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그래. 우리의 자치령이 함락되었 다고."
- …그렇습니다. 통령각하.
연방 통령의 집무실. 러셀 통령 은 통신수정구를 통해 들어온 보고 를 듣고 있었다.
보고는 다름 아닌 연방 자치령의 함락 소식.
보고가 이어졌다.
- 연방군이 패퇴했으며, 자치령 군은 해산. 최고사령관인 기플랫 랜 드바론 또한 전사했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 송구합니다. 통령 각하.
보고해오는 정보국 국장, 콜린 가프먼의 목소리는 작고 조심스러 웠다. 패배소식을 알리는 것이었으니 , 진노한 통령이 무슨 짓을 벌일 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보고를 받는 통령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상관없다. 연방 자치령이 제국놈들에게 함락당하는 건 이미 예상했 던 일이니."
무려 삼십만이 넘는 제국군을, 고작 십만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당초 자치령에 지원을 보낸 것 또한 제국군을 막기 위해서라기보 단, 놈들의 진군을 지연시키기 위함 이었으니 .
자치령은 제국군이 진군하는데 훌륭한 장애물이 되어줬고, 덕분에 그들의 진군 속도는 다소 느려졌다.
통령이 바랐던 바를 어느 정도 충족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도 놈들의 진군을 많이 지연시키진 못했군."
물론 다소의 아쉬움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놈들은 예상보다도 빠르게 자치령을 함락시켰고, 그들의 주력군은 계속 북상하고 있는 상황.
그들은 결국 제시간 안에 중앙대륙에 도착하리라.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점에 상륙한 연방군 원정대에 맞서 군을 움직이리라.
잠시 고민하던 러셀 통령이 나직 이중얼거렸다.
"중앙대륙에서 결판을 내야겠군."
이제 남아있는 것은 중앙대륙에서의 전투뿐.
흑마법사와 연합한 연방군. 그리고 제국의 지원을 받은 엘프는 중앙대륙에서 충돌할 터다.
두 거대한 세력의 격돌.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리라.
그만큼 이번 전쟁의 규모는 너무나도 컸으니 .
통령이 나직이 지시한다.
"흑마법사 놈들이 잘 해줘야 할 터인데 말이다."
최근 수년간, 러셀 통령은 크라 함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유물을 넘겼으며, 도시의 범죄자 와 부랑자들을 모아 실험소재로 보냈다.
대량의 물질적, 재정적 자원을 투자했다.
여러 권한과 지위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 지금 연방군과 협력하는 볼라바아 흑마법 학파의 세력은 몹시 강대해진 상황.
하지만 러셀은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제국놈들은 강하다. 안정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전력을 투입해야 할 터.'
이미 제국군의 전력이 그가 생각 했던 것보다 강성하다는 것이 이번 자치령 전쟁에서 밝혀졌다.
그리하여 보다 많은 전력을 투입 할 필요성을 느꼈으니 .
"흑마법사의 지원을 두 배로 늘 려라."
그에 통령은 흑마법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자 한다.
"자원과 재정지원을 확충하라. 더 많은 실험자원들을 넘겨라. 수감자 들과 부랑자들을 더욱 많이 수집해, 놈들에게 실험소재로 넘겨라. 모두 기존의 두 배만큼 말이다."
- …각하!
정보국 국장 콜린 가프먼이 만류 해왔다.
- 두 배라니요! 너무 과한 지원 입니다! 기존에 하던 지원도 막대 한 규모였습니다. 추가 지원을 했다 가 자칫 잘못하면 놈들을 제어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일이다."
- 하오나….
"그만. 내가 그리 결정한 것이다. 제대로 이행하도록."
콜린의 만류에도 러셀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막대한 지원을 해 놈들의 세력이 강성해진다 한들,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연방의 흑마법사 지원이 강화된다.
* * *
나는 전후처리 과정을 진행했다.
구 연방 자치령, 이제는 슈베츠왕국이라 불리게 된 그곳에 대리총 독을 지정했다.
기존 자치령군을 해체 후 슈베츠 왕국군으로 재편성했으며, 각종 행 정 처리를 전담할 행정관들과 지방을 통솔할 관료들을 급파했다.
자치령 이곳저곳에 있는 구 연방 관료와 지휘관들을 찾아내 처형하 도록 지시했다.
전투로 지친 병사와 기사들을 휴식시켰다.
보급로를 확립하고 병참기지를 건설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모든 과정을 마친 뒤.
