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맞네! 화력이다. 압도적인 화력 만 있다면 놈들을 막아낼 수 있다!"
내 말에 알터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 긍정했다. 마치 내 마법사 지원만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듯한 태도.
하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남부 해군의 화력은 그리 좋지 않지.'
이전에 상기했다시피 제국 해군 전력은 근 몇 년 사이 극도로 팽창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함선 의 수가 크게 늘어났으며, 그것을 운용할 수병과 해병의 수 또한 급격히 확충되었다.
하지만 해군의 모든 것이 마냥 늘어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해군 전투력의 중추라 할 수 있는 기사와 마법사의 수는 그리 늘 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박이나 일반 수병, 해병 전력과는 달리 고급인력인 마법사와 기사는 양성 하는데 기나긴 시간이 소요되니까.
그렇기에 아직 제국 해군의 화력 은 연방군의 그것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당연히 해상전에서 맞붙는다면 이쪽이 밀릴 것은 필연적인 일.
허나 내 휘하 전투마법사들과 기사들의 지원이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단 말이네, 한지훈!"
"으음."
승리를 확신하는 알터스. 그에 나는 턱을 괴고는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내 휘하 고위병종의 능력 은 강대하다. 그들을 지원한다면, 해상전투에서 놈들에게 그리 크게 밀리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연방 또한 만만찮은 상대였다.
'연방 해군의 화력은 꽤나 유명 하지.'
급격히 덩치만 키운 제국 해군과 다르게, 연방의 해군은 전통과 역사, 그리고 능력마저 완벽하게 갖춘 강력한 군대였다.
아무리 내 전투마법사들의 지원 이 있다 한들 쉽게 승리를 장담하 긴 힘든 적인 것이다.
'방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알터스에게 요구했다.
"이번 해상전, 내가 지휘하고 싶다만."
"한지훈 자네가? 하지만 자네 는…."
내 갑작스러운 요구. 그에 알터 스는 의아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본다.
하기야 그동안 나는 지상전에서 큰 성과를 내었을 뿐, 해상전 경험 이 쥐뿔만큼도 없다.
그런 내가 대뜸 해상전을 지휘하 겠다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허나 사실 나는 해상전에도 능숙했다.
'블랙 오케스트라 후반기에 많은 해상전을 치렀었지.'
내가 이 세상에 끌려 들어오기 전. 나는 모든 종류의 전장을 지휘 했었고, 그중 해상전도 많았다.
물론 지상전만큼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제독 나부랭이 보다도 훨씬 효율적으로 군을 운용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한번 맡겨봐라, 알터스. 내지휘 가 합당하지 않다면 언제든지 작전 권을 회수해가도 좋아."
"으음…"
내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간신히 균형을 맞출 수 있었는데, 이런 내 요구조건을 묵살하기엔 부담스러운 노릇.
그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 알았네, 한지훈. 자네가 한번 지휘해보게. 허나 명심하게. 조금이 라도 자네가 실수하는 것 같다면, 그 즉시 그대의 작전권한을 회수할 거다."
"당연한 소리를."
이번 전투에서, 나는 해군 또한 지휘하게 되었다.
남부 해군의 전투함 211척이 내 명령을 따른다.
* * *
"통령 각하. 제1해군에게서 보고 입니다."
통령의 집무실. 그곳에 연방 정보국 국장 콜린 가프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에 책상에 앉아있던 러셀 통령 이 고개를 들어올리고, 콜린의 보고 가 이어졌다.
"제1해군이 정찰에 성공했습니다. 제국군이 병력을 중앙대륙으로 수송하기 위해 함대를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건 파악된 적의 함대 규모입니다."
얇은 종이 몇 장을 책상 위에 올려두는 콜린. 그에 러셀 통령은 종이를 받아 읽어보았다.
그가 피식 웃는다.
"전투함과 수송함이 450척 가량 이라… 제국놈들. 해군을 확충했다 들었지만 잘도 키웠군."
