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 키아아아아!
내가 도약해 놈에게 접근하자, 녀석은 곧장 자리에서 이탈했다.
직후 놈이 앉아있던 나뭇가지에 내 참격이 쇄도한다.
퍼억!
소음과 함께 잘려나가는 나뭇가지. 놈은 내 검날을 회피해 이미 다른 나무로 이동한 상태였다.
방금 전 놈이 앉아있던 나뭇가지 가 파쇄되어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내 미간이 좁아진다.
'개같이 빠르네.'
역시나. 키메라 엘프의 몸놀림은 상당히 재빨랐다.
아무리 자리에서 도약해 가한 검격이었다 한들, 단번에 회피해버리 다니.
과연, 엘프를 소재로 만든 키메라답다.
파악!
놈이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뒤쪽으로 도망치려 한다.
아무래도 이쪽의 전력을 대략적 으로 파악했으니 , 뒤로 빠져 보고하 려는 듯한 모양.
저 키메라 엘프는 정찰 목적으로 만들어진 놈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전투능력보다는 기동성을 특화시킨 개체.
그만큼 놈의 몸놀림은 빡르고 기 민했다.
허나 괜찮다.
'비록 놈이 재빠르다 한들, 녀석 의 진로를 제한한다면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나는 크게 외쳐 지시했다.
"궁병대! 화살을 쏴라! 놈의 진로 를 방해하는거다!"
행군 대열의 선두는 레인저들이 선도하고 있었고, 정예인 그들 중에는 실력 있는 궁병들이 많았다.
레인저들의 화살공격이라면 키메라 엘프의 진로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을 터.
비록 갑작스러운 키메라 엘프와 의 조우에 얼어있던 그들이었으나, 그럼에도 정예인 레인저들이다.
"네, 네! 궁병대! 화살 장전! 놈 의도주를 저지하라!"
"장전!"
내 고함소리에 그들이 퍼뜩 제정 신을 되찾고 활시위에 화살을 먹여 장전한다.
도주하는 키메라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는 이어지시했다.
"쏴!"
피피피피핑!
수십여 개의 화살이 키메라 엘프 에게로 쇄도했다. 날카로운 화살소 리가 공기를 긁어댔다.
갑작스러운 화살공격.
- 키아아아아!
그에 키메라 엘프의 진로가 크게 흔들리고, 막 도약하던 놈의 몸이 비틀린다.
착지하고자 하는 나뭇가지 방향 으로 화살 무리가 쇄도해오니 급격히 방향을 바꿔버린 것이다.
덕분에 녀석의 속도는 많이 죽어 버렸고, 더해 진로까지 크게 제약되었다.
녀석을 따라잡을 수 있다.
나는 재차 자리에서 도약했다.
콰앙!
지면을 박차고, 다시 한번 공중으로 치솟는 내 몸뚱아리.
장검을 높게 들어올리고, 수직으로 크게 휘둘렀다.
비교적 힘을 싣기 힘든 허공이었 음에도 불구하고.
내 검날은 묵직한 파공성을 울리 며 놈의 배후에 닿았다.
서걱!
귓가를 울리는 절삭음.
그와 함께 검은색 핏물이 퍽 튀어 오른다.
- 캬아아아아아악!
후드득. 핏물과 함께 키메라 엘프의 한쪽 다리가 잘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래에 대기 중이었 던 병사들이 기겁하는 소리가 울려 온다.
'다리를 베었다.'
놈의 한쪽 다리를 베어 기동력을 크게 손상시켰다.
이제 놈은 단 한쪽 다리에 의지 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
더 이상 나무와 나무 사이를 타다니는 원숭이 같은 짓거리는 하지 못한다.
결국 키메라 엘프는 나무 위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툭.
사뿐하게 떨어진 뒤, 지면을 밟 아선 키메라 엘프.
녀석은 한쪽 다리로만 신체를 지지한 채, 네 개에 달하는 팔로 균형을 잡아 가만히 서있었다.
다시 봐도 꽤나 기괴한 모습이다.
내 눈가가 자연히 찌푸려졌다.
"역시. 키메라란 것들은 하나같이 불쾌하게 생겨먹었단 말이야."
나는 다시금 키메라 엘프의 생김새를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놈의 검은색 피부는 흑마나에 침식된 영향으로 일어난 변이다.
네 개의 팔은 손쉽게 균형을 잡고 나무를 쉽게 붙잡기 위한 흑마법사들의 안배였으며.
양 눈 대신 박힌 붉은 보석은 시각을 잃는 대신 특수한 파장을 방 출하고 감지해 공간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췄다.
대충 외양만 홅어보는 것만으로, 어떤 의도로 저리 만들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했다.
'크라함은 한때 내 아군이었으니까.'
