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연방 전쟁국의 최고 사령실.
크루거 연방이라는 거대국가의 모든 군사들을 다루는 공간이다.
그곳에 수십의 군관과 한 명의 인영이 자리해 있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연방 통령 각하."
도열해 있는 군관들 중 가장 선두에서 있는 이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하얀색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인물. 연방 전쟁국의 국장인 콜린 가프먼 이었다.
그가 손에 든 서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원정군의 준비는 순조롭습니다. 백만에 달하는 병사를 모았으며, 수송선과 전투함의 동원 또한 차질 없습니다. 병장기와 군량미를 비롯 한 모든 보급품 또한 완전히 준비 되었습니다."
그는 연방 통령에게 원정군 준비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원정군. 과거 연방의 숙원이었던 타 대륙 정복을 이루기 위한 군대.
이곳 동부대륙이 아닌 중앙대륙, 남부대륙을 칠 수 있는 파병군.
연방은 몇 년에 달하는 오랜 기간 회복하며 힘을 비축했고, 그 결과.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언제든지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당장 원정 대를 출발 시킬 수 있습니다."
타 대륙 정벌을 위한 원정대를 다시금 꾸릴 수 있게 되었다.
당장 준비된 원정군의 병력 수만 약 백만 가량. 더해 결코 적지 않은 수의 기사와 마법사 또한 동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연방의 국력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몇 년 전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을 잃었음에도 연방은 이토록 쉽게 다시금 원정군을 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
크루거 연방의 통령 러셀 베티스 사인펠드.
"그래. 원정군의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러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드디어 복수의 때인가."
제국에 의해 남부대륙 정벌이 좌 절된 이후, 통령은 그동안 제국에 복수할 욕망을 키워왔다.
당시 연방이 입었던 피해는 극심했다.
수십만에 달하는 장병들의 전사. 막대한 재화와 자원의 소실. 더해 무패의 역사를 자랑하던 연방에게 첫 패전이라는 치욕까지.
"제국에게 되갚아 줘야겠지."
통령은 한번 당한 일을 결코 잊 지 않는다.
그는 감히 연방을 물리친 건방진 적. 제국에게 되갚아줄 심산이었다.
대량의 병력을 밀어 넣고 놈들의 영토와 재산을 뺏어. 적의 병력을 죽이고 죽여.
"이번 전쟁이 끝날 때. 제국이라는 국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거다."
제국 그 자체를 섬멸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허나 잊으면 안된다.
"그전에 엘프부터 정리해야겠지."
이전 전쟁에서, 통령은 엘프가 제국과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부대륙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던 연방의 모든 정보원들의 연락이 끊겼다. 연방 원정군은 그 강력한 정보력을 미처 활용할 틈도 없이 쓸려나갔다.
이번에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렇기에 통령은 남부대륙 침공 전, 엘프를 정리하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던 통령이었다.
물론 엘프의 세력은 강대하다.
그 수는 적지만, 일개 전사조차 일반 기사를 상회하는 무력을 지닌 종족이니.
하지만 엘프를 상대하는 것은 통 령의 연방이 아니다.
그가 품속에서 통신 수정구를 쥐 어들고, 누군가를 호출했다.
"크라함."
직후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목소리.
- 불렀는가, 통령.
매마른 사막처럼 쩍쩍 갈라졌으면서도, 질척한 늪지대처럼 눅진한 악의를 담은 음성.
크라함의 목소리였다.
통령이 크라함에게 묻는다.
"네놈의 볼라바아, 확실히 중앙대륙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크라함이 이끄는 흑마법사 학파, 볼라바아. 몇 년간 연방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전 이상의 세력을 일 궈낸 상태였다.
그렇기에 통령은 묻고 있다.
볼라바아가 움직인다면 엘프의 땅 중앙대륙을 잠식할 수 있냐고.
수정구 너머의 크라함이 대답한다.
- 맡겨만 둬라. 통령.
클클클. 비틀린 웃음소리.
- 염병할 뾰족귀놈들. 모조리 불 태우고 타락시켜주마.
연방과 크라함이 움직이기 시작 한다.
* * *
"루벤에 돌아온 건 오랜만이지? 마이사."
마이사의 졸업식 겸 임관식이 끝난 뒤,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내 영지 루벤으로 돌아왔다.
초장거리 마법진 밖으로 벗어난 직후 마이사가 멍하니 읊조렸다.
"… 그동안 출세했구나. 한지훈."
그녀의 커다래진 눈동자가 내 영주성을 훑었다.
그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출세했지. 보다시피."
그녀가 놀라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만큼 내 영주성의 모습 은 많이 변화해 있었으므로.
이전에는 그저 조금 커다란 성 에, 구색 맞추기 위한 약간의 사치 품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돈이 썩어 넘쳐서 말이야. 이런 데라도 써야했어."
영주성은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그 크기가 훨씬 커졌고, 높이 또한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아졌다.
