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제국군은 은밀히 적의 영역 깊숙 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선도 정찰대를 이끌고 본대 보다 훨씬 앞에서 나아갔다. 빽빽한 숲속을 누비며 전진한다.
그 와중. 우리는 적의 초계병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제국! 제국군이다!"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이지?! 이곳은 후방일 터인데…!"
"후퇴! 후퇴하라! 적의 습격을 본 대에 알려야 한다!"
경악하는 연방의 병력들. 놈들은 이 울창한 숲속 곳곳에 퍼져있는 적의 소규모 척후병들이었다.
수는 고작해야 십인대 규모. 당연히 천인장 둥 통신수정구를 지닌 장 교는 포함되어있지 않을 터.
나는 멀찍이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지시했다.
"제압해. 가급적 죽이진 말고. 심 문해야 하니까."
"사령관님의 명령을 받듭니다!"
제국군 병사들이 화살을 쏘아댔다.
피잉. 핑. 수십에 달하는 화살 세 례가 적에게 쇄도한다. 조준사격이었다. 팔이나 다리 등, 급소가 아닌 부위를 노리고 화살들이 박혀간다.
퍼버버벅.
"커헉…!"
"아악! 아아악!"
연방의 척후병들이 하나둘 나자빠 진다.
지금 내가 이끌고 온 선도정찰 병력은 제국의 레인저 일개 중대, 약 백여 명.
레인저인 만큼 정예 중 정예였고, 몹시나 정밀한 궁술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놈들은 금세 제압되었다.
배후에서 지켜보던 나는 천천히 걸어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놈들의 앞에 도달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번이 열 번째인가."
벌써 열 개에 달하는 적 십인대 를 제압했다.
어느덧 우리 제국군은 연방군 영토 깊숙이 파고들었고, 적의 진군로에 하루 거리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그에 연방군 정찰병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었으니 .
'확실히 가까워졌어.'
즉, 그만큼 놈들과 인접해있다는 것일 터.
대규모 전투가 그리 머지않았다.
나는 주변에서 있는 레인저 장 교를 호출해, 그에게 지시했다.
"심문작업 실시해."
"알겠습니다! 거기, 병사! 놈들을 포박하고 본대까지 이송해!"
장교의 지시에, 레인저 병사들이 쓰러진 연방군 초계병들을 포박해 이송하기 시작했다.
이제 저 초계병들은 제국군 본영에서 고문을 동반한 심문작업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눈동자를 돌려 시야에 떠올 라있는 홀로그램 미니맵을 주시했다. 절로 흡족한 미소가 입가에 지 어진다.
"용케 여기까지 안 들키고 진출했어."
충분히 만족스러운 행군길이었다.
많은 노력과, 약간의 기적, 그리고 철저한 정보적 우위 덕분에 행할 수 있던 기동이었다.
엘프와 연계해 요정족의 정찰정보를 받아들여, 적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흑마나 탐지 아티팩트를 운용해, 정찰용 키메라 엘프를 그때그때 요 격했다.
다수의 선도 정찰부대를 운용, 적의 척후병들을 하나둘씩 사냥해 정보의 누수를 틀어막았다.
심지어 먼 거리에서 이쪽의 위치 를 파악 당하지 않기 위해, 행군길 내내 불을 피우는 것조차 제한하기 도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노력을 아낌없 이 쏟은 덕분에 놈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세 개의 군, 도합 삼십만에 달하는 제국의 군대가 초계망에 탐지되지 않고 놈들의 바로 코앞까지 도달 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새벽, 동이 트기 직전. 야 습이다."
선도 정찰대들이 놈들의 초계병들을 착실히 사냥해 제압했다. 이제 녀석들의 감시망은 거의 없다시피 한상황.
아직 놈들은 이변을 눈치채지 못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당장 내일 정오 무렵, 파견했던 척후병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으로 우리군의 접근을 알아챌 것이다.
그러니, 그이전에 놈들을 친다.