놈이 키메라를 만드는 스타일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까도 확신했지만, 저 개체는 정찰용 키메라다.
저벅, 저벅.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가, 작게 읊조렸다.
"생포는 필요 없겠지."
어차피 생포해봤자 아무런 정보 조차 얻을 수 없는 것이 키메라라는 존재들이다.
그것들에게는 단 한 조각의 이성 조차 남아있지 않으니까.
나는 장검을 치켜들었다.
- 키에에에에에에!
그러자 고함을 내지르며 네 팔을 치켜드는 키메라 엘프.
척 보니 싸우고자 하는 것 같다.
하긴. 놈은 한쪽 다리가 베어 기 동력이 크게 손상된 상황.
도망칠 수가 없으니 마지막 발악을 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물론 놈의 마지막 발악은 말 그대로 발악에 불과했다.
서걱!
내 장검이, 놈이 채 인지하기도 전에 녀석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검은색 핏물이 왈칵 치솟고, 녀석의 머리통이 바닥에 툭 떨어진다.
털썩.
이후 실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키메라 엘프.
놈의 시체를 발로 밟고, 주변에 도열해있는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이거 확실하게 불태워버려. 정 화해야 하니까."
"네! 명령을 따릅니다!"
"기름! 기름 가져와! 불붙일 횃불 도!"
흑마나에 오염된 시체는 방치하 면 안된다. 불로 정화해야만 한다.
병사들이 기름을 가져와 뿌리고, 불을 붙였다. 불길이 일었다.
키메라 엘프의 사체가 활활 타오 른다. 검은색 연기가 뭉실뭉실 일어 드높은 하늘로 뻗어나간다.
나는 불타는 키메라 엘프의 사체 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벌써 키메라 엘프가 나오다니."
키메라 엘프.
당연하게도, 이전 시나리오에서 등장했던 존재들이었다.
엘프라는 우수한 종족을 키메라 로 만들지 않을 크라함이 아니었으 니까.
하지만, 의외였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여겼는데 ."
키메라 엘프는 이전 시나리오에서도 중앙대륙 전쟁 중후반기에나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크라함은 아직 중앙대륙 전쟁 초반기임에도 불구, 키메라 엘프를 만들어 정찰임무 등에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가만히 추측해보았다.
'이전 시나리오에서 축적해놓았던 연구지식들이 있으니 , 곧장 실전에 투입할 만한 키메라를 만들 수 있다는건가.'
물론 크라함이 전생의 모든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닐 터다.
아무리 마법사들이 드높은 지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 놈이 새로운 시나리오를 시작하며 모든 연구자 료까지 가져오진 못했을테니.
그렇기에 녀석은 전투용 키메라 엘프가 아닌, 정찰용 키메라 엘프 부터 만들었다.
전투용이 아닌 정찰용이라면 비교적 제작난이도가 낮은 편이니까.
하지만 이 정도 실력이라면, 전투용 키메라가 등장하는 것도 곧이다.
멍하니 읊조렸다.
"미리 준비했던 물건을 벌써부터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
크라함이 키메라를 운용하리란 것, 충분히 예상한 사실이었다.
단지 이토록 빠를 줄 몰랐을 뿐.
이미 대비책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 돌려 비콘이 있는 사령관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제3군 지휘관 한지훈 라이젠이다. 각 군 지휘관은 응답하라."
사령관 마차에 도착한 뒤. 나는 설치되어 있는 비콘을 조작해 곧장 통신을 연결했다.
물론 품속에 있는 개인용 통신수 정구를 통해 통신해도 되겠지만, 본 체인 비콘을 통해 통신하는 것이 훨씬 음성 감도가 좋다.
더해 마차 안에서 통신하는 것이 보다 보안을 지키기에도 좋았고 말이다.
그렇기에 굳이 사령관 마차까지 가 통신을 연결하는 나였다.
이쪽의 호출에, 각 지휘관이 응답했다.
- 제1군 지휘관 오스카 디 로드 게리스. 응답한다. 감도 양호.
- 2군 지휘관 마이사 슈베츠. 여기도 통신 상태 이상 없다.
"좋아. 거두절미하고 묻지. 그쪽에서도 키메라 엘프와 조우했나?"
나는 곧장 용건을 물었다.
크라함이 키메라 엘프를 단 한 기만 운용할 리 없었다.
녀석은 명백히 정찰을 위해 행동 하고 있었으며, 본디 정찰이란 소규모의 병력을 드넓은 영역에 흩뿌려 가며 하는 것이었으니 .
다른 키메라 엘프가 있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 …그쪽도인가. 한지훈, 우리 1군에서도 키메라 엘프와 조우했었 다네.
- 이곳 2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키메라 엘프가 나타났다.
"역시."
내 예상대로, 키메라 엘프는 단 하나가 아니었다.
