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엘리스와의 대화를 마친 뒤 나는 다시금 황궁으로 돌아왔다.
황궁으로 돌아오는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역시나 엘프의 마법은 우월했기 에.
초장거리 도약 마법 단 한번만 에,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는 듯 내 숙소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 이다.
풀썩.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 봤다. 엿같이도 화려한 샹들리에가 보인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신이라."
엘리스에게 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을 들었다.
이 세상. 블랙 오케스트라의 세계관이란 결국 신을 키워내기 위해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게임 좀 잘했다고 신으로 만들 려 한다니. 웃기는 세상이야."
하긴.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가 좀 어려웠는가.
온갖 꼼수와 지략을 모조리 동원 하고, 심지어 흑마법사 등 기분 나쁜 놈들까지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만 간신히 클리어 할 수 있었던 게임이다.
당시에는 뭐 이딴 극악한 난이도 의 게임이 다 있냐고 불평했지만.
신인지 뭔지를 만들기 위한 후보 자를 추려냈다 생각하면, 납득이 되었다.
엘리스의 말을 떠올려본다.
- 한지훈 씨. 시나리오는 결국 신화입니다. 하나의 신이 탄생하기 까지의 과정.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당신, 이름 없는 별이고. 나머지 지 성체들은 조연에 불과하죠.
시나리오의 정체는 신화였다.
하나의 신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시나리오는 내가 신이 될 수 있도록 유저 보정을 던져줬고, 퀘스트 라는 이름의 고난과 역경을 부여하 며, 그것을 극복했을 때 포인트라는 이름의 격을 하사한다.
포인트를 모아 격을 극대화 시킨 다면, 언젠가 신이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마치 인큐베이터 같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숨쉬지도 못하는 미숙아를 인공적으로 키워 내는 인큐베이터처럼.
이 세상은 나에게 격과 능력치, 그리고 여러 보정을 퍼주고 있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쯧. 혀를 찼다.
"마음에 들지 않아."
솔직히 말해 불쾌했다.
지구에서의 나는 행복하진 않았 지만, 그래도 불행하진 않았다.
게임에 몰입하는 것이 즐거웠다.
매일 매일, 색다른 성취감을 얻었다.
점수를 높이고 기록을 세웠다.
현실의 나는 초라할지언정 가상 공간에서의 나는 드높은 위치에 올라있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고, 잘했다.
하지만, 이딴 게임 속 세상에 던 져지고 싶진 않았다.
"염병할 블랙 오케스트라."
게임 좀 잘했다고 이 개같은 세계에 처박아 버린다니.
게임이란 오직 모니터 너머에서 즐길 때에 가치가 있다.
이런 피 튀기고 마법 폭격이 난 무하는 세상에 직접 들어오고 싶진 않았다.
눈을 감으며 읊조린다.
"그딴 게임은 하면 안됐었는데 ."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세계에 들어와 버렸고, 계속해 구르고 있었으니 .
후회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다.
나는 작게 뇌까렸다.
"내 정보."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한지훈][북부 야전군 사령관]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상급)]
[스킬 : 기마술(상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50]
[민첩 167]
[내구 77]
[체력 64]
[마나 134]
(남은 포인트는 260pt 입니다.)
수없이 보아왔던 내 상태창.
가진 스킬들과, 능력치. 그리고 남아있는 여유 포인트들이 보인다.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서 나가려면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모아야 할까."
엘리스의 말에 따르면, 포인트를 무한히 모아 끝없이 능력치를 성장시키면 언젠가 신격을 얻는다 한다.
신격을 얻는다면 신인지 뭔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신이란 전지전능한 존재. 이 개같은 곳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모아야 할까?
적어도 천이나 만 단위는 아닐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인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 하자."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출 정도의 포인트를 수집하라니, 솔직히 답이 없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 득해진다.
그러니 일단 앞으로의 계획에 집중해야 할 터.
나는 남아있는 과업들에 대해 차 근차근 정리해보았다.
"먼저, 서부대륙 정벌."
