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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01화 (301/390)

301화.

"동부 연안지대가 완전히 연방에 게 장악당했어요."

적막한 회의실. 엘븐가디언들과 제국군 군관들이 도열해 있는 방안.

니디아가 지도를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엘프 이천이 죽고 사천이 살아남았어요. 살아남은 사천의 엘프는 후방으로 후퇴하며 지연전 및 유인전을 펼치고 있어요."

나는 지도를 향해있던 시선을 들어올려, 니디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른 듯 침착했지만, 얼굴에는 참담한 표정이 올라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단 하루 동안 무려 이천에 달하는 엘프들이 희생당했으니 .

'나와는 달리 니디아는 부하를 잃어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지.'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전쟁 경험 이거의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엘프는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 것을 지양하고, 만일 개입한다 한들 정보전이나 소규모 공작을 위주로 개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대규모 전투경험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즉 엘프의 역사에서, 이토록 많은 엘프가 단 하루만에 죽어나간 적은 전무했던 것이다.

그녀의 표정이 슬픔으로 물드는 것은 당연한 노릇.

하지만 과연 엘프 여왕이라는 것일까.

"죽은 엘프들의 복수를 해주어야 해요."

그녀는 금세 감정을 추스르고 눈을 부릅떴다.

나는 니디아의 눈동자 속에서 일 렁이는 분노를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분노의 감정을 끌어올 린 것이다.

니디아가 시선을 돌려 내게 말했다.

"한지훈 씨. 별다른 전쟁계획 수정 없이 예정대로 진행하고자 하는 데요."

"엘프가 적의 진군을 막고, 우리 제국군이 연방의 측면과 후방을 친 다는 계획 말인가."

"네. 맞아요."

이미 요새가 함락당하기 전 엘프 와 협의해 전쟁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숲속에서의 전투에 능한 엘프가 연방군을 대산림지대에서 틀어막는다.

그동안 우리 제국군은 그동안 크 게 우회해 연방측의 옆구리와 후방을 쳐, 놈들의 전선을 무너뜨리고 보급로를 파훼한다.

전형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이다.

다만 이 망치와 모루를 회전 규모가 아닌, 대륙 단위의 전략 수준 으로 실현한다는 것이 다를 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계획 변경은 없다. 그럼 이제 편제를 짜지."

중앙대륙은 남부대륙과 달리 길이 험하고 큰 도로가 거의 없다시 피하다.

그렇기에 35만에 달하는 대군이 한번에 뭉쳐 다니기엔 심히 곤란하니.

병력을 다수로 쪼개 기동하고자 한다.

나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인선을 천천히 읊었다.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선임 군단장. 자네가 1번부터 5번 군단을 통솔해. 연방군의 측면을 친다."

"그렇게 하지."

"나는 11번부터 16번 군단을 지휘한다. 적의 후방을 쳐 놈들의 퇴 로와 보급로를 차단하마. 그리고 5번부터 10번 군단은…."

나는 시선을 돌려, 내 바로 옆에 자리해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마이사 슈베츠.

슈베츠 왕국의 왕녀이자, 지금 이자리에는 관전무장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이.

그녀를 바라보며 이어 말한다.

"5번부터 10번 군단은 마이사 슈 베츠가 맡는다. 예비대로 움직이며 나나 오스카를 때에 따라 지원한다."

"뭣?! 그게 무슨…!"

"사령관 각하! 마이사 왕녀는 관 전무장입니다! 타국의 인물이란 말 입니다!"

"슈베츠의 인물이 제국군을 지휘 한다니! 말도안되는 일입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제국군 군관들 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쯧 혀를 차며 대답했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지금은 내 의견을 밀어붙일 때다.

회의가 끝나자 야심한 밤이 되어 있다.

"한지훈. 그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건가?!"

저택에서 나와 내 숙소 천막으로 향하는 와중, 마이사의 잔소리가 우 렁차게 들려왔다.

내게 일갈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자리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섯 개 군단을 내가 지휘하라 니. 나는 외부인이다. 관전무장이란 말이다! 이 옷이 안 보이는거냐, 한지훈?!"

외부인인 그녀에게 대군의 지휘 권을 맡겨버렸으니까.

나는 마이사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이전에는 제국군 장교 제복을 입고 있던 마이사였다.

칙칙한 회색 바탕에, 약장과 계 급장만 쓸데없이 화려한 그 옷 말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관전무장 지위 를 획득한 지금, 그녀는 전혀 다른 제복을 입고 있었다.

푸른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장식 된장교용 제복.

물론 제국군의 것은 아니다. 슈 베츠 왕국군의 제복이었다.

실용성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제국군의 제복과 달리, 다소 화려한 모습을 갖춘 슈베츠군의 제복이었다.

덕분에 눈에 잘 띈다.

'저격당하기 딱 좋겠구만.'

나는 피식 웃었다.

"관전무장인게 뭐? 지휘만 잘 하면 되지."

"… 한지훈!"

