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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92화 (292/390)

292화.

슈베츠 왕국의 내정을 대충 정리 한 뒤, 나는 다시금 군을 기동시켰다. 35만에 달하는 병력이 북상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이곳 남부대륙의 최북단 도시 파오네. 중앙대륙 과 가장 가까운 항만도시였다.

그곳에 도착해 군영을 펼친 뒤, 우리는 새로운 우군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제국 남부 해군의 수송함대입니다. 사령관 각하."

다름 아닌 수송함대.

드넓은 바다를 뒤덮듯, 무수히 많은 수의 군함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 항구로 접근했다. 군함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다.

어떤 것은 초계함, 어떤 것은 전투함, 어떤 것은 수송함.

뒤로 갈수록 체급이 거대해졌다.

그렇게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군함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 니.

- 북부 야전 사령관 한지훈. 거기 있는가.

품속에 넣어놨던 통신수정구를 통해 어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목소리가 계속해 이어진다.

- 알터스 가빌 데이드리온 남부 사령관이다. 그대의 요청에 따라 해군을 이끌고 이곳에 도착했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남부 사령관이었다. 저 대규모의 함대를 운용하고 있는 최고지휘관.

나는 수정구를 들어 올려 그의 부름에 답했다.

"알터스 남부사령관. 협조에 감사 한다."

- 무얼. 그대가 이전 남부전선에서 해준 일에 비하면 이 정도의 도움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네.

그는 내게 꽤나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듯하다.

하긴. 이전 남부전선, 코르자카 공화국과의 전쟁 당시 내가 직접 발로 뛴 덕분에 전쟁이 끝났었으니 . 저리 친근하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가 내게 제안해왔다.

- 곧 내가 탄 대장선이 항구에 정박할 것이네. 대장선에 자네를 초대해 앞으로의 일을 함께 논의하고 싶군. 번거롭겠지만 부디 이쪽으로 와주겠나? 한지훈 사령관. 안내해 줄 수병을 보내겠네.

"그쪽으로 가겠다. 알터스 사령관. 수병은 언제 도착하지?"

- 항구에 이미 도착해 있다네.

"그리로 가지."

알터스 사령관에게 초대받았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항구로 걸어 갔다.

블랙 오케스트라 세계관에서, 해군의 군함은 세 가지 종류로 구별 가능했다.

빠른 기동성으로 시야를 확보, 함대를 선도하는 초계함.

우월한 항해능력으로 함대를 호 위하며, 대다수 전투를 주도하는 주력함선인 전투함.

그리고 거대한 몸집으로 막대한 화물과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수송함까지.

겉모습으로 지구의 범선들과 대충 비교해본다면 초계함은 콜벳이나 슬루프, 전투함은 프리깃, 수송 함은 전열함과 대응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외양도 비슷하고 말이다.

'차이는 대포가 안 달려 있다는 점이겠지.'

지구의 범선들은 적게는 10문, 많게는 100문이 넘는 대포를 가졌었다.

하지만 이곳 블랙 오케스트라 세계관의 군함에는 대포 따위 달려있 지 않다.

왜냐하면 화약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대형 발리스타들이 측면에 덕지덕지 발려져 있다. 대포의 화력을 저 무식하게 커다란 석궁들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전투마법사가 전장의 화력을 담당하고 있는 세상이니.

함선끼리의 전투는 발리스타로 충분하고, 정말 고화력이 필요할 때는 전투마법사들을 함선에 탑승시 켜 전쟁을 치르는 방식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대장선에 초대받아, 지금은 항구에 정박한 대장선을 향 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박한 대장선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했을 때.

"저것이 바로 대장선입니다. 탑승을 도와드리겠습니다, 한지훈 사령관 각하."

"… 대장선이라더니. 예상보다도 더럽게 큰데."

나는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정박한 대장선은 함대에서 가장 큰 배였다.

4층 갑판규모의 거대한 수송선. 마스트도 무려 4개에 달했다. 언뜻 보아 설치된 발리스타의 개수도 최소 150개가량.

이 정도 체급이면 지구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열함이었던 프랑스 오 세앙급보다도 더욱 큰 규모다.

어찌되었든 나는 대장선 안으로 진입했고, 그곳의 최상층 지휘실에서 마침내 조우할 수 있었다.

"어서 오게! 한지훈. 내 초대를 받아줘서 고맙구만."

"알터스 남부사령관."

알터스 가빌 데이드리온 공작. 나와 똑같이 야전군 사령관의 지위 를 가진 이.

그는 덥수룩한 하얀색 수염을 기 르고, 우락부락한 육체를 가진 인물 이었다.

그가 내게 자리를 권해왔다.

"어서 앉지. 그대와 항상 대화해 보고 싶었다네, 한지훈 사령관."