협상동맹과의 전쟁이 완전히 끝 났다.
이제 제국은 남부대륙 대부분을 장악했으며, 남아있는 국가라고는 한때 슈베츠 왕국이라 불렸던 연방 자치령이 전부.
이제 제국은 타 대륙으로 진출해 야 한다.
그래야만이 내가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유물'을 수집할 수 있으니 .
약간의 휴식기를 거친 후엔 서부 대륙을 침공할 수 있을 터다.
"트웨인이 앞장선다면 그리 어렵 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겠지."
물론 제국은 전쟁으로 많은 국력을 소모했기에 제국군이 앞장서지는 못한다.
하지만 트웨인이 있다.
내 협상 덕분에 제국의 아래로 편입된 기마민족.
트웨인을 앞세워 서부대륙을 침공하고, 내가 그들에게 협조한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전쟁을 진행할 수 있을 터다.
트웨인은 강하고, 서부대륙은 본 디 그들의 고향땅이었던 곳이니.
녀석들의 터프함과 내지휘능력 이 결합된다면 손쉽게 서부대륙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슈베츠 왕국도 해방해야지."
물론 마이사의 염원도 잊지 않았다.
녀석은 지금 사관학교에 틀어박 혀 장교 육성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그녀가 장교육성 과정을 끝내고, 참모 교육과정까지 마친다면 제국군으로 복무할 수 있다.
나는 마이사가 참모가 되어 제국 군에 합류한다면 그녀의 염원인 연 방자치령 해방을 시도할 생각이다.
"연방과의 전쟁도 준비해야 하고."
더해 연방 또한 잊지 않았다.
연방놈들과는 언젠가 반드시 충돌할 것이다.
크루거 연방은 극도로 호전적인 국가. 놈들은 언젠가 타 대륙을 침공해 올 것이다.
그것이 중앙대륙일지, 혹은 남부 대륙일지 알 순 없지만 그때를 대비해 북부군을 충분히 단련시켜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이토록 많다.
하지만 사실, 내가 세운 계획들 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하나로 귀 결된다.
"유적을 모조리 모아야 해."
유적을 모아야 한다.
각 대륙에 잠들어있는 환상종의 핵들.
그것들을 모조리 모아 진정한 세계검을 완성한다면. 크라함을 비롯 한 흑마법사 놈들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몇 년간은 바빠지겠어."
서부대륙 정복, 연방 자치령 해 방, 연방과의 전쟁 준비, 그리고 유적 연구.
더해 북부 사령관직과 람셀 총리 직을 겸임하고 있으니 그쪽 일들 또한 바쁘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할 수 있다.
나는 이미 이 게임을 한번 클리 어 했던 몸이니 말이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일이나 하러 가볼까."
해야 할 일이 많으니 휴식을 즐 길 수는 없다.
나는 성큼 걸어 숙소 밖으로 걸 어나갔다.
어둑한 지하공간.
보이는 것이라고는 커다란 동공 으로 이루어진 동굴. 천장에는 종유 석들이 크고 길쭉하게 자라나 있고, 물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져 내린다.
습하고도 기분 나쁜 장소.
그곳을 두 명의 인영이, 기사들 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 이곳에 정말 유적이 있는건가."
걸어가는 인영의 가장 선두에 선 인물은 다름 아닌 연방 통령, 러셀 베티스 사인펠드였다.
푸른색 눈동자, 그리고 기다란 은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 인물.
그런 그의 읊조림에, 바로 옆에서 따라오던 인물이 입을 열었다.
- 그렇다, 러셀. 저 동굴 너머에 환상종의 핵이 있지.
이곳은 연방령 어딘가에 있는 지하 동굴이었다.
크라함은 말했었다.
각 대륙의 유물들, 환상종의 핵 들을 모조리 수집해야 한다고.
그리고 연방과 크라함이 당장 찾을 수 있는 핵이 하나 있었다.
동부대륙, 연방의 땅의 유물.
