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적의 기사가 돌진해옵니다!"
데필루나의 마법사가 절규했다. 그들이 마법을 발현한다. 다양한 종류의 화속성 마법이 돌진해오는 기사들의 선두를 향해 쇄도했다.
어떤 것은 폭렬구. 어떤 것은 불 화살. 어떤 것을 불길. 놈들의 전진을 저지하기 위해 쏟아져 내려간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놈이 너무 재빠릅니다!"
적 기사들의 최선두. 적을 이끄는 인물이 너무나도 대단했기 때문에.
폭렬구가 쏟아져 내렸지만 모조리 회피해버렸다. 불화살이 쏟아지 자 튕겨내버렸다. 불길이 진로를 가로막자 장검의 강렬한 풍압으로 지 워버렸다.
데필루나의 단장, 다니안은 경악 한눈으로 적 기사의 선두를 바라 보았다.
'미쳤군.'
그의 암청색 눈동자가 이쪽으로 돌진해오는 제국군 기사들의 최선 두를 향한다.
한 청년이 수천의 기사들을 이끌 고 있었다.
그의 기마 능력은 너무나도 탁월했다. 무려 수백이 발현한 일제공격 마법이다. 헌데 그것을 모조리 회피 하거나 파훼해가며 거침없이 돌진 해오고 있었으니 .
다니안은 직감했다.
'놈이 한지훈인가.'
다니안은 전형적인 마법사였다. 전투가 없는 평상시에는 그저 마탑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마법의 수양에 집중하던, 자연히 평범한 소문에 무지한 자.
헌데 그런 그조차 들어본 적이 있을 만큼, 제국군에는 위대한 대장 군이 하나 있었다.
제국 북부 야전군의 사령관. 한지훈 라이젠.
승리가 불가능한 전장에서, 강대 한 무력과 드높은 군략으로 기적적인 승리를 쟁취했다고 하는 ,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자.
그리고 다니안의 시야에 비치는 적 기사의 최선두 인물 또한 검은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다니안은 적의 기사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 예의 한지훈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듣던 대로 괴물 같은 능력이다.'
발현하는 모든 마법을 회피하고 돌파하는 인물이다. 다른 기사였다 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
으드득. 그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포기할 순 없다.'
아주 조금의 시간만 지연시키면 데필루나가 이번 전투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다니안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지시했다.
"기사에게 포격을 퍼부어라! 놈 의 진로를 가로막아!"
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이자리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말이다.
물론 헛된 희망이었다.
한지훈이 이끄는 수천의 기사들 이 돌진해온다.
말을 타고 달린다. 나는 고개 돌려 시야에 떠오른 홀로그램의 문구 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집중'은 내 사고를 가속시켜 체 감시간을 느리게 만들어주는 스킬, '전투분석'은 전장의 다양한 정보를 내 뇌가 연산해 적의 움직임과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스킬이다.
덕분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죽일 수 있다.'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본다.
여전히 적의 저항은 완강했다.
이쪽으로 쇄도해오는 다양한 공격마법의 세례들. 어떤 것은 폭발형 이었고, 어떤 것은 탄막형이었으며, 어떤 것은 광역형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화속성 마법이 이쪽으로 짓쳐든다. 일반적인 보병대 나 기병이었다면, 노출되는 순간 즉 사할 만한 공격마법들.
그 모든 것들을 파훼하고 회피했다.
검날을 휘둘러 적의 불화살 세례 를 쳐냈다. 고삐를 당겨 폭렬구를 회피했다. 대로를 따라 일렁이는 불 길은 풍압으로 밀어내버렸다.
적의 저항을 파훼하며 계속해 나 아간다.
하지만, 내 휘하의 모든 기사들 이 나처럼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쾅!
"크아아아악!"
"편대장! 전투 불능!"
"차석에게 전대 지휘권을 이양합니다!"
"가! 앞으로 가!"
