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결국 수송 작전은 차질 없이 완료되었다.
남부함대의 지원을 받아, 내 휘하 35만에 달하는 병력과 대량의 군수물자들이 중앙대륙에 상륙한 것이다.
거의 한 달에 달하는 시간동안 수백 척의 수송선과 전투함이 달라 붙어 이륙해낸 쾌거였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한지훈 씨."
"…니디아."
초록색 머리카락의 엘프 정령사 이자, 지금은 엘프 여왕이 된 이.
니디아를 말이다.
그녀가 손을 뻗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이번이 두 번째이지요? 중앙대륙에 온 것을 환영해요. 한지훈 씨."
"그래. 반갑다 니디아."
지금 이곳은 중앙대륙 최남단에 자리한 해안가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남쪽으로는 드넓은 해안가와, 엘프들이 만들어놓은 항만시설들이 보이며, 북쪽으로는 드넓은 숲지대 가 자리해 있었다.
남부대륙 해안가 어디에서나 볼 법한 자연의 경관이었지만, 기감이 민감해진 나는 알 수 있다.
후욱, 깊게 심호흡해본다.
그러자 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마나와 자연력의 진한 잔향.
과연 세계수가 자리해있는 중앙 대륙답달까.
공기 중에 녹아있는 자연력과 마나가 타 대륙보다 훨씬 농밀하다.
니디아는 고개 돌려 항만에 정박 해 있는 선박들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떻게, 수송은 차질 없이 되었 네요. 병력수가 꽤나 많은데 말이에 요."
"그렇지. 연방 함대를 격파한 덕분에 시간에 맞출 수 있었어."
"다행인 일이에요."
니디아는 싱그러이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해 보자고요. 저기에 임시 거처 를 만들어놨어요."
니디아가 안내하고, 나는 그녀를 따라 해안가에 만들어진 엘프 저택 으로 이동했다.
엘프 저택은 3층 규모의 중형 저택이었다.
보통 인간들의 집과는 달리 벽돌 이나 석재 따위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있는' 나무를 강제적으로 성장 시켜 만든 집이었다.
나는 측근들을 이끌고 집의 3층에 자리한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니디아를 비롯, 나와 인연이 있는 엘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한지훈. 드디어 도착했어."
붉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엘븐 가디언 검사, 타냐.
"한지훈 씨. 몇 년만에 뵈는군요.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푸른색 머리카락을 지닌 엘븐 가디언 마법사, 마게브.
"자. 다들 모였네요. 그러면 회의 를 진행해볼까 하는데 ."
그리고 엘리스 이후 현재의 엘프 여왕인 니디아까지.
세 명의 엘프들이 널따란 회의실 안에 함께하고 있다.
반가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꽤나 회복한 것 같은데.'
과거 한스와의 결전 당시 세계수 가 손상되면서 엘프 종족은 그 잠 재력이 크게 하락했었다.
하지만 세계수의 상태가 많이 호 전된 것일까.
다들 마지막에 보았을 때보다 좀 더 농밀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전성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까지 힘을 회복한 듯 보였다.
내 확고한 아군의 전력이 조금이 나마 복원된 것이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니디아가 입을 열었다.
"자, 여기 지도를 보여드리죠.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리를 잘 알아야 하니까요."
그녀가 손짓했다. 그러자 그녀의 배후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게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쳤다.
꽤나 커다란 지도였다.
지도를 바라본 제국군 고위장교 들의 표정에 놀라움이 어린다.
"이토록 상세한 지도라니…!"
"우리에게 넘겼던 지도도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여겼다 만… 그건 하품이었군."
"… 이게 바로 엘프의 지도제작기 술인가."
마치 현대의 지도처럼 정확하고 도 촘촘하게 그려져 있는 등고선들.
지형에 따라 별첨되어 있는 정보 들 또한 상세했다.
숲이 있다면 수풀이 얼마나 우거져 있는지.
강이 있다면 수심이 얼마나 빠르고, 깊이는 얼마나 깊은지.
그야말로 정보력의 극한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한 지도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도의 놀라운 점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마법이 적용된 지도로군요. 정보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습니다만."
"맙소사. 병력 위치와 풍향까지 그대로 보여지는군."
