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포트 알파란 포위가 완료되었습니다."
휘하 참모장이 보고한다. 그의 뒤를 이어 타 참모들의 말이 이어 졌다.
"국경요새 포트 알파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내부에 수용가 능한 병력은 기껏해야 약 2만정 도."
"저희 원정군이 접근하고 있음에 도 아무런 마나 파동조차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포트 알파란에는 적의 마법사 전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긴. 기껏해야 국경을 감시하는 변경요새에 불과하니 이런 변방지 역에 전투마법사를 상시 배치하기 엔 여의치 않겠지."
"덕분에 단숨에 점령할 수 있겠 군요."
보고해 오는 참모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여유롭고 편해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35만의 병력이, 기껏해야 2만명 수용 가능한 중소형 요새를 완전 포위했다.
압도적인 승리가 예정된 병력의 격차. 너무나도 쉬운 전투라고 누구나 생각할 만한 상황.
나는 시선을 돌려 어떤 인물을 바라봤다.
"마이. 현재 상황은 제대로 파악 했지?"
"… 그렇다. 한지훈."
마이사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어 말한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네게 지휘 권한을 부여해 네 실전 경험을 축적시켜 줄 것이다."
시선을 돌려 지휘부 내부에 자리 해 있는 여러 장성들과 참모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에는 희미하게나마 불만스러운 표정이 자리해있다.
그이유, 나는 알고 있다.
'막 사관학교를 수료한 새파란 애송이 참모가 자신들을 지휘하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직 마이사에게는 권위도, 계급 도, 실적도 없었으니까.
다만 그녀가 내 양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반발하지 않고 있을 뿐.
제국의 중심 귀족이 된 내 눈밖에 날까봐, 쉽사리 반대의견을 내비 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자리에서 단 한명.
내 눈치 따위 살피지 않고 반대 의견을 내비칠 수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
"한지훈. 다시 한번 생각해보 게."
다름 아닌 오스카였다.
오랜 기간 나와 친분관계를 쌓아 온 선임 군단장. 덕분에 계급과 신분의 고저를 따지지 않고 반대의견을 표할 수 있는 인물.
그가 이어 말한다.
"아무리 자네의 양녀라 하나, 실 전 경험이 없는 신임 참모에게 난 데없이 야전군단위의 병력을 지휘 시키다니. 너무 위험하네."
확실히 오스카의 말은 합당했다.
마이사에게 있는 건 수도 사관학 교수석 졸업 타이틀과 내 양녀라는 신분뿐.
그런 그녀가 원정군 전체 병력을 지휘하니 파격적인 걸 넘어 충격적 이기까지 한 일이겠지.
"한지훈. 자네가 이번 원정군의 많은 것을 투자했고, 더해 지휘권 이양은 본래 야전군 사령관인 자네 의 권한인 것을 알고 있긴 하다만 그래도 나는 말려야겠네."
그렇기에 오스카는 재차 나를 만 류했다.
허나 나는 그의 조언을 결코 듣 지 않았다.
"만약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지지. 오스카."
강압적으로 밀어붙인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일단 맡겨봐라. 나만큼, 어쩌면 나이상으로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이 녀석이니까."
바로 옆에서 있던 마이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그에 불쾌한 듯 미약하게 눈가를 찌푸리는 마이사.
무시하고 이어 말했다.
"오스카. 그리고 이자리에 있는 참모와 장성들. 잘 봐둬라. 진짜 재능충이 뭔지 잘 알 수 있을거다."
씨익. 절로 입가에 미소가 드리 워진다.
"일단 보면 생각이 바뀔거야."
* * *
마이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바로 앞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은 중앙에 놓여있는 커다란 테이블. 그 위에는 비콘과 드넓은 전략지도가 놓여져 있고, 이곳저곳에 장기말들이 배치되어있다. 적아의 병력 배치를 알리는 모형들 이었다.
그녀가 들어올렸던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 커다란 테이블 주위를 둘러서고 있는 여러 참모와 군관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눈빛에는 불신이 아른거 린다.
마이사의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그녀의 얼굴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감이, 그동안 쌓아왔던 실력이 사라져간다.
그러자 그때.
퍽!
"아악!"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때렸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마이사.
자신에게 손찌검 한 인물의 얼굴을 확인했다.
"긴장 풀어, 임마."
한지훈이었다.
그가 이어 말했다.
"가상전투는 수도 없이 해왔잖아."
한지훈의 말에, 마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품속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들었다.
수정구였다. 주먹만 해서 언제든지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녀는 수정구를 바라보며 과거 한지훈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마이사. 사관학교로 가기 전이걸 가져가라.
- 이건 뭔가? 한지훈.
