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제국군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제국측 함선 전열에서 발리스타 들이 일제사격을 가해온다. 새카만 밤하늘 위로 발리스타 투사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퍼버벅! 콰직! 우지근!
전투함의 곳곳에 발리스타 투사 체들이 꽂혀가는 소리.
"끄아아아악!"
"고개를 숙여라! 급소를 보호하 라!"
갑판 위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승 무원들이 핏물을 흘리며 우수수 쓰 러져갔다.
목제로 이루어진 전투함의 외벽 은 결코 발리스타 사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갑판병들의 팔다리가 날아가고, 몸통이 꿰뚫린다.
철퍽.
핏물이 갑판 위에 고였다. 어느새 다르벤테가 서 있는 갑판병들이 수도 없이 죽어갔기에, 피칠갑이 되 어있던 것이다.
콰콰콰쾅!
발리스타의 일제사격 이후에는 커다란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제국의 전투마법사들이 발현한 공격 마법이었다.
비명과 경악성이 전장 이곳저곳에서 울린다.
"31번함! 침몰합니다!"
"적의 마법공세가 너무 거셉니 다!"
불타오르며 가라앉기 시작하는 아군의 전투함. 적의 마법사 전력 또한 이쪽을 압도하고 있었다.
적의 마법화력에 휩쓸려 불타오르는 전투함이 한두 척이 아니었다.
이미 삼분지 일에 달하는 전투함 들이 불에 타 가라앉거나, 혹은 난 전에서 적에게 제압되었던 것이다.
다르벤테는 가만히 전세를 주시 하고는,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병력이라도 온존해야 한 다! 퇴각! 퇴각하라!"
"… 명령을 따릅니다! 전군 퇴각 이다!"
"뱃머리를 돌려라! 우현으로 선 회하라!"
퇴각하라고 말이다.
으드득. 다르벤테가 이를 갈며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렸다.
"감히 이 몸을 퇴각하게 만들다 니."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분노와 분 함의 감정이 자리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 가정성들여 육성해 왔던 함대가 빠르게 갈려나가고 있었으니 .
절로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 게 될 수밖에 없었다.
콰앙!
다르벤테가 주먹으로 갑판 난간을 두드렸다. 그에 격전으로 삐거덕 거리던 목제 난간이 단번에 부서졌다.
그가 크게 외쳤다.
"이 치욕은 잊지 않겠다!"
비록 대패하고 퇴각하지만, 그는 절망할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았다.
복수할 것이다.
다음에 붙는다면 결코 방심하지 않고, 자신 또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해 적에게 되갚아주 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후퇴하려는 다 르벤테였다.
허나 적은 그런 다르벤테를 놔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각하! 적함이 함두를 돌렸습니다!"
"놈들이 추격해옵니다!"
전방에 자리해 있던 제국군의 함 대가, 일제히 뱃머리를 돌린 것이다.
도주를 시도하는 다르벤테의 함 대를 노리기 위해서 말이다.
"개같은, 제국놈들!"
다르벤테가 재차 으드득 이를 악 물었다.
그의 잇몸에서 붉은색 핏물이 새어나온다.
나는 여유롭게 전장을 주시했다.
하나둘 불타 침몰해가는 적의 전투함.
놈들은 앞에서 맞닥뜨린 이쪽의 화력에, 그리고 뒤에서 휘젓는 난전에 휘말려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벌써 적함 백여 척이 침몰하거나 무력화 되었다.
반면 이쪽은 고작 이십여 척이 무력화된 것에 그쳤으니 .
슬슬 놈들은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후퇴하기 위해 함두를 돌려 전 장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가만히 놈들을 놔줄 내가 아니다.
나는 지시했다.
"놈들이 도망치려한다. '모루'는 기동하라. 서쪽으로 향하는 놈들의 함대를 틀어막는거다."
"명령을 따릅니다!"
내지시에 승무원들이 크게 대답했다.
그들의 사기는 퍽 드높아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허약한 제국군 해군에 불과한 그 들이 연방놈들을 압도하고 있었으니 .
절로 사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철썩-.
대파되어 기동이 불가능한 함선을 제외한 구십여 척의 전투함들이 일제히 돛을 펼쳤다.
어느새 풍향이 바뀌어 불어오는 동풍을 타고 함대가 서쪽으로 전진 해간다.
이미 단종진을 펼친 상태였기에 돛을 펼치고 방향을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적함을 추격할 수 있었다.
함대가 놈들에게 점차 근접했다.
어느새 놈들과의 거리는 육지 기준 백보 정도에 불과한 상황. 적함에서 있는 적병의 얼굴마저 확실 하게 판별할 정도로 서로가 근접했다.
나는 전장을 둘러보고, 적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같은, 제국놈들!"
커다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외치고 있는, 다소 화려한 복색을 입고 있는 중년인이다.
놈이 타고 있는 전투함의 깃대에는 기함임을 알리는 함대 사령관기 가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슬슬 적의 우두머리 를 노려야겠지."
놈들은 혼란에 빠져 진열이 흐트러져 있는 상태. 그럼에도 일제히 함두를 돌려 도주하고자 한다.