중앙대륙으로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모여든 제국의 함대. 그 규모는 통령의 예상을 상회했다.
도합 550척에 달하는 제국의 군 함들. 그중 무려 450척 가량이 전투함과 수송함이었다.
예상 외로 많은 전력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저것의 절반밖에 안 되던 것이 바로 제국 해군이었다.
헌데 놈들은 어느새 해군을 증강 시켰고, 지금은 대규모 함대를 운용 해 타 대륙으로 대량의 병력을 투사할 기량을 확보하게 되었으니 .
"전쟁준비는 착실하게 해왔다는 건가. 아르테니아놈."
통령은 제국의 젊은 황제를 떠올 린다.
아르테니아 가이나스 비 오르페우스.
젊은 나이에 즉위했으나 특유의 통솔력과 카리스마로 거대 제국을 이끄는 위대한 군주.
그는 다수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었으며, 마침내 남부대륙 유일의 지배세력으로 등극했다.
이제 남부대륙에 남아있는 것은 제국과 제국의 식민지, 그리고 우호 세력들뿐이다.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바 야흐로 남부대륙 전체를 제국의 세력권으로 통일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통령은 아르테니아의 업 적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지훈. 그 자만 아니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을 터인데."
사실상 모든 것이 그의 업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통령은 한지훈이 상위차원의 존재라는 것도, 그렇기에 그가 그토록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제국의 선전은 순전히 한지훈의 공훈이라 생각하는 통령이었다.
그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이번 해전. 한지훈 놈이 나오지 않겠군."
합당한 추측이었다.
한지훈은 그동안 육지에서만 전투해 왔다. 애시당초 그가 이끄는 제국 북부야전군은 육군주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군대였다.
그러니, 이번 해상전에서 한지훈 이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추측 하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괴물같은 놈이 지휘하지 않는다면 이번 해전의 승산은 결코 적지 않겠군."
그동안 연방은 제국과 충돌할 때마다 패배해왔다.
그때마다 한지훈이 활약했기에 가진 전력이 압도적이었음에도 고 배를 마셨던 것이다.
허나 이번에는 한지훈이 활약하지 않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
그가 콜린에게 지시했다.
"제1함대 제독에게 전하라. 반드시 제국군의 상륙을 지연시키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통령 각하."
"그리고 이 말도 함께 전하게. 임무의 실패는 처형 외에는 없을거 라고."
"… 함께 전파하겠습니다."
"용건은 끝났다. 이만 가보도록."
척 경례하고 빠져나가는 콜린 국 장. 덜컹. 문이 닫혔다. 다시금 연 방 통령 집무실에는 적막한 공기가 흐른다.
그 정적인 공간 속. 통령이 작게 읊조린다.
"한지훈이 없으니 승리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번 해상전에서도 한지훈이 개 입하리라는 사실을.
연방의 함대가 전진한다.
철썩.
파도가 인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해수의 냄새가 났고, 시야는 청명했다. 온 세상이 푸 르게 물들어있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날씨 한번 오지게 좋구만."
지금 나는 항구에 나와 있는 상태였다.
고개를 돌려 주변의 풍광을 살폈다.
쭉 뻗어있는 바다의 수평선. 그 위에 보이는 수백 척의 군함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환한 태양빛이 해수면을 달구었다.
그렇게 얼마나 멍하니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여기 있었군. 애송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말 걸어온 인물을 확인했다.
후욱. 뿜어지는 담배연기. 그리고 붉은색으로 장식된 회색 로브.
"보고하지. 우리 라브리에를 비롯 한 다섯 개 전투마법단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말을 걸어온 인물은 다름 아닌 제피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좋아. 포션은?"
"빠뜨리지 않고 잘 구비해 놨다. 전투준비는 완벽해. 이제 전투함에 출항하는 것만이 남았지."
"순조롭네."
나는 내 휘하 병력을 동원해 연 방의 함대에 맞서려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병력을 배치하는 와중 이었다.