- 예정보다도 훨씬 빠르게 자치령을 장악했군. 수고했네. 한지훈 라이젠 공작.
황제에게 보고하는 와중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국의 병사와 기사들이 우수한 덕분에, 예정보다도 빠르게 자치령을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 다 자네가 육성한 이들이지 않 나? 역시 그대는 우리 제국의 보배다. 덕분에 차질 없이 엘프의 중앙 대륙을 지원할 수 있겠어.
들려오는 황제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진하게 녹아있었다. 당연한 일 이었다.
상대가 다름 아닌 그 연방이었다.
협상동맹 전쟁 이전까지 패배했 던 역사가 없는, 동부대륙 전체를 일통한 초강대국.
헌데 우리는 놈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녀석들의 영토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비록 놈들의 식민지였다고는 하나, 어찌되었든 연방놈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영토를 빼앗기게 된 것이었다.
놈들의 높은 콧대를 눌러줬다는 생각에 절로 기뻐하는 황제였다.
그렇게 내가 제국 황제와 대화하는 와중, 문득 그가 운을 띄웠다.
- 그나저나. 자네의 양녀가 알고 보니 슈베츠 왕국의 마지막 왕족이 었다고… 그래서 자치령을 원했던 건가? 한지훈.
"이런. 들으셨습니까?"
왜 안 나오나했다.
나는 회의 도중 마이사가 왕녀라는 것을 밝혔었다. 이미 수십의 군 관과 참모들이 이사실을 알았다는 이야기.
당연히 황제가 모를 수 없다. 제국 정보성은 그리 무능하지 않으니 말이다.
- 하지만 조금 서운하군. 한지훈. 그런 소식을 자네에게서가 아니라 내 정보원을 통해 들어야 한다니 말이야.
"마이사가 여왕이 된 뒤, 제대로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스스로 여왕이 되는 건 좀 더미루고 싶다는 군요."
- 여왕이 될 시기를 미룬다고? 어째서 인가?
"계속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 …이해가 잘 안되는군.
수정구 너머, 황제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하긴. 고귀한 여왕의 자리를 고 사하고 계속 전쟁에 종군하겠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터였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만족스러 운전쟁터에서의 생활과, 고풍스러 운 여왕으로서의 생활.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 수준 차이가 크니까.
나는 황제에게 고했다.
"복수를 하겠다는군요."
- 복수라. 연방에게?
"그렇습니다. 연방이 마이사의 가족을 죽이고, 고국을 멸망시켰으니 . 똑같이 되갚아주겠다는군요."
- …그래. 그렇군.
그제야 황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복수심이 결코 하찮지 않 음을.
잠시 고민하던 황제가 나직이 말 해왔다.
- 하지만… 곤란하군 그래.
"곤란하다니. 무엇이 말입니까?"
- 마이사 슈베츠 말일세. 더는 제국민이라 볼 수 없지 않은가? 그것도 일개 시민도 아닌, 언젠가 여왕이 될 왕족이다. 그런 그녀를 일 개 장교로서 전쟁에 참여시키기엔 너무 잡음이 많단 말이네.
확실히 그러했다.
마이사 슈베츠는 평범한 제국의 귀족이 아니다. 그녀는 무려 슈베츠 왕위의 계승권자.
그런 그녀가 제국의 일개 참모로 서 전쟁에 참여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슈베츠가 제국의 일개 식민지에 불과했다면 그리 문제될 사안은 아니었으나.
슈베츠는 이제 주권을 가진 왕국 이 되었다.
슈베츠 왕족인 마이사를 그대로 제국군에 소속시키는 것은 문제될 여지가 크다.
그리하여 황제는 결정했다.
- 마이사 슈베츠를 관전무관 신분으로 격상시키지.
"관전무관… 말씀입니까?"
- 그래. 그렇게 한다면 깔끔하게 처리될 것 같군.
관전무관(觀戰武官). 전쟁 중인 국가의 교전양상을 관측하는 제 삼국의 장교를 뜻한다.
이들 관전무관은 동맹국 사령부 내에서 활동하며, 때때로 군사분야 의외교관 노릇을 하곤했다.
비록 제국은 별다른 동맹국이 없었기 때문에 관전무관을 파견하거 나 수용한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 한 명 수용하게 될 것 같다.
황제의 말이 이어진다.
- 관전무관으로 지정한다면, 제국군 소속이 아닌 슈베츠 소속으로 분리되어 우리 국방성의 지휘를 따르지 않게 되지. 그러면서도 전장에 종군할 수 있게 되고 말이다. 마이 사 그녀가 따로 군을 이끌고 합류 하지 않는 이상 동맹국의 관전무관 으로 지정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만. 어떤가? 한지훈.
