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내게 마나 를 공조하라."
제피르가 스태프를 드높이 치켜 들었다.
쿠르르르르….
그의 스태프 끝에서 푸른색 광휘 가 일렁였다.
그러자 들려오는 마나의 울음소리. 직후 허공에 떠오르는 붉은색 마법진.
제피르가 이어 말한다.
"타격점을 조율하겠다. 발현하는 마법은 폭렬폭풍 5중첩. 준비!"
석제건물을 모조리 부수라는 명령.
사실, 합당치 않은 지시였다.
당장 불의 장막이 덮쳐오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다. 헌데 별다른 이유 도 밝히지 않고 대뜸 건물을 파괴 해버리라니.
다른 마법사들이라면 그의 지시 를 곧바로 수긍하지 않았을 터다.
의문을 가지고 행동을 주저할 뿐.
허나 제피르는 한지훈의 지시에 일말의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다.
'애송이,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겠지.'
그는 한지훈이라는 인물을 신뢰 하니까.
한지훈의 승리를 언제나 옆에서 지켜보았던 제피르이니, 한지훈의 지시를 의심할 이유가 없다.
번쩍!
폭렬폭풍 마법 5중첩이 완성되었다. 그러자 허공에 떠오른 중형 규모의 마법진.
평소처럼 100중첩에 달하는 광역 마법이 아닌지라 발현의 준비는 금방이었다.
화륵, 화르르륵!
수십여 개의 수정구가 허공에 떠오른다.
제피르는 주저하지 않고 스태프 를 내려 그었다.
"발현."
붉은색 궤적 수십 개가 떨어져 내린다.
직후.
콰콰콰콰콰쾅!
저 멀리 꼿꼿하게 서있던 석제 첨탑. 연속된 폭발에 휘말려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제피르가 재차 지시한다.
"다시 폭렬폭풍이다. 다음 목표는 저기 보이는 석제종탑. 내게 마나를 공조하라."
쿠르르르르….
마나의 잔광이 다시금 피어오른다.
제피르가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을 통솔해, 시야에 보이는 석제건물들을 하나둘 파괴해갔다.
"적이 파괴 마법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데필루나의 한 전투마법사가 그리 외쳤다.
그에 커다란 방의 중앙에서, 가만히 마법을 조율 중이던 다니안이 나직이 대답했다.
"이쪽의 위치가 특정되었나?"
"아닙니다! 마구잡이로 주변의 건물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발악인가. 순순히 죽는 것이 편할 터인데, 제피르."
쯧 혀를 차는 다니안.
그가 표정을 찌푸리고, 휘하 마법사가 이어 보고했다.
"제국놈들이 석제건물을 무작위 로 파괴 중입니다."
"석제건물을?"
"그렇습니다, 단장님."
부하의 말에, 다니아는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이 커다란 방의 벽면 창가로 다 가가는 다니안.
그가 커텐을 열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높다란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시야가 자리 해있다.
그리고 시야 한켠에 보이는 것.
다름 아닌 건물이 파괴되고 있는 광경이었다.
콰르르르르릉….
굉음과 함께, 저 멀리 자리해 있던 석제 종탑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떨어지는 파편 무더기들이 지면을 두들긴다.
이후 훅 올라오는 모래먼지.
다니안이 눈가를 찌푸리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머리좀 굴렸군, 제피르."
제피르는 휘하의 전투마법사들을 운용, 도시에 남아있는 석제건물들을 파괴해가고 있다.
아마 적은 간파해 냈으리라.
불의 장막 마법을 시전할 만한 장소가, 이런 석제 고층 건물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제피르는 석제건물들을 차례로 파괴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 데필루나 마법단을 찾아 몰살시키기 위해.
콰르르르르릉재차 굉음이 들려온다. 다니안은 고막을 두들기는 소음을 애써 무시 하며 이어 읊조렸다.
"… 아니, 제피르의 생각은 아니다. 놈은 마법에 필요한 단순 연산 능력에선 천재였지만 논리와 사고 능력은 영 아니었으니 ."
그가 알고 있는 제피르라는 인물 은 퍽 단순했다.
막대한 연산력과 방대한 마나량을 십분 활용, 눈앞의 적을 말살하고 유린하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이.
그것이 제피르라는 인물이다.
헌데 그런 그가, 나름의 추리와 사고과정을 거쳐 이쪽의 위치를 추측한다?
그럴 리 없다.
때문에 다니안은 확신했다.
