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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59화 (259/390)

259화.

각 대륙은 저마다 고유의 지형을 지니고 있다.

연방이 있는 동부대륙은 주로 기름진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었으 며, 서부대륙은 사막과 초원. 내가 활동하는 남부대륙은 춥디추운 설 원과 드높은 고산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엘프의 땅. 중앙대륙의지형은?

"… 숲이 더럽게 울창하네."

내가 니디아의 인도를 받아, 초 장거리 도약 마법으로 중앙대륙에 도착한 직후 한 말이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보이는 것이라 고는 온통 나무들 뿐.

크고 작은 수목들이 빽빽이 자리 해있고, 나무의 나뭇잎들 사이로 태양빛이 스며들고 있다. 울창한 정글 의 광경이 시야를 그득 메운다.

과거 지구에 살 적. TV에 나오 던 아마존과 흠사한 광경. 오직 정 글과 밀림으로만 이루어진 공간.

이 세계에서 마나와 자연력을 가장 진하게 머금고 있는 대지.

그것이 바로 중앙대륙 이었다.

"한지훈 씨. 저를 따라오세요."

니디아가 앞장서고,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를 뒤따라가며 중얼거렸다.

"역시 엘프의 마법은 대단한군."

내가 중앙대륙으로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니디 아가 발현했던 초장거리 도약 마법 덕분이었다. 그만큼 엘프의 마법은 인류의 마법보다 훨씬 진보해 있었다.

만약 인류의 도약마법을 사용했 다면 이토록 빠르게 중앙대륙으로 도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수 시간에 달하는 준비시 간을 갖추거나, 혹은 여러 번의 초 장거리 도약 마법을 운용해야만 비로소 타 대륙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니디아는 아무렇지도 않 게 대륙 간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운용했다.

엘프라는 종족의 잠재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니디아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주변의 풍광을 살핀다.

바스락, 저벅.

지면의 잔풀과 수풀이 밟히는 소리.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뭇가지 들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나뭇잎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은 강렬했다.

너무나도 온화한 광경.

' 평화롭다.'

나는 그리 느꼈다.

이곳에서는 군인도, 커다란 건물 도, 지긋지긋한 서류 무더기도 보이 지 않는다.

호흡할 때마다 신선한 공기와 청아한 마나가 폐부를 채워갔다. 피부 에는 은은한 자연력이 스쳐지나갔고, 산들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그동안 겪어왔던 고생들 따위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평화로운 공간.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았다.

'내가 불태웠던 땅이다.'

이곳, 중앙대륙 또한 이전 시나리오의 내가 불태워버렸었다.

대량의 군세를 동원, 흑마법사와 연합해 엘프들을 쓸어버리고 그들 의 숲을 불태웠었다. 세계수를 타락 시켰다. 이 대지 전체를 저주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그저 게임인 줄 알았기에 행했던 일.

죄악감은 들지 않는다. 이미 수없이 느껴 무뎌졌으므로.

다만 과거의 잘못을 다시 행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

그렇게 내가 복잡한 심경으로 걸 어가고 있을 때.

"… 이번에는 불태우지 않을 거라 믿어요."

니디아가 스쳐지나가듯 그리 말 한다.

아무래도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지."

엘프와 나는 동맹관계다. 그리고 나는 동맹을 배신할 성격은 아니다.

"엘프. 너희들이 먼저 배신하지 않는 한, 나와 제국은 언제까지나 너의 우방이 될 것이다."

다시는 엘프의 숲을 불태우지 않을 거다. 그리 결심했다.

나는 니디아와 함게 엘프의 숲 중앙, 세계수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저기가 세계수에요."

니디아의 말에 고개를 들어올려, 울창한 산림 너머를 바라봤다.

보인다.

마치 하늘까지 솟아있는 듯, 우 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영물. 온 대륙의 마나와 자연력을 순환시키는 존재.

"세계수."

그 커다란 나무 곳곳에서 푸른색 의 마나와 녹색의 자연력이 자연스 레 어우러져, 은은하고도 몽환적인 빛깔을 일렁이고 있다.

한참이나 세계수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니디아가 물어왔다.

"세계의 진실을 들을 준비는 됐 나요? 한지훈 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 엘프라…."

연방의 통령, 러셀 베티스 사인 펠드. 그가 어떤 보고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놈들과의 전쟁. 예상 외로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겠군."