"그만 좀 소리 질러. 귀청 떨어 지겠네."

나는 양 귀를 틀어막는 몸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부라 린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었나.

나는 이어 말했다.

"마이사. 너는 이전에도 나를 대리해 제국군을 지휘한 적이 있었잖아. 그때도 꽤나 출중한 모습을 보였고."

"그때는 내가 제국군 참모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지금 나는 관전무장이다. 조언은 할 수 있을지 언정, 지휘권을 잡을 수는 없단 말이다. 헌데 막무가내로 내게 지휘권을 넘기다니…."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휘하 군관들의 반발을 억눌러가며 말이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이사. 내 휘하 군관들 중 너 이상으로 군을 잘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은 없어."

그녀의 능력이 너무나도 출중했 기에.

이어 말한다.

"이번 전쟁이 끝난 후 내 독단을 문제 삼는 이들이 많겠지. 네 말마 따나 외국인에게 군 지휘권을 넘긴 꼴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모두 전쟁이 무사히 끝난 다음에 따질 문제야."

지금 전황은 좋지 않다.

백만에 달하는 연방군과 놈들이 지원하는 흑마법사가 중앙대륙에 상륙했다.

반면 이쪽은 삼십오만의 제국군 과일만의 엘프들뿐.

명백히 압도적 열세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을 터이니.

시시콜콜한 국적 문제는 뒤에 가 서 따질 일이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시선을 돌려 마이사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자리해있는 감정을 읽었다.

피식.

내 입가에 절로 웃음이 어린다.

"너도 복수할 기회를 얻어서 좋아하고 있구만. 뭘 그리 난처한 척 하는거냐?"

"그…!"

내일침에 그녀의 입가에서 신음 이 새어나온다.

그녀는 겉보기로 내 결정에 반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녀는 병력을 지휘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애시당초 슈베츠 여왕 자리까지 미루어가며 제국군을 따라왔던 그녀다.

그만큼 그녀의 복수의지는 강했고, 그런 그녀에게 자기 손으로 연 방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오 게 된 상황이다.

내 결정에 반발하는 모습은 주위 군관들의 시선을 의식한 일종의 보여주기식 쇼일 뿐.

내 결정을 그 누구보다 반기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이사, 그녀 본인 인 것이다.

나는 재차 미소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판은 깔아줬다. 마이사."

마이사가 고개를 들어 올려 나와 눈을 마주한다.

그녀의 황금색 눈동자에 내 검은색 머리카락이 비춰 보인다.

"네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연방군을 부숴버려. 놈들을 죽이고 죽 여, 네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거다."

그녀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간다.

마이사가 결연히 고개를 끄덕이 며 대답했다.

"… 고맙다. 한지훈."

"뭘 이런 걸 가지고."

나는 피식 웃고는 재차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제국군을 셋으로 나누었다.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가 이끄는 제 1군.

마이사 슈베츠가 이끄는 2군.

그리고 나 한지훈 라이젠이 이끄는 3군까지.

제국군이 세 갈래로 나뉘어 연방 군의 측면과 후방을 노린다.

내일부터 긴 행군길이 시작될 것 이다.

중앙대륙의 동부 해안가.

엘프의 연안요새.

그곳은 연방군이 점령해있는 상황이었다.

요새 내부 건물들에는 연방군이 들어앉았고, 외부에는 무수히 많은 군용 천막들이 설치되었다.

그런 연안요새의 가장 큰 규모의 건물. 지금은 연방군이 회의실로 사용하는 방안.

그곳의 커다란 원탁에는 두 명의 인물이 마주해 앉아 있었다.

"연방 원정군의 최고사령관, 헤르 베르트 방겐하임 공작이다."

먼저 입을 여는 것은 헤르베르트였다.

연방에서 공작위를 지닌 대귀족 이자, 백만 연방 원정군을 이끄는 수장인 인물.

그의 외모는 언뜻 인자해보였다.

살짝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카락. 푸근한 인상을 지닌 이목구비. 눈동자 또한 연한 갈색으로 온화해보인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몸은 결코 온 화해보이지 않았다.

두터운 연방 장성용 제복 위로 울퉁불퉁한 근육이 도드라진다.

척 보기에도 지휘관이라기 보단 무인에 걸맞은 근력을 갖춘 인물.

그는 원정군의 최고 지휘관인 동시에, 최상급 기사 이상의 무력을 갖춘 강자였다.

헤르베르트의 말에 건너편에 앉 아있는 인물이 대답했다.

- 그래. 그대가 헤르베르트인가. 통령에게 말은 들었겠지. 크라함이다. 볼라바아 학파를 이끌고 있지.

질척하면서도 메마른, 기분 나쁜 목소리를 울리는 사내.

크라함.

그가 헤르베르트 사령관과 독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마주보고 있는 헤르베르트 의 얼굴 표정에서 불쾌한 기색이 드러난다.

'…기분 나쁜 사내로군.'

