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전후처리가 시작되었다.
전후처리 과정은 성대하고도 화려했다.
"와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위대한 제국을 위하여 !"
동부전선에서 돌아온 수만의 병사들과 군관들이 제국 수도를 통과하며 개선식을 거행했다.
제국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함 성을 내지르고 꽃잎을 뿌려댔다. 군 악대의 음악소리가 함성소리에 묻 혀서 들리지 않는다.
이전에 경험했던 개선식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전 개선식에서는 그저 하나의 전선을 끝낸 것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이 지긋지긋한 협상동 맹과의 전쟁 그 자체가 끝난 것 이 었으니까.
제국민들은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는 것에, 그리고 제국이 승리했다는 것에 기쁨에 겨워 함성을 내질 렀다.
그들이 어떤 인물의 이름을 연호했다. 개선식 행렬의 가장 선두에 있는 인물의 이름이었다.
"한지훈 군단장 만세!"
"제국의 영웅이시여!"
다름 아닌 내 이름이었다.
이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 하듯이 이번 전쟁에서 가장 두드러 지는 활약을 펼친 것이 바로 나였 으니까.
나는 제국의 영웅이 되어 온 제국민들의 신임과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다그닥, 다그닥.
화려한 팔두마차가 나아가고, 기사와 병사 행렬이 뒤따른다. 제국민 들의 함성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나는 마차 밖, 빽빽하게 나와 있는 제국민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읊 조렸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전쟁이 끝 났군요, 황제 폐하."
시선을 돌려 마차 안 맞은편에 앉아있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제국 황제 아르테니아. 그 또한마차의 차장 밖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나는 그에게 이어 말했다.
"마침내 평화를 되찾은 것입니다."
전쟁이 끝났다.
제국은 공국을 분쇄했고, 카렌을 흡수했으며, 트웨인을 제후국으로 편입시켰다. 코르자카에는 괴래정부 를 세웠다. 람셀을 병합시켰다. 침공해오는 연방군을 물리쳤다.
마침내 남부대륙을 거의 통일했다.
이제 남부대륙에 남아있는 국가라고는 제국, 그리고 과거 슈베츠 왕국이라 불리웠던 연방 자치령 하나뿐.
우리는 모든 외적을 쓰러뜨려 거대한 국가를 이루기 시작했다.
국토는 두 배 가까이 팽창했으 며, 인구수 또한 그에 비례해 늘었다.
추후 성장을 위한 광활한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평화의 시기를 거치며, 전쟁으로 소모되었던 제국의 국력을 다시금 끌어올리기만 하면 될 뿐.
하지만 나도, 황제도 알고 있다.
"모처럼 얻은 평화는 길지 않겠지."
"그렇습니다. 언젠가 다시 전쟁이 일어나겠지요."
"기껏해야 몇 년 정도 쉴 수 있겠군."
전쟁이 끝나 평화의 시기가 도래 한들, 머지 않아 다음 전쟁이 일어 날 것이다.
아직도 연방의 야욕은 멈추지 않았으니까.
"한지훈. 놈들은 다시 남부대륙을 노릴 거다. 놈들의 영토욕심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크루거 연방.
이 세계의 가장 강력한 국력을 지닌 국가.
극도로 호전적이다.
놈들은 가진 영토를 늘리기 위해 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하는 놈들이다.
연방 또한 이번 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복구한 뒤 다시금 남부대륙을 침공해 올 터다.
"대비해야만 해."
황제가 그리 말하며 시선을 이쪽 으로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황금색 눈동자.
화려하고도 찬란하다.
마치 일국의 정상이란 이래야만 한다는 듯, 한없이 고고하고도 위엄 있는 시선을 가진 인물.
그가 나직이 말해온다.
"그래서 말이다, 한지훈. 나는 자네를 북부 야전군 사령관으로 임명 하고자 한다만."
"… 북부 야전 사령관 말씀입니까."
"그렇다."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살짝 미 간을 구겼다.
"음. 전혀 놀라진 않는군. 모처럼 자네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 만."
"사실, 내심 예상하긴 했었습니다."
