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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83화 (283/390)

283화.

어둑한 비밀통로를 걷고 또 걷는다.

철그럭, 철그럭, 철컥.

울리는 군홧발 소리.

희미한 마나등의 조명에 의지한 채 하염없이 걸어간다.

걷는 와중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무려 오천에 달하는 병력이 나와 마이사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광경.

저들이 이번 잠입에 동원된 병력 들이었다.

볼로냐 기사단의 기사 약 일천. 그리고 각 군단에서 차출한 정예 레인저부대 약 사천.

합 오천의 정예병사와 기사들.

나는 그들을 데리고 슈베츠 왕궁 내부로 잠입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걸어갔 을까.

"여기다. 한지훈."

우리는 마침내 통로의 끝에 다다 랐다.

보이는 것은 위로 향하는 계단. 계단의 끝은 문으로 막혀있다.

마이사가 이어 말한다.

"저 문 너머는 슈베츠 왕궁의 지하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문 너머가 슈베츠 왕궁이다.

이제는 더 이상 왕궁이 아닌, 총 독성이라고 불리우는 건물.

문 너머로 그곳과 연결되어있다.

마이사가 이어 말한다.

"성의 규모는 꽤나 크다. 아무리 오천의 병력을 데려왔다 하지만, 적의 경비 병력도 절대적지 않을 것 이야. 그러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는 신속함이 중요할거다."

그 '목표'란 다름이 아니다.

시선을 돌려 시야 한켠에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서브 퀘스트]

[연방 자치령-슈베츠 왕궁까지 침투. 연방군의 사령부를 완전히 제 압하고, 참모진을 모조리 처치하라.]

적의 지휘부를 제압하고, 참모진을 섬멸하라는 서브 퀘스트창.

이번의 목표는 적의 완전 섬멸이 아니다.

애당초 오천에 불과한 병력으로는 수도를 지키고 있을 적의 정규 병력 전체를 상대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놈들의 지휘부 를 뭉개버려 통제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뿐.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벌써 왕궁 안쪽까지 침투했으니 말이야.'

그리고 적의 지휘부는 이곳 왕궁의안쪽 어딘가에 있을 터.

그곳을 찾아내 적의 고위 장성들 과 참모진들을 모조리 제거하면 퀘 스트는 완료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보자고."

마이사에게서 시선을 때, 배후에 길게 늘어져있는 기사와 병사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지시했다.

"전군, 전투준비. 무기를 장비하라."

"전투준비."

"전투준비 신호가 떨어졌다. 무기 꺼내."

내가 내린 지시를 전파하는 중간 간부들이 은밀히, 그러면서도 신속 하게 전달했다.

스르릉, 철크럭, 철컥.

그들이 조심스레 발도하고, 천에 싸인 창날을 꺼내보였다. 기사들이 투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하나둘 오 러의 광휘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어둑한 지하통로 속. 날붙이의 시퍼런 반사광이 오러광을 반사해 은은하게 빛난다.

나는 그들이 전투태세를 다지기 까지 잠시 기다리고는, 재차 강조했다.

"미리 전파한 대로다. 각 부대별 로 움직이며 적을 모조리 제압, 사령부의 위치를 찾는다. 사령부 위치 를 확인한 부대는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내게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좋아. 돌진한다! 연방놈들의 대가리를 따버려라!"

콰앙!

나는 계단을 달려 올라가 문을 박찼다. 휘하 병력이 뒤따른다.

마침내 우리는 슈베츠 왕궁에 도 달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 적습! 적습입니다! 적의 병력 이 총독성 내부로 잠입했습니다!

"…적의 병력이, 이 건물에 잠입 했다고?"

- 놈들이 총독성의 지하계단에서, 끝도 없이 기어나오고 있습니다!

기플랫은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휘하 군관의 다급한 목소리에, 쯧 혀를 찼다.

"역시 비밀통로 따위가 있었나보 군."

기플랫은 이어 읊조린다.

"허나 그래봤자다. 어차피 놈들의 병력은 1만 이하일 터."

비밀통로란 본디, 위급상황 시 소수의 중요인물을 밖으로 탈출시키거나 외부와 연락하기 위해서 만 드는 시설.

대규모 병력의 수송에 적합한 시설이 아니다.

때문에 기플랫은 침입한 적의 수 가 절대 만 단위가 넘지 않을 것이 라 추측했고.

그렇기에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지시할 수 있었다.

"총독성 주변을 경비 중이던 모든 병력을 소집하라. 총원이 얼마나 되지?"

