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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66화 (266/390)

266화.

"엘프의 지원 요청을 묵살해야 한다라…."

황제는 베네치오의 말을 듣고 고 심하듯 천천히 턱을 쓰다듬었다.

베네치오의 말이 이어진다.

"그러합니다! 폐하. 현제 저희 제국에게는 타 대륙 원정을 시도할 만큼의 여력이 없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제국은 황금기에 접어든 상태였다.

협상동맹과의 전쟁이 끝나고 제국은 남부대륙의 거의 전부를 장악했다.

이제 제국의 영향력은 남부대륙 전체에 뻗치며, 다수의 식민지를 확보했고, 막대한 인구의 증가를 경험 하고 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지금 제국에는 여력이 없었다.

"이미 대부분의 제국 예산은 전후처리와 파괴된 도시 수복, 그리고 초토화된 변경지대 복원과 민생 안정에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제국의 남아있는 예산을 아무리 쥐어 짜낸 다 한들, 타 대륙 원정은 무리란 말입니다!"

제국은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성장의 시기에는 투자를 아껴서는 아니 되는 법.

때문에 제국 황궁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다양한 사업을 벌여왔었다.

식민지 정돈, 초토화된 변경지역 복원, 마물의 군락 제압을 통한 치안 확보뿐 아니라.

새로운 마을과 도시의 건설.

전쟁으로 흔들린 민심 수습을 위한식량과 자금의 대규모 지원.

더해 추후 있을 연방과의 전쟁을 대비한 군사력 증강까지.

제대로 된 여유 예산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투자해버렸다.

황실의 내탕고마저 열었다.

덕분에 제국은 빠르게 회복기를 거치고, 지금은 이전보다도 월등해 진 국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자금이 없습니다. 폐하."

그대가로 제국 행정부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여유롭지 않게 되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 자국 내에서 일어나는 전투라면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습니다. 허나 타 대륙 원정이라니.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베네치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황제를 바라본다.

지치지도 않고 전쟁을 만류하고 있는 베네치오.

그의 눈빛에는 어떤 굳은 결심마 저 어려있었다.

순간 황제는 의심했다.

'설마 베네치오는 연방의 첩자인 것인가.'

이미 황제는 자신의 측근에게 배 신당한 경험이 있었다.

카디 르.

전국방성 장관이자, 한지훈에게 의해 처형당한 인물.

자신의 측근이던 국방성 장관조 차 알고 보니 연방의 끄나풀이었다.

재무성 장관 또한 첩자가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

더해 지금 그는 엘프를 구원하기 위한 중앙대륙 파병, 나아가 연방과 의 전쟁을 만류하고 있다.

그렇기에 황제의 머리 한켠에서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직후.

'아니. 베네치오는 결코 연방의 첩자 따위가 아니다.'

베네치오와 눈빛을 마주한 황제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옥좌 아래에서 이쪽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는 베네치오. 그의 냉철 하면서도 이지적인 청회색 눈동자.

아무런 불안이나 흔들림조차 없이 굳게 자리해있다.

저토록 사명감 넘치는 눈빛이라니. 자신의 군주를 배신하는 비열한 인물이라고는 결코 여길 수 없는 모습이다.

필시 저자는 충심으로서 자신에 게 조언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황제는 베네치오의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저 옥좌 위에서 그의 말을 경청할 뿐.

베네치오의 말이 이어진다.

"폐하! 지금 남아있는 예산으로, 야전군 규모 이상의 군사를 중앙대륙으로 파병해 운용하고자 한다 면…."

잠시 머릿속으로 셈을 하는 듯 말꼬리를 흘리는 베네치오.

그가 잠시 침묵하고는 단언했다.

"넉 달, 제국 전체가 전시체제로 이행한다 해 봐야 반년, 중앙대륙 원정을 반년만 지속한다면 제국 그 자체가 파산하게 됩니다."

"으음…."

황제의 입가에서 신음이 흘러나 온다.

그만큼 곤란한 상황이었기에.

"반년… 고작 반년만 전쟁을 지 속한해도 파산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폐하. 그렇기에 무 례를 불구하고 청합니다. 위대하고도 고귀하신 제국 황제 폐하, 부디 거병의 시기를 늦춰 주시옵소서."

