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키메라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확실히 흑마나 탐지기가 있으니 편리하구나. 놈의 접근을 미리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으니…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야.
"그래. 대단한 아티팩트지. 누가 만든건데."
- 덕분에 적에게 탐지당하지 않고 무사히 진군할 수 있었다. 이제 놈들의 코앞이로군.
비콘 수정구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1군을 지휘하고 있는 오스카, 그리고 제2군을 지휘하고 있는 마 이사의 목소리였다.
순조롭게 키메라 엘프들을 처치 해가며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는 그 들의 보고.
내 입가에 절로 흡족한 미소가 올라온다.
"좋아. 다들 그동안 잘 해왔다. 연방놈들은 우리가 이토록 가까이 접근한 것조차 모르고 있을거다."
키메라 엘프를 배제해가며 전진 해간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덧 우리 제국군은 놈들의 측 면과 후방 지역에 상당히 접근해있는 상황.
여기서 하루 내지 이틀만 더 전 진한다면, 마침내 놈들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절로 기대되었다.
'놈들의 군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모습.'
시선을 내려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바라본다.
지도 위에는 동쪽으로 행군해가는 연방군의 모습과, 그들의 바로 코앞까지 접근한 제국군의 모습이 보였다.
세 개로 쪼개진 제국군이, 열 개 로 쪼개진 연방군의 옆과 뒤를 칠 때가 그리 머지않았다.
상황은 이쪽에게 유리했다.
키메라 엘프의 정찰을 모조리 파훼한 덕분에 연방놈들은 이쪽의 움직임을 전혀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해 놈들은 대규모 병력을 단번에 전진시키기 위해, 무려 열 갈래로 쪼개져 움직이고 있었으니 .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시금 상기 해본다.
'대규모 기습. 전선 단절. 각개격파. 보급로 차단.'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엘프가 숲속에서 놈들의 정면을 틀어막고, 오스카가 측면을 치며, 마이사가 녀석들의 연계를 차단함 과 동시, 내가 놈들의 뒤를 끊어놓 는다.
고개를 주억이며 헤아려본다.
'전투는 얼마나 이어질까.'
무려 백만에 달하는 연방군과 삼십만이 넘는 제국군이 벌이는 전쟁 이다.
이전처럼 커다란 회전 한두 번으로는 전쟁이 정리되지 않을 것이다.
적도, 아군도. 대규모의 병력을 쪼개어 움직이고 있으니 .
필연적으로 전선싸움이 될 터.
빠르면 일주일에서 한 달, 길면 일 년에 가까운 장기전이 벌어질지 도 모른다.
'물론, 절대 장기전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거지만.'
장기전에 진입한다면 불리한 것은 제국군이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 병참이 못 버틸 테니까."
지금 우리가 싸우는 전장은 본토 인 남부대륙이 아닌, 머나먼 중앙대륙이다.
보급에 부담이 없을 리 만무.
그리고 보급의 부담은 원정기간 이 길어질수록 심화되는 법이다.
"연방과 제국의 국력차가 너무 막대하니, 전쟁기간이 길어지면 길 어질수록 연방이 더욱 유리해지겠지."
연방이야, 워낙 그 국력이 강대 하기에 물경 백만에 달하는 대군을 연단위로 기동할 수 있을 터였다.
연방이라는 국가는 그만큼 강대 한국력을 갖추었으니 .
반면 제국의 국력은 연방에 비해 훨씬 약했다.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일 년을 더 버틸 수 있을 정도.
게다가 전쟁이란 무슨 일이 일어 날지 모르는 법.
보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예상 대비 더 많은 물자 소요가 일어난다 면, 일 년조차 채 버티지 못할거다.
그렇기에 장기전을 회피하고, 단 기전으로 승부를 보고자 전략을 설계하고 있는 나와 내 휘하 참모진 들이었다.
나는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스카."
- 듣고 있다, 한지훈.
"마이사."
- 무슨 일이지?
입에 담은 것은 두 지휘관의 이름들이다.
'제1군 지휘관 오스카 디 로드게 리스.'
신중하게 군을 운용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인물.
'제2군을 이끄는 마이사 슈베츠.'
전생에 내 라이벌이었으며, 현생에서도 가진 재능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는 이.
둘 모두 내가 마음속 깊숙이 신 뢰하고 있는 인물들.
그들에게 말한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에게 다음 기회란 건 없어."
내 가라앉은 목소리에, 수정구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기색이 느껴져 온다.