가장 어두운 시간대, 동이 트기 직전을 노리고 놈들을 친다면 안심 하고 있던 연방군 놈들에게 치명적 인기습을 가할 수 있을 터.
야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통신 수정구를 집어 들고 지시했다.
"전군에게 전파한다. 각 군, 지정 위치까지 도달한 이후 자정까지 휴식을 취하라. 야습을 준비한다."
몇 시간 뒤. 무방비한 연방놈들을 갈아버릴 수 있다.
나는 그때를 기다린다.
* * *
"아직 적영을 확인하지 못했는 가?"
연방군 사령부 막사. 그곳에서 한 사내가 그리 물었다. 막사의 가장 상석에 자리해있는 인물이었다.
연방 원정군의 최고사령관, 헤르 베르트 방겐하임 공작.
그의 물음에 휘하 군관들이 하나 둘 입을 열었다.
"… 송구하게도 그렇습니다."
"각 군에게 척후조 운용을 지시했습니다만, 아직 적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숲이 너무나도 울창하고, 지형 또한 험하기 때문에…."
"적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군관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난처 하다는 듯한 표정이 올라와 있었다.
허나 그런 군관들의 보고에도, 헤 르베르트는 미리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쉽게 수긍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보병으로 이루어진 척후조는 활동에 제한적이고, 기병대는 완전히 무용지물인 상황이니."
요정들의 정보를 통해 정찰 활동을 하는 제국군과는 다르게 연방군 은 오직 직접 정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중앙대륙은 타 대륙과 달리 너무나도 울창한 산림과, 울퉁불 퉁한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곳.
정보수집과 정찰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해 키메라 엘프들조차 제대로 된 정찰 활동을 하지 못하는 지금, 연방군은 순전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들의 시야는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상관없다. 진군은 순조로우니."
그럼에도 헤르베르트는 개의치 않았다.
"앞으로 일주일만 행군하면 마침내 중앙에 도달한다."
비록 정찰 활동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들, 그들의 전략적 목표 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연방군의 목표는 다름이 아니었다.
"세계수."
중앙대륙의 중앙에서, 이 세상 천 지에 자연력과 마나를 순환시키는 거대한 영물.
세계수만 차지한다면 그들 연방군 의 승리였다.
"세계수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는 건 우리 연방군이 되어야만 한다."
헤르베르트는 시선을 내려 테이블 위에 있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도에는 연방군의 진군대열이나 타나 있었다.
열 개의 행군로를 따라 진군하고 있는 연방군.
흑마법사들은 비교적 후방에 자리 하고 있었다.
비교적 진군속도가 느린 제4군에 대다수의 흑마법사들을 배치한 이유 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세계수에 늦 게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흑마법사 놈들에게 전공을 내줄 수는 없지.'
그가 그렇게 지도를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각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한 군관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에 헤르베르트는 지도에서 시선을 뗐다.
"흑마법사들이 실험체를 요청해왔습니다."
"실험체?"
군관의 말에 헤르베르트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올라왔다.
"엘프 포로 이백여 개는 이미 흑마법사 놈들에게 모조리 넘겨주지 않았는가? 놈들 또한 더 이상의 포 로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인 데."
"맞습니다. 이미 우리 군이 보유 하고 있던 엘프 포로들은 흑마법사 들이 모조리 가져갔지요."
동부 연안요새에서 사로잡아 흑마법사에게 넘긴 엘프 포로가 무려 이 백.
이제 연방군이 보유한 엘프 포로는 단 한 명도 없다.
그걸 모를 크라함이 아닌데, 어째서 추가 포로를 요청하는가?
군관의 말이 이어진다.
"놈들이 요청하는 것은 미래에 포 획할 포로들입니다."
"미래에 포획할 포로들이라. 그 말은?"
"재촉하고 있는 겁니다. 진군속도 를 높여 엘프와 전투를 벌이라고.
그리고 엘프들을 죽이지 말고 가급 적 생포해,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말 입니다."
"… 어이가 없군. 염치도 없는 쓰레기 놈들."