고개를 푹 숙이는 베네치오. 그 가 진중한 어투로 재차 강조했다.

"대규모 파병군의 운용은 비단 엘프의 파멸뿐만이 아닌, 폐하께서 다스리는 제국의 멸망과도 직결됩 니다. 비록 혈맹 엘프의 몰락은 안 타깝습니다만, 지금은 친우를 버려 서라도 내실을 다질 때이옵니다. 부 디 보다 먼 시선으로 국무를 살피 시옵소서."

"… 내실을 다질 때라."

황제는 수긍해 고개를 주억였다.

제국의 전 재산을 끌어온들, 어 차피 반년 안에 전쟁을 끝낼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남부대륙 일통이 곧입니다. 먼저 대륙 전체를 장악해 국력을 키운 다음 연방을 상대함이 옳다고 아뢰 옵니다."

더해 제국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연방을 상대한다면, 어쩌면 제국 그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우방을 구하기 위해 몰락하는 것 보다, 자국의 국력을 키워 망한 혈맹의 복수를 해야 한다.

베네치오는 그리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으음."

황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알현실 내부에 자리해 있는 다른 관료와 장관들의 모습을 살폈다.

황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수긍하고 있군.'

알현실에서 베네치오와 황제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관료들.

그들 대부분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저들 또한 알고 있던 것이다.

지금 제국에게는 타 대륙에 군사 를 보낼 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자리의 모두가 베네치 오의 말에 찬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오!"

저벅, 저벅.

관료들 틈새에서, 한 인물이 걸 어나왔다.

황제는 새로이 등장한 그 인물을 바라보고, 그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다.

"데이비드 국방성 장관."

데이비드 컴벨 하비에르. 전 북부군 야전사령관이자, 지금은 국방 성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

그가 베네치오의 주장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데이비드가 격노한 듯 크게 고성을 내질렀다.

"엘프는 우리 제국의 우방이자 은인이다! 이미 몇 번이나 , 제국을 도와 함께 위기를 헤쳐나간 전우란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성큼성큼 걸어 나아가는 데이비 드. 그가 베네치오의 코앞에서고는 윽박지르듯 외쳤다.

"헌데 그들을 외면하고 오직 자 국의 안위만을 생각하다니.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릴 생각인가, 재 무성 장관!"

"… 허나 데이비드. 엘프를 돕다가는 제국과 엘프가 함께 공멸할 것 이오. 돕는 것도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지 않소?"

"연방이 중앙대륙을 정복한 뒤 가만히 있을 것 같나?! 엘프가 무 너진다면 그다음은 우리 남부대륙 이다!"

"그때까지 국력을 키운다면 능히 상대할 수 있을 터다."

"놈들에게는 그 빌어먹을 흑마법사 놈들이 있단 말이다! 엘프와 함께 싸워야만 맞상대할 수 있거 늘…!"

황제는 데이비드와 베네치오의 언쟁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둘 모두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당장 우군을 지원하자니 제국이 멸망할 터다.

그렇다고 우군인 엘프를 버리고 제국의 존속을 바라자니, 엘프가 무 너진 뒤 연방의 목표는 어차피 제국이 될 터.

결국 위험 부담을 안고 도박하느냐, 혹은 다소 구차하게 연명해 다음 기회를 노리냐의 싸움.

황제는 속으로 고뇌한다.

'원정군을 파병하는데 필요한 것은 결국 자금이다.'

자금이 있다면, 원정군을 파병할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예산을 준비해 원정대를 파견할 수 있게 된다 한들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예산이 있다 한들 문제였다.

첩보에 따르면, 중앙대륙으로 향 하는 연방의 군세가 무려 백만에 달한다 한다.

더해 놈들과 연합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흑마법사.

소수로서 다수를 능가하고, 어둠 으로 빛을 집어삼키는 저주받은 자 들.

연방과 흑마법사의 연합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성한 적이 아닐 수 없으니 .

황제의 이마가 찌푸려진다.

'결국 자금과 승률이 걸린다.'

엘프를 돕기 위해서는 원정대를 운용할 자금이, 그리고 그들을 승리 로 이끌 영웅이 필요하다.

그 두 가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하지만 의외로, 그 두 가지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인물 이 황제의 측근 중에 존재하고 있었으니 .

- 폐하.

