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전투가 종료되었다.
나는 기사들을 이끌고 적의 전투 마법사들을 모조리 처치했다. 북부 군을 무사히 지켜냈다.
그리고 지금은 전투 후 전장정리 가 한창이었다.
내지휘 막사에서 휘하 참모가 보고해온다.
"아군의 손실은 기사 일백삼십칠 이전사. 사백이십구가 중경상입니다."
"부상당한 기사들의 상태는?"
"지금 포션을 배급해 부상을 치유 중에 있습니다. 약간의 휴식시간 만 있다면 모두 회복할 수 있습니다."
"포션을 넉넉히 가져오길 잘했네.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전력의 손실 은?"
"경미합니다. 적당한 휴식만 취한 다면 모두 만전의 상태를 되찾을 것입니다."
"좋아. 식사 추진하고, 병사들을 충분히 휴식시켜."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내지시에 참모가 척 경례하고는 퇴장했다.
나는 이곳 란트베이안에서 하루 정도 머물 생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막 전투를 끝 낸 직후 병력을 이동시키는 건너무 가혹한 처사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막사에서 뒤처리 작업에 한참일 때였다.
"한지훈. 시간 좀 있는가. 잠깐 둘이서 대화 좀 했으면 한다만."
펄럭.
막사의 천막을 걷어내며 들려오는 소리.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오스카. 너와 대화할 시간이라면 언제든지 있지. 자리에 앉자고. 어 차피 뒷정리는 거의 다 끝내놨으니까."
저벅, 저벅, 털썩.
힘없이 내 맞은편에 앉은 오스카. 그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어째서 일까.
전투에 패배한 것도, 그렇다고 병력손실이 심대한 것도 아닐 지언데.
마치 무언가 커다란 죄를 진 것 마냥 저토록 어두운 표정이라니.
그이유는 곧 알 수 있게 되었다.
"미안하네."
"미안하다면. 무엇이?"
"내가 자네에게 잘못된 조언을 한 것 말이네."
오스카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제 내게 제안해왔었다.
연방 놈들이 청야전술을 펼친 이 도시, 란트베이안을 통과해 대로를 따라 쭉 북상하자고. 그렇게 한다면 보다 빠르게 행군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그의 제안을 합리적이라 여겨 수락했었고.
"설마 연방놈들의 함정이었으리 라고는…."
우리는 함정에 빠지게 되었었다.
물론 내 활약 덕에 큰 피해를 입 진 않았지만, 하마터면 제국군의 원정이 중앙대륙은커녕 이곳에서 전쟁이 끝날 뻔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 미안하네. 내가 잘못된 조언을 했기에 본대가 위험에 빠졌었다."
그에 오스카는 죄책감을 느꼈고, 그리하여 이자리에 사죄하러 온 것이다.
물론 그는 단순한 사죄만으로 이번 일을 끝낼 생각은 없어보였다.
"한지훈. 나는 장성 실격이다. 이번 일의 책임을 물어 나를 처벌하 게."
"… 처벌이라니?"
"나를 선임 군단장에서 일반 군단장으로 강등시키거나, 혹은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게. 내 발언력을 약화시키란 말이네."
그는 자신의 처벌을 바라고 있었다.
"이번 일처럼 자네에게 잘못된 조언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다시는 잘못된 조언을 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는 오스카.
그의 말에 나는.
"오스카. 내가 왜 자네를 처벌하 나?"
피식, 쓴웃음 지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오스카를 처벌 할 마음 따위 쥐뿔만큼도 없었다.
"너 이상으로 책임감 출중한 장 성이 우리 북부군에 있을 것 같나?
그런 인재를 굳이 강등시킬 필요는 없지."
괜히 내가 오스카를 최측근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래 사람이란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변명하곤 한다. 하물며 가진 것이 많고, 높은 위치에 자리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리고 오스카는 후작위를 가진 제국의 중앙귀족이자, 북부군의 선 임 군단장의 직책을 지닌 인물이었다.
명백한 제국의 고위 귀족이자 군 관.
헌데 그는 깔끔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사죄하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까지 바라고 있다.
역시나 내 측근에 걸맞은, 참된 인성을 가진 위인인 것이다.
