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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84화 (284/390)

284화.

"제국놈들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막아야 한다. 이곳에는 우리 원정군의 사령부가 있다!"

연방군 장교들이 크게 소리쳤다.

제국군이 비밀통로를 타고 총독 성 내부에 침투했다.

그들의 수는 무려 수천.

놈들이 이 드넓은 총독성 내부를 들쑤시고, 저 아래층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이다.

이미 일층과 이층 전체가 장악당 했으며, 삼충과 사층은 지연전을 펼 치는 중. 오층에도 슬슬 적의 병력 이 관측되고 있다.

그리고 오층은 그들의 연방 원정 군사령부가 있는 층이었으니 .

"결코, 적에게 사령부를 빼앗겨서는 안된다!"

적은 사령부를 노리고 있었다.

사령부에는 그동안 연방군이 촘 촘히 만들어놨던 통신망과 비콘, 그리고 각종 고급 군사정보와 여러 비밀자료들이 있다.

그야말로 군의 중추.

적에게 빼앗긴다면 이쪽은 군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절대 빼앗 겨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사령부를 사수하고자 방어병력을 집중시키는 연방군이었다.

"… 막을 수 없습니다! 놈들이 너무 강합니다!"

"삼층이 완전히 적에게 장악 당 했습니다. 승산이 없습니다!"

"삼층의 병력은 모조리 후퇴해!

사층에 합류시켜 전열을 다진다."

"베테랑 기사와 레인저들이라니. 제국놈들. 역시 만만치 않군."

물론 밀리는 것은 연방군이었다.

연방군은 총독성 내 산발적인 교 전들 중 그 어디에서도 우세를 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투한 제국군의 전력이 정예병 인 레인저와 고위병종인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이었다.

비록 숫자로는 이쪽이 밀리지 않 으나, 정예도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적이 서관과 남관에서 관측됩니다!"

"제기랄. 놈들이 침입할 구멍이 너무 많습니다! 전부 봉쇄할 순 없습니다!"

"… 망할. 이 개같은 총독성은 쓸데없이 넓군."

커다란 왕궁 부지, 높게 솟아있는 건물. 넓고 기다란 복도가 얼기 설기 얽혀있고, 곳곳에 계단이 층과 층을 이었다. 크고 작은 방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만큼 총독성의 규모는 어마 무시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방어해야 할 면적이 커지면 커질수록 방어군에게는 힘들어지는 법이다.

적이 노릴 수 있는 틈이 많았으니 .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사령관 각하."

이렇듯, 총독성 내부 상황은 연 방에게 불리했다.

강력한 적의 정예전력.

방어에 불리한 크고 복잡한 실내 구조.

더해 급작스러운 기습으로 인한 혼란과 사기하락까지.

이대로 간다면 사령부가 함락당하고, 연방측이 패배하는 것은 불보 듯 뻔한 일.

하지만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장 교들의 얼굴에는 패색이 어려 있지 않았다.

"총독성 인근의 아군부대가 곧 지원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틴다 면 우리의 승리다!"

지원군이 오고 있기 때문에.

이곳은 연방 자치령의 수도. 당 연하게도 총독성 내외부뿐만 아닌, 이 근방에 배치된 연방군 부대 또한 많다.

당장 지원올 수 있는 병력만 무려 삼만이다.

그들이 총독성에 도착해 침입자 인제국놈들과 교전한다면, 적은 안팎으로 포위되게 된다.

승리할 수 있다.

때문에 연방군은 최선을 다해 적을 요격할 준비를 해나갔다.

"복도와 계단을 봉쇄하라! 병력을 배치해!"

"장애물을 설치하라. 문짝, 가구, 유리조각. 뭐든지 좋아. 적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도록, 뭐라도 쌓아놓으란 말이야!"

"기름통을 미리 준비해둬라. 놈들을 막을 수 없다면… 불을 질러 녀석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하니!"

연방의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적의 돌파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인물. 기플 랫 랜드바론.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한지훈이라 했나. 드디어 실물을 볼 수 있겠군."

철그럭.

기플랫이 자신의 허리춤에 찬 장검을 매만졌다. 미약한 쇳소리가 울린다.

그의 중얼거림이 이어진다.

"세계 최강의 무력을 지닌 군관 이라고."

기플랫은 자신이 직접 한지훈과 전투를 벌일 것을 직감했다.

한지훈 라이젠. 제국의 악마.

그가 마지막으로 활동했었던 협 상동맹과의 전쟁이 끝난 지 몇 년 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그의 활약을 기억하는 인물이 많았다.

기플랫 또한 한지훈의 활약을 잊 지 못하는 인물 중 하나.

