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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08화 (308/390)

308화.

서걱.

내 장검이 부상당해 바닥을 기고 있던 연방군 병사의 모가지를 꿰뚫었다.

"커헉…."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핏물이 질척하게 새어나와 흙바닥을 적신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해 떴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동이 텄다.

노을이 일고, 전장의 모습이 뚜 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제국군 병사들이 백인대 단위로 전장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시체들을 한번 씩 찌르고 지나갔다.

어떤 시체는 이미 죽어있었고, 어떤 시체는 죽은 척 하고 있던 놈이었으며. 중상으로 인해 단순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놈도 있었다.

그 모두를 찔러 완벽하게 숨통을 끊어버린다.

대규모 회전이 끝난 직후 확인사 살 작업이었다.

나 또한 가만히 서 있기에는 좀 이 쑤셨으므로, 전장을 돌아다니며 확인사살 작업을 거들고 있다.

서걱.

바닥에서 죽은척 하고있던 연방 놈의 목을 찌른다.

"끅, 끄륵…."

녀석 또한 몸을 부르르 떨더니, 피를 쏟으며 절명했다.

아무리 죽은 척을 잘 해봤자다.

내 시선을 피할 수는 없다.

나는 오러를 운용하는 강자였고, 그런 강자의 기감은 일반 병사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니까.

쓰러져 있는 몸뚱이가 죽은 건지 산 건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간파 해낼 수 있다.

연방군 병사들의 죽은 척은 완전 쓸모없는 짓거리인 것이다.

아, 영 쓸모없지는 앉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이쪽이 죽이 기 훨씬 수월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나와 병사들이 쓰러져있는 연방군 병사들을 하나 씩 확인사살하고 있을 때.

"한지훈!"

두두두두두.

누군가가 전투마를 타고 이쪽으로 달려온다.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내지시 로 제2군을 지휘하게 된 관전무장, 마이사 슈베츠였다.

녀석이 내 곁까지 전투마를 이끌 고 오더니 훌쩍 뛰어내렸다. 멋들어 지게 착지한 녀석이 잠깐 숨을 고 르고는 내게 알려온다.

"한지훈! 그대 소식 들었나? 이번 전투 결과가 추산되었다."

그리 말하는 마이사의 얼굴은 기쁨으로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하긴, 이번 전투에 참여한 인물 로서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 .

"적 10만이 완전히 전멸했고, 아 군 손실은 전사 2천에 부상 1천이 다! 압도적인 교전비야!"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사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란체스터 제2법칙에 따르면, 33만의 군대가 10만 군대를 전멸시킬 때의 손실은 1만6천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건 서로가 정면으로 맞 붙는 정정당당한 회전에서의 이야기이다.

우리 제국군은 완벽하게 놈들을 기습했고, 적인 연방군은 제대로 된 준비조차 하지 못한 채 이쪽을 마주했다.

기습의 시작이 다름 아닌 광역 마법공격이었다.

처음부터 병력의 삼분지 일이 갈 려나가고, 지휘부가 소멸했으며, 병력이 극도의 혼란과 분열 상태에 빠졌다.

그러니 저 정도로 압도적인 교전 비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 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리 예상했던 나와는 다 르게, 마이사에게는 꽤나 놀라운 일 이었는지.

"1: 33의 교전비로, 연방의 10만 대군을 완전히 소멸시킨거다!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이다…. 그렇지 않나, 한지훈?"

그녀는 여전히 기쁜 기색으로 재 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픽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놀라서는 안 되는데, 마이사."

물론, 압도적인 대승이다.

블랙 오케스트라 세계관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나 겪을 일인 데 말이야."

이런 대승을 계속해서 거머쥘 예정이다.

적 병력 10만을 제거했지만, 아직도 놈들에게는 90만에 달하는 전력이 남아있다. 거대한 승리를 취했 음에도 아직도 제국의 전력은 연방에게 훨씬 열세인 것이다.

보다 많은 대승을 거두어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런 대승을 여러 번 반복해야만 우리 제국 군이 연방에게 이길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마이사. 우리 제국군은 기동전으로 연방군을 상대할거다."

나는 기동전을 펼쳐 연방군을 각개격파할 심산이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적은 멍청하지 않다.

이번 전투를 계기로, 이쪽이 각개격파를 노린다는 걸 적은 어렵지 않게 눈치 챌 것이다.

당연히 이쪽의 움직임에 맞춰 대응하리라.