"대화야 가끔 하지 않았나? 통신 으로 말이야."

알터스 남부사령관과는 여러 번 통신해 보긴 했었다.

나와 같이 제국에 4명밖에 존재 하지 않는 야전군 사령관이니 말이다.

내 말에 알터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마나통신은 대화라고 부를 수 없지.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고 실제로 이야기 하고 싶었단 말일 세."

"통신이나 실제로 보는 거나 큰 차이는 없을텐데."

"그저 목소리만 듣는 것과 상대 의 얼굴과 표정, 몸짓을 함께 마주 하는 것은 다르다네. 음, 그래. 역시 자네는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인물이로군."

"외모가?"

"외모를 포함한 분위기와 성격 말이네. 과연, 제국의 영웅이자 대 장군다운 품격과 위엄을 지니고 있어."

대충 분위기를 살펴보니, 알터스는 내 예상보다도 내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싶었다. 이전에 남부전선에서 그를 도와줬던 것이 꽤 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가 천천히 운을 뗐다.

"일단. 지원 온 우리 함대의 규모는 대략 550척 규모라네."

"550척이라. 함종별 숫자는 어떻게 되지?"

"초계함이 94척, 전투함이 311척, 수송함이 152척이다. 어떤가? 한지훈. 이 정도의 함대규모라면 만족스럽나?"

"… 대단하군. 예정보다도 훨씬 많은데."

"조금 무리해서 보다 많은 전력을 이끌고 왔네만. 자네가 기뻐하는 걸 보니 그럴 가치가 있었군."

나는 순순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현실 지구, 18세기 영국 왕실 해군의 최전성기 총전력보다도 많은 수준이었다.

당시 영국해군이 전열함을 가장 많이 보유했을 때가 대략 140척 가 량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엔 전열함과 동급인 수송함만 무려 152척이 있다 한다.

참으로 무지막지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내가 감탄하는 것이 썩 만족스러 웠던 것일까.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해왔다.

"자네도 알다시피 최근 몇 년간 우리 남부해군은 급격히 팽창했지."

그의 말대로 제국 해군전력은 급격히 증대되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연방놈들과의 전쟁이 곧이니 말이야. 여기 지원 나온 함대 중 절반가량은 새로 만들어진 함선들이네. 소금기도 제대로 안 먹은 신삥 들이지."

연방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서.

협상동맹과의 전쟁이 끝난 뒤, 그동안 몇 년간의 시간동안 제국은 내실을 다졌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를 수복 했고, 민심을 추슬렀다. 각종 발전 사업을 벌였다. 요새와 도로망을 정비해 전쟁에 대비했다. 군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그 군의 재정비 사업 중 크게 공들였던 것이 바로 해군력 증강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제국의 해군은 이전보다도 훨씬 거대해졌으니 .

"이 정도라면, 연방놈들에게 최소한 일방적으로 밀리진 않을 터다. 그렇지 않나?"

비로소 남부대륙 패권국가에 걸 맞은, 커다란 크기의 해군을 보유하 게 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 해군전력이라면 연 방놈들과 해전으로도 붙어볼 만하 겠는데 ."

그동안 해군은 그리 중요하게 다 루어지지 않은 감이 있었다.

그간 전쟁을 벌이던 대다수의 국가가 같은 대륙에 속해 있는 경우 가 많았기에, 지상전의 중요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은 동부대륙에 있다. 당연하게도 놈들의 해군력 또한 그 국력에 맞춰 비범한 수준이었으니 .

제대로 된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제국의 해군력이 최소한 일방적 으로 밀리진 않을 정도가 되어야했다.

그리고 제국은 마침내 연방놈들의해군력을 거의 따라잡은 상황.

덕분에 중앙대륙으로의 진출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허나 그렇다한들 완전히 안심할 순 없어. 이걸 보게, 한지훈."

툭.

알터스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 지도를 짚었다. 눈동자를 굴려 바라 보니 이곳 중앙대륙과 남부대륙 사이 해로를 그려둔 지도였다.

그가 지도의 몇몇 지점들을 짚어 가며 이어 말한다.

"이곳, 이곳, 그리고 이곳. 이 장소들에서 연방군의 초계함들이 발견되었다."

"…초계함이라. 전투함이나 수송 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순한 정찰활 동으로 보이더군."

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일이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안 좋은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

"적 초계함들을 모조리 격침시키고, 놈들의 수병과 지휘관놈들을 사 로잡아 심문한 결과. 적의 전투함대 가 이쪽의 수송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남하해 오고 있다는군."

"염병할. 설마 싶었는데 ."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놈들의 전투함대가 이쪽의 수송 함대를 타격하는 일.

예상은 했었지만, 가급적 그러지 않길 바라던 상황이었다.