- 도상연습 아티팩트다.
이 수정구. 과거 그녀가 사관학 교에 입고하기 전 한지훈에게서 받았던 아티팩트였다.
도상연습 아티팩트.
- 실시간 도상연습을 하는 것처럼 가상전투를 진행할 수 있는 물건이다. 이걸로 틈틈이 전략을 연구 해보도록. 네 군략을 늘리는데 꽤나 도움 될거다.
- …이런 조그만한 수정구가 그 정도로 대단한 연산을 할 수 있다는 건가?
- 바네사랑 드워프들이 수고좀 해줬지.
그녀의 손바닥이 수정구를 꼭 감 쌌다.
사관학교에 입교한 이후 월반에 월반을 거듭하며 빠르게 성장할 동안, 그녀는 여유시간이 생길 때마다 이 도상연습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가상공간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처음에는 십인대 규모. 이후 백인대, 천인대를 지나 군단 규모를 지휘했다. 야전군 규모를 지휘했다. 무수히 많은 전투를 시물레이션했다. 실력을 축적해갔다.
비록 가상 전투일지언정, 도상연 습 아티팩트가 너무나도 정교하게 만들어졌기에 그녀의 입장에선 현실의 전쟁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마침내 한지훈의 권위를 빌려, 이렇게 군을 지휘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이사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본다.
'…여전히 나를 무시하고 있다.'
이쪽을 주시하는 군관과 참모들. 그들의 눈동자에 스며들어있는 불 신어린 눈빛.
익숙한 눈빛이었다.
과거 사관학교에 처음 입교할 무렵 여자라는 성별 때문에 받았던 눈빛.
하지만 그들의 그 불쾌한 눈빛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관학교에서 자신의 능력을 차 고 넘치게 증명했기 때문에.
카리스마로 이끌고 군략으로 압 도했다. 다른 사관생도들을 상대로 철저하게 승리했다. 사관학교의 교 관들마저 그녀의 재능에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할 당시. 오직 존경과 선망어린 눈빛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신어린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참모와 장교들.
그녀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그 누구도 저런 눈빛을 유 지하지 못할 터다.
그녀가 지휘봉을 쥐어든다.
'지금이 기회다.'
그동안 키워왔던 자신의 능력을 철저히 보여줄 기회. 저들의 불신어 린 눈빛을 단숨에 지워버릴 기회 말이다.
마이사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1제대. 약보로 전진. 공성병기는 후열로 돌린다."
"2제대. 1제대와 백보의 거리를 벌린 채 뒤따라가라. 그이상 거리 를 벌리지도, 좁히지도 말아야 한다."
"기병대는 대열의 좌측, 기사단은 우측면으로 우회. 돌진대기."
"전투마법사는 대기하라. 과한 화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으니 ."
마이사의 지휘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지휘하고, 다른 참모들이 정신없이 장기말을 배치했다. 시시 각각 지도 위 올려져 있는 장기말의 위치가 바뀌어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스카가 작 게 중얼거렸다.
"보기와 달리 꽤나 똑부러진 성격이로군."
오스카는 마이사를 그리 평했다.
확실히 그녀는 겉보기에 그리 믿음직한 외양은 아니었다.
호리호리한 몸매. 남성 군관들보 다 훨씬 작은 키. 길게 자라 찰랑 이는 황금색 금발. 선이 가늘게 자리해있는 이목구비. 새하얀 피부색 까지.
다분히 귀족적이고 여성적인 , 아름다운 외양이었다.
허나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 믿음직스러운 외양이냐면.
글쎄.
팔뚝은 가늘어 아무런 힘이 없어 보였다. 새하얀 피부색은 유약해보 였으며, 선이 가는 이목구비는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기다란 속눈썹을 가진 그녀는 아무리 제국군 장교 정복을 입고 있음에도 드레스를 입은 여인처럼 여성스러워 보였다.
허나.
"전진. 공성병기를 붙여라."
"1제대, 성벽위를 타고 올라라!"
"2제대 속도 높여!"
"기병대와 기사단, 출격 대기. 성문이 파괴되는 즉시 돌진한다."
그녀가 하는 지휘는 전혀 여성스 럽지 않았다.
정교하고도 확실했다.
마치 전장의 상황을 모조리 예측 하는 듯, 필요한 지시를 필요한 부대에 정확히 하달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쉼 없이 지도를 훑고, 지휘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1군단 3번천인대. 해당 지역에 적의 궁병대 일제사격이 예상된다. 일시 후퇴. 가장 빠른 속도로 성벽에서 물러나라."
그녀의 지휘가 더더욱 정교해지고, 정확해져간다.
