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 제국의 건아들이여!
한지훈의 마나어린 목소리가 요새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석제 성벽이 진동할 정도로 크고 장엄한 목소리였다.
페르디난트, 그리고 요새에 있던 모든 제국 병사와 기사들이 한지훈을 바라본다.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 기 시작했다.
지금 한지훈은 연설하고 있다.
그가 이어 말했다.
- 성벽 밖을 보아라. 적인 연방 의 전력은 강대하며, 우리는 약소하다. 필시 힘든 싸움이 되겠지.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 덕이고, 중간 장교와 지휘관들은 홈 칫 눈살을 찌푸렸다.
거대한 전투 전. 사기를 조금이 라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중간 지휘관과 독전관들이 쉼 없이 요새 내부를 돌아다니며 윽박지르 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
어째서 한지훈은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적이 강하며, 이쪽이 약소하다는 이야기 따위.
사기 증진에 일말의 도움조차 되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하지만 아직 한지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 일만의 병사와 오백의 기사들. 그대들의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지훈의 목소리가 요새를 울리는 순간, 병사 장교 할 것 없이 깨 달을 수 있었다.
지금 한지훈의 연설은 평소와 달랐다.
그동안 한지훈은 십인장일 적 부터 야전군 사령관이 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휘하 병력에게 노력해달 라는 소리 따위 한 적 없었다.
그저 자신이 승리를 거머쥐게 해 줄 터이니 믿고 따르라고 했을 뿐.
하지만 지금 한지훈의 연설은 무 언가가 달랐다.
- 힘겹고 고된 싸움이 되겠지만, 부디 힘을 내다오. 그대들은 자랑스 러운 나의 부하들이며, 제국의 영웅 들이다.
휘하 병사들의 힘이 필요하다 말하고 있다.
- 그대들의 힘과 노력으로 연방 의 야욕을 막아, 제국에 있을 가족 과 국민을 수호하는거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무력과 지략을 드높이는 연설이 아닌, 휘하 병사들을 다독이는 연설을 하는 것.
비록 유려하지도, 능숙하지도 않은 짧은 연설에 불과했지만.
병사들이 한지훈의 심경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마침내 병사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한지훈 사령관께서 우리를 필요 로 하신다.'
언제나 가장 앞에서서 군을 지휘하던 한지훈이었다.
공작위를 지닌 고위귀족이자 제국의 전쟁영웅. 황제의 측근. 수많 은 전쟁에서 항상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어 왔던 전쟁의 천재.
그는 항상 병사들을 이끌 뿐이었다.
마치 우매한 평민들을 이끄는 귀족들처럼, 언제나 고고한 시선으로 아래인 그들을 굽어 살폈던 것이다.
의지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말이다.
허나 저자, 한지훈 라이젠 북부 사령관이 이제는 병사들의 힘을 믿고 의지하고자 한다.
"… 오오."
그 의미를 깨달은 병사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자긍심이 차오른다.
제국의 영웅, 한지훈 라이젠. 그 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진심어 린 자부심이.
- 우리의 위대한 제국을 위하여 !
한지훈이 그리 말하며 연설을 마치는 순간.
오오오오오오!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
한지훈 라이젠 사령관 만세!
병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 의 웅장한 목소리가 한지훈의 마나 어린 그것처럼, 요새 전체를 진동케했다.
"말씀드리길 잘했군요. 한지훈 사령관님."
그 모습을 바라보는 페르디난트 요새장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부담감을 감수하며 직언을 올린 이유. 이러한 광경을 원해서였 을지도 모른다.
'병사들에게 필요한건 자긍심 이 었지.'
제국의 병사들은 강하다.
특히나 제국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겪어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은 북부 야전군의 군대는 더더욱.
하지만 그들은 위축되어있었다.
북부군의 무수히 많은 승리는, 자신들 병사들이 노력한 결과가 아닌. 한지훈이라는 위대한 영웅이 이 륙해낸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개 병사들인 그들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이지만, 한지훈 라이젠이 없는 순간 저 영광스러운 승리들이 빛바랜다는 것을 알기에.
일종의 무력감에 빠져있었던 것 이다.
그렇기에 북부군 병사들은 예상 보다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한지훈에 대한 의존성이 너무나 도 높기 때문에, 그조차 이겨낼 수 없는 역경이 닥친다면 빠르게 사기 가 하락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연설에서 한지훈 은 병사들을 믿고 의지하겠다고, 그 들의 힘과 노력을 바란다고 말했다.
평소 한지훈을 동경했던 병사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이리라.
자신들이 보잘것없는 일개 병사가 아닌, 저 대영웅 한지훈조차 믿고 의지하는 병사들이라는 자부심이 생길 터.