병력을 뭉치거나, 혹은 이쪽 병력의 합류를 저지하거나. 마법 전력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지막 승자는 우리 제국이 될 것이야."

승리를 확신했다.

이전 시나리오에서 한번 이겼던 연방이다. 이번에도 나는 승리를 쟁 취할 것이다.

전략은 준비되어 있으며, 보급과 정보 수집은 엘프의 지원으로 차질 이 없다.

병력의 사기 또한 모처럼 얻은 대승으로 최상이었으니 .

이길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하루 휴식하고, 다시 움직이자. 연방놈들을 계속 사냥해야지."

제국군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 한다.

연방 원정군 제10군이 전멸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한지훈이 이끄는 제국군 은 멈추지 않았다.

제국군은 신출귀몰했다.

그들은 세 갈래로 흩어지는 것과 하나로 뭉치는 것을 반복하며 연방 군을 사냥해갔다. 여러 번의 전투가 제국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리하여 지금은….

"세 개의 작전군, 도합 30만 병력이 손실되었습니다. 사령관 각하."

연방측의 병력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헤르베르트를 보좌하는 참모가 이어 보고한다.

"제6군, 7군, 10군이 소멸한 상태입니다."

"…개같은 제국놈들. 이토록 성가 시게 싸울 줄이야."

참모의 말에 헤르베르트는 표정을 구겼다.

제10군이 전멸한 뒤, 두 번의 전투가 더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쪽을 향해 진 격해가던 연방군 10만 군세가 전멸했다.

전투의 과정은 항상 비슷했다.

세 갈래로 나뉘어 움직이는 제국 군.

놈들은 목표한 연방군 군세에게 나뉘어 접근한 뒤, 삼면에서 동시에 덮쳤다.

대규모 화력마법을 퍼붓고 화살공격을 가한 뒤, 기사를 출격. 이후 보병대가 전진해 전장에 남아있는 잔여병력을 청소한다.

일련의 과정은 매번 아무런 문제 없이 부드럽게 이루어졌다.

병력이 행군하는 것은 은밀했고, 전장에서의 합류 또한 부드러웠다. 더해 화력의 선택과 집중 또한 너무나도 효율적이었으니 .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기동전이 아닐 수 없었다.

본래 기동전이란 성공하는 예보 다 실패하는 예가 훨씬 많을 정도 로, 까다롭고 어려운 군 운용법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적보다 비교적 열세인 병력으로 적의 영역을 헤집 으며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다.

출중한 정보력과, 재빠른 기동성, 준수한 장비와 단련된 정예병력, 더해 유능한 지휘관이 준비되어야 비로소 실행이나마 해볼 수 있는 것 이 바로 기동전이라는 놈이었다.

하지만 한지훈은 그런 기동전을, 무려 야전군단위의 병력을 이끌고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해내고 있다.

만약 헤르베르트가 적으로서 그 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면, 그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만큼 한지훈의 기동전은 완벽 했으니까.

하지만 한지훈의 기동전에 희생 되는 것은 헤르베르트의 부하들이었으며.

그렇기에 그의 표정에는 그저 분노와 짜중어린 표정만이 자리해있었다.

"망할!"

콰앙!

헤르베르트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찍었다. 그가 분노어린 목소리 로 크게 외친다.

"놈들을 어떻게 막아야 한단 말이냐!"

그동안 연방측에서도 제국군의 기동전을 막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병력의 행군로를 조율해 놈들의 합류를 막아보는가 하면, 정찰능력을 강화해 적의 접근을 미연에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병참의 부담을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두 개의 작전군을 합쳐 진군시키기도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노력을 비웃 듯, 한지훈이 이끄는 제국군은 여전히 큰 무리 없이 연방군을 사냥하고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다름이 아니었다.

"…사령관 각하. 가장 큰 문제는 적의 정보력입니다. 엘프와 공조 중 인제국놈들은 대륙 전체를 훤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보력의 격차.

엘프와 요정족의 지원을 받는 제국군의 정보수집 능력은 완벽했다.

실시간으로 대륙 전역의 정보를 얻는 제국군이다.

연방측이 한지훈에게 대응하기 위해 무언가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한지훈은 금세 그 행동과 의도를 파악하고 계획을 수정해버리곤했다.

즉. 지금 이 순간에도 제국군은 연방의 군사행동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중앙대륙 어디에나 있는 요정족들이 대량의 정보를 알려주기에.

그런 정보를 엘프가 잘 갈무리해 제국군에게 전달하기에.