나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데이비드 사령관이 국방성 장관 으로 영전되고, 북부 야전사령관 자리가 공석이 되었는데 . 저 외에는 다른 인물이 없지 않습니까?"
"놀라는 척이라도 해주지 그러나."
"이런. 지금이라도 놀라보겠습니다."
내 이죽거림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벅.
한참이나 나아가고 있던 마차가 멈췄다. 마침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시선을 돌려 차장 밖을 바라보니 역시나.
"대광장이군요."
도착한 곳은 황궁 앞, 대광장이었다.
커다란 동상과 승전비가 자리해 있는 드넓은 공간.
그곳에 거대한 단상이 설치되어 있고, 민중들이 대광장을 빽빽이 메 우고 있었다.
덜컹.
문이 열린다. 황제가 싱긋 읏으 며 말한다.
"자, 할 일이 많아. 먼저 승전식을 거행하고, 그다음 자네의 북부 야전사령관 임명식과 람셀령 총독 임명식, 그리고 승작식까지 진행해 야 하니 말이야."
그가 마차 밖으로 내린다. 나 또한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걸어 나 왔다.
도열해 있는 기사들.
펄럭이는 제국기.
그 너머 보이는 무수한 인파와, 환호하는 민중들의 목소리까지.
"자, 가자."
황제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앞서간다. 나 또한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승전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북부 야전사령관이 되었고, 제국 공작이 되었으며, 람셀의 총독 으로 임명되었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업적 달성!]
['업적 : 야전 사령관'을 달성했습니다! 포인트가 수여됩니다.]
[정산 포인트 : 1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260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270pt입니다.)
포인트를 수령했다.
검은색 로브를 입은 인물 하나가 방안에 있다.
그가 창밖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대광장의 전경이 보이고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제국의 민 중들. 그들이 크게 환호함과 동시에 단상 위로 어떤 인물들이 걸어 올라간다.
대광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지금부터 승전식을 거행하겠다.
제국의 황제 아르테니아의 목소리였다.
고귀하고도 경건한 목소리.
과연, 저것이 바로 제국의 황제 라는 것인가. 그의 음성에는 힘이, 시선에는 단호함이, 전신에는 위엄 이 드러나고 있었다.
칙칙한 암흑색 로브를 뒤집어 쓴 그와 상반되게 너무나도 찬란한 모습.
검은색 로브 입은 인영의 시선이 황제의 옆으로 옮겨간다. 그러자 그곳에도 어떤 인물이 보였다.
- 훈장을 수여하겠다. 한지훈 라 이젠, 북부 제13군단 군단장. 앞으로.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를 가진 인물이었다.
한지훈. 제국의 영웅.
이제 남부대륙에서는 그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 귀하는 협상동맹과의 전쟁에서, 제국을 위해 헌신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검은색 로브를 입은 인영이 나직 이 읊조린다.
- 한지훈….
그가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것은 빽빽하게 아로새겨져있는 문신과 상처 자국들.
붉은색 안광.
기괴하게 비틀려있는 입가.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 네놈이 승리했다 여겼겠지. 한지훈.
인영이 품속에서 어떤 단검을 꺼내들었다.
암흑색 기운이 일렁이는 단검.
빛조차 반사하지 못할 정도로, 새카맣다.
- 하지만 아직이다, 한지훈. 나 크라함은 반드시 네놈의 격을 빼앗을 것이다.
그는 바로 크라함이었다.
흑마법사 학파 볼라바아의 종주. 흑마법으로서 고위의 격을 달성한 지성체. 위대한 힘을 지닌 대마법사.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과거의 이야기였다.
크라함은 한지훈의 격을 빼앗기 위해 싸웠고, 패배했다.
본래 운용하고 있던 육신을 파괴 당했다.
볼라바아 학파가 소멸해버렸다.
가진 격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지금의 그는 다 부서져가는 몸뚱이와 약간의 흑마나밖에 없는 일개 흑마법사에 불과하니.
크라함이 창문 밖, 한창 승전식 이 진행 중인 단상 위를 노려보며 중얼거린다.
