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적의 공격마법이 발동되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 이 흔들렸다. 공기가 진동한다. 웅 혼한 마나의 파동이 도시 전역을 뒤흔들어갔다.
그리고 직후.
번쩍!
거대한 광역 마법진이 드높은 하늘 위로 떠오른다.
떠오른 마법진의 색은,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그것처럼 선명한 붉은색.
화 속성이었다.
직후.
- 저놈들, 자네 말대로 미리 함 정을 파뒀군. 연방 놈들은 도시를 소각시키는 척 위장해놓고, 미리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마법진을 축성 해놨다.
통신구에서 제피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단언했다.
- 저 마법진은… 불의 장막 마법 이로군. 어째서인지 익숙한데.
"불의 장막…."
이전 시나리오에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던 마법이다.
일정한 영역 전체를 가두고, 천천히 불살라가는 광역 마법.
물론 그 마법을 특기로 사용하는 전투마법단 또한 알고 있다.
'데필루나 전투마법단.'
크루거 연방의 엘리트 전투마법 단 '데필루나'.
같은 화 속성 마법을 주로 운용 하지만, 파괴와 전선붕괴에 강점을 지닌 라브리에와 달리 봉쇄와 압박에 강점을 가진 이들.
성가신 상대를 만났다.
쯧. 절로 혀가 차진다.
'정면 대결일 때라면, 아군인 라 브리에가 압도적 우위를 점했을 터 이지만….'
하지만 지금은 정면대결 상황이 아니다.
미리 숨죽여 함정을 파놓은 데필 루나. 그리고 그 함정에 제대로 걸 려버린 우리 제국군.
이쪽의 승산은 결코 높지 않다.
나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붉은색 마법진이 점차 중첩되어 가고 있다.
5중첩, 10중첩. 이윽고 100중첩을 넘어, 300중첩까지.
적의 마법사 전력은 최소한 300이라 보는 게 타당 할 터.
그렇게 내가 하늘 드높이 떠오른 적의 마법진을 주시하고 있을 때.
- 곧 도시 전체가 불길 속에 가 두어 질 거다.
제피르의 말이 통신 수정구에서 들려오고.
화르르르륵!
도시 전체를 아우르듯, 건물 너머 저 멀리서부터 커다란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불로 만들어진 성벽을 보는 듯하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 저거대한 불길이 점차 이쪽으로 접근해 올거다. 우리를 도시에 가두고 천천히 불살라버리려 하고 있어. 악취미인 놈들이로군.
"그래서. 제피르, 해결 방법은?"
제피르는 화 속성 마법의 전문가다. 그런 그라면 나름의 파훼법을 알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
다행히도, 그는 알고 있었다.
- 일단 발동된 마법을 막을 길은 없다. 마법을 해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 이 도시 어딘가에서 마법을 시전 중인 적의 전투마법사들을 찾아내 모조리 죽여야 한다.
다만 그 파훼법이란 것이 턱없이 난해하고 실현가능성 없는 것이었 지만 말이다.
이 드넓은 도시, 란트베이안의 어딘가에 숨어서 마법을 발현하고 있는 데필루나의 전투마법사들.
그들을 모조리 찾아내 죽여야 한다니.
- 불길이 이곳까지 덮치기 전까지 놈들을 죽여야 한다. 남은 시간 은… 대략 30분 정도로군.
그것도 촉박한 시간 제한까지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나는 다시금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우리군은 함정에 빠졌다.
상황은 절망적. 고작 30분 안에 적 마법사들을 전부 처치하지 않으 면, 몰살당하는 건 이쪽이 될 것이다.
화르르르륵.
불길이 점차 이곳 도시 중앙으로 밀어닥쳐온다.
나는 고개돌려 주변의 모습을. 정확히는 내 휘하 병력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사령관 각하! 저희는 어찌해 야…."
"혼란을 추슬러라! 이쪽에도 전투마법사들이 있다!"
"대열 갖춰! 군기를 지켜라!"
"당황하지 마!"
병사들이, 심지어 애써 그들을 나무라며 추스르고 있는 장교와 참 모들의 얼굴에까지 당황과 혼란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불길이 이곳으로 밀어닥 치고 있으니 .
제아무리 내 북부군이 제국군 최고의 정예군이라 한들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욱.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제국 북부 야전군.'
이 도시, 란트베이안에는 30만이 넘는 휘하 병력이 있다.
나를 믿고 이자리까지 따라왔으 며, 나아가 중부대륙까지 가 엘프를 구원할 부하들이다.
그런 내부하들을 이자리에서 잃어 버릴 수는 없다.
'살려야 한다.'
녀석들을 살려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시나리오 외 이벤트 감지!]
[엑스트라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엑스트라 퀘스트]
[도시 어딘가에 있을 적의 전투 마법사들을 처치하라.]
[남은 시간 : 30: 00]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지체하지 않고 나직이 읊조렸다.
"전투지휘술 활성화."
나는 휘하 병력을 살려내기 위해 발악한다.
- 띠링!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 * *
"마법의 발동은 성공적이다."
도시 란트베이안. 그곳 어딘가에 있을 한 커다란 방안.
그곳에서 한 노인의 묵직한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제국 원정군 놈들을 모조리 도시 안쪽에 가두어버렸다. 그리 머지 않아 놈들은 우리의 대마법, '불의 장막'에 휘말려 잿더미로 변하겠지. 이 도시와 함께 말이다."
말을 잇던 노인이 로브의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그의 얼굴.
노인의 뺨에는 붉은색 문신이 커 나랗게 새겨져 있었다.
"제국놈들을 모조리 불태워 죽여 버려라. 그리하여 연방의 위명을, 그리고 우리 데필루나의 명성을 드 높여라, 나의 제자들이여."