"연방 기사 일천, 자치령 기사 이천, 그리고 나머지 병사 삼만이 이곳 총독성 주위에 배치되어있습니다."

"모두 당장 불러들여."

그는 확신했다.

'삼만이 넘는 수의 병력이라면, 침투한 놈들이 제아무리 정예라고 한들 이겨낼 수 없겠지.'

비교적 소수의 인원만을 성 내부 로 침투시켰을테니, 그 구성원은 고 르고 고른 정예들일 터.

만만히 상대할 수는 없다.

허나 적보다 몇 배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기플랫이 크게 소리친다.

"당장 총독성 내부에 있는 경비 병력에게 전파하라! 버티라고! 곧 총독성 외곽에 배치된 증원군이 올 것이니, 그때까지 버티라고 말이 -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당장 움직여!"

통신이 끊기고 적막이 찾아온다.

후욱.

기플랫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좋아. 한지훈. 네놈이 내 목숨을 끊는 것이 빠를지. 아니면 내가 부른 증원군이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 더 빠를지. 한번 해보자고."

결국 시간 싸움이었다.

한지훈이 이끄는 정예군이 먼저 기플랫과 그 휘하 지휘부를 섬멸한 다면 제국 측의 승리.

반면 한지훈이 지휘부를 찾아 섬 멸하기 전, 기플랫이 호출한 증원군 전력이 이곳 총독성에 합류한다면 연방의 승리다.

기플랫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 오랜만에 검을 휘두르게 될 수도 있겠군."

철그럭.

그는 집무실 한켠에 놓여져 있던 자신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총독성 내의 좁은 복도.

"제국! 제국놈들이다!"

"막아! 막아라!"

"물러서지 마라! 곧 증원군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텨!"

연방의 경비병들이 창칼을 내지 르며 발악했다.

그들이 휘두른 시퍼런 검날과 창 날 따위가 공기를 가르며 쇄도해온다.

꽤나 매서운 일격.

역시 연방의 정규군이라고 할까. 제국군 병사들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정예도다.

그들은 정규군답게 충분히 단련 되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지."

그들과 상대하는 것은 제국의 일반 병사들보다도 더욱 출중한 전투 능력을 가진 이들.

다름 아닌 레인저 연대의 병사들 이었다.

채앵! 콰직! 퍽. 서걱.

병사들이 앞으로 달려들어 전투했다.

연방군 놈들이 펼친 조잡한 방진을 부수고, 파고들어, 난자했다.

여기저기서 핏물이 솟구쳤다.

파쇄음과 절삭음, 그리고 적의 비명소리 따위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제국의 레인저는 훌륭해. 괜히 일반 병사들보다 두 배의 봉 급을 받는 게 아니야."

과거 내가 레인저 놈들을 다루어 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원이 척후병 생활을 해본 레인 저 연대 녀석들은 정말 훌륭한 전력이다.

여러 오지와 험지를 전전하며, 크고 작은 전투를 수도 없이 경험 하고 다양한 작전을 시행한다.

정밀정찰. 위력정찰. 후방교란. 아군선도. 적의 정보 탈취. 중요거 점의 선점 등.

그야말로 제국의 병사들 중에서 도전장을 구를 대로 구른, 가장 최정예의 병사들이 바로 다름 아닌 레인저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병사들이 전투하는 것을 잠시 구경하고는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바라보는 전투는 다름 아닌 기사들의 전투였다.

볼로냐 기사단이 적의 기사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 와중 나는 익숙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베르겐. 역시 믿음직해."

가장 선두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베르겐 기사단장.

"연방의 기사들은 나약하다! 놈 들을 모조리 죽여버려!"

그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오러 서린 검날을 휘두르며 크게 외친다.

그에 위축되어 한 발자국 물러나는 적의 기사들.

그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했다.

콰르르릉! 콰직. 후드득.

기다란 반원모양의 궤적이 그어 짐과 동시, 피보라가 일었다.

후드득.

적의 장기들이 허공으로 비산한 뒤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끄아아아악!"

"커헉, 쿨럭…!"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적의 비명소리와 단말마소리.

나는 베르겐의 전투장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 데'?"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공국전쟁에, 협상동맹과의 전쟁 에, 이번에 치르고 있는 연방과의 전쟁까지. 크고 작은 전투를 끝없이 치르며 무수한 실전경험을 쌓고 있는 베르겐이다.

당연히 그 경지가 점차 높아질 수밖에.

물론 경지를 드높인 건 베르겐뿐 만이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기사단인 볼로냐의 기사들 또한, 전체적인 수준이 한 단계 더 드높아져 있었다.