저들 또한 알고 있다.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아주 약간의 군재라도 가지고 있다면 깨닫지 못할 리 없다.
"우리 제국군은 단 한번의 패배 만으로도 파멸할 것이고, 연방군은 거듭된 패배를 겪는다 한들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겠지."
연방의 전력은 많다.
백만.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흑마법사들의 조력까지.
반면 제국군은 약소하다.
중앙대륙에 상륙한 제국군 병력 삼십만. 그리고 약간의 엘프 병력이 고작.
이러니 우리 제국군에게 단 한번의 실패도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단 한번의 패배만으로도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이런 것을 스노우볼 굴린다고 하던가.'
유리는 더 큰 유리를 부르고, 불 리는 더 큰 불리를 초래한다.
지금도 크게 불리한 상황이다. 헌데 이상황에서 패배까지 해버린 다면, 연방과의 차이가 돌이킬 수없이 벌어진다.
그러니 절대.
패배해서는 안된다.
"…이겨다오. 반드시."
나는 요청한다. 이겨달라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승리할 것이다.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하더라도, 발 악에 발악을 거듭하더라도 이겨보 일 것이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진입했을 그때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제국군이 연방군의 영역 깊숙이 파고든다.
검은색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 어 쓴 채, 후드 안쪽에서 붉은색 안광을 흩뿌리고 있는 흑마법사.
유일하게 남아있는 흑마법 학파, 볼라바아의 종주된 이.
크라함.
- 제기랄…! 어째서인거냐!
그가 분노한 기색으로 눈앞의 커다란 원탁을 내려쳤다.
크라함의 퍼석한 손아귀가 원탁 과 격돌한다.
직후, 콰아아앙!
고막을 유린하는 충격음이 사령 부 막사를 그득 울린다.
천막이 충격파에 휩쓸려 펄럭이고, 지면의 흙먼지가 일어났다. 원 탁의 일부가 단번에 부서져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방금 전 커다란 원탁 하나를 박 살냈음에도, 크라함의 노기는 채 사 그라지지 않았다.
- 어째서 정찰을 나간 키메라 엘프가 족족 귀환하지 못하고 있는거 냔 말이야!
그리 외치며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아귀 안에 들려있던 붉은색 보석이 우드드득, 부서져 가루가 된다.
농밀한 흑마나로 극한까지 강해 진 신체능력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행위였다.
부서진 보석가루들이 바닥에 주르르 떨어져 내린 뒤, 바람에 날려 힘없이 흩어진다.
그런 크라함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이, 헤르베르트 방겐하임 원정군 사령관.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키메라 엘프들이 돌아오지 않게 된 지가… 벌써 일주일째인가. 무슨 짓을 해도, 정찰에 실패하고 있지.'
지금 크라함이 보이는 발작. 사실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키메라 엘프가 귀환하지 않고, 아무런 정찰 정보가 들어오지 않을 때부터 점차 흉폭해지더니. 일주일 째에 이른 지금은 절정에 달한 상태였따.
헤르베르트가 크라함을 계속해 관찰했다. 후드의 진한 음영 속에서, 그의 메마르고도 불길한 목소리 가 울려온다.
- 제기랄… 한지훈. 한지훈! 놈 이 범인이다. 녀석이 내 키메라 엘프의 약점을 알고, 이용해, 파훼하고 있는거란 말이다!
크라함은 한지훈의 공작 때문에 자신의 정찰이 실패하고 있다 확신 하고 있었다.
그런 크라함을 바라보는 헤르베 르트의 눈가에 의아함의 감정이 어린다.
'어째서 한지훈에게 유독 적대심을 보이는 것인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인간들을 개 돼지마냥 취급하던 녀석이다.
헌데 유독 한지훈에게만은 저토록 날 선 반응을 보이는 크라함이었다.
녀석이 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한들, 평소 그의 태도와도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으니 .
크라함이 한지훈과 악연으로 묶 여있단 것을 알고 있지 않기에, 그저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헤르베르 트였다.
- …후욱.
한동안 분노를 터트리던 크라함.
그가 잠시 심호흡하며 기세를 추슬 렀다.
- …후.
그러자 조금씩 가라앉아가는 붉은색 안광. 검은색 기운.
주변이 점차 평온을 되찾아간다.
아무리 흑마법사라 한들, 크라함 역시 냉철한 두뇌를 지닌 마법사라는 것일까.
그리 어렵지 않게 감정을 추스른 것 같다.
