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도시가 부서지고 있다.
이곳저곳에 틀어박히는 광역마법. 파괴되어 우수수 무너지는 건물 파편들이 튀어 올라 비산한다.
기사들이 전투마를 몰고 적 보병대를 휘젓는다. 제국군 보병대가 기 동하며 적을 몰아쳐간다.
연방의 교두보, 덴터에서 일어나 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높다란 내성 최상층에서 그 경관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속이 시원하군 그래."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패자는 연방, 승자는 제국이었다.
시선을 돌려 내 옆에 무릎꿇려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안 그래? 하밀 볼리바르 사령관."
"… 한지훈."
내 옆에는 하밀이 포박되어 완전히 제압당해 있었다.
꽤나 영락한 모습이다.
하밀 볼리바르. 연방 원정군 총 사령관.
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던 대장 군이자, 연방의 고위 귀족이었던 인 -물하지만 지금은 사로잡힌 패장에 불과하다.
놈이 지휘하던 연방군의 수뇌부는 전멸해버렸고, 하밀 본인은 이쪽 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지금 놈의 군대는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사냥 당하는중.
놈이 이쪽을 노려보며 말한다.
"비겁한 놈. 이미 끝난 전쟁이었다. 우리 연방은 남부대륙에서 철수 하려 했단 말이다."
"그래서?"
"네놈은 단 한명의 병사라도 더 많이 참살하기 위해, 철수하는 우리 군을 쳤다."
나는 피식 웃었다.
패자의 변명만큼 웃긴 것도 없기 에.
"네 녀석에게는 인간의 도리라는 것조차 없는 것인가! 한지훈!"
하물며 그 패자가 인간의 도리 운운하고 있으니 .
나는 하밀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타오르는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쟁을 일으킨 연방이 인간의 도리를 논한다니. 참 웃기는군 그래. 하밀."
만약 내가 제시간 안에 연방의 교두보를 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연방군이 끝없이 상륙 해오고, 제국이 밀렸다면.
불타오르는 건 이곳 연방의 교두보 덴터가 아닌, 제국 수도가 되었을 터다.
"… 나를 어찌할거지? 한지훈."
내 말에 무어라 반박하기 힘들었 던 것일까.
말을 돌리는 하밀. 그에 나는 한번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뻔하지 않나. 사로잡은 적국의 고위 장성. 많은 기밀 정보들을 얻 어낼 수 있고, 제국민의 사기를 드 높이는 데도 제격이지."
"… 모든 정보를 빼먹고 처형할 생각이군."
"정답이야."
과연, 눈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닌 것인가.
하밀은 자신이 이미 죽은 목숨이 라는 것을 확실히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들기며 고했다.
"하밀. 너를 제국 수도로 보낼거다. 그리고 그곳의 정보성에서 네놈 이 지닌 모든 고급정보를 추출해 낼 거고. 그이후 처형대 위로 올 릴거야."
연방의 원정군 사령관이란 몹시 나 높은 직책이다.
제국으로 치자면 야전군 사령관과도 같은 등급의 직위.
그런 하밀이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인간일 수 밖에.
하밀이 고개를 축 늘어뜨린다.
"결국 고향땅은 밟아보지 못하고 죽는군…."
녀석의 한탄어린 말.
나는 하밀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는, 파괴되고 있는 도시를 다시금 주시한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 죽어나가는 연방의 병사들.
폭발과 굉음이 터져 나오고, 불길이 치솟는다. 도시 이곳저곳에 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연방의 남부대륙 원정은 좌절되었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몇 년 동안, 연방은 남부 대륙을 탐내지 않겠지."
이번 원정으로 인해 연방은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대량의 군사물자. 20만이 넘는 인명. 막대한 전비.
그리고 상처 난 자존심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은 벌었어."
연방은 거대하고 강력하다.
단언하건데, 놈들은 몇 년 안에 다시금 타 대륙을 노릴 터다.