"모두 쓸어버려!"

"전대장님을 따르라!"

철그럭, 철컥, 철컥.

쇳소리를 울리며 돌진하는 기사 들.

그들이 베르겐이 열어놓은 틈을 따라 진입하고, 오러가 일렁이는 검 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직. 후드드득. 서걱.

적의 기사들은 제대로 된 반항조 차 하지 못하고 우르르 쓸려나갔다.

분명 숫자는 비슷했을지언데, 손쉽게 격파당한 것이다.

나는 기사들의 전투과정을 바라 보며 평가했다.

"이제는 황실 기사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겠어."

황실 기사들이 출중한 혈통과 방 대한 교육훈련으로 완성된 엘리트 전력이라면, 볼로냐 기사들은 끝없는 실전으로 벼려진 베테랑 전력이다.

비록 혈통이나 개개인의 잠재능력은 황실기사들의 그것을 못 따라 가지만.

너무나도 많은 수의 실전경험 덕분에 황실 기사들과 비등한 실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정말 든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아. 그럼."

그렇게 나는 전투하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모습을 살폈다.

상황은 순조롭다.

병사와 기사들은 선전 중. 적의 경비 병력은 손쉽게 갈려나가고 있으며, 이쪽은 차근차근 총독성 내부 를 수색하고 있으니 .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적의 증원병력이 곧 올거란 말이지."

정예도에서 밀린다는 것을 인지 한 연방놈들은, 총독성 밖에 있는 병력들을 죄다 불러들여 우리를 막 으려 할 것이다.

그전에 적의 수장 기플랫과, 예 하지휘부 놈들을 모조리 갈아버려 야 하는데….

"사령부가 어디인지 도통 안 보이는걸."

사령부가 어디인지 좀처럼 보이 지 않는다.

나는 수정구를 집어 들고는 통신을 연결했다.

"각 부대. 차례로 현황 보고하라. 적의 지휘부를 찾은 부대 있나?"

휘하 부대의 지휘관들이 하나둘 보고해온다.

- 볼로냐 1전대장입니다. 총독성 의 1층 동관을 모조리 제압했으나, 적의 사령부는 보이지 않습니다.

- 동기사단 2전대장입니다. 1층 서관과 남관을 수색했으나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 3번 전대장….

기사들의 보고가 이어진다.

역시나 아직 사령부를 찾지 못했다.

기사들 다음으로, 레인저 지휘관 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 1번 연대. 총독성 2층 전체를 수색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적과 교전 중. 그리 머지않 아 2층 전체를 제압할 수 있을 것 입니다.

- 2번, 3번 연대. 3층과 4층을 제압, 섬멸 중입니다. 아직 완전한 수색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적의 사령부를 발견하는 즉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 4번 연대. 5층으로 진출했습니다. 아직 교전 중입니다. 사령부를 찾지 못했습니다.

기사들도, 레인저들도 아직 적의 지휘부를 찾지 못했다.

나는 쯧 혀를 찼다.

"역시 연방놈들의 지휘부는 고층에 있으려나."

이곳 총독성의 규모는 꽤나 크다. 이전의 슈베츠 왕국의 국력이 성세했던 만큼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개같이 커다란 성 어디가 놈 들의 지휘부인 것일까.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하며 벌써 적의 경비병과 기사 몇을 생포해 고문해봤으나, 녀석들 또한 지휘부 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비병력에게까지 지휘 부의 위치를 비밀로 하는 모양.

참 일이 귀찮아진다.

그렇게 내가 표정을 찌푸리며 자리에서있을 때였다.

- 사령관 각하! 레인저 4번 연대 장입니다! 급히 보고 드립니다!

통신수정구가 점멸하며 통신이 들어왔다. 막 5층으로 진출했다던 4번 레인저 연대장이었다.

그가 알려온다.

- 교전 와중, 연방군 장성 제복을 입은 일단의 무리가 대피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 연방군 장성 제복을 입은 놈들이라."

장성 하나가 아닌, 여러 명이 몰려다니고 있다.

그 말인즉 그곳에 지휘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 터.

나는 씩 미소 지었다.

"수고했다. 4번 연대장. 지금 당장 그리로 가지."

적 지휘부의 위치.

아무래도 찾은 것 같다.

나는 수정구를 통해 지시했다.

"전군. 5층이다. 5층에 적 지휘부가 있다. 그곳을 공략한다. 전 병력 은 진행 중인 전투가 정리되는 즉시 5층으로 집결하도록."

기플랫의 목을 벨 순간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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