노인의 정체는 다니안. 연방의 엘리트 전투마법단의 단장인 인물 이었다.
다니안이 작게 말을 잇는다.
"제피르놈. 그동안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내 직접 확인해주지."
아무래도 그는 제피르와 안면이 있는 듯했다.
연방의 전투마법사들이 제국군을 몰아친다.
* * *
- 띠링!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그러자 직후 떠오르는, 그동안 수도 없이 보 아왔던 홀로그램.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 활성화 문구와, 그와 함께 떠오르는 전술창 미니맵과 병력 현 황창까지.
뒤이어 대량의 정보들 또한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이 느껴지고, 인식되었다.
열기로 후텁지근하게 달궈진 공기.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연기. 비명 지르고 절망하는 난민들. 그리고 혼란에 빠진 병사들과, 이 드넓은 도시의 대략적인 지형까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인식과 감각이 전장 전역으로 드넓게 뻗어나간다.
군단 전투지휘술 스킬의 효과.
평소였다면 그저 지휘술 스킬을 활성화 하는 것만으로도 적을 압도 할 수 있었을 터다.
나도 군을 다루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족해.'
적의 위치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군을 움직일 수 없다.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있을 전투 마법사 놈들, 어떻게 찾아낼 것인 가.
사실 방법이야 뻔했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치열하게 생각한다.
내 능력을, 집중력을, 그리고 사고와 직감까지. 내 잠재능력을 한계 까지 끌어내 사고한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전투분석 스킬에 이어, 집중 스킬까지 발현되었다.
기세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전신 의 감각이 극대화되었다. 사고가 가속되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 도시의 모습이, 계속해 선명해져간다.
가속된 사고 속.
나는 추론했다.
'적 마법사들의 위치.'
놈들은 이 도시 어딘가에 있다.
마법사란 결국 마나를 운용해 위 대한 마법을 발현하는 존재.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시전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못한다.
하물며 놈들은 도시 전체를 아우 르는 거대한 마법을 발현한 상황.
계속 추론한다.
'이쪽의 움직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곳.'
적 마법사들은 우리군이 도시의 중앙에 도달한 직후 준비해놨던 마법을 발동시켰다.
분명 제피르를 비롯한 그 어떠한 마법사들도, 감시마법의 존재를 탐지하지 못했는데 .
어찌하여 적은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했는가.
'육안인가.'
적 마법사들은 육안으로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탐지마법을 운용하지도, 그렇다고 척후병이나 통신마법 따위를 운용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즉. 놈들은 육안으로 이쪽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에 있는 것이 분명할 터.
'그러면서도, 저 불의 장막 마법에 휘말리지 않는 곳.'
불의 장막. 과연 대단한 마법이다.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불길을 생성해내다니.
하지만 화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시전자 자신이 휘말릴 위험도 높아 지는 법.
이 도시에서 불의 장막이 휩쓸고 갔음에도 멀쩡한 장소가 얼마나 있을까?
하나씩 생각해 보았다.
'먼저, 지하공간.'
불의 장막은 지상만을 휩쓸고 지나간다.
불길이 미치지 않는 지하에 숨어있다면. 안전하게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해보고는, 바로 부정했다.
'아니. 지하공간이라면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어진다.'
시야확보가 원활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캄캄한 지하에서, 별다른 척후병 이나 정보원조차 없이 이쪽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방법은 없을 터이니.
그렇기에 다음 후보군을 추린다.
'지하공간도 아니라면. 석제건물.'
완전한 석제로 이루어진 견고한 건물이라면, 불의 장막 마법을 견딜 수도 있다.
돌은 불에 타지 않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한들 연소에 따른 산소부족, 뒤이어질 질식 따위를 염려해야 하겠지만.
그딴 것들은 방호나 정화계열 마법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
한번 정리해본다.
'견고한 석제로 이루어져 내열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야 확보를 위해 높은 높이를 가지고 있는 건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여겨보는 것은 시야에 들어오는 여러 건물들.
이미 소각처리가 완료되었으나 나름대로 멀쩡한 건물들이 몇 개 보인다.
그리고 그대부분은 석제로 이루 어져 있다.
석제이기 때문에 연방놈들의 소 각처리에도 건물이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신수 정구를 쥐어들어 누군가를 호출했다.
"제피르. 한 가지 부탁 좀 하지."
- 뭔가. 한지훈.
제피 르였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단장. 그 어떤 마법사들보다도 파괴와 유린에 특화되어 있는, 내 이전시대의 제국 전쟁영웅인 인물.
나는 제피르에게 지시한다.
"지금 당장, 시야에 보이는 석제 건물들을 모조리 부숴버려라."
도시에 남아있는 석제 건물들의 수는 한두 개가 아니다. 최소한 두 자리 수정도는 된다.
그 모든 걸 파괴해버리면 된다.
"그 석제건물들 중 하나에 적 마법사 놈들이 모여 있을거다."
그리고 파괴는 라브리에 전투마 법단의 특기.
그들이 행동한다면 제시간 안에 적을 찾아낼 수 있을 터.
제피르가 대답했다.
- 꽤나 난폭한 지시로군, 애송이. 우리 애송이가 언제 이토록 난폭해 졌지?
"그래서. 싫은가? 제피르."
- 아니. 전혀.
클클클. 그의 웃는 목소리가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왔다.
- 썩 마음에 드는 지시야. 조금 만 기다려라, 한지훈. 시야에 보이는 모든 석제건물. 싸그리 철거해주 지.
제피르가 있어서 다행이다.
쿠르르르르….
웅혼한 마나의 파동이 일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