"이쯤이면 적의 발리스타 투사체 가 모조리 소모됐을 거다. 기병대, 전진. 충차를 보조하라. 길을 열어!"
이 드넓은 전장 전체를 머릿속에 온전히 박아 넣은 듯.
시뮬레이션 한다.
"1, 2, 5군단. 그쪽 방면에 적 궁병대 일제사격이 있을거다. 당장 산 개해!"
"7, 12군단!
적 지휘관의 생각을 읽고, 상황을 예견했으며, 적의 수를 앞서 간 파했다.
마치 미래를 읽는 것 같다.
아니. 미래를 읽는 것이 확실하다. 오스카는 그리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정도 라 여길 정도로 너무나도 정확한 지휘였으니까.
"남쪽 성벽. 지금쯤 적 궁병대의 화살이 모조리 떨어졌을거다. 놈들의 저항이 약해졌을 터."
"별다른 저항 없이 성문을 박살 낼 수 있을거다."
"충차! 전속 전진! 성문을 부숴버 려!"
마이사의 목소리가 사령부 막사 를 울리고, 오스카는 천천히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새….'
어느새 이자리에 있는 모든 참 모와 장교들. 아무런 불편한 기색 없이 따르고 있다.
분명 몇 시간 전 까지는 얼굴가 득 불신어린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을 터인데.
오스카는 그제야 깨달았다.
전장을 지휘하는 군관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자, 가장 중요한 자질.
'카리스마.'
마이사는 출중한 카리스마를 지 니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이곳 사령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마이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힘이 실린 손짓이,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이. 이자리에 있는 모든 군관과 참모들에게 미쳐, 지시를 스스럼없 이 따르도록 만들고 있었다.
"성문 파괴!"
"기사단, 그리고 기병대! 전속 전 진하도록! 성문을 통과해 아군 보병대가 진입할 공간을 확보하라!"
"적의 예비대를 쓸어버려!"
성문이 뚫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성벽이 함락되었다. 아군 병사들 이성벽 위로 기어올라 적의 병력을 제압했다. 우군 후속 병력들 또한 성벽 내부로 진출해 적의 병력을 밀어냈다.
승기를 확실히 거머쥐었다.
오스카는 시선을 내려, 지도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지도 옆, 전사 혹은 작 전 불능 표시가 떠 있을 부대의 정보를 말이다.
"… 무슨?!"
그리고 재차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없다!'
작전불능 판정을 받은 부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인즉 아군의 손실이 극도로 경미한 것이다.
아무리 이쪽의 전력이 압도하고 있다 하나 적의 요새를 상대로 한 공성전이었다.
분명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했 었을 터인데.
헌데 단 하나의 부대조차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만큼 마이사의 병력 지휘가 정 확했다는 이야기일 터.
오스카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마 이사를 바라본다.
"적의 예비대를 몰아 쳐라. 기병대, 우측으로 기동해 적의 측면을 타격하라."
"기사단! 전방으로 돌진! 적의 진형을 뒤흔들어!"
"좌측면에 적 예비대 기병이 달 려들거다. 12군단 3번 천인대부터 11번 천인대까지. 대기병 방진을 펼쳐 우군의 측면을 보호하도록."
"5군단! 우측전방으로 전진! 적의 우익을 부숴버려라!"
마이사는 여전히 지휘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녀의 여리지만, 한편으로는 힘 있는 목소리가 사령실을 울려댔고, 참모와 장교들이 쉼 없이 그녀를 보좌한다.
오스카는 잠시 마이사를 바라보고는 문득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지훈."
그가 시선을 돌려 한지훈을 바라 본다. 마이사의 옆에서 싱긋 미소 짓고 있던 검은색 머리카락의 군관.
오스카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가르쳤나보군."
오스카의 물음에, 한지훈은 대답 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여볼 뿐.
오스카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자네가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이유. 이제야 알겠어."
이미 한지훈은 마이사의 능력과 재능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소 강압적으로 그녀에게 지휘권을 넘긴 것이고.
어차피 이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실력을 인정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한지훈의 의도대로.
"… 피는 안 섞였겠지만 확실히 자네의 여식이야. 참 대단한 능력이 로다."
오스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적인 지략. 앉은 자리에서 전장을 전역을 간파하는 고고한 안 목. 압도적인 카리스마까지.
그녀는 비록 나이가 어렸고 성별 또한 여성이었으나 자신보다도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첫 지휘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다니.
오스카가 중얼거린다.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군."
그는 직감했다.
그녀 또한 한지훈처럼 제국의 영웅이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양아비에 뒤지지 않을 압도적인 재능이 있었으니까.
연방 자치령의 국경요새. 포트 알파란이 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