"철저하게 이기겠다는 이야기이 겠지. 개같은 연방 새끼들. 함대를 장거리 기동까지 해가며 이쪽을 노 리다니."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최북단 항만도시 파오네.

중앙대륙과 가장 가까운 지점인 동시에, 동부대륙과 그리 머지 않은 지점이기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매한 정도의 거리다.

병력을 육지에 상륙시켜 차지하 기엔 버겁지만, 함대를 보내 통행을 저지하기엔 할 만한. 딱 그 정도의 거리였다.

그렇기에 놈들은 차마 항만을 점 령하진 못하고 해상수송을 방해하 고자 하니.

연방놈들의 국력이 대단하고, 그 들의 해군력 또한 강성하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함대로서도 안전을 확신할 순 없다. 그것도 모든 원정군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왕복해야하니. 놈들이 끼어들 여지도 많지."

제국 해군의 규모가 대단하다곤 하나, 35만에 달하는 우리 원정군을 단번에 수송할 수는 없었다.

약 한 달에 달하는 기간 동안 최소 세 번 내지 네 번은 왕복해야 모든 병력과 물자를 중앙대륙으로 운송할 수 있다.

그리고 네 번에 달하는 왕복 과정 중 언젠가 이쪽을 타격할 기회 가 있을 터.

그 기회를 노리고 연방군 해군이 이쪽으로 접근해오고 있는 것이다.

툭, 툭-알터스가 재차 지도를 두드린다.

"그래서… 나는 해군력을 대거 투입해 놈들의 남하를 저지할 생각 이다만, 솔직히 말하지. 버거운 상대다. 총 병력 수는 이쪽이 압도하 지만, 오히려 실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전력 열세다."

"수송함들이 수송임무로 빠지니까. 전투함들로만 전투를 진행해야 하지."

"그렇다네. 한지훈."

이쪽은 함선 대다수가 병력수송에 투입된다. 당연히 전투에 운용할 전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152척의 수송함과 100척의 전투함은 수송임무에 투입할 예정이다. 그러니…."

"나머지 211척의 전투함만이 연 방놈들을 막는데 쓸 수 있다는 것 이로군."

"그렇지."

"…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다는 연방 해군 전력은?"

"전투함 약 300척. 초계함은 20척 정도로 예상된다네."

"쯧."

절로 혀가 차졌다.

적 전투함대의 규모가 꽤나 크다.

"차라리 수송함만 수송임무에 차 출하고, 전투함 311척 모두를 연방 과의 해상전에 투입하는건?"

"그래선 병력운송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네. 운송할 병력과 물자가 너무 많아서, 모든 수송선과 일부 전투함까지 투입해야 제시간 안에 상륙시킬 수 있네. 여기서 더 많은 전투함을 해전에 투입하는 건 곤란 해."

"제시간 안에 병력수송을 마치 려면 211척 전투함으로만 어찌 해 봐야 한다는 거로군."

"그렇지. 만약 전투에 집중하느냐 기존 수송일정에 맞추지 못한다 면…"

"연방놈들을 제대로 막을 수 없을거고."

답답한 마음에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안전하게 해로를 확보하기 위해 서는 보다 많은 전투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많은 전투함을 빼낸다 면 수송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그렇다고 적은 수의 전투함만으로 해상전을 벌이자니 이쪽이 너무나도 열세인 상황.

즉, 위험을 감수하고 수송에 집중하느냐. 혹은 수송일정에 차질을 빚어서라도 안전한 해로를 확보하 느냐의 차이였다.

'본래라면, 수송일정에 못 맞추는 한이 있더라도 안전하게 가야하겠 지만….'

그래서는 이쪽이 더더욱 불리해 진다.

그렇지 않아도 한참이나 열세인 원정군의 규모다.

헌데 기존에 정해진 수송 일정보 다도 뒤로 미뤄진다면 그만큼 군의 전개속도가 느려질 터이고, 느려진 전개는 결국 더더욱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터.

예정된 수송일정을 반드시 맞춰 야한다. 그래야만 얼마 없는 승산조 차 온전히 지켜낼 수 있다.

내가 그렇게 표정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말이다, 한지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이름을 입에 담는 알터스.

그가 품속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들고는, 담뱃잎을 욱여넣으며 이어 말했다.

"자네의 힘을 빌리고 싶네만."

"내 힘이라면?"

"정확히는, 자네와 자네가 이끄는 북부군의 무력이 필요하네. 그대 아래에는 다수의 전투마법단과 베테 랑 기사들이 소속되어있지."

칙, 화륵!

알터스가 성냥을 긁어 불을 피워 올렸다. 작게 일렁이는 성냥의 불꽃. 그는 그것을 들어 올려 지그시 바라본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화속성 계열 중 강력한 화력을 발하는 전투 마법단이지."

그제야 나는 알터스가 뭘 원하는 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압도적인 화력을 원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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