폭렬구가 터져나와 강렬한 폭음을 울렸다. 직후 운 없이 맞아 나 가떨어지는 아군의 기사 편대장 녀석. 재빨리 차석이 지휘권을 꿰차고 휘하 병력을 전진시킨다.
퍼퍼퍼퍼퍽!
"전대장이 낙마했습니다!"
"차석! 차석까지 당했다!"
"제기랄…! 차차석이 지휘권을 이양…."
"지휘 권한을 따지는 건 나중이 다! 일단 앞으로 돌진해!"
"아아아악!"
마치 비처럼, 붉은색 궤적 무리 가 쇄도해온다. 다수의 기사들이 당 해 우르르 쓰러지고, 혼란에 빠져 아우성쳤다.
이번 마법공격으로 전대장과 그 부관이 동시에 낙마. 그에 기사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그들은 지휘권조 차 채 추스르지 못하고 앞으로 나 아갔다.
나는 앞을 노려봤다.
'개 같은 마법사 새끼들.'
전투마법사. 일반 병사들에게도 , 심지어 고위 병종인 기사들에게도 상대하기 난해한 적이 아닐 수 없다.
막대한 화력 공격은 대규모 군대 를 갈아버리기에도 충분하니, 피해 가속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
허나 나름 다행이었다.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아.'
후욱. 뜨거운 숨을 내쉰다.
아군 기사들 중 낙마하거나 전련 이외 판정을 받은 기사들은 약 백 여 명 가량. 많은 수였지만, 적의 전투마법사들의 수가 무려 삼백에 달한다는 걸 생각해볼 때 확실히 예정보다 적은 전력손실이었다.
그이유는.
"적의 폭렬구 마법! 다시 선두로 쇄도합니다!"
"한지훈 사령관 각하! 조심하십 시오!"
적의 거의 모든 화력이, 내게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놈들의 목적은 적의 전멸이 아닌 단순한 접근의 저지이기에, 가장 앞에서 나아가는 내게 제일 많은 화력을 쏟아내는 것이다.
콰콰콰콰쾅!
쏟아지는 폭렬구의 무리. 대지를 울리고, 고막을 두드리는 폭발의 충격파들. 시야를 훅 가리는 모래먼지 기둥.
그 모든 것을 꿰뚫고, 회피했다. 나는 바쁘게 고삐를 놀린다. 전투마 가 성실히 따라준다. 희미한 빈틈과 화력의 공백지대를 파고든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수의 공격마 법을 피하고, 얼마나 강력한 화력을 얻어맞으며 전진했을까.
나는 마침내.
"도착했다."
가장 먼저 석제건물의 입구에 도 달했다.
다그닥, 다그닥.
전투마가 서행하고, 나는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철그럭. 기사용 철 제 군화가 바닥에 맞닿는다. 쇳소리 가 울렸다.
나는 장검에 일렁이는 오러의 세기를 더욱 돋웠다.
화르르르륵!
타오르는 청색 불꽃. 보다 격렬 하게 타오르는 오러의 광휘.
나직이 읊조렸다.
"다 뒈졌다."
나를 고생시킨 적의 마법사 새끼 들. 단 한명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 이다.
콰앙!
나는 석제 건물의 입구를 발로 걷어찼다. 목제 문짝이 나가 떨어져 가며 내부를 드러냈다. 기다란 나선 형 계단이 자리해있다.
이어 말했다.
"이 건물 꼭대기에 적 마법사들 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적 마법사들을 모조리 죽이면, 이번 전투가 끝 난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석제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휘하 기사들이 뒤따 른다.
나는 지시했다.
"무장 잘 확인해. 이제 마법사들 과 전투할거다."
곧 놈들을 숙청할 수 있다.
콰앙!
열리는 석제건물의 입구. 한지훈 이 진입하고, 베르겐과 다른 기사들 또한 빠르게 전투마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진입해갔다.
철그럭, 철그럭.
그가 앞장서 계단을 타고 오르고 휘하 기사들이 뒤따른다.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계단을 따라 전진해갔다.
그 와중. 베르겐은 앞서 나아가는 인물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대단하구나. 한지훈."