그 와중 지휘관이 전사한다면?
놈들의 통솔력이 완전히 박살나, 퇴각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즉 적장만 제대로 처리한다면, 놈들을 이자리에서 모조리 수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놈을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명령한다.
"1번부터 5번함. 우군 기함과 함께 적 기함을 향해 돌진한다. 백병 전을 걸 거다."
"각하, 백병전입니까?!"
"이미 승기를 확실히 잡은 상황 입니다. 무리해서 적장을 노릴 필요는 없습니다."
"추격해 백병전을 거는 것 보다 는, 지금의 화력을 유지하며 적을 분쇄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주저하는 참모들.
"쯧."
절로 혀가 차졌다.
아무리 내지휘 덕분에 전투를 우세하게 이끌고 있다 한들. 그럼에 도 해군놈들의 쫄보 기질은 여전했다.
아직까지 제국 해군은 육군에 비 해 수준이 일천했던 것이다.
나는 녀석들을 나무랐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 장소에서 연방함대를 모조리 가라앉힐 거라고."
"허나……"
"당장 함두 돌려. 적의 기함을 친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제야 참모들이 함대를 지휘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우-.
뿔피리를 울리며 여섯 개의 전투 함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단종진의 가장 왼쪽에 자리해있 던 1번부터 5번함, 그리고 내가 타고 있던 기함까지.
도합 6척의 전투함들이 적의 진형으로 난입한다.
적함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100보에 달하던 거리가 70보로.
40보. 20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스르릉.
나는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장검을 뽑아들었다.
"선상 백병전 준비!"
"준비! 전투를 준비하라! 무기를 뽑아라!"
"적의 기함을 친다!"
내 발도에, 다른 해병과 소수의 기사들 또한 하나둘 장검을 꺼내들었다. 그들이 뽑아든 검날이 불타 적함의 빛을 반사해 반짝인다.
그렇게 우리가 막 기세를 끌어올 린 직후.
쿠웅!
내가 타고 있던 기함의 적의 기함과 충돌했다.
"가라! 적장을 쳐 죽이는거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적함을 향해 뛰어들었다.
"미친…!"
다르벤테가 경악성을 외치며 뒤로 물러났다.
무려 전투함 다섯 척이 근접전을 걸어오고 있는 상황.
절로 겁이 날 수밖에 없다.
쿠웅!
울리는 격돌음. 그와 함께 적함에서 해병과 선상 기사들이 올라타 기 시작한다.
다르벤테가 발악하듯 외쳤다.
"놈들을 막아!"
갑판에 자리해 있던 해병들이 장검을 꺼내들어 그들과 교전했다.
채앵! 서걱!
선상 백병전이 벌어졌다. 제국의 해병과 기사들이 달려들고, 연방 해군 또한 그들에 맞서 싸웠다.
연방의 해병은 제국군에 비해 교 전 능력이 출중했다. 제국 해군에 비해 훨씬 우월한 전투경험을 가지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밀리는 것은 연방군이었다.
"끄아아악!"
"적이 너무 많습니다!"
"제기랄! 막아라! 막아!"
"사령관 각하를 보호하라!"
이곳 기함을 노리고 달려든 적의 전투함은 무려 다섯 척에 달했고, 그중 세척이나 근접해 건너오고 있었으니 .
수적 열세를 피할 수 없었다.
선상 해병 하나가 두셋의 적을 감당해야 하니, 밀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퍼억! 서걱. 후드득.
병사들이 하나둘 고꾸라지고, 그 들이 피칠갑이 된 갑판 위를 굴렀다.
참모들이 다급히 요청해왔다.
"사령관 각하! 다른 전투함으로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아군 14번함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쪽을 불러들이겠습니다! 그리로 건너가십시오!"
다르벤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다. 나는 14번함으로 대 피하겠다! 조금만 더 버텨라!"
"명령을 따릅니다!"
이미 들이닥친 제국 해병들에 의 해 참모들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다.
이 와중 사령관인 다르벤테마저 죽는다면 지휘체계가 완전히 박살 날 터.
그것만은 막아야한다.
해군은 지상군 이상으로 지휘체 계가 중요하다.
함대 사령관인 그가 죽는다면, 통솔력을 잃은 함대 전체가 갈려나 갈 터다.
다르벤테는 자리를 박차고 도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망치는 적장을 순순히 놔 줄 제국군이 아니었다.
"적장이 도망간다! 막아라!"
"녀석이 다른 배로 도망치지 못 하게 막아!"
"적장을 추격하라!"
난전을 펼치고 있던 제국 해병들 이달려들어 다르벤테의 앞을 가로 막았다.
다르벤테는 노호성을 터트리며 장검을 드높이 치켜들었다.
"같잖은 제국놈들이! 감히 내 앞길을 막느냐!"
그의 장검에 푸른색 오러광이 피 어오른다. 다르벤테의 장검이 움직였다.
콰아아앙!
푸른색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가 르는 그의 검날.
다르벤테는 오러 유저였다.
서걱.