그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보고서, 다름 아닌 중앙대륙 침공 계획 서였다.

통령이 전쟁국과 정보국의 참모 들을 시켜 만들게 한 물건.

보고서에는 연방이 중앙대륙을 침공했을 시 예상 시나리오가 담겨 있다.

한참이나 서류를 훑어보던 통령 이 쯧 혀를 찼다.

"빌어먹을 엘프년들."

엘프.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

오직 중앙대륙에 기거하며, 막대한 마나와 자연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장수종. 결코 인간의 역사에 간섭하지 않는 폐쇄적인 이들.

이것이 일반인류가 인식하고 있는 엘프라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통령은 알고 있다.

"놈들처럼 제멋대로인 종족이 없는데 말이야."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엘프라는 종족은 결코 깨끗하지 않다.

놈들은 인간의 역사 수면 아래에서 암약한다.

때로는 전쟁에 개입하고, 때로는 특정 세력을 키워주기 위해 활동한다. 하나의 국가를 세울 때도 있으 며. 인간의 정치에 간섭하기도했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엘프가 얼마나 많은 훼방을 놓았던가.

때문에 통령은 남부대륙 침공에 앞서 엘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엘프가 있는 한 연방의 전력이 온전히 남부대륙에 투사되지 못하 기 때문에, 그전에 제국의 동맹인 엘프를 쓸어버리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엘프라는 종족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참동안 서류를 바라보던 통령 이 눈을 감는다.

"엘프와 전쟁할 시, 연방의 국력 절반이 소모된다니."

과연, 엘프는 강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엘프란 막대한 자연력과 마나 친 화력을 타고난 종족이다.

놈들의 전사는 인류 기사들보다 강하며, 놈들의 마법사는 인류의 전투마법사들보다도 강하다.

그것도 엘프라는 종족의 말단 병력인 그들이 말이다.

더해 놈들에게는 엘븐 가디언들도 있다.

엘프 여왕의 측근이자, 각 계열에서 가장 드높은 경지를 달성한 이들.

놈들은 하나하나가 괴물 같은 무력, 그리고 드높은 격을 지니고 있다.

"…타 대륙 정벌이 이토록 힘들다니."

통령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당 연한 일이었다.

연방은 동부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초강대국.

연방의 국력이라면 남부대륙, 혹은 중앙대륙, 그중 하나의 대륙을 능히 집어삼킬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이 연합하고 있다.

정확히는 남부대륙의 제국과, 중앙대륙의 엘프가.

어느 한쪽을 친다면 다른 한쪽이 가세할 터.

연방의 국력이 제아무리 강력하다 하나, 두 대륙을 동시에 침공할 정도는 아니다.

"포기해야하나."

그렇기에 통령은 포기라는 단어 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세계정복에 대한 야욕이 충만한만큼 그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

허황된 꿈 때문에 자신의 모든 업적을 쓰레기로 만드는 짓거리를 하진 않는다.

그가 아쉬운 듯 읊조렸다.

"우리 연방에게도 엘프 같은 동 맹이 있었다면 타 대륙 정복도 꿈 은 아니었거늘."

연방에게는 동맹이 없다.

마주치는 모든 적을 해치우고, 병합해가며 팽창해온 국가였기 때문에.

단 한번의 패배도 없었다.

그렇기에 통령은, 그리고 과거 역대 통령들은 단 한번도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타 대륙 정벌이 좌절되고 나니 비로소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는 중 이었다.

"동맹… 동맹이 있었다면…."

그렇게 러셀이 나직이 읊조리고 있을 때.

우우우웅.

갑작스레 들리는 마나의 파동.

직후.

- 내가 동맹이 되어주지.

"… 무슨?!"

목소리가 들려온다.

질척하고도 기분 나쁜 음색을 지닌 목소리였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경악 하는 러셀 통령. 시선을 돌려 테이블 위 통신 수정구를 바라본다.

수정구의 색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곧 흑마법사의 마나색.

러셀은 직감했다.

'흑마법사가 통신에 개입하고 있다!'

흑마법사. 모든 지성체의 적. 마나를 오염시키고 영혼을 타락시키는 존재.

그런 흑마법사가 자신의 집무실 통신망에 개입해 왔다.

흑마법사의 목소리가 계속해 들려온다.

- 연방 통령. 러셀 베티스 사인 펠드. 내가 제안 하나 하겠다.