"엘프의 마법능력에 대해 많이 들었다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지도의 모든 정보가 실시간 갱신 되었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
배치되어있는 병력과 그 움직임.
축성중인 요새의 진척상황.
심지어, 피난하고있는 엘프 피난 민들의 위치까지.
그야말로 전쟁의 신이 지상을 굽 어보듯, 막대한 양의 정보가 지도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륙 전체에 흩어져 있는 요정들 이 보내온 정보를 세계수에서 엮어, 엘프 마법사들이 정리해 만들어낸 마법지도.
내지휘술 스킬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정보를 품은 물건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들. 제국을 완전히 신뢰하기 로 마음먹었나본데.'
시선을 돌려 내 뒤에 도열해 있는 측근들을 바라본다.
저들은 그저 마법지도의 수준에 놀라 경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냉정을 되찾는다 면, 저들 또한 눈치 챌 것이다.
엘프가 이 지도를 공개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엘프는 모든 정보를 개방했다.'
말 그대로, 이곳 중앙대륙의 모든 정보가 집약되어 있는 지도다.
그런 지도를 이자리에 내놓았다는 것은, 엘프의 모든 군사정보를 공유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이다.
본래 제아무리 동맹국이라 한들, 민감한 자국 세력권의 정밀한 지도 까지는 좀처럼 내놓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엘프는 그이상의 정보가 담긴 마법지도를 이자리에 내놓았 으니 .
엘프라는 종족이 제국을 어찌 대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태도.
엘프는 제국을 혈맹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재차 다짐했다.
'이쪽에도 믿음에 보답해줘야겠지.'
내게 한없이 도움을 주던 엘프들 이다.
그들이 이쪽을 밀어주는 만큼, 나 또한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
내가 그리 생각하며 지도를 훑어 보고 있을 때. 니디아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이 지도는 저희 중앙 대륙의 최상위 군사 지도에요. 앞으로 전략 단위의 논의는 이 군사지 도를 보며 할 거예요. 그럼, 먼저… 한지훈 씨?"
"그래."
"원정에 참여한 제국군 병력이 어찌되지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물어 보는 니디아였다.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병사는 16개 군단, 도합 33만. 기사는 오천이고, 마법사는 오백이다.
"준수하네요."
니디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 덕인다.
그녀가 나에게 알렸다.
"저희 엘프의 전력은 엘프 전사 가 약 일만 정도. 마법사와 정령사 가 합쳐 일천 정도에요."
도합 일만 일천에 불과한 것이 엘프의 전력이었다.
언뜻 보기에 너무나도 적은 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엘프라는 종족은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 개개인이 막대한 잠재능력과 기나긴 수명을 가진 대신, 번식 이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엘프의 총 인구수는 고작해야 십 수만에 불과하다.
허나 그렇다고 얕볼 수는 없다.
'엘프의 전사들은 개개인이 최소 상급 기사급의 무위를 가졌으니 . 수는 적어도 강력하지.'
엘프 전사는 오러를 다루고.
엘프 마법사는 개개인이 베테랑 전투마법사 이상의 압도적인 전투 능력을 갖췄으며, 정령사는 정령들과의 교류를 통 해 다양한 능력을 갖췄다.
더해 엘프가 부리는 요정들의 광 활한 정보력까지.
때문에 역사상 그 어떤 국가도 감히 중앙대륙을 침공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엘프라는 미친 개사기 종족을 감히 건드릴 위정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방의 러셀 통령 빼고 말이야.'
러셀은 달랐다.
놈은 흑마법사와 연합했고, 사악 한 힘을 빌리고 키워내 중앙대륙으로 전진해오고 있다.
그만큼 흑마법사들은 위험한 존재다.
고립주의를 자처하는 엘프들마저 놈들을 경계해, 인간들의 역사에 개 입해올 정도로.
니디아의 말이 이어진다.
"저희는 동부 해안쪽에 과반의 병력을 집중시켰어요. 육천의 엘프 전사, 그리고 삼백의 정령사와 마법사들이 지금 그곳에 있지요."
꽤 많은 수의 병력이었다.