그런 그를 굳이 처벌해야 하는 이유? 없다.
"스스로 반성하는 유능한 인물에게는 처벌이란 것이 필요 없으니까."
더해 그는 내 측근.
단 한번의 실수로 책임을 묻기 에는 그동안 해줬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았다.
허나 오스카 그 본인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일까.
"한지훈. 그래서는…."
계속해 본인의 처벌을 재촉하는 오스카.
나는 그의 말을 뚝 잘라버렸다.
"그만. 오스카, 나는 네게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이번 일은 이만 묻어두지. 그리고…."
잠시 한숨 쉬고, 이어 말한다.
"사실 네 조언은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어. 그 누가 들어도 합리적 인제안이었지. 나는 그걸 따른 것 뿐이야."
그렇다. 사실 오스카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다.
청야전술을 펼치며 도시에서 퇴 각한 자치령군.
도시에 적이 관측되지 않았으니 , 방치되어 있는 대로를 따라 빠르게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합리적인 제안이었고,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따랐다.
만약 적이 평범한 이들이었다면 이번처럼 함정에 빠지는 일 따위없었을 터다.
다만 적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잘못된 건너가 아니라 적, 연 방놈들이야. 오스카."
설마 그 누가 알았을까.
청야전술이 단순 기만책이고, 사실은 자국의 민간인들과 함께 우리 제국군을 소멸시키려 했음을.
"적은 잔혹하고 악랄하며 비열하다. 도시와 자국민까지 희생시켜가 며 우리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 히려 했지."
자국의 도시를 파괴하고, 민간인들을 불구덩이에 처넣으면서까지 이기려고 하다니.
너무나도 비이성적이다.
나나 오스카가 적의 함정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러니 나는 너를 탓하지도 않 을거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비열한 적을 상대하고 있는 와중이다. 믿음 직한 군관은 한명이라도 더 필요하 지."
"한지훈."
"그만. 더 이상 말하기도 지겹군. 이만 자리로 복귀해서 후처리 작업이나 하게. 백날 말해봤자 나는 처벌하지 않을거니까."
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잠시 우 묵한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오스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 섰다.
"… 고맙네. 나를 신뢰해줘서."
펄럭.
나직이 한마디를 남기고 막사에서 떠나간 오스카.
나는 그가 나간 막사 출입구 쪽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하여간. 참 양심적인 놈이야."
오스카의 책임감이 출중하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스스로 본인을 처벌해달라고 올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잠시 미소 짓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작게 중얼거려본다.
"그나저나. 도시와 민간인을 희생 하려 하다니 연방놈들, 제대로 미쳤 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놈 들의 행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하는 와중 문득 떠올랐다.
"… 이런 지휘 스타일. 기억에 있는데 ."
아군과 민간인의 손해에 전혀 개 의치 않고, 오직 단 한명의 적이라 도 더 많이 죽이려 하던 군관.
딱한 명 기억나는 인물이 있다.
작게 어떤 인물의 이름을 되뇌어 본다.
"기플랫 랜드바론."
쯧 혀를 차며 이어 읊조렸다.
"만약 놈이 지금 연방 자치령군을 지휘하고 있다면. 이거 참, 상당히 귀찮게 됐는데 ."
"각하! 보고드립니다."
기플랫의 휘하 참모중 하나가 척 경례하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있는 상관, 기플렛에게 보고했다.
"란트베이안의 전투. 대패로 끝났습니다. 아군의 전투마법단인 데필 루나가 전멸했으며, 단장인 다니안 또한 현장에서 전사했습니다. 제국 군의 손실은 미미합니다."
그가 보고하는 내용은 다름 아닌 패전보고.
허나 보고하는 참모의 얼굴은 전혀 그늘짐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범한 패배도 아니었다. 대패였다.
이번 전투에서 연방과 자치령측 은 하나의 도시를 통째로 소각하게 되었으며, 더해 삼백에 달하는 전투 마법사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늘짐 하나 없이 당당 하게 보고해오는 참모의 태도란.
너무나도 이상한 모습.
허나 더더욱 이상한 것은 보고를 받는 기플랫의 태도였다.