쯧. 헤르베르트가 혀를 찼다.
물론 그는 흑마법사들의 요청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놈들의 요청을 묵살하라. 우리는 진군속도를 높이지도, 엘프를 생포 하지도 않을거다. 엘프와 교전이 일어난다면 무리하게 사로잡지 말고 모조리 격살하라."
"하오나, 사령관 각하. 그들의 청을 묵살하기엔… 통령 각하의 명령이 마음에 걸립니다."
"괜찮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각하…"
헤르베르트의 말에, 자리해있는 군관들의 얼굴에 염려 어린 기색이 떠오른다.
지금 헤르베르트의 결정은, 흑마법사에게 전폭적으로 협력하라는 연 방 통령의 명령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만약 통령에게 이 이야기가 들어 간다면, 그는 처형당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연방 통령의 명령이란 준 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헤르베르트는 위험을 감 수하고자 한다.
'전쟁의 주역은 우리 연방군이 되 어야만 한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거기에 더해, 흑마법사에게 향하는 정보공유 또한, 최소화하도록 하라."
"최소화하라는 말씀은?"
"놈들에게 알리지 말란거다. 어디에서 어떤 전투가 벌어졌는지. 전황 이어떠한지. 놈들의 전력이 어떤지 말이야."
자리해있는 군관들 중 헤르베르트 의 말에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흑마법사란 족속에게 호감을 지닌 인물이 없었 기 때문이었다.
다만, 연방 통령의 명령을 거스른 다는 것에 우려 어린 표정을 지어보 일 뿐.
헤르베르트는 가만히 생각한다.
'정보를 제한한다면, 흑마법사 놈 들의 개입을 보다 지연시킬 수 있을 터.'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의 노력을 해볼 생각이었다.
이미 놈들과 협력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더 거리낄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그가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 각하!
그의 품속에 자리해있던 통신수정 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몹시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에 헤르베르트가 통신수정구를 꺼내 들고는 응답한다.
"무슨 일인가? 참모."
- 적습입니다!
"적습?"
들려오는 보고는 다름 아닌 적의 습격 소식.
그가 되물었다.
"적의 위치는? 어디지?"
- 남부에 위치한 10군입니다.
"10군이라. 우리군의 제일 남쪽 방향이로군. 역시 제국놈들은 우군 의 측면을 노리고 기동 중이었어."
혼란이나 당황은 없었다.
이미 적의 병력이 습격을 노리고, 우회 기동할 것이라 예상했던 그였 기에.
"적의 규모는? 파악됐나?"
헤르베르트는 그리 물으며, 적의 예상 규모를 추측했다.
'이쪽의 초계망에 들키지 않고 접근한 적 병력이라…. 많아 봐야 10만 아래일 터.'
합당한 추측이었다.
아무리 제국군이 이쪽의 초계망을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며 기동하고 있다 한들, 적의 병력은 모두 합쳐 봐야 30만에 불과하다.
놈들에게는 지켜야 할 세계수가 있다.
우회해 기습을 가한다 한들, 대다수의 병력은 세계수를 지키고 있을 터이니.
'그 정도의 병력이라면, 측면에 파고들었다 한들 금방 물리치겠지.'
그렇기에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 이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런 헤르베르트의 얼굴에는 곧 당혹감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 적의 병력은 30만입니다!
"…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30만이라니? 그건 놈들이 전군을 운용 하고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통신 참모, 그 말이 사실인가?"
그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수정구 너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 확실합니다…! 30만입니다! 삼십삼천0만에 달하는 적의 대군이, 세 갈래로 나뉘어 제10군을 향해 몰아쳐 오고 있습니다!
"… 설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불길한 직감 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랜 전쟁터에서, 적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입었을 때마다 느꼈던 감각이었다.
그가 다급히 테이블 위, 지도를 바라본다. 10군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그제야 헤르베르트는 적이 무엇을 노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맙소사…!"
헤르베르트의 얼굴 표정이 당혹을 넘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