더해 실내에 보이는 것들은 온통 호화로운 것들뿐.
천장에 매달려 화려한 조명을 흩 뿌리는 샹들리에. 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여러 고가의 예술품과 장식품 들. 가구 하나하나는 고풍스러웠으며, 바닥에는 붉은색 카펫이 기다랗게 깔려있다.
성의 정문부터 이곳저곳 자잘한 장식품들까지.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고급품으로 온통 도배되어 있는 것이다.
새삼 감탄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 던 그녀가 문득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철없구나, 한지훈. 이토록 사치 를 즐기는 성격일 줄은 몰랐는데 ."
아무래도 그녀는 투철한 절약정 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나는 쯧쯧 혀를 차며 대답했다.
"모르는 소리. 돈은 쓰라고 있는 거다."
"그렇다고 낭비해서야 되겠는 가?"
"낭비라니. 합당한 소비야."
저벅, 저벅.
나는 영주성의 복도를 걸으며 입을 열었다.
"내 영지에서 나오는 자금이 상상을 초월해.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 면 자금의 흐름이 정체될 정도로."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제국의 공작이 되어 보다 넓은 영지를 하사받았고, 더해 람셀 의 총독직까지 가지게 되었다.
당연히 수입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에 소비했다.
나 개인의 만족 때문이 아닌,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서.
"돈은 쌓아만 두면 안 돼. 시장에 풀어야지. 그래야만 자금이 돌고 경제가 활성화되니 말이야."
"… 차라리 이런 사치보다는 군사 나 민생에 투자하면 좋았으려만."
"당연히 그쪽이 주류지. 이렇게 사치품을 사들이는 건 돈이 너무 쌓여있을 때 어쩔 수없이 산 것들 이야."
나는 말하고는 다시금 마이사의 표정을 살폈다.
피식. 미약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표정을 보아하니 개소리라고 여기고 있군 그래."
"… 그야. 이렇게 화려한 영주성을 보면 그다지 훌륭한 위정자라 여겨 지지 않아서 말이야."
아직까지도. 그녀는 내가 과소비 하고 있다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굳이 반박해 그녀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뭐, 보면 알거다."
입 아프게 말할 필요 없이 직접 보여주면 될 일이니.
나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복도를 따라 걷는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영주성 의 가장 최상층. 이 복도 끝에는 커다란 테라스가 있다.
지금 나는 그 테라스를 향해 가 고 있다.
"네가 사관학교에 처박혀 있는 동안 얼마나 내 영지가 발전했는지 잘 봐라."
마이사에게 내 영지 루벤의 전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벌컥.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햇빛이 들이쳐 환해지는 시야. 드넓게 펼쳐진 풍광.
마이사의 눈이 크게.
너무나도 크게 떠진다.
"이게… 루벤?"
그만큼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놀랐다.
나는 싱긋 웃는다.
"내 영지가 어떠냐?"
나 또한 고개를 돌려 테라스 밖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자 어엿한 대도시의 모습이 자리해 있었다.
저지평선 너머까지 뼥빽?들 이차 있는 건물들. 크고 작은 건물 들 사이 도로들이 얼기설기 얽혀있고, 그 도로 위를 수많은 마차와 인파들이 배회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공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기둥.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차. 혼잡한 인파.
마치 현대 지구의 도심을 보는 것만 같다.
제국 수도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발전도.
나는 자랑스레 가슴을 펴고 말했다.
"이것이 네가 없는 근 몇 년간 발전한 루벤이다."
항상 볼 때마다 절로 뿌듯해지는 경관이다.
이 영지, 루벤에 처음 발을 내딛 었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 인구수는 갓 1만에 달할 정도로 볼품없는 영지였다.
영지 상비군의 수는 백 명에 불과했고, 세수는 거의 없고 현상유지에 급급했던 수준. 영주성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아 관사에서 행정관 들과 함께 기거해야 했었다.
허나 그동안 루벤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이전의 초라했던 모습 따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도시의 구조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한다.
"저길 봐라. 저 연기가 피어오르는 커다란 건물,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공방들."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것은 공업구획. 이전에 드워프 조병창이 있던 장소다.
그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드워프 조병창과. 녀석들의 개인 용 공방들이다. 네가 없는 동안 돈을 끝없이 쏟아 부어 대륙 제일의 공업능력을 확보했지."
"… 드워프의 공업구획."
"저곳에서 대륙 곳곳에 보급할 무구들과 마나 도구들이 만들어진다."
이전 루벤에 설치되었던 드워프 조병창 또한 꽤나 커다란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전 제국군 장비의 절반 내지를 감당 할 수 있을 정도의 공업능력. 이천여 명에 달한 드워프 장인들의 능력은 그 정도로 출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욱 발전해, 보다 우월한 공업능력을 지 니게 되었다.
"저 공업구획에서 제국의 모든 병장기를 생산할 수 있다. 더해 마 탑과 귀족, 그리고 군부에 납품할 마법도구들까지 수요를 감당 할 수 있지."
