까지 공략을 진행하던 그 요새 로 향한다.

그가 한탄하듯 나직이 읊조린다.

"저 요새만 아니었다면…. 아니. 한지훈만 아니었다면. 이전쟁을 이 길 수 있었을 터인데."

한지훈. 그자가 문제였다.

저 요새는 본래였다면 수 시간 전에 함락당했어야했다.

하지만 한지훈이 가진 능력을 드 러내며 요새 곳곳을 휘저었고, 그에 요새 함락이 예상보다 지연되었다.

만약 한지훈이 없었고, 그리하여 예상한 시간에 요새를 함락시켰다 면?

아군 병력은 요새를 방어의 주축 으로 삼아 전열을 재정비하고, 지치 고 소모된 병력을 추스르며 이후 있을 전투를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수의 우위로 인해 그리 어 렵지 않게 이번 전쟁을 승리하게 됐을 터인데.

하지만 연방군은 제시간에 요새를 함락시키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이상황이었다.

병력은 오랜 전투로 지쳤으며, 전 열이 흐트러져 있는데다, 다수의 지휘관들이 죽어나가 통솔력 또한 극 도로 하락해 있는 상태.

반면 적은 막 전장에 등장해 기 세가 등등하니.

패배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

헤르베르트는 포기한 힘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의 머릿속에서 이번 전쟁과정이 스쳐 지나간다.

요새전투, 대규모 행군, 척후전, 엘프의 연안요새 상륙전.

다수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득을 보는 건 연 방이 아닌 제국이었다.

"지휘관으로서 나보다 한지훈이 더욱 우월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군."

배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도, 결국 패배하게 되었다. 아마도 헤르베르 트는 연방의 역사에서 희대의 졸장 으로 기억되리라.

그는 눈을 감고는, 포기하듯 나직 이 말했다.

"전군. 이번 전쟁은 패배했다. 모두 후퇴…."

후퇴 지시. 그는 전쟁의 패배를 직감했기에,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리기 위해 군을 물릴 심산이었다.

허나 문득.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헤르베르트가 천천히 눈을 떳다.

이미 패배가 확정된 전쟁이다. 연방은 결국 중앙대륙을 정복하는데 실패했으며, 제국과 엘프는 이번에 도 연방을 물리치고 말았다.

만약 자신이 이대로 병력을 물리고, 적의 추격을 피해 무사히 본토 로 귀환한다 한들. 패전의 책임을 물어 처형당하게 될 것이 뻔했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헤르베르트는 자신의 신념을 잠시 접어두고, 꺼리던 방법을 사용해보 고자 한다.

그가 비콘을 통해 누군가를 호출 한다.

"크라함."

부르는 것은 다름 아닌 크라함. 자신이 철저히 소외시키던 동맹군이었다.

비콘에서 음험한 목소리가 흘러나 온다.

- 클클클결국 내 손을 빌리게 될 수밖에 없지. 안 그러나?

"자네라면. 이길 수 있나?"

- 걱정 마라. 헤르베르트.

크라함의 목소리가 끊긴 직후.

쿠르르르르르…!

"뭣?!"

"으음…!"

갑작스레 굉음이 임과 동시에, 막 사 중앙 테이블 위에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헤르베르트와 참모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테이블 위에 누군가 가 서 있는 상태였다.

"크라함."

갑작스레 등장한 인물은 방금 전 헤르베르트와 통신하던 이, 크라함 이었다.

그가 검은색 로브를 펄럭이며 나직이 묻는다.

- 내가 한 말은 기억하나, 헤르베 르트?

"네놈이 한 말이라면?"

- 승리를 위해서는 네가 지닌 병력의 일부가 필요하다는 말 말이다.

헤르베르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했다. 과거 한지훈의 유격전에 의해 병력이 하나둘 갈려 나갈 때.

분명 크라함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네 같잖은 군대의 일부를 내게 바쳐라. 그리한다면 제국군 따위, 순식간에 없애주지.

당시에는, 연방군만으로 충분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여겼 기에 고려하지 않았다.

휘하 병력을 실험체로 바쳐 전쟁을 승리하고자 한다니?

그 어떤 미친 지휘관이 그런 선택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상황은 변했고.

'크라함이 아니라면 이대로 패배 할 수밖에 없다.'

그에 으득, 이를 갈면서 천천히 입을 여는 헤르베르트였다.

"…네 제안을 수락하겠다. 병력의 일부를 네 실험체로 제공하지. 그러 니 부디 우리 연방에게 승리를 가져 다 다오. "

헤르베르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크라함의 제안을 수락했다. 남은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허나 그런 헤르베르트를 비웃듯, 크라함이 메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 한다.

- 상황이 달라졌기에, 조건의 변경이 있다. 헤르베르트.

"그게 무슨 소리이지?"

- 네놈의 병력이 많이 줄어든 데 다, 여유롭게 흑마법을 준비할 시간 따위 없으니 투입할 실험체의 양을 늘릴 수밖에 없다.

검은색 로브 후드의 안쪽, 붉은색 안광이 일렁인다.

어째서일까. 저자의 눈동자는 음 영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음에도, 헤르베르트는 지금 크라함이 탐욕에 물든 눈빛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크라함이 고한다.

- '일부'가 아닌 '전부'다. 네놈의 쓰레기 같은 병력 모두를 내놓아라.

헤르베르트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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