"확실히… 그렇게 된다면 수월하 게 처리될 것 같습니다."
- 좋군. 그럼 내가 지시해두지. 그녀를 관전무관으로 지정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걸세.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 무얼. 자네가 해준 일들에 비 하면 이쯤이야 사소한 일일세.
이제 마이사는 제국군이 아닌, 슈베츠군으로 소속이 변경되어 제국 국방성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다.
기존 하급 참모관이라는 계급은 폐기. 동맹국의 관전무관으로서 자율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히 마이사에 대한 안건을 정리한 황제는 다음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 남부사령관이 알려주었다. 수송함대가 그쪽, 슈베츠 왕국에 도착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군.
"…제 시간에 맞췄군요."
- 그래. 그러니 북쪽 항만을 깨 끗하게 비워두게. 도착하는 배가 한두 척이 아닐 터이니. 수송함대가 들어갈 자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 원정대는 북부 끝단, 슈베 츠 왕국에 도달했고. 이제는 바다를 넘어 중앙대륙으로 진출할 때가 된 상황.
당연하게도 대량의 수송함선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에 나는 원정군이 출발하기 전, 남부사령부에 협조를 요청했었다. 병력을 수송할 함대를 보내달라 고 말이다.
그 요청을 남부군이 성실히 이행 한 듯하다.
- 이제 병력을 중앙대륙으로 수송해, 연방군 주력군과 싸우는 것만 이 남았군.
"…그렇습니다. 황제폐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이 해결된 상황이었다.
이제는 중앙대륙에 상륙해 연방 놈들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것만 이 남아있으니 .
전쟁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 자네만 믿네. 한지훈. 오직 자네만이 우리 제국의 혈맹 엘프를 구원하고, 연방놈들의 야욕을 틀어 막을 수 있다네.
이번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엘프는 멸망한다.
아니, 어디 엘프뿐만이랴.
중앙대륙에는 세계수가 있다. 온 세상으로 뿌리를 벋어, 자연력과 마나를 순환시키는 거대한 영물 말이다.
만약 중앙대륙이 연방에게 집어 삼켜진다면?
흑마법사 놈들이 세계수를 가만히 놔둘 리 없다. 분명 세계수를 타락시키고, 악용하고자 할 것이다.
이전 시나리오에서 놈들이 그리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놔둬서는 안된다.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연방과 흑마법사 놈들을 저지하겠습니다. 황제 폐하."
- 그래. 부탁하네.
통신이 끊겼다.
후우.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시선을 돌려 집무실 한켠을 바라봤다.
집무실에는 커다란 지도가 걸려 있었다.
엘프가 건네준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중앙대륙의 군사지도. 그것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연방놈들이 처 들어올 경로."
붉은색 화살표로 표기되어있다.
"우리군이 놈들을 틀어막을 지점 들."
푸른색 기호들로 강조되어있다.
지도에는 이미 하나의 전투계획 이제대로 그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마이사를 비롯한 휘하 참모들이 머리를 한데 모아 전쟁계획을 만들어 놨던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며 승산을 헤아려 본다.
"승률은… 대충 삼분지 일인가."
내가 가진 힘은 결코 하찮지 않다.
휘하 측근들은 유능했고, 동맹인 엘프 또한 고고한 능력을 갖췄으며, 지휘할 북부군 또한 무수한 실전경 험으로 단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승률이 낮다 여겼다.
그이유는 단순했다.
"백만."
적의 수가 너무나도 많기에.
연방측은 그거대한 국력을 마치 과시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도 막대 한 수를 파병해왔다.
그 수가 무려 백만.
너무나 강대한 적의 전력이다.
제아무리 개개인의 역량이 적보 다 상위를 점했다 한들, 물량 차이 가 이토록 난다면 개개인의 정예도 따위 하찮아지게 느껴질 정도.
냉정하게 본다면, 이쪽의 승률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미 한번 상대해봤던 적이야."
크루거 연방. 이 세계관에서 가장 강성한 국력, 거대한 영토를 지닌 초강대국.
나는 이전 시나리오에서 놈들을 상대했고, 승리했었다. 덕분에 녀석 들의 성향과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승리할 것이다."
이전 시나리오의 내가 그리했던 것처럼 말이다.
수송함대의 도착이 그리 머지않았다.
중앙대륙 전쟁이 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