황제의 옥좌 바로 앞에 놓여있던 통신 수정구가 점멸하고, 직후 목소리가 들려온다.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 한지훈 라이젠입니다. 한 가지 청이 있어서 통신드립니다.

한지훈 라이젠.

제국의 위대한 전쟁영웅.

공작위를 지니고 있는 제국의 대귀족이며, 제국군 북부 야전사령관 이자 제국령 식민지 람셀의 총독인 인물.

그가 통신해온 것이다.

수정구 너머 한지훈의 말이 이어진다.

- 제가 원정군의 모든 비용과 물 자 수요를 부담하겠습니다. 폐하, 저와 북부군을 중앙대륙으로 보내 주십시오.

황제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진다.

* * *

군대란 더럽게 비효율적인 집단 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고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재화와 물자가 소비된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 장비 하는 병장기들, 지낼 숙소와 고용에 필요한 재화. 그리고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지급해줘야 하는 수당까지.

너무나도 많은 자원이 소비된다.

생산성과 재화 창출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유지비는 무지막 지하게 퍼먹는 집단.

비효율의 극치.

그것이 바로 군대다.

하물며 그 군대를 움직이는 것으로 모자라, 타 대륙까지 보내 전투 하게 시킨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자금 이 소요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최강대국인 크루거 연방, 혹은 지금보다도 더더욱 성장해 절정의 국력을 갖춘 오르페우스 제국 정도의 강대국만이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타대륙 원정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물론 꽤나 부담되는 지출이긴 하다만.

"이러려고 돈 벌어둔 거니까."

후욱. 한숨을 내쉬며 지도를 바라본다.

내가 다스리는 광활한 영역이 지도 위에 펼쳐져 있다.

작게 읊조린다.

"루벤."

나의 영지 루벤.

공작령으로 확장된 덕분에 무지막지한 넓이의 영토를 지니고 있다.

넓이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발전도 또한 제국 제2의 수도라 불리 울정도로 상당한 수준.

물론 루벤이 아닌 다른 곳에도 내가 다스리는 땅은 있었다.

"람셀."

제국령 식민지 람셀. 그곳 또한 막대한 수익이 나오고 있다.

본래 제국 다음가는 열강 중 하나였던 국가다.

비록 전쟁으로 황폐화되었으나, 복구를 비교적 신속하게 해낸 덕분에 지금도 무시 못 할 정도의 수익이 창출되고 있다.

루벤과 람셀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익. 그동안 모아놓았던 재화.

모조리 소모한다면 원정군을 운 용하는 것조차 가능하다.

수정구에 대고 말했다.

"제가 원정군의 모든 비용과 물 자수요를 부담하겠습니다. 폐하, 저 와 북부군을 중앙대륙으로 보내 주 십시오."

나는 이어 말한다.

"엘프는 저희 제국의. 그리고 제 개인적인 은인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가고 싶습니다."

- …한지훈.

흘러나오는 황제의 목소리.

얼떨떨한 것일까. 좀처럼 듣기 힘든 그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이어 울린다.

- 자네의 심정은 알겠다만. 가능 하겠는가? 그대의 재산이 막대하긴 하나 그렇다고 원정군을 운용할 정도는 되지 않을텐데.

"아닙니다. 폐하. 운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계산은 마친 상태다.

내 영지와 식민지의 경재력으로 충분히 원정군을 운용할 수 있다.

물론 허리띠를 꽤나 졸라매야 하겠지만.

어쨌든 가능하단 거다.

- 허…

그런 내 대답이 놀라웠던 것일 가. 아니면 차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던 것일까.

허탈한 한숨을 내쉬는 황제.

하긴 믿기 힘든 일이긴 하다.

아무리 대귀족인 공작이라 한들, 수십만 원정대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경제력이라니.

오직 나이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경제력이었다.

만약 과거 게임 속 시나리오에서 얻은 지식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다른 조력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자금 동원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쪽 또한 그동안 모아왔던 전 재산을 쏟아 붓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원정이 성공했을 때, 나름의 이득이 있어야 할 터.

나는 수정구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 이번 중앙대륙 원정이 끝나고 연방의 침공을 틀어막는데 성공한다면 한 가지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만."

가진 전 재산을 투자하는 만큼. 성공한다면 그이상의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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