사기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좋아. 그럼…."
페르디난트는 시선을 돌려 성벽 밖을 바라본다.
어느새 공성전 준비를 끝낸 연방 군의 대규모 군세. 그들이 마침내 진형을 꾸리고 전진해오기 시작한다.
쿵, 쿵, 쿵, 쿵, 쿵.
저들의 묵직한 발구름 소리가 대 지를 울린다.
페르디난트가 후욱 심호흡했다.
"이제 싸울 때로군."
그가 전투의지를 끌어올린다.
"총원! 전투준비!"
"전투 준비해!"
"발리스타 조준하라! 목표는 적의 공성병기! 원거리 투사 공성병 기부터 우선 처리한다!"
"발사!"
콰아아앙! 쾅! 쾅!
성벽 위의 발리스타들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거대한, 순체 쇠창이라 불러야 할 투사체들이 공기를 가르고 나아 간다.
이쪽으로 접근 중이던 공성병기 들이 하나씩 관통되어 부서지기 시작한다.
콰드드드득! 우지근!
무너지는 적의 투석기와 발리 스타들.
하지만 적들 또한 가만히 맞아주지 않았다.
"놈들의 투석기 공격이 옵니다! 몸을 낮추십시오!"
휘하 장교의 커다란 목소리. 직후 내 발치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집체만한 돌덩어리가 육중한 파공음을 울리며 이쪽으로 쇄도해오고 있었다.
적의 투석 공격이다.
"사령관 각하! 위험…!"
병사들의 경악소리. 하지만 괜찮다. 나는 저까짓 투석 공격에 당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으니까.
장검을 뽑아들어 휘둘렀다.
서걱!
내 오러 서린 장검이 이쪽으로 쇄도해오던 돌덩어리를 절삭했다.
푸른색 섬광이 번뜩이고, 돌덩이는 허공에서 반으로 갈라져 양옆으로 떨어져내렸다.
콰아아앙! 쿠우우웅…!
충격에 흔들리는 발치의 지면. 나는 크게 외쳤다.
"적의 원거리 공격이 거세다! 병사들은 몸을 낮추고, 발리스타 운용 병들은 원거리 투사체부터 노린다!"
"사령관 각하! 이곳은 위험합니다! 적의 투석과 발리스타 공격에 성벽이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안전한 요새 중앙으로 피해 계십시 오!"
"아니. 나는 이곳을 지키겠다."
후우우웅.
다시금 이쪽을 향해 적의 투사체 가 쇄도해온다. 이번에는 쇠창.
그것 또한 검으로 파훼한다.
카아앙!
내 장검의 옆면이 그것의 측면을 두들겼고, 커다란 쇠창이 힘없이 튕겨나갔다.
발리스타 투사체가 바닥을 구른다.
나직이 이어 말했다.
"이래봬도 드워프들이 축성한 요새다. 저런 투석기와 발리스타 공격 따위로는 부서지지 않아. 걱정 마 라."
"각하…!"
"그만. 내가 이곳에 있어야 병사들의 사기가 조금이라도 오를 것 아니냐. 나는 이자리를 지키겠다."
휘하 참모는 내 말에 입을 닫고 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조심하십시오. 각하께서 무너지신 다면 이 요새는 순식간에 와해당 할 것입니다."
"알고 있어."
"저는 발리스타 병사들을 지휘하러 가보겠습니다! 부디 무운을!"
장교는 그리 외치고는 성벽을 내달렸다. 발리스타 운용병들을 격려 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나는 저 멀리 우글거리는 연방군 의 군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여간. 규모 한번 무식하네."
무려 수백에 달하는 적의 발리 스타와 투석기가, 쉼 없이 이쪽 성벽을 두들기고 있다.
쿵! 쿠구웅! 콰아아앙!
지금 이 순간에도 적의 투사체들 이성벽에 격돌했다.
그때마다 미약한 진동이 발치를 타고 오르며, 성벽이 흔들흔들거리며 위태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여유롭다.
'괜히 드워프의 축성술이 아니야.'
투사체가 격돌할 때마다 위태롭 게 흔들거리는 이성벽.
사실 겉보기와 달리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중이다.
'충격을 성벽 전체로 분산시켜, 적의 투사체 공격을 더욱 오래 버 텨내고 있는 거지.'
적들은 이성벽의 우수성을 모를 것이다.
투석이 적중할 때마다 요새 성벽 의외부가 걸레짝이 되어가고 미약 하게 휘청거리니. 단순 투사체 공격 만으로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여기겠지.