지금 루벤에서 일하는 드워프들 의 수는 일만에 달한다. 이전보다 훨씬 막대한 수의 드워프들이 이곳 루벤에서 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드워프들은 장인의 종족. 하나하나가 평범한 인간 기술자보 다 훨씬 진보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들이 일만이나 모여 있다.
확신할 수 있다.
"루벤은 제국 최대의 공업도시다."
나는 철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이다. 고작 이 정도 로는 루벤의 발전을 모두 알려줄 수 없다.
나는 손가락을 옮겨, 또 다른 곳을 짚었다. 이전에 바네사의 연구실 이 있던 곳이다.
그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가 연구단지다."
"… 연구단지라면."
"마녀 바네사가 연구실을 차리고 연구비를 퍼부으니 돈냄새를 맡은 마탑들이 들러붙더군. 아예 통합해 연구단지를 건설했다."
"미쳤군. 마탑까지…."
"참고로 그 옆에 있는 건 대학이다. 저것도 돈 좀 꽤나 들였지."
슬슬 마이사의 얼굴에 경악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마법사.
극도로 유용하지만, 돈 퍼먹는 하마들이다.
헌데 나는 그런 그들을 마탑재로 몇 개나 유치했다. 그것으로도 모자 라 또다시 대량의 돈을 퍼부어 대학을 설립하기도했다.
모두 아티팩트와 '유물'의 연구를 위해서였다.
씩 웃었다.
"루벤은 남부대륙 최대 지성의 도시다."
내 도시는 지식을 축적해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소개할 것은 많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도로와 거대한 시장가를 누비는 마차 행렬 들을 가리켰다.
"더해 루벤은 제국 제2의 경제도 시이며."
짐칸 천막에 제각기 소속 상단의 인장을 그려 넣은 마차무리들. 척 보기에도 그 물량이 심상치 않다.
루벤에서 나오는 무수히 많은 생산품들을 대륙 곳곳에 퍼나를 상단 들이었다.
내 영지 루벤은 제국수도 다음가는 경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다시금 손가락을 움직여. 이번에는 저 멀리 도시 외곽에 설치되어 있는 성벽을 가리켰다.
"… 북부의 군사 도시이기도 하지."
기다란 성벽이 흐릿하게나마 보 인다. 이거대한 도시를 빙 두르듯 드높이 솟아있는 장벽.
마나로 시력을 극도로 강화한다 면 아주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성벽 위를 순찰하는 병사들.
그들의 장비는 정규 제국군과 비교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으며, 정 예도 또한 마찬가지.
루벤의 영지군은 강하다.
이 정도면 자랑할 만한 성과이지 않은가?
"인구수 백 오십만. 상비군 오만. 제국 최대 공업력과 연구능력. 그리고 제2의 경제력까지."
이모든 것을 갖춘 곳이, 바로 나의 영지다.
처음 을적 한적한 시골영지에 불과했던 곳에 엘프의 조력을 끌어들 이고, 드워프를 유치해, 황제의 전 폭적인 지원을 받아, 전쟁난민들을 무한히 수용했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광산을 건설했다. 공업을 육성했다. 상업을 발전시켰다. 지성을 축 적했다. 인구수를 폭증시켰다.
그 결과.
"제국 북부에 자리해 있는 제2의 수도. 그게 지금 루벤이야."
과거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의 후반부에나 보았던, 제2의 수도 루벤 의 모습.
나는 보다 일찍이루어냈다.
루벤이라는 영지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개화시켰다. 게임 속 전성기의 모습을 온전히 실현시켰다.
게임 속 지식을 활용한 덕분에. 그리고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과 권위, 더해 우호세력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뻐기듯 말해본다.
"지금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좀 되나? 마이사."
나는 싱긋 웃고, 마이사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때.
- 한지훈 님! 영지에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마이사는 잘 데리고 오셨습니까?
때마침 들려오는 영주 대리 랑스 의 목소리.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 지시하신 대로 회의실에 간부 들을 소집하겠습니다.
"고마워 랑스. 곧 그리로 가지."
나는 통신을 끊고는 어느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마이사에게 말했다.
"연방 자치령 해방. 이제 제대로 준비해 보자고."
그동안 나는 가진 힘을 기르고 세력을 키워왔고. 어느덧 시나리오 의 후반부에 들어섰다.
곧 대전쟁이 있을 것이다.
두 거대 국가의 대륙 간 전쟁.
남부대륙의 패자 제국, 그리고 동부대륙의 지배자 연방.
그 둘이 서로 총력적을 펼치는 미래가 머지않았다.
그때 나는 모아두었던 힘과 세력을 세상에 투사할 것이다.
흑마법사와 연방.
두 적을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 서.
"자, 가지. 다들 기다린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 영주성 회의 실로 향했다.
마이사가 내 뒤를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