한지훈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번 전투에서 보였던 그의 모습 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절정에 달한 기마술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적의 공격마법을 회피해 버렸다. 압도적인 동체시력과 강력 한 무력을 발휘하여 적의 화망을 파훼하고, 빈틈을 만들어 돌파해버 린다.
무려 삼백에 달하는 마법사들의 화력이 그에게 집중되었음에도. 굴 하지 않고 전진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적이 있는 장소. 이 커다란 석제건물에 도착했다.
베르겐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삼백의 전투마법사 화력이 집중 되었음에도 이토록 피해가 미미하다니.'
모두 한지훈이 최선두에서 적의 공격을 파훼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는 가장 앞에서 기사들을 선도했다. 쏟아지는 적의 화망을 파훼하고, 돌파하며.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 덕분에 대다수 기사들은 그리 많은 저항을 받지 않고 뒤따라 올 수 있었으니 .
베르겐은 재차 확신했다.
'한지훈과 함께 한다면 패배는 없다.'
이미 수도 없이 그의 활약을 지켜봐온 베르겐이다. 그렇기에 새삼 스럽게 경악하지는 않았다.
다만. 언제나처럼 감탄하고 의지 할 뿐.
철그럭, 철그럭.
한지훈과 기사들이 계단을 타고 오른다.
"다니안 님! 놈들이 이곳 상층부 로 접근 중입니다!"
데필루나의 마법사가 그리 외쳤다. 그에 다니안은 으득 이를 갈며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렸다.
"개 같은…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적의 기사들이 계단을 타고 건물 위로 올라오고 있다. 다니안이 시선을 돌려 문가를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어떤 소음이 울려오고 있었다.
철그럭, 철컥, 철그럭.
쇠가 마찰하는 소리. 이곳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의 전신갑주에서 비롯된 소음이었다.
다니안은 최후를 직감했다.
'이길 수 없다.'
마법사와 기사. 둘은 서로에게 치명적이었다.
장거리에서, 기사는 마법사에게 이길 수 없다. 나름의 방호력을 지 니고 있지만 마법사의 원거리 화력 이 원체 대단하기에 먼 거리라면 마법사 측이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는 것이다.
반면 근거리에서 마법사는 기사 에게 절대 이길 수 없다. 강력한 돌파력과 오러로 강화된 전신갑주 때문에, 일단 서로가 근거리에 도달 하게 된다면 기사가 압도적인 우위 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기사들은 마침내 근거리까지 접근했다. 당장 저들이 계단을 타고, 건물 최상층인 이곳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말 그대로 검으로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 이다.
그렇기에 다니안은 고뇌했고.
곧 결심했다.
'탈출해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고 말이다.
어차피 기사들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 불의 장막 마법 또한 완전히 발동되지 못했다. 즉 남은 선택지는 도주뿐.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할 지언정, 목숨이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다니안이 지시한다.
"불의 장막 마법을 취소하고, 도 약 마법을 준비하라. 이곳에서 빠져 나가겠다."
도주하라고 말이다.
허나 그의 지시는 너무나도 늦었다.
철컥, 철컥!
문고리가 비틀리며 울리는 쇳소 리. 물론 문은 잠겨있다.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은 제국의 기사들이었고. 그들은 오러 를 다루었으니 .
이까짓 조잡한 목제 문짝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 만무.
콰앙!
굉음과 함께 푸른색 궤적이 번뜩 이고, 문이 박살아 튕겨져 나갔다. 전신갑주를 장비하고 있는 일단의 인영들이 방안으로 우르르 진입해 온다.
"제기랄."
다니안이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가장 선두에 자리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아까 창밖으로 보였던 인물이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인물. 그가 검날을 이쪽으로 향하며 고했다.
"뒈질 준비 됐나? 개 같은 마법사 새끼들아."
한지훈이 마침내 마법사들의 바로 코앞까지 당도했다.
그가 검을 휘두른다.
퍼억!
붉은색 핏물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