"음. 그렇군."
그는 고개를 끄덕여 단숨에 수긍했다.
마치 이쪽의 손실 따위 제 알 바 아니라는 듯이.
그가 이어 읊조린다.
"제국군 놈들. 내 예상보다도 더욱 지능적인 것인가. 이쪽의 함정에서 살아나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 군의 전투마법사들을 모조리 찾아 내 처치하다니 말이야. 흥미롭 군…."
기플랫은 본디 이런 인물이었다.
그는 아군의 피해가 얼마나 심대 하던, 그 피해를 결코 헤아리지 않는다.
중요시 여기는 것은 단 하나.
얼마나 적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 는가.
그가 휘하 참모들에게 묻는다.
"참모장. 동원 가능한 전투마법사 들이 몇이나 남아있지?"
"약 이백 명 정도입니다. 각하."
"최소한의 화력은 있군. 마법전력 으로 거는 승부는 상대가 안된다는 것이 이번 전투로 밝혀졌다.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겠지."
기플랫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아래에는 아직 팔만에 달하는 자치령 병사들이, 그리고 이끌고 온 수천의 기사들이, 더해 이백의 전투마법사들이 있다.
그는 애당초 전쟁의 승리를 바라 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국군 의 진군을 얼마나 지연시킬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수의 적을 처치할 수 있느냐 뿐.
그가 지시했다.
"모든 병력을 수도에 집중시켜 라."
"각하. 그 말씀은."
"수도를 제외한 나머지 거점과 도시 모두를 포기하는 거다."
기플랫은 모든 전력을 한군데에 모아, 제국군에게 대항할 생각을 한다.
전력의 집중. 그것도 무려 팔만 이 넘는 수의 병력이다.
이 정도의 병력을 한군데 모은다 면, 제국군과 어느 정도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있을 터.
물론 그의 지시는 이것에서 멈추 지 않았다.
기플랫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민간인들을 징집해라."
"징집이라면 어느 정도의 수를 징집합니까? 각하."
참모의 되물음에, 기플랫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징집 수는… 무제한이다. 닥치는 대로 모든 인간을 징집해라.
"애도, 어른도, 노인도, 여자도 가리지 말 고."
말 그대로 무제한적인 징집이었다.
참모가 표정을 찌푸린다.
"… 무차별 무제한 징집이라. 그 정도의 인원을 징집한다면, 실질적인 전투력이 될지는 둘째 치고… 그들에게 보급할 식량과 장비조차 없게 됩니다만."
"장비 따위는 필요 없다."
클클클, 웃으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는 기플랫.
그가 질척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어 말한다.
"어차피 고기방패로 쓰고 버릴 생각이니까. 굳이 장비를 보급하고 식량을 배식할 필요는 없지. 얼마 못 가죽어버릴 소모품들에 불과하 니."
기플랫은 민간인들을 징집해 소모시키려 한다.
참모들이 입을 다물고, 반대로 본래 자치령을 다스렸을 행정관들은 경악해 입을 크게 벌렸다.
허나 행정관들은 차마 반대 의견을 낼 수는 없었다.
기플랫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잔 혹한 인물인지 이미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만약 이자리에서 반대 의견을 낸다면, 당장 자신의 목이 잘릴 것 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회의실에 무거운 적막이 내리깔 리고, 기플랫이 이어 읊조린다.
"화력으로 당해낼 수 없다면 소모전이지. 그리고 이곳은 연방의 땅. 모든 자원을 동원해 놈들을 최대한 소모시킨다면, 녀석들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힐 수 있을거다."
그는 자치령의 모든 것을 동원해 제국군과 상대할 심산이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었다.
재화와 자원, 물자, 도시, 그리고 군인과 민간인들의 목숨까지.
이 땅 위에 있는 그 어떠한 것이 던 끌어다 써 소모시키고자 한다.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적에게 더 많은 손실을 입히기 위해.
"제국군 놈들. 이번에는 어쩔 도 리가 없겠지."
기플랫은 그리 자신했다.
제국군이 북상해가고 있는 연방 자치령 내. 무제한 동원령이 실행되었다.
대량의 민간인들이 징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