"적 지휘관 중 꽤나 머리가 돌아 가는 인물이 있나보군."
누군가 현명한 인물이 이쪽의 위치를 특정해 제피르에게 지시했으 리라.
"뭐, 누가 간파했는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상황이 반전되었다.
제국군은 그들 데필루나 전투마 법단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 석제건물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하여 활발하게 파괴공작을 진행 중에 있으니 .
콰르르르르르….
다시금 우렁찬 굉음이 다니안의 고막을 울린다.
직후 보이는 것은, 저 멀리 우뚝 서 있던 석제건물이 폭삭 무너지는 모습.
다니안의 얼굴에 점차 초조의 기 색이 올라온다.
그가 읊조렸?
"… 들키는 건 시간문제인가."
제국놈들이 저토록 활발하게 석제건물을 부숴간다면 언젠가 그들 이 있는 장소가 특정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자리를 버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 야 할 터였다.
그래야만이 적에게 추적당하지 않을 터이니.
헌데 그럴 수는 없었다.
"이 건물을, 불의 장막 마법진을 지켜야 한다."
다니안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내려, 자신의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단단한 석제로 이루어진 바닥.
그곳에는 붉은색 마법진이 선명 하게 그려져 있었다.
불의 장막 마법진이었다.
이것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제국놈들을 이곳 도시에서 불살라 소거할 수 있으니 .
다니안이 지시했다.
"방호마법과 공격마법을 준비해 두어라. 남은 시간은 약 20분. 20분만 이 건물을 방어한다면, 제국놈 들을 모조리 불태워 죽일 수 있다."
그들이 방어전을 준비한다.
* * *
수십에 달하는 폭렬구가 하늘에서 떨어져내린다. 붉은색 궤적들이 시야를 가로지르고, 직후.
콰콰콰콰쾅!
다수의 폭발이 석제건물의 벽면을 두들겼다. 폭음이 고막을 울린다. 충격파에 공기가 진동한다.
쿠르르르르….
이후 힘없게 무너져 내리는 드높 은 석제건물.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인가."
제피르가 계속해 석제건물들을 부숴가고 있다.
벌서 파괴한 건물의 수는 거의 삼십에 근접해있다.
시야에 보이는 석제건물 중 대략 절반가량을 부숴버린 것이다.
헌데 아직도 적의 마법사들은 둥 장하지 않았다.
"염병할."
슬슬 초조해진다.
적 마법사들이 고층 석제건물에 있을 것이란 내 추측, 사실 그리 신빙성 있는 추측은 아니었다.
만약, 적 마법사들이 모종의 방법으로 시야를 확보했다면.
만약, 적 마법사들의 모종의 방법으로 도시 밖에서 마법을 발현했 다면.
지금 나와 제피르가 하고 있는 짓은 단순한 뻘짓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적이 반드시 석제 건물에 있으리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피르! 남쪽방향은 이제 되었 어! 다음은 서쪽이다!"
나는 제피르를 독려해 계속해 건물을 파괴해갔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
석제건물 외에 짚이는 적의 거점 이 없었기에.
때문에, 나는 마치 뽑기를 하는 심정으로 석제건물을 부숴간다.
콰르르르르릉!
삼십 번째 석제건물이 파괴되어 무너져 내린다.
이제 남아있는 건물은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상황.
나는 고개를 돌려, 시야 한켠에 떠올라있는 홀로그램을 확인해보았다.
[엑스트라 퀘스트]
[도시 어딘가에 있을 적의 전투 마법사들을 처치하라.]
[남은 시간 : 11: 06]
시간이 촉박하다.
"제기랄…."
욕지거리가 흘러나온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은 분투했다.
그들은 계속해 중규모 폭렬폭풍 마법을 운용해, 쉼 없이 마법을 갈 겨댔다. 삼십에 달하는 건물을 파괴 해버렸다.
하지만 남아있는 시간은 고작 10여분.
그리고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은, 나머지 모든 건물을 파괴해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모자 란 시간이다.
도중에 놈들의 건물을 찾을 수 있길 바랄 수밖에.
시선을 돌려, 도시의 외곽 방향을 바라본다.
화르르르르르!
거대한 불의 장막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들이 무수히 많은 건물을 집어 삼키고, 모든 사물을 불태우 며. 이쪽으로 쇄도해온다.
이제 10분 뒤에는. 우리 제국군 이 저 불길 속에 파묻혀버릴 터.
"아직인가."