헤르베르트는 크라함의 외양을 훑었다.

크라함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저 로브 후드의 안쪽에서 일렁이는 붉은색 안광을 보고 있노 라면, 절로 얼굴을 확인하기 꺼려지는 헤르베르트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자리에서 로브 를 벗으라는 말 따위를 하지 않았다.

그저 후드 안쪽 붉은색 안광과 눈을 마주하며 대화할 뿐.

헤르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크라함. 그쪽이 이끌고 있던 볼 라바아 학파에서 엘프 포로들을 요청하더군. 목적이 뭔가?"

볼라바아 학파의 흑마법사들은 연방 원정군에게 요청했었다.

요새에서 사로잡은 엘프 포로들을 달라고.

살아있는 엘프들을 실험체로 넘 기라고 말이다.

그에 그 목적을 묻는 헤르베르트였다.

크라함이 거리낌 없이 대답한다.

- 키메라로 만들거다.

"… 키메라라니. 엘프를 키메라로 만들어 무얼 할 생각인가?"

- 당연히. 전투병기로서 전선에 투입해야겠지.

헤르베르트 공작의 눈가가 찌푸 려진다.

거리낌 없이 키메라를 이야기 하는 크라함이 너무나도 불쾌했으므 로.

그의 머릿속에서 절로 불만 어린 생각이 일렁였다.

'통령각하의 명령만 없었다면, 이런 불길한 놈들 따위 내 군영에 들이지 않았을 터인데.'

흑마법사는 인류의 적.

당연히, 연방 군부는 흑마법사와 함께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흑마법사들이 군영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수록, 병사들의 사기가 하락하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다.

그나마 흑마법사의 활동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연방인지라 이 정도 의 반발로 그친 것이었다.

만약 그들의 주 무대였던 남부대륙의 국가가 흑마법사와 연합했다면, 그날로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 른 일이었다.

그만큼 흑마법사란 불길한 존재 였으니 .

크라함을 대하는 태도에 날이 서 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헤르베르트가 눈가를 찌푸리며 말한다.

"키메라. 우리 위대한 연방군이 그런 불길한 것과 함께 싸워야 한 다니, 불쾌하군. 자네에게 엘프 포 로들을 넘겨주긴 싫다만…."

헤르베르트의 말에 크라함은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 통령각하께서, 자네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라는 명령을 내리셨으니 어쩔 수 없군. 알았다. 모든 엘프 포로를 넘기지."

사실 헤르베르트 사령관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크라함이 요구하면 요구하는대로 들어줘야 할 뿐.

연방 통령의 의사에 반하는 것은 곧 처형된다는 것과 동일한 일이었다.

크라함이 비웃듯 말한다.

- 함께 싸울 사이인데 그리 삐딱하게 나오면 안 되지. 헤르베르트 공작.

"… 제기랄."

- 엘프 포로는 고맙게 받겠다. 괜찮은 작품으로 빚어내 그대들을 지원해주지. 기대해도 좋다.

용건은 끝난 것일까.

드르륵.

크라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간다. 헤르베르트는 그런 크라함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천천히 걸어가던 크라함이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 아. 그러고보니 이걸 잊었군.

그가 품속에서 검은색 포션을 꺼내들었다.

휙 던지는 크라함. 헤르베르트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크라함이 클클 웃으며 말한다.

- 흑마나의 정수다. 자네에게 하나 넘기지. 목숨이 위험할 때 복용 하면 좋을 것이다.

"… 이딴 불길한 물건. 내가 사용 할 성 싶은가."

- 글쎄. 인간의 생을 향한 집착 은 네놈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격렬해서 말이지. 정말 위험할 때라면 주저 않고 사용하게 될 터다.

"개소리."

- 그리고. 조언 하나 하지.

크라함이 지팡이를 살짝 쥐어 올렸다. 지팡이 끝에 박힌 붉은색 보 석에 암흑색 기운이 일렁인다.

순간 불길함을 느낀 헤르베르트. 그가 다급히 오러를 끌어올렸다.

직후.

콰아아아앙!

"커헉! 쿨럭!"

크라함의 전신에서 암흑색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 여파로 커다란 원탁이 산산조 각 나고, 파편들이 비산했다. 헤르 베르트가 충격에 각혈하며 바닥을 구른다.

넓은 방안이 순식간에 나무 조각들과 혈흔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크라함은 바닥을 기는 헤르베르 트를 향해 쏘아붙였다.

- 약자면 약자답게 꼬리를 말고 기어라. 애송이.

- 통령의 아래에 기생해 권력을 쥔 놈이 고귀한 척 하는구나. 어리 석은 녀석.

크라함이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겨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회의실 내부가 적막에 휩싸인다.

"… 제기랄. 제기랄! 빌어 처먹 을!"

헤르베르트는 분에 받쳐, 입가에 흐르는 핏물조차 닦지 않고 크게 고함쳤다.

크라함이 이끄는 흑마법사들이 중앙대륙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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