제국군은 별다른 정찰활동 없이 도 이쪽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반면 연방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

중앙대륙은 인류에게 있어 미지 의 땅.

지형정보 따위 없으며, 미리 만들어진 지도 또한 없다.

그렇기에 연방군의 진군은 마치 장님이 앞길을 더듬어 나가듯, 그때그때 선도정찰병을 운용해 길을 찾는 것 밖에 없었다.

지금 전투의 양상은 두 눈을 가 린 거한과, 양 눈이 멀쩡한 소인의 싸움과도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대량의 병력과 물자를 지 니고 있다 한들.

가진 정보의 차이가 이토록 압도 적이라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으득.

헤르베르트가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다간, 세계수에 도달하 기도 전에 원정군 절반이 갈려나갈 터다.'

벌써 세 개의 작전군, 30만의 정 병, 전 병력의 삼분지 일이 소멸한 상태다.

그리고 아직 세계수에 도달하기 까지는 약 일주일가량 남은 상황.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제국 놈들 이 적어도 두 번의 야습을 가할 수 있을 만한 여유 시간이었다.

헤르베르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제국놈들의 기동전을 막을 수 있는 방법.'

허나 별다른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놈들의 기습을 염려해 병력을 뭉 치자니 병참선이 버티지 못한다.

기동전에 대응해 기동방어를 펼 치고자 하니 정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적의 보급로를 자르고자 하니 그 보급로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놈 들의 보급은 이곳 중앙대륙의 원주 민인 엘프가 거의 전담하고 있기에. 그리고 놈들 또한 이쪽의 보급을 약탈해 물자손실을 충원하기에.

어찌해야 하는가?

그렇게 헤르베르트가 고민하고 있을 때.

- 곤란해보이는군. 헤르베르트.

펄럭.

사령부 막사의 천막을 걷으며,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들어온다. 그에 헤르베르트의 눈동자에 불쾌함 의 기색이 스쳤다.

'크라함.'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인간.

크라함. 볼라바아 학파의 종주.

흑마법사들은 중앙대륙 전쟁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령관인 헤르베르트가 그들과의 협조를 거의 제한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동안 조용했던 그들의 수장, 크라함이 갑작스레 사령부 막 사에 등장했다.

무슨 할 말이 있기에?

헤르베르트는 긴장감을 끌어올렸고, 크라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네 곤란한 상황. 볼라바아가 해결해줄 수 있다.

볼라바아의 흑마법사들 또한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소리다.

헤르베르트는 짐짓 태연한 척, 고개를 가로지르며 대답했다.

"곤란이라… 전혀 아니다. 우리 연방군의 행군은 순조롭다."

- 30만 정병을 잃고 그런 소리 인가?

크라함의 그 말에, 헤르베르트는 흠칫 눈가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연방이 대량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

본디 놈들이 몰랐어야 하는 소식 이었으니까.

병사들의 사기 관리를 위해, 그리고 흑마법사에게 한 톨의 정보라 도 넘기지 않기 위해. 미리 장교와 참모진에게 엄중한 입단속을 가하고 있던 헤르베르트였다.

원정군 최고 사령관 헤르베르트 의 명령은 준엄하다.

아군의 패전 정보를 유출하는 자 가 있다면 사형까지 집행하겠다 전 파한 그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는 이쪽의 패 전소식은 고위 장교와 참모들만 알 음알음 알고 있을 뿐, 거의 은폐된 상태일 터인데.

헌데 크라함은 어떻게 그 소식을 입수한 것인가.

크라함이 그 의문에 답하듯, 메마른 목소리로 이어 말한다.

- 남쪽에서 이토록 진한 죽음의 냄새가 풍겨오는데, 모를 리가 없지. 표정을 보아하니 일방적으로 당 했나보군.

"… 제기랄."

기분 나쁜 놈.

헤르베르트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죽음의 냄새라니. 저자는 이토록 머나먼 거리에서 혈향이라도 맡는 가는 것인가?

헤르베르트가 표정을 찌푸리고, 참모들은 크라함의 불길한 분위기에 질색하고 있을 때.

크라함이 입을 연다.

- 내가 도와주마.

음영이 드리워 어둑한 로브 후드 의 안쪽, 한 쌍의 붉은색 안광의 진하게 번들거린다.

- 네 같잖은 군대의 일부를 내게 바쳐라. 그리한다면 제국군 따위, 순식간에 없애주지.

헤르베르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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