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제3제대. 전멸했습니다."
연방군 참모가 침통한 기색으로 헤르베르트에게 보고했다.
방금 전 연방군의 제3제대가 전 멸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노을이 몰려 오는 지금까지 무려 3개 제대, 도 합 15만이 넘는 병력을 밀어넣어 공격했음에도. 아직까지 저 요새를 점령하지 못한 것이다.
고작 1만에 불과한 제국군이 무려 15만에 달하는 연방군 병력을 막아낸 것.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요새가 아무리 견고하다 한들, 10배 이상의 병력을 투입한다면 능 히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적은 무려 15만에 달하는 이쪽의 병력을 갈아버리며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헤르베르트의 얼굴에 짜증이 어린다.
"저기괴한 요새. 확실히 엿같은 구조로군. 설마 저토록 방어능력이 훌륭할 줄이야."
요새의 높고 견고한 성벽, 그리고 그 위에 설치되어있는 수많은 발리스타들은 둘째치고.
구조 자체가 너무나도 악랄했다.
저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온 성벽 은 아군을 사지로 몰아넣는 역할을했다.
성벽과 성벽 사이에 연방군이 끼 인형세가 되어 , 일종의 킬존이 형성되는 것이다.
심지어 그런 성벽이 한 겹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저 요새는 성벽이 무려 삼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아버릴 노릇이야."
가히 미친 요새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저 요새는 공격자의 살상력이 극대화되어 있는 구조였다.
전투의 과정은 연방측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공격하는 연방측이 제1성벽을 기어오르는 동안, 제국군은 좌우에서 교차사격해 합동공격을 해온다.
대규모의 손실이 발생한다.
대량의 병력을 갈아넣어 제1성벽을 장악했을 때, 2성벽으로 후퇴한 수비측에서 재차 화살공격을 해온다.
게다가 1성벽으로 막혀있는 탓에 기껏 준비한 공성병기들이 그때 부터 사용이 불가하니, 운용할 수 있는 공성장비라고는 오직 사다리뿐.
때문에 제2성벽에서도 많은 수의 병사들이 희생당하게 된다.
대량의 손실을 끝없이 감수해, 2성벽 장악에 성공한들, 마지막 관문 인제3성벽이 남아있다.
그리고 3성벽은 높은 성채와 탑 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수히 많이 뚫려있는 창문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화살공격 이 쇄도해와, 탈진해있는 연방군 병력을 몰아친다.
이쯤 되면 병사들의 사기는 나락 으로 떨어지고 기력의 한계에 부딪 히니, 전투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 빌어먹을. 저딴 요새가 다 있다니. 누가 설계한지는 몰라도 당장 잡아다 죽여버리고 싶군."
헤르베르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답이 보이지 않는 강적을 상대로 너무나 많은 병력을 잃었기에 흘러 나온, 답답한 감정이 한껏 어린 욕 이었다.
그런 헤르베르트의 눈치를 보던 주변 장교와 참모들이 하나둘 의견을 밝혔다.
"사령관 각하. 적의 요새가 너무나도 견고하니, 차라리 공성을 포기 하고 놈들을 포위해 고사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저 요새의 규모가 꽤 크다 하나, 내부 공간이 생각 외로 협소합니다. 그리 많은 식량을 비축해 놓았을 리 없습니다. 한 달만 포위를 유지해도 적은 식량이 떨어져 항복하거나 자멸할 것입니다."
"혹은 저 요새 공략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놈들을 공략하지 않고 그저 통과하거나, 혹은 다른 요새를 노리고 기동해도 아직 늦지 않을 터입니다."
적극적인 공세를 취소하고, 다른 방법을 취하자는 참모진의 의견.
헤르베르트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절로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질려버린게로군.'
참모들의 얼굴에는 답답함과 짜증 어린 감정이 진하게 자리해있었다.
저 요새의 방어능력이 너무나도 출중하기에, 공략에 얼마나 많은 아 군 병력이 희생될지 예측조차 안 되기에, 다른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헤르베르트 또한 마음 같아 서는 공성전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 또한 저 요새의 방어능력에는 완전히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어 그들 의의견을 반대했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 공성전은 속행한다."