철그럭. 오른쪽 허리에 패용한 장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일단 적 마법사들의 위치만 특정 한다면, 전투마법사들의 엄호와 기사단을 운용해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적의 위치가 도통 파악되지 않으니 .
내가 초조한 기색에 계속 장검의 손잡이를 매만지고 있을 때였다.
터어어엉!
이색적인 소음이 울렸다. 그에 나는 초조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작게 읊조려본다.
"방금 전 굉음. 분명 방호마법에 공격마법이 튕겨져 나가는 소음이 었는데 ."
익숙한 소음이었다.
제피르를 비롯한 여러 전투마법사들이, 적의 방벽에 공격마법을 꼬라박았을 때 울렸던 소음.
나는 방금 전 소음이 울렸던 장소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확인할 수 있었다.
"방벽."
어떤 높다란 석제건물이다.
그리고 그 석제건물 주위에, 푸른색 방벽이 만들어져 환한 빛을 일렁이고 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방호벽. 그것 이제피르의 폭렬폭풍을 튕겨냈던 것이다.
"허."
나는 긴장을 풀고,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초조했던 기색이 순식간에 사그라져간다.
그리고 그 공백을 채워가는 것은 마침내 적을 찾아냈다는 안도. 그리고 놈들을 이제 죽여버릴 수 있다는 환희.
스르릉.
장검을 뽑아들고, 수정구를 쥐어 들었다.
통신을 연결한다.
"제피르. 저 석제건물에 마법사가 있는 것. 확실해 보이지?"
통신을 시도하는 것은 제피르.
나는 그에게 지시하고, 곧 대답 이 들려온다.
- 그래. 저런 고위 방호마법까지 운용해가며 저 건물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으니 .
"수고했다. 하지만 조금 더 수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
- 빌어먹을. 끝도 없이 부려먹는 군.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제피르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그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30분 내내, 아주 잠깐조차 쉬지 않고 계속 건물을 부숴댔으니까.
제국 전투마법단들 중 가장 정예 인 라브리에가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그들을 분투했고, 결국 적의 위치마저 찾아내게 되었으니 .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쉬기엔 이르다.
"큰 거 한방만 날린 뒤 푹 쉬면 된다, 제피르."
아직도 그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그러자 제피르가 피로에 절은 목소리로, 한편으로는 미약한 기쁨이 스며들어 있는 음성으로.
픽 웃으며 말해온다.
- 그래. 큰거 한방이라. 폭렬폭풍 100중첩 한번 갈겨주지. 그 정도라 면 저 엿 같은 방호마법쯤이야 부 숴버릴 수 있을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제피르, 폭렬폭풍 마법을 발현해 적의 방호벽을 걷어내줘."
이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나는 기사들을 이끌고 저 석제 건물로 돌진하지."
제피르는 마법사들을 운용해, 저 염병할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방호 벽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나는 기사들을 이끌고 전진. 건물 내부에 있을 적의 마법사 들을 제압하고 청소한다.
그렇다면 놈들이 운용하고 있는 불의 장막 마법이 파훼될 것이고.
우리 북부군은 살아서 이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사령관 놈의 명령을 들었겠지? 폭렬폭풍 마법 100중첩이다. 내게 마나를 공 조해라. 마지막 마법이다. 실수하지 말도록.
제피르가 휘하 라브리에 전투마 법단의 마법사들을 통솔하고 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통신을 끊고는, 새로운 인물에게 회선을 연결했다.
- 한지훈. 상황은 대충 전파 받았네. 드디어 적 마법사 놈들을 찾아내었군.
새로이 통신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베르겐이었다.
나를 대리해 북부군의 모든 기사 들을 통솔하고 있는 이.
나는 그에게 지시한다.
"베르겐. 모든 기사들을 돌격 준비시켜. 내가 선두에서 기사들을 이 끌지."
- 알았네. 한지훈.
말을 마친 직후.
철그럭, 철컥.
나는 전투마 위에 올라탔다.
방금 전보다도 훨씬 높아진 시야. 덕분에 적이 있을 석제건물이 더욱 잘 보인다.
철컹!
투구의 바이저를 닫고는 이어 말했다.
"제피르가 폭렬폭풍 마법을 갈겨 버리는 그 즉시, 돌진해 놈들을 쓸 어버린다."
데필루나 전투마법사들의 목을 베는 게 빠를까, 아니면 우리 북부 군이 불의 장벽에 불태워지는 게 빠를까?
곧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번쩍!
드높은 하늘 위, 제피르가 발현 한 폭렬폭풍 마법진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