"근위기사! 마법사!"

통령이 크게 외쳤다. 그에 집무실 문들 벌컥 열고 들이닥치는 근위기사와 전투마법사들. 평소 집무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병력이었다.

그들이 날선 표정으로 물어왔다.

"통령 각하! 무슨 일입니까?!"

"마나통신에 정체불명의 마법사 가 개입했다."

"맙소사… 어떻게…."

통령의 대답에, 믿기지 않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마법사 들.

그만큼 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통신수정구의 보안을 파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안을 자랑하는 통령의 비밀회선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 나, 크라함과 동맹을 맺어라. 러셀.

스스로를 크라함이라 밝힌 마법사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잔잔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마치 이까짓 통신망 탈취 따위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는 듯.

기분 나쁜 목소리가 계속해 들려 온다.

- 러셀. 너에게 기회를 주지.

"마법사! 회선에 침입한 마법사 의 특정은 아직인가?!"

"… 찾을 수 없습니다! 이쪽의 탐색술식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습니다!"

"회선이 복구되지 않습니다!"

마법사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통령의 마나통신은 계속해 장악당 한다.

이를 으득 가는 통령.

그의 눈가에 분노의 기색이 어린다.

'감히 나를 능욕하는 것인가.'

흑마법사.

하찮은 놈들이다. 연방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다루는 그에게, 언제든지 토벌해 소멸시킬 수 있는 버러 지 같은 존재.

그런 흑마법사가 감히 자신의 통신망에 개입해왔다.

괘씸하지 않을 수 없는 일.

'흑마법사 놈. 반드시 찾아 죽이 겠다.'

통령은 그리 생각했고,

- 내가 있다면, 엘프의 중앙대륙 과제국의 남부대륙까지 모조리 네 손에 쥐어주지.

그런 그의 결심은 크라함의 말에 잠시 유예될 수밖에 없었다.

- 러셀 연방 통령. 이 세상의 진실. 알고 싶지 않나?

"이 세상의 진실이라니. 그게 뭐 지? 흑마법사놈- 드디어 이쪽의 말에 답해주는 건가. 기특하군.

클클클.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흑마법사의 낮은 웃음소리.

크라함이 말을 잇는다.

- 네놈에게 이 세상의 진실을 알 려주마. 네게 힘과 지략 또한 빌려 주마. 그렇다면 네놈은 세계 그 자체를 쥘 수 있을거다.

통령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수정구를 주시한다.

검은색으로 물들어있는 통신 수정구.

문득 통령이 물었다.

"네놈이 원하는 게 뭐지?"

철저한 보안을 지키고 있을 자신 의 통신회선조차 수월하게 장악한 흑마법사다.

분명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을 테고, 놈의 말이 허언을 아닐테니 들어볼 가치는 있을 터.

통령은 그리 추측했고, 그렇기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뭘 원하기에 내게 조력하는 거냐, 크라함."

그에 크라함이 대답했다.

- 한지훈의 시체.

한지훈 라이젠. 제국의 전쟁영웅. 막대한 무력과 고고한 지략을 가진 이.

- 놈을 죽이고, 그 시체를 내게 가져다 다오.

그 한지훈의 시체를 원한다고 말이다.

크라함의 질척한 목소리가 보다 중후해진다.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기운.

그의 목소리가 통령의 정신을 울린다.

- 네 녀석에게 조력하지. 세계의 진실, 한지훈의 정체, 그리고 중앙 대륙과 남부대륙을 집어삼킬 방법 까지 모조리 알려주겠다. 대가를 치 룰 용의가 있다면 말이야.

"그대가라는 것이 한지훈의 시체인가."

- 그렇다.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한지훈.

분명 뛰어난 인물이긴 하나, 그 의 시체를 어디에 사용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지만 조력에 대한 대가치고는 몹시나 싸다.

더해 한지훈 또한 언젠가 반드시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던 인물이었으니 .

나쁘지 않은, 아니 오직 자신에 게 이득만이 있는 거래다.

통령은 그리 생각했고.

"… 일단. 그 세계의 진실이란 것 부터 들어보지."

그렇기에 그는 크라함의 제안을 수락했다.

클클클. 다시금 불길한 웃음소리 를 흘리는 크라함.

- 그래…. 네놈에게 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마.

수정구에서 질척한 목소리가 흘 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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