"하오나, 각하! 이대로 가다간 너무 많은 손실을 입게 됩니다!"
"벌써 15만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저 요새를 완전히 함락시킬 때 까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 갈지…."
"부디 결정을 재고해주십시오. 사령관 각하."
으드득. 이를 가는 헤르베르트.
그가 크게 외친다.
"… 나라고, 저 빌어먹을 요새에 계속 병력을 꼬라박고 싶은 줄 아 는겐가!"
진노한 헤르베르트의 고함성에 참모진이 움찔, 고개를 움츠린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요새를 포위해 놈들을 공략하자 니, 적의 주력군이 언제 이쪽의 옆구리를 칠지 모른다. 요새를 공략하지 않고 통과하자니, 아군의 보급로 가 단절되며 우군의 후방이 점거당 한다. 다른 요새를 노리자니 그곳의 방비가 저기보다 못하다는 확신이 없다."
"… 으음."
"일단 공성전을 실행한 이상, 저 요새만은 반드시 함락시켜야 한다. 그동안 입은 손실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헤르베르트의 말에 참모들이 신 음했다.
사실 저들 또한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저지랄 맞은 요새를 공략할 엄두가 안 나기에, 전투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
헤르베르트 또한 그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후우. 그가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너무 낙담하지 마라. 이미 적의 발리스타들은 모조리 파괴 되었고, 적은 제1성벽을 완전히 포기하고 제2성벽으로 물러났다. 더 해 놈들의 병력은 고작 오천 남짓 으로 추정되는 상황."
그의 말대로였다.
연방측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한 덕에, 요새의 제1성벽에서 놈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애시당초 적의 15배에 달하는 대군을 쏟아부었던 전투다.
아무리 난공불략의 요새에 틀어 박혀있다 한들 적의 피해가 결코 가볍지는 않으리라.
그는 확신한다.
"이제부터 기사들을 운용할거다.
내일, 놈들을 몰아내고 적의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을터다."
적의 병력이 충분히 갈려나갔고, 놈들의 저항이 한 꺼풀 꺾인 상황.
이상황에서 기사들을 투입한다 면 단숨에 요새를 장악할 수 있다. 그리 여기는 헤르베르트였다.
그리고, 정면공략으로는 막대한 손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
"이 근처에 강이 있다."
또 다른 계책 또한 지니고 있는 헤르베르트였다.
그가 지도 위에 자리해있는 강줄 기를 짚으며 씩 미소지었다.
"전투마법사들과 병사들을 차출 하라. 저 강을 이용한다면, 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요새를 공략할 수 있을거다."
연방군의 공격이 계속된다.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른다. 햇빛이 전장이었던 요새의 성벽 위를 환하게 밝힌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역시. 만만치 않네."
햇빛 위로 드러난 성벽 위의 모습은 참혹했다.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무수 히 많은 시체들. 간간이 타오르는 불길.
화살과 발리스타 투사체 따위가 곳곳에 틀어박혀 있고, 시체들 위로 많은 수의 날벌레들이 들끓고 있다.
어제 이루어졌던 사투의 흔적들 이다.
내가 숙소 밖으로 나와 성벽 위 를 둘러보자 장교가 보고해왔다.
"한지훈 사령관 각하. 어제 격전 으로 인한 아군측의 손실은 4천 하고도 3백입니다."
"연방놈들이 15만이라는 미친 물 량을 동원했으니 어쩔 수 없는 손실이겠지. 그럼 남아있는 잔존병력 은?"
"5천8백의 보병대가 휘하에 남아 있습니다. 더해 제국과 엘프의 마법 전력을 합쳐 약 8백, 그리고 기사 2천5백이 이 요새에 있습니다."
"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전투마법사인 제피르와 마게브가 도착한 이후, 다른 요새에 있던 기사들이 하나둘 지원을 나왔적이 노리는 요새가 이곳이라고 확실시되니, 여기에 기사전력을 집 증시키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기존에 배치되어있던 5백 의 기사들에서 추가로 2천에 달하는 기사들을 받아 저항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일단 가까운 요새들에서 모두 지원 나온 상태였지만. 오늘 중으로 다른 요새에 있는 모든 기사들이 이곳으로 집결해 도합 5천에 이르는 기사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리라.