전투마법사 다섯 명. 그리고 기사 삼십 명. 각 전투함마다 배치된 고등 전력의 수였다.
물론 보유한 기사와 마법사의 수 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모든 전투 함에 탑승시킬 수는 없었지만. 대다수 전투함에는 나름대로 출중한 수준의 병력을 배치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해전인가."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싸우게 되었다.
이 세상에 끌려 들어와 본격적인 해전을 겪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전 의 실적이 있어 나름대로 자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에 차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이었나 보다.
슬쩍 시선을 돌려 주변 장교들, 특히 남부 해군장교들을 둘러본다. 그들의 시선을, 그들의 눈동자에서 려있는 감정을 읽었다.
절로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를 불신하고 있구만.'
해군 장교들과 수병들은 갑작스 레 지휘권을 틀어쥐게 된 나를 불 신하고 있었다.
하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태껏 육지에서 놀던 장성이, 갑작 스레 자신들의 최고 지휘관이 되었 으니 불신할 수밖에.
뭐. 저런 시선도 곧 사라질 것이다.
'실제 전투에서 능력을 보여주면 되겠지.'
나에게는 지휘술 스킬과, 전생의 시나리오를 진행하며 축적된 경험 이 있다.
그러니 실전에서 내 능력을 보여준다면, 지금 내게 향해 있는 불신 어린 시선이 순식간에 희석될 것이다.
이전 내가 막 천인장이 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 까.
"사령관 각하!"
타닥, 타닥, 타닥.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그쪽을 바라보자 어떤 해군 장교가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내지척까지 온 그가 후 욱 숨을 고르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한지훈 라이젠 북부사령관 각하!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오늘 부터 각하를 보좌할 임시부관 버넬 리 글리스턴입니다!"
"그래, 버넬리. 임시부관이라고?"
"그렇습니다! 저를 통해서 명령을 내려주시면 됩니다! 전력을 다 해 보좌하겠습니다!"
버넬리라 밝힌 인물이 그리 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말이 부관이지. 반쯤은 감시역이 겠지.'
버넬리는 알터스가 붙인 부관이다. 그의 임무는 나를 보좌해 해군을 원활하게 지휘하는 것일 터.
하지만 숨겨진 그의 역할은, 유 사시 내지휘권한을 회수하는 일.
해군 지휘에 능통치 않은 내가 제대로 된 지휘를 하지 못하는 것을 염려해 걸어둔 안전장치인 것이다.
이 부분은 사전 협의 사항으로, 내가 지휘를 제대로 못한다면 알터 스의 휘하 제독에게 함대 지휘권을 이양하기로 이야기가 끝났다.
그렇기에 감시역을 붙인 것에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나 같아도 그 랬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있었다.
'실력으로 증명하면 되지.'
해군이라 한들 완벽하게 운용할 자신이.
물론 이렇게 해군지휘권까지 손을 대는 것은 전시상황을 고려할 때 좋은 그림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겐 꼭 필요한 일이다.
나중에 야전군 사령관 자리를 넘어, 국방성 장관자리를 노리게 될때.
그때는 해군에 대해서도 정통해 야 하니. 이렇게라도 해군 지휘경험을 쌓아두면 추후 도움이 되는 것 이다.
"먼저 저희 함대의 구성원에 대 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 휘하로 다루실 전투함들의 전력은…."
이후 버넬리가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설명을 제대로 머릿속에 박아 넣었다.
군을 지휘하는데 있어 가장 필수 인 것이 지휘할 군대의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니. 대충 넘길 수는 없다.
그렇게 내가 그의 설명을 듣고 있을 때.
- 사령관 각하! 급히 보고 드립 니다!
수정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버넬리가 시선을 돌려 수정구를 바라보고, 목소리가 이어 흘러나온다.
- 연방의 전투함대가 포착되었습니다! 놈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중 입니다!
"…벌써?"
연방놈들은 예상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놈들이 기습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