크라함이 자신의 측근 흑마법사 들을 호출하고는, 곧장 지시했다.
- 정찰용 키메라 엘프의 생산을 중단하라. 남아있는 실험체 재고는 전투용 키메라 엘프의 생산으로 돌 린다.
그에 측근 흑마법사가 난처하다는 듯 대답했다.
- 종주님. 아직 전투용 키메라 엘프는 미완입니다. 양산할 만한 품질로 빚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 상관없다. 당장 아무런 쓸모없는 정찰용 키메라 엘프보다는, 미완 의 전투용 키메라가 보다 유용할 터이니.
- 허나….
- 반론은 받지 않는다. 당장 움직여.
- …네. 그리하겠습니다. 우리 볼 라바아의 위대한 종주이시여.
크라함이 밀어붙인 끝에 결국 정 찰용 키메라들은 생산 중지되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헤르베 르트.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부 천막 밖으로 나갔다.
펄럭.
천막이 나풀거리며 입구를 가리는 소리.
그가 자신의 숙소 방향으로 걸어 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기회다."
그가 시선을 돌려, 방금 전 빠져 나왔던 사령부 막사의 모습을 시야에 담는다.
사령부 막사 꼭대기에는 연방기 가 걸려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조국의 국기.
그것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영광스러운 원정전쟁의 주역이 흑마법사가 된다니. 그래서는 안 되지."
헤르베르트는 과거 크라함이 했 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헤르베르트가 이끄는 연방군은 어차피 고기방패에 불과하다고.
어차피 이번 중앙대륙 전쟁의 주 역은 흑마법사들이라고.
그렇게 놔둘 헤르베르트가 아니었다.
그의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전쟁 이후. 중앙대륙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우리 연방이어야만 한다."
크라함과 흑마법사들의 전장 장 악 능력을 낮추고, 연방군의 공헌도 를 높일 계획을 세우고 있는 헤르 베르트였다.
그가 누군가를 호출했다.
"부관."
"예! 사령관 각하! 하명하십시 오!"
그러자 사령부 막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부관이 뛰쳐나온다.
헤르베르트가 이어 말했다.
"비콘통신을 가동해 고위 참모들을 호출하라. 위치는 내 사령관 막 사다."
"알겠습니다. 용건은 어떻게 전하 시겠습니까?!"
"용건이라."
아무런 용건조차 알려주지 않고 참모들을 호출할 수는 없다. 그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참모의 물음에, 헤르베르트는 제대로 대답하려했다.
"이쪽으로 접근 중일 제국군의 탐색 및 색출 작업… 아니."
허나 중간에 그만두었다.
좀 더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가 피식 웃는다.
"흑마법사놈들의 체면을 구겨버 릴 기회라고 해. 그렇게만 말해도 충분히 알아먹을거다."
"명령을 따릅니다!"
"당연히, 흑마법사 놈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다. 만약 모습이 노출된다면 다른 용건이 있었다고 둘러대라. 놈들이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도록."
"그대로 이행하겠습니다!"
흑마법사의 체면을 구긴다는 것.
그말인 즉, 놈들이 이미 실패했 던 정찰임무를 연방군에서 수행해 성공시킨다는 이야기였다.
헤르베르트가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공을 세워야 한다. 압도적인 전공을.'
그는 여전히 사령부 막사 위에 올라있는 연방 국기를 바라보며 다 짐하고 있었다.
'흑마법사 놈들 따위가 나설 기회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전공을 세운다면, 통령각하께서도 생각을 바꿔주실 터.'
전공을 세울 것이라고.
'우리의 위대한 연방이 흑마법사 따위에게 의지하다니. 그런 불명예 를 지니게 되어서는 안된다.'
흑마법사에게 공적을 나누어 주 지 않고, 그들 연방군이 모조리 독 식해 연방을 불명예로부터 지켜내 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잠시간 연방군기를 바라 보며 다짐하고 있더니, 헤르베르트 의 부관이 다시 나타나 그에게 알렸다.
"사령관 각하! 호출 끝났습니다. 이십분 이내에 모두 도착할 것입니다."
"음. 흑마법사 놈들의 눈치는?"
"저희가 모인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좋군. 놈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천천히 그리로 가지. 따라와."
헤르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사령관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 헤르베르트 휘하 고위 장 성과 참모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흑마법사들과의 대 립해 공적치경쟁을 시작하리라.
연방군과 흑마법사들 사이의 내 분이 점차 심화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