나는 장교에게 물었다.
"연방군 군영은?"
"밤새 지켜봤습니다만, 야습을 걸 어오거나 기습하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주간에 있을 공성전을 대비 해 병력의 피로를 확실히 풀려는 듯 보입니다."
"그래. 기습이 없다니 다행이네. 야간에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면 아주 미쳐버렸을 거야."
적이 너무나도 많은 대군이라 안 일한 것일까, 아니면 주간에 있을 공성전에 집중하려는 것일까.
연방측은 다행히도 별다른 수작질을 걸어오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겉보기에는 밤에 평온해 보였어 도, 무언가 수작질을 걸어올 수도 있지.'
예를 들어 땅굴을 판다던가. 혹은…
"설마."
순간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 쳐 지나간다.
나는 시선을 돌려 미니맵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요새 주변의 지형들을 살폈다.
'연방놈들이 이곳 제3요새를 굳이 선택한 이유.'
사실 연방군은 이쪽으로 우회해 서 제3요새를 공략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엘프의 숲을 빙 둘러치듯 10개의 요새가 설치되어있기에, 반드시 어느 방면이든 요새가 버티고 서있었 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놈들은 가장 가까운 제 5요새나 6요새를 노리는 것이, 행 군에 지친 연방군 측에서도 합당한 선택이었을 터인데.
놈들은 굳이 제3요새를 노렸다. 60만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크게 움직여가면서까지 말이다.
그 말인즉, 무언가 녀석들에게 유리한 요소가 있었기에 이 요새를 노린다는 것일 터.
나는 미니맵을 살폈고, 그리 어 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강이 있군."
제3요새는 다른 요새들과 달리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었다.
요새의 북쪽을 스쳐 지나가듯, 대륙 동쪽에서 서쪽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이 자리해있던 것이다.
물론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로 달려도 30분은 걸릴 정도로 먼 거리에 강이 자리해있다.
때문에 저 강은 공성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 여겼었는데 .
내 섣부른 속단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장교들에게 지시했다.
"당장 기병대로 이루어진 정찰대 를 꾸려라. 저 강을 조사해야 한다."
"강을 조사하신다면, 혹시 적이 수공을 걸어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 고 계신겁니까?"
"그래. 놈들이 굳이 이 요새를 노린 이유가 저 강 때문일 것 같아 서 말이지."
장교들의 얼굴에 의아한 감정이 떠오른다.
하긴. 저들의 저 떨떠름한 반응 은 당연했다.
비록 큰 강줄기라 하나 요새에서 퍽 멀리 떨어져있다.
수공을 가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적은 최소 천이 넘는 전투마법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마법이란 인간이 결코 해내지 못 할 기적을 일으키는 신비의 힘.
먼 거리에 있는 인물들이 서로 통신할 수 있게 하며, 머나먼 곳을 탐색하기도 하고, 물자와 사람을 이동시킬 수도 있다.
더해 전장을 휩쓰는 강력한 화력을 발하기도 하니.
나는 과거 슈베츠 왕국을 공략했을 때 사용했던 비밀통로를 떠올린다.
'그런 길고 커다란 지하통로까지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마법 의 힘이다. 적이 밤중에 마법전력을 운용했다면, 은밀히 수공을 준비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물론 단 하루만에 수공을 준비하는 건, 지구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커다란 강에서 큰 보와 물길을 만들어 대량의 물을 비축한 뒤, 한번에 터트리는 것이 바로 수공이라는 공략법이다.
대규모 토목공사라 불러야 할 정도로 큰일이니.
준비에만 최소 일주일 내지 한 달가량이 걸리는 작업.
하지만 적은 천명 이상의 마법사 를 보유하고 있고, 그렇기에 하루만에 수공을 준비하는 게 결코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그리 판단한 나는 급히 정찰대를 조직해 북쪽 강줄기를 조사하라 명 했고.
언제나 그러하듯.
- 사령관 각하! 보고드립니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다.
- 강의 수위가 내려가 있습니다! 적이 수공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 이 높습니다!
보고를 듣는 즉시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