아마 키메라 엘프들은 이쪽의 진군로 곳곳에 배치되어 정찰 행위에 매진 중일 터다.
"이쪽 제3군도 마찬가지야. 키메라 엘프와 행군 와중 조우했다. 단 한 개체였지. 녀석을 처치했다."
- 우리 1군은 놈을 놓치고 말았다네. 너무 재빠르더군. 선도병들이 추격할 수 없었어.
- 이쪽도야. 나무를 타고 이동하 니 병사들을 운용해 추적할 수 없었어. 기병을 운용하자니 숲이 너무 울창해 힘들었고.
"역시."
미리 예상했기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다리로 지면을 딛고 달리는 병사들로는, 나무를 타며 잽싸게 이동하는 키메라 엘프를 잡기 힘들 수밖에 없다.
비록 이곳 제3군은 내가 있기에 키메라 엘프를 처치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곳은 놓칠 수밖에 없을 터다.
"이쪽의 움직임이 놈들에게 훤히 노출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는데 ."
- 아무래도 그렇겠지.
- 당장 이쪽의 위치가 노출 당한 게 치명적이긴 하다만, 더 큰 문제는 지속적으로 노출당 할 것이라는 사실이야. 키메라 엘프가 너무 재빠 르니 잡을 수 없으니….
비콘 너머에서 심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확실히 저들의 말 대로였다.
일단 키메라 엘프가 등장한 이상, 놈들은 이쪽의 위치를 확인했고, 주기적으로 정찰을 것이다.
앞으로 연방과 흑마법사측은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이쪽의 위치와 경로를 확인할 터이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오스카, 마이사. 각자 그쪽의 보 급마차를 뒤쳐서 회색 수정구를 찾아봐라. 아마도 4번 보급마차에 있을 거다."
미리 안배해놓은 물건들이 있으 니까.
내 말에, 오스카와 마이사가 의 아해 되물어왔다.
- 회색 수정구라… 아티팩트인 가?
"그래. 키메라 엘프놈들을 사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아티팩트다."
- 무슨 아티팩트이지? 잠깐, 회색 수정구라면… 설마 바네사가 만든 물건인가?
"그래."
언젠가 있을 크라함과의 전쟁을 성실하게 준비해놓은 나다.
당연히, 녀석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쓸 만한 아티팩트들도 미리 만들어뒀다.
나는 씩 웃었다.
'바네사. 그녀를 주운 건 내게 큰 행운이었지.'
내 영지에는 '마녀' 바네사가 있다.
크라함에게 복수심을 지닌 전직 최상급 흑마법사.
비록 그녀는 모든 경지를 잃었기에 더 이상 혹마법을 발현할 수 없지만, 그녀가 지닌 흑마법 지식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나긴 휴식기 동안 전쟁을 준비했고. 그 준비들 중 하나가 바로 흑마법 대항 아티팩트의 개발과 양산이었다.
내 영지에 바네사와 드워프들이 있기에 비로소 만들 수 있던 물건 들이었다.
나는 이어 말한다.
"회색 수정구의 정체는 탐지기다."
- 탐지기라. 설마 흑마나를 지닌 존재를 미리 찾아내는 물건인가?
"맞아. 일정 영역 안쪽에서 흑마 나를 품은 존재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는 물건이지."
일종의 레이더와도 같은 물건이었다.
일정량 이상의 흑마나를 품은 존재가 영역 안에 있다면, 그 위치를 곧장 표시해주는 물건.
비록 흑마나가 아닌, 평범한 인간은 탐지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쓸모 있다.
흑마나를 품은 존재는 모조리 적 이니까.
나는 이어 말한다.
"흑마나 탐지기가 있다면, 키메라 놈들이 접근하기 전에 미리 찾아내사냥할 수 있겠지."
키메라 엘프의 강점은 그 재빠른 속도에 있다.
놈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 다니며 이동한다.
그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놈과 조우한다 한들 추격해 섬멸하는 것은 워낙 힘든 일이다.
하지만 녀석이 접근하는 위치를 미리 알고 있다면?
"궁병대와 기사 등을 예상 지점에 배치해, 수월하게 녀석을 사냥할 수 있겠지."
놈들은 재빠르지만, 지성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씩 웃었다.
"키메라 엘프놈들만 쓸어버린다 면, 우리 제국군은 놈들에게 관측당 하지 않고 측면과 후방 깊숙이 파고들 수 있다."
그렇게 적의 측후방을 점거한다 면, 자연히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터.
그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이쪽을 염탐하는 키메라 엘프놈들을 완 벽히 배제할 필요가 있다.
바네사가 만들어준 아티팩트를 운용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자. 키메라 엘프들을 모조리 제 거해버리자고."
제국군이 키메라를 사냥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