크라함은 유물의 위치를 알고 있었고, 그에 연방 통령과 함께 그것을 찾으러 가고 있는 것이다.
통령이 시선을 돌려 크라함을 바라본다.
'기분 나쁜 사내다.'
그의 푸른색 눈동자가 크라함의 옷차림을 훑었다.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암흑색 로 브로브에는 은은한 혹마나의 잔향 이 일어나 불길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으며, 강렬한 존재감이 주변을 뒤흔들고 있었다.
만약 통령이 드높은 격을 지닌 존재가 아닌, 마나나 오러조차 다룰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의 곁에서는 것만으로도 정신 이 침식돼 미쳐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통령 또한 별자리를 가진 영웅들 중 하나.
평범한 이들보다 드높은 격을 지 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통령은 크라함의 곁에 있음에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여, 크라함의 얼굴이 있을 위치로 향한다.
통령이 눈가를 찌푸렸다.
'이자를 진정 동맹으로 받아들여 야 하는 것인가.'
확실히 강한 무력을 지닌 인물이 긴했다.
벌써 수백 년은 살아온 사내. 흑마법사로서 하나의 학파를 이끌었 으며, 막대한 세력을 불렸다.
한때 제국을 멸망시킬 뻔하기도했다.
불길하지만. 그이상으로 유용한 인물. 그렇기에 통령은 크라함을 동 맹으로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막상 크라함이라는 인물을 직접 마주하자 절로 눈가가 찌푸려지 않알 수 없었다.
'신용할 수 없군.'
그만큼 크라함이 풍기는 기색은 불길했다.
주변에서 일렁이는 암흑색 기운은 둘째 치고.
후드를 푹 눌러써 보이지 않는 얼굴. 그리고 음영 속에서 일렁이는 붉은색 안광이라니.
도무지 신용할 수 없는 행색.
/하지만/때문에/ 러셀은 굳이 크 라함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크라함의 맨 얼굴을 본다면. 무 언가 자신의 신변이 위험해진다. 그리 직감했기에.
그렇기에 자신의 앞에서 후드를 눌러쓰고 있는 걸 허락한 통령이었다.
저벅, 저벅, 철그럭, 철컥.
통령과 크라함이.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연방의 기사들이 걸어나 간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드넓은 동굴을 왕왕왕 울려댔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 저기 있군.
저 멀리, 빛이 보였다.
동굴 속에서 주변을 빛으로 환하 게 메울 정도로, 강렬한 광채.
광채는 거대한 수정에서 일렁이 고 있었다.
마치 공성병기처럼 커다란 크기 를 가지고 있는 수정.
그리고 특이하게도, 수정은 바닥에 놓여있지 않았다.
무언가 특이한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인지, 휑한 동공 안에서 오연히 공중에 떠올라있다.
통령과 크라함이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들 또한 공중에 떠올 라있는 수정을 바라본다.
크라함이 입을 열었다.
- 저것이 바로 지즈의 핵이다.
"지즈라. 이름 참 이상하군."
통령이 크라함의 말을 받고, 크라함이 이어 말한다.
- 과거 환상종의 시대. 하늘을 호령했던 하늘의 제왕이다. 그 크기는 날개를 펼치면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고, 그 무력은 날갯짓 한번에 산맥을 소멸시킬 정도로 강대했지.
"과장이 심하군."
- 글세. 과연 과장일까.
크라함이 클클 웃는다. 마치 멍청한 인물을 나무라는 듯 짙은 비 웃음이 섞인 웃음소리.
- …저 핵으로 세계검을 만든다 면. 내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수 있게 될거다.
크라함이 양손을 뻗었다.
왼손에는 연산 보조구, 오른손에는 기다란 스태프를 쥐고.
그가 읊조렸다.
- 세계검을 완성하고 볼라바아 학파를 재건했을 그때! 중앙대륙과 남부대륙을 비로소 침공할 수 있다.
쿠르르르르르….
진한 암흑색 기운이 일어난다.
유물의 봉인이 파훼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