한지훈은 어떠한 전투에서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때로는 절정에 닿은 무력으로, 때로는 고고한 지략으로 전장을 지배했다.

무수히 많은 적을 쓰러뜨렸으며, 광활한 영토를 정복했다. 막대한 전공을 취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곤했다.

제국의 악마, 한지훈 라이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인간이라고.

무의 정점이라고 말이다.

피식.

기플랫이 입가를 비튼다.

'헛소리.'

물론, 한지훈의 명실상부한 강자 임을 기플랫은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무인을 압도하는 , 정점의 무력을 지니고 있냐 하냐면. 글쎄.

"전장에서의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

들려오는 소문들은 믿지 못할 것 들이 많았다.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 로 검을 휘두른다던가.

혹은 기사 스무 명을 한번에 갑옷째로 베어버렸다던가.

심지어 하나의 기사단을 단신으로 궤멸시켰다던가.

일개 인간의 경지라기엔 볼 수 없는, 차마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때문에 기플랫은 한지훈의 무력 이 과장이라고 추측했고, 그렇기에.

"죽여주마, 한지훈. 그리고 네놈 의 그 같잖은 원정군 또한 완전히 전멸시켜주지."

자신했다.

본인의 능력이라면 한지훈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명성이 드높은 제국의 악마를 자신이 처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기플랫 그 또한 무인이었다.

비록 기사의 길이 아닌 군관의 길을 걸었으나, 오러의 막대한 재능을 타고나 뛰어난 경지를 달성했었 으니 무에는 자신이 있다.

게다가 그에게는 '보험' 또한 있었다.

달그락.

기플랫이 품속에서 어떤 유리병을 꺼낸다.

꺼낸 유리병에는 점성이 높은 기분 나쁜 검은색 액체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치 석유 같은 외양의 검은색 액체.

기플랫이 유리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흑마법사 놈들. 정말 대단한 걸 만들어내는군."

액체는 다름 아닌 흑마법사의 연구성과 중 하나.

쯧. 그가 혀를 찬다.

"물론 이딴 기분 나쁜 물건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지만…."

가급적 자신의 능력으로 한지훈을 꺾어보이고 싶은 기플랫이었다.

허나 만약, 그의 예상보다도 한지훈의 무위가 뛰어나다면.

"사용해야겠지."

자신의 보험을 아끼지 않고 즉각 사용하고자 하는 그다.

기플랫이 눈살을 찌푸리며 유리 병을 주시한다.

"전진! 전진하라!"

나는 그리 외치며 앞장섰다.

콰앙!

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일렁이는 장검이 공기를 가름과 동시에 기다란 푸른색 궤적 이 그려졌다.

서걱.

이후 들려오는 미약한 절삭음.

"아아아악!"

피가 튀었다. 적병이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비틀거린다.

휘청이는 놈을 걷어차 쓰러뜨리고, 지르밟으며 전진.

"연방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베어 죽여라! 적의 사령 부까지 전진하라!"

또 다른 적을 향해 검날을 휘두 른다.

파앙!

날카로운 파공성. 푸른색 검광.

"커헉…!"

그리고 적병의 단말마.

후드득. 핏물이 쏟아져 내 제복 과 얼굴을 적신다.

나는 왼손으로 적의 피를 훔쳐내 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해 적을 처치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령관 각하께서 선도하신다! 각하의 뒤를 따르라!"

"볼로냐 기사단! 전진! 적을 몰아 쳐라!"

"적의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 적의 사령부를 점거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

"오오오오오오!"

함성을 내지르며 기사들이, 그리고 병사들이 돌진했다.

철그럭, 철컥. 퍽! 콰직, 서걱.

전신갑주를 장비한 기사들이 달 려들어 적의 방어진을 부수고, 틈을 만들었다. 그 틈을 파고들 듯이 레 인저 병사들이 진출했다. 적을 효율적으로 분쇄한다. 병력이 나아간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앞으로 전진하는 와중, 휘하 기사가 보고해왔다.

"사령관 각하! 적의 사령부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곳이 바로 저곳, 저 복도 너머입니다!"

그가 철제 건틀랫을 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전면의 복도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래 보이는군."

전면의 복도는 그 폭이 꽤나 넓었다.

그 넓은 폭 전체가 인파로 꽉 메 워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적의 기사들과 병사들로 이루어진 방어진형이었다.

물 샐 틈조차 안 보일 정도로 빽 빽한 방어진. 이곳 총독성에서 있던 그 어떠한 교전보다도 훨씬 완고한 저항이었다.

저토록 사력을 다해 이곳을 사수 하고자 하다니.