그렇기 때문에 벌써 수 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원거리 투사체 공격을 해오고 있을 터.
'최대한 오래 투석 공격을 해줬 으면 좋겠는데 .'
하지만 겉보기로 보이는 모습만 위태로울 뿐.
실상 적의 투석 공격으로는 이성벽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으니 .
놈들이 투석 공격을 가능한 오래 지속해 최대한 많은 시간을 소비하 기를 바랄 뿐이다.
허나 적 지휘관이 내 예상보다도 통찰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일까.
"적이 투석 공격을 중지했습니다!"
"투석기와 발리스타가 뒤로 빠집 니다! 저건…! 제기랄! 적이 마법포 격을 준비합니다!"
놈들이 투석기와 발리스타 공격을 포기하고, 마법사를 내보냈다.
번쩍! 번쩍!
연방측 군영에서 하나둘 피어오르는 푸른색 광휘.
쿠르르르르…!
장중한 마나의 파동이 일고, 저 드높은 하늘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하나둘 떠오른다.
연방측 전투마법사들의 광역공격 마법.
적이 마법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 100중첩 광역공격 마법이 10개입니다!"
"저 정도의 화력이면 이성벽은 결코 버티지 못합니다! 무너질 겁 니다!"
"사령관 각하, 위험합니다. 어서 대피하십시오!"
"전군! 2성벽으로 후퇴하라! 1성 벽을 포기한다!"
적진에서 천여 명의 전투마법사 들이 이쪽으로 화력을 투사하려 하고 있다.
으득 이를 갈았다.
'벌써부터 마법공격이라니.'
적이 최대한 마법공격을 아끼리 라 예상했다.
놈들은 이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 뿐만이 아닌, 나머지 주력군과의 전투도 고려해야 하니까.
대규모 회전을 대비해 전투마법사들의 마나를 최대한 아낄 것이라 추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도 적 지휘관 은 전투마법사 전력을 더욱 빨리 꺼내 보였고.
그건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대피! 어서 대피하라!"
"2성벽까지 후퇴…!"
장교와 병사들이 아우성치고, 허공에 떠올라있는 커다란 마법진들 의 기운이 점차 강대해진다.
쿠구구구구구…!
공기를 진동시키는 마나의 울음. 이후 허공에 하나둘 생성되어가는 각양각색의 투사체 무리.
물, 불, 전격, 바람, 대지.
다양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적의 광역공격 마법 투사체들이 하늘을 빼곡히 메워가고 있다.
나는 허공에 떠오른 투사체 무리를 바라보며 뇌까렸다.
"제피르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지?
그리 이어 말할 수 없었다.
- 이런. 설마 늦은 건 아니겠지? 애송이.
품속 통신수정구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므로.
그가 클클 웃으며 말해온다.
- 초장거리 도약 마법이 마침내 완성됐다. 약간 늦은 것 같지만 그 정도는 봐주지 그래. 이래봬도 바로 달려온거다.
나는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는.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운용해. 마침내 이곳 제3요새에 도착한 수백의 인영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해 천천히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는 한 전투마법사.
"제 피르."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단장, 제피르. 내가 가장 신임하는 마법사.
그가 입가에 꼬나물고 있던 연초 를 퉤 뱉어내며 말한다.
"아슬아슬하군. 바로 방호마법을 펼쳐야겠어."
"막을 수 있나? 이쪽의 전투마법사는 오백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걸 보면 알겠지만…"
"그래. 100중첩 광역마법 열 개 라. 적 전투마법사 천여 명이 동원 한 마법이군. 우리 제국군 전투마법사 오백으로는 막아낼 수 없지."
"그럼…."
이쪽이 너무 불리한데.
같은 소리를 입에 담을 이유 따 위는 없었다.
"지원군이 필요하겠군."
제국군만이 이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
번쩍! 번쩍! 번쩍!
초장거리 도약 마법이 또다시 발현되었다. 제피르의 배후에서 다시 금 많은 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 낸다.
지원군의 정체.
다름이 아니었다.
"이름 없는 별. 다행히 제가 제시간에 도착한 것 같군요."
"마게브."
엘븐 가디언 마게브.
엘프의 위대한 대마법사.
"저와 제 동족들까지 온 이상, 적의 마법사들은 이성벽에 작은 흠집조차 낼 수 없을겁니다."
그 또한 수백의 엘프 마법사들을 이끌고 전장에 합류한 것이다.
그가 지팡이를 드높이 치켜들며 말한다.
"인간 마법사, 그리고 엘프 마법사. 서로 힘을 합쳐 연방군의 군세 를 물리쳐보죠."
그들이 방호마법을 발현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