- 아직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기에는 그동안 들여왔던 노력이 너무나도 아까웠기에, 그의 기나긴 인생 동안 원해왔던 일이기 에.
한지훈의 격이 그에게 너무나도 필요하기에.
크라함이 암흑색 단검을 그러쥔다.
- 내가 다시 네놈의 앞에 등장하 기 전까지 여유를 즐겨놓는 게 좋을거다. 한지훈.
화르르륵.
검은색 불길이 피어오르고, 그의 몸이 점차 사라져간다.
어둑한 방안. 다시금 적막이 차 올랐다.
승전식, 그리고 내 직위 수여식 이 끝났다.
나는 황궁의 숙소로 돌아왔다.
승전식 기간 동안 쓰라며 황제가 직접 마련해준 공간.
"더럽게 화려하구만."
나는 내 숙소를 둘러보며 그리 평했다.
드넓은 방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커다란 샹들리에.
벽에는 미술품들과 장식품 따위 가 걸려있고, 안쪽에는 커다란 침대 를 비롯한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잘 배치되어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내 격에 맞춰서 숙소를 배정해 준 건가."
사실, 이전에도 황궁에서 며칠간 기거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얻었던 숙소도 화려하고 도 넓었지만 이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그때 당시에는 내 직급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명실상부한 제국의 전쟁영 웅이며, 공작위를 지녔고, 더해 북부 야전군 사령관 겸 람셀령 총독이 되었다.
말 그대로 이제국의 최고위 귀족이 된 것이다.
그러니 그에 맞춰 보다 훌륭한 숙소를 제공해줄 수밖에.
풀석.
커다란 침대에 대자로 누우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도 출세했구만."
처음 이 세상에 끌려들어 왔을 때, 일개 병사로 전장을 기어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함께하던 이들을 떠올려본다.
카일, 아르덴을 비롯한 일반 병사들. 내 상급자였던 그레드 천인 장. 그리고 백인장 시절 부관으로 합류했던 엘락 등.
나는 어떤 사실을 문득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들을 만나본지 도 꽤나 오래되었는데 ."
초창기에 함께하던 이들은, 내가 출세하고 보다 고위직으로 올라서 면서 점차 만날 기회가 뜸해졌다.
녀석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 나.
아직도 무사할는지.
"조만간 한번 만나봐야겠어."
지금까지는 전쟁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녀석들을 만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한동안은 여유가 있을 터이니. 녀석들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내 직급이 너무나도 드높아 졌지만, 그럼에도 내 친우들이라 부 를 수 있는 녀석들이니 말이니.
언제 한번 찾아가야겠지.
내가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똑똑노크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나는 눈썹을 치켜 떴다.
방금 전 노크소리가 문이 아닌 창문에서 들려왔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고, 그때.
드르륵.
창문이 열린다.
나는 불만어린 눈으로 새로이 등장한 인영을 바라봤다.
"니디아. 어째서 창문으로 다니는 거지?"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니디아였다.
내게 조력하는 엘프 여왕, 그녀가 사뿐한 발걸음으로 방안으로 들어온다.
창문을 넘어서 말이다.
내 물음에 그녀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예전에도 이렇게 창문으로 들어 오지 않았나요?"
"그때는 황제가 너희 엘프의 도움을 몰랐을 때 아니었나? 이미 황제의 허락을 맡은 상태이니 굳이 창문으로 몰래 다닐 필요는 없을텐 데 말이야."
"뭐, 몰래 와야 할 이유가 있어 서 말이에요."
드르륵. 열린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 창가를 가리는 니디아.
그녀가 잠시 이쪽을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한지훈 씨. 아니, 이름 없는 별."
그녀의 말에 나는 표정을 가라앉 혔다.
이름 없는 별이라는 호칭. 분명 무언가 중요한 용건이 있을 때 그녀가 나를 부르는 말이다.
니디아가 내게 알려왔다.
"전 여왕님께서 그대를 찾으세요. 저랑 같이 중앙대륙으로 잠시 가줬으면 하는데요."
아무래도, 전대 엘프 여왕 엘리 스는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니디아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보이며 말한다.
"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줄 때가 되었다고 하시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