"사령부만은 내줄 수 없다 이거 지."

저 너머에는 놈들이 반드시 지켜 야 하는 대상, 사령부가 있다는 뜻 일 터.

나는 기사에게 물었다.

"적의 지원군은?"

"… 도착했습니다. 이미 놈들은 총 독성 부지 내로 진입, 이곳으로 달 려오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시간은 얼마 없겠군 그래."

우리가 일층에서 이곳 오층까지 진출하는 동안, 부지 밖 적의 군대 또한 움직였다.

어느새 적의 지원군은 벌써 이곳 총독성 부지 내부로 진입한 상황.

얼마 안 있어 놈들은 총독성 건물 안으로 파고들어, 이곳 오충까지 올라와 교전을 시작할 터.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앞뒤로 포 위당하게 된다.

포위는 치명적인 일. 아무리 우리가 정예로 이루어졌다 한들, 압도 적인 수적 열세 앞에서는 어쩌질 못하고 순식간에 쓸려나나갈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전에 적의 사령부를 무력화 시킨다."

놈들이 오기 전에 적의 모가지를 따버리면 되니까.

철그럭.

나는 장검을 다시 들어올렸다.

벌써 수많은 적을 베어 죽였기 에, 내 장검에 찐득한 붉은 핏물이 반쯤 말라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그 상태에서 오러를 돋웠다.

화르르르륵!

그 어떤 기사들보다도 찬란한 오 러광이 번쩍였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청색 화염.

검날에 들러붙어있던 핏물이 오 러의 열기에 의해 증발, 소멸해간다.

내 검날은 깨끗한 상태를 되찾았다.

나는 손목을 천천히 움직여, 정 화된 검날의 첨단을 전면으로 겨누 고는, 지시했다.

"돌격하라. 적의 마지막 저항을 분쇄하고, 놈들의 사령부를 제압하라."

"명령을 따릅니다! 사령관 각하!"

"돌진! 마지막 적이다! 놈들을 모조리 갈아버려라!"

두두두두두.

기사와 병사들이 발을 굴러 앞으로 전진했다.

비록 넓은 편이라곤 하나 실내였다. 그들의 발구름 소리가 크게 울렸다. 뒤이어 울린 기사와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커다랗게 메아리친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들이 전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선을 바쁘 게 움직였다.

어떤 인물을 찾기 위함이었다.

"기플랫 랜드바론."

적의 최고지휘관이자, 연방 원정 군 놈들의 수장.

"놈을 반드시 제거해야 해."

녀석을 죽여 없애야 한다.

기플랫은 위험한 인물이었다.

사실, 놈이 지닌 전략과 전술 자체는 솔직히 말해 그리 탁월하진 않으나.

본인의 부하와 우군의 손실 따위 를 전혀 헤아리지 않고, 적에게 무조건적인 피해를 강요하는 녀석의 스타일.

그 자체가 너무나도 위험했다.

"이전 시나리오에서 꽤나 고생 좀 했었지."

특히 막대한 연방의 국력을 등에 업은 기플랫은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끝없이 몰려드는 적의 군세.

아무리 효율적으로 군을 운용한 다 한들, 적의 물량에 짓뭉개져 압 사당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당시 내가 흑마법사와 동맹을 맺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놈이 이곳 총독성 어딘가에 있다.

녀석을 쳐 죽인다면 이후 있을 연방과의 전면전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나는 계속해 정면을 바라보며 녀석을 찾았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콰르르르릉!

굉음이 울리고, 푸른색 검광이 번뜩였다. 피보라가 일었다. 그러자 우수수 쓰러져 나가떨어지는 다수 의 제국 기사들.

적의 사자후가 터져 나온다.

"어림도 없다, 한지훈!"

피보라 너머, 인영이 보였다.

인영은 연방군 장성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한쪽 눈에는 안대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눈가에 기다란 전상자국이 남아있다.

머리카락은 마치 피처럼 진한 붉은색.

확신했다.

"기플랫."

내가 죽여야 하는 적. 저 앞에 있다.

놈의 외침이 이어진다.

"덤벼라, 한지훈! 이 몸은 비겁하 게 숨지 않는다!"

시답잖은 도발이다.

그에 나는 피식 웃었다.

"누가 할 말인데. 꼴값은."

이번 전쟁에서 온갖 비겁한 방법을 동원했던 녀석이, 자신은 비겁하지 않다고 하다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 또한 피할 이유가 없으니 .

철그럭.

장검을 쥐어들었다.

"그래. 한번 붙어보자고. 기플랫 랜드바론."

놈을 찾은 이상, 베어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화르르륵!

검의 오러가 가열차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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