붉은색 핏물이 퍽 튀어오르고, 그의 앞길을 가로막던 제국 해병 두셋이 동시에 베어 고꾸라진다.
"죽어라! 제국놈들! 모조리 뒈져 버려라!"
다르벤테는 달려가며 가로막는 적을 처치해갔다.
해병의 허리와 가슴팍을 베었고, 제국 기사의 목을 그었다.
그는 시체더미를 밟아가며 인접 한 전투함을 향해 달려갔다.
"…후욱!"
마침내 다르벤테는 반대쪽 갑판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장 다른 전투함으로 옮겨 탈 수는 없었다.
"느려 터진놈들! 14번함! 당장 이쪽으로 와라!"
가장 가까운 전투함인 14번함이 아직 이쪽에 근접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다르벤테는 그 자리에 우 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여기 있었네. 연방 함대 사령관 나리."
묵직한 목소리가 다르벤테의 귓 가를 때렸다.
그에 그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을 바라보고, 볼 수 있었다.
철퍽, 철퍽.
질척한 핏물이 흐르는 갑판 위.
여유롭게 걸어오는 한명의 제국 군 군관.
젊은 나이를 가진 군관이다.
하지만 그 나이에 걸맞지 않게, 놈이 입고 있는 제복에는 야전군 사령관 계급장이 달려있다. 가슴팍 에는 온갖 화려한 약장들이 덕지덕 지 발려있다.
다르벤테는 눈동자를 굴려 이쪽 으로 걸어오는 인물의 외양을 보다 자세하게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검은색 머리카락. 그다음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은색 눈동자.
놈의 우묵한 시선이 다르벤테의 얼굴을 훑는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를 가진 인물.'
다르벤테가 모를 리 없다.
그가 천천히 입을 벌려, 놈의 정체를 목소리에 담았다.
"제국의 악마."
제국의 악마 한지훈 라이젠.
놈이 다르벤테의 앞에 등장한 것이다.
화르륵.
한지훈의 장검에 푸른색 오러광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저벅, 철퍽, 철퍽.
나는 천천히 놈을 향해 걸어갔다. 녀석에게 접근할수록 녀석의 얼굴표정이 일그러진다.
"제국의 악마라니! 네놈, 네놈은 지상군 아니더냐?! 어째서 해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냐!"
"나는 해전도 잘하거든."
"개소리!"
화르르륵!
다르벤테가 기세를 돋웠다. 그의 장검에 일렁이던 오러광이 더욱 격렬하게 타오른다.
놈은 기사가 아닌 함대 사령관 이었음에도 오러를 다뤘다.
나는 피식 웃었다.
"연방군의 지휘관들 중에는 유독 오러 유저가 많구만, 그래."
제국군 장성들은 몇몇 예외를 제 외하고는 대부분 오러를 다루지 못 한다. 오러 유저라면 거의 대다수가 기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군 장성들은 오러를 다루는 인물이 유독 많은 듯했다.
슈베츠 왕국에서 싸웠던 기플랫 랜드바론 또한 오러를 다루었고, 눈앞의 다르벤테 함대사령관 또한 오 러를 운용하지 말이다.
뭐. 어찌되었든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오러를 다루던, 못 다루 던. 거기서 거기이니."
내 능력치가 너무나도 드높기 때문에 오러 유저라 한들 그 위험성 은 일개 병사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내 자신감을 허세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그저 단순한 발악인 것인지.
"나 또한 무예를 갈고닦은 몸. 순순히 당하진 않겠다, 한지훈!"
녀석이 장검을 휘둘러왔다.
콰아아앙!
공기를 가르며 짖쳐들어오는 장검의 검날. 꽤나 거센 기세를 담고 있다.
과연 오러 유저답다.
저 검날에 급소를 베인다면 아무리 나라한들 위험할 수도 있다.
물론 절대 베일 리는 없지만.
'느려.'
이미 200이 넘어가는 민첩능력치 를 지닌 나다. 놈의 저 허술한 검격 따위, 굼뱅이가 기어가는 것 같다.
때문에 '몰입' 스킬을 쓰지 않아 도 간단하게 피할 수 있다.
저벅.
나는 한 발자국 옆으로 걸어, 녀석의 검날을 피해냈다.
직후 부웅! 울리는 파공음.
놈의 장검은 내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경악하는 다르벤테.
"내 공격을, 그렇게 간단히 피하…!"
놈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녀석은 중간에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퍼억.
내 장검이 녀석의 목덜미에 틀어 박혔기 때문에.
"컥, 커헉…!"
놈이 목을 부여잡고 버둥거린다.
성대가 핏물에 잠긴걸까. 가래 끓는 것마냥 골골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놈의 모가지에서 핏물이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나는 녀석에게 나직이 말했다.
"가는 길은 심심하지 않을거다."
다르벤테 놈뿐만이 아닌, 녀석이 이끌던 연방 해군 제1함대 전체가 이곳에서 수장될 것이니.
녀석이 재차 버둥거리고, 나는 검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우드드득.
놈의 목뼈가 박살나고, 녀석의 머리통이 기괴한 각도로 추욱 늘어 진다.
나는 적장을 처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