그야말로 현재 엘프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과반에 달하는 전력이 동부해안가에 몰려있는 것이다.
연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서.
"동부 해안, 주요 상륙거점들은 이미 요새화가 완료되었어요. 해안 요새를 축성했고, 전투용 아티팩트 들까지 배치 완료했죠."
이미 엘프는 연방의 상륙을 대비 해, 유력한 상륙 거점들을 요새화 시켜둔 상황이었다.
방비는 철저할 터.
허나 그럼에도 니디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놨지만, 그럼에도 연방군의 병력이 너무 많아요. 더해 놈들에게는 흑마법사 들까지 포함되어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해안이 뚫리겠지."
아무리 방비를 철저히 한다 한 들, 이쪽이 밀릴 것을 알고 있기에.
엘프의 개개인의 높은 전력에 상관없이, 연방의 물량은 이쪽을 완전히 압도하기 때문이었다.
"적의 기사전력만 삼만에 달해."
"마법사도 이천 정도이지요."
"흑마법사의 규모는 이쪽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니 . 쯧."
절로 혀가 차진다.
그야말로 질릴 정도의 물량이 아닐 수 없다.
중앙대륙을 노리고 조직된 연방 원정군의 총 병력을 100만 가량.
그 100만 중 3만이 기사 전력이 었으며, 2천이 마법사 전력이었다.
자국에서 전투하는 것도 아닌, 타 대륙 원정에 동원할 수 있는 기사가 무려 3만이라니!
오직 연방이기에 가능한 병력 동원 능력이다.
니디아가 나직이 한숨을 내쉰다.
"분명 연방은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기사와 마법사부터 상륙시킬 거예요. 그리하여 해안가를 접수한 뒤, 본격적으로 병력을 수송해오겠지요."
"처음 상륙할 적의 병력 규모는 어느 정도로 추정되지?"
"저희 엘프의 정보력에 따르면… 기사 2만, 마법사 일천, 그리고 병사 10만이 상륙할 것 같아요. 흑마법사의 수는 알 수 없어요."
"확실히 막기는 힘들 것 같은데. 절대적인 병력이 부족해. 그렇다고 우리 제국 원정군이 지원가자니, 제시간 안에 동부해안에 도달할 수도 없고."
놈들 또한 교두보 확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적당히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단순한 교두보 확보에 연방은 2만의 기사와 일천의 마법사가 포함 된 12만의 병력을 투입했다.
반면 지금 동부대륙을 지키고 있는 엘프의 전력은 채 칠천이 안 되는 상황.
요새를 축성하고 방비를 철저히 했다 하나 동원되는 병력의 수가 이토록 차이나니, 해안 방어에 실패 하는 것은 물 보듯 뻔한 일.
"…그래서. 저희 엘프는 전선을 뒤로 계속 후퇴하며 놈들을 중앙대륙 대산림지대로 유인할 생각이에요."
"유인이라."
니디아는 중앙대륙의 대산림지대에서 전투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엘프는 숲속에서 강하기 때문에.
놈들을 대산림지대로 끌여들이기 만 한다면, 이쪽의 전력손실은 크게 억제될 터다.
'물론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쪽이 숲에서 싸우는 걸 원하고 있으니 , 놈들 또한 숲을 꺼릴 것은 당연한 일.
연방군을 어떻게 숲속으로 유인 하느냐가 관건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 …여왕님!
팔랑, 팔랑.
저택의 열린 창문 너머로 요정 하나가 다급히 날아들어 왔다.
나름대로 높은 자연력을 품은 요정일까. 요정의 날개는 세 쌍이었다.
'상위요정 .'
가진 날개가 한 쌍인 요정은 하위, 두 쌍은 중위, 세 쌍은 상위의 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위요정은 여왕이나 엘 븐가디언을 보좌하는 측근과도 같은 존재.
그런 상위요정이 저토록 다급히, 모습을 숨기는 것조차 잊고 여왕인 니디아에게 날아들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왔으리라.
요정이 니디아에게 고한다.
- 동부해안에 연방군 함대가 등장했어요!
"… 그렇군요. 그럴 때가 되었지 요."
니디아는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침내 연방군이 중앙대륙 동부 해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대륙 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