이 정도의 손실 따위, 고작 몇 년 이면 금세 복구해버릴 정도로 연방 은 강대하니까.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을 벌었다.
추후 연방과 본격적인 전쟁을 벌 일 때 만반의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피식 웃었다.
문득 어떤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에.
"내 총독직 자리는 잘 만들어 놨 으려나."
이번 전쟁이 끝난다면. 나는 제국 동부, 람셀 총독령의 총독이 되 기로 약조되어 있다.
물론 내가 얻는 직위는 총독자리 뿐만이 아니었다.
"야전군 사령관. 될 것 같은데."
건너건너 듣자 하니, 북부 야전 군사령관인 데이비드 컴벨 하비에 르가 공석인 국방성 장관 자리로 영전된다 한다.
즉, 북부 야전군 사령관 자리가 비어있는 것이다.
곧 후임자를 결정할 터.
그리고 지금 떠도는 소문에 의하 면 내가 유력한 북부사령관 후보라 한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가진 능력도, 전공도. 나이상의 군관은 없었으니까.
"나밖에 적임자가 없으니 . 뭐, 내가 되겠지."
싱긋 웃었다.
"드디어 게임의 후반부에 들어섰 어."
야전군 사령관이 되었다. 총독직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제국이 남부대륙을 거의 통일했다.
남은 것은 타 대륙들을 하나씩 집어삼키거나 병합시킬 뿐.
콰르르르르릉…!
저 멀리서 폭음이 들려온다. 전투마법사들이 덴터의 부두와 보급 창을 파괴하는 소리였다.
굉음이 들려온 직후.
- 띠링! 띠링!
알림음이 연달아 울리며,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서브 퀘스트 - '덴터 부두 파괴'를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60pt]
[추가 정산 포인트 : 3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110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200pt입니다.)
[서브 퀘스트 - '덴터 보급창 파 과'를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40pt]
[추가 정산 포인트 : 2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200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260pt입니다.)
나는 퀘스트를 완료했다.
260포인트를 모았다.
"…그래. 전멸이라고."연방 통령의 집무실.
본래는 화려하고도 호화로운 장식품으로 가득 차, 극도로 사치스러 운 분위기를 풍기던 공간.
하지만 그 공간은 어둠과 적막에 휩싸인 채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진정 원정군이 전멸했단 말이지. 제대로 확인 해봤나?"
통령이 어떤 비보를 받았기 때문에.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통신을 맡고 있는 군관의 목소리였다.
- …송구합니다. 통령 각하. 연방 의모든 병력은 전멸 혹은 와해. 패잔병들을 뿔뿔이 흩어져 각개격파 당하고 있으며, 최고 지휘관인 하밀 볼리바르 원정사령관은 생포 당했습니다.
"믿기지 않는군."
군관의 목소리도, 그리고 연방 통령의 목소리도 축 가라앉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연방이 패배하다니."
그들이 패배했으므로.
연방의 역사에서 패배란 없었다.
강대한 국력과 드넓은 영토를 지닌 초강대국, 크루거 연방.
연방은 개국 이후 그 어떤 전쟁에서도 패배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타국과 전쟁한다면 반드시 수도 를 불태웠고, 내란이 일어난다면 잔 혹하게 진압했다.
허나 이번에는 패배하게 되었다.
대량의 병사들을 투입했음에도. 막대한 전비를 쏟아 부었음에도. 자신의 측근 중 한명인 하밀을 직접 사령관으로 보냈음에도.
패배했다.
분명 본래 계획대로라면 승리했어야 할 터인데.
연방 통령이 주먹을 들어올린다.
"한지훈…. 놈 때문에!"
통령이 주먹으로 수정구를 내려 치고.
콰앙! 쨍그랑!
수정구는 단번에 깨져나갔다.
날카로운 파쇄음이 울리고, 파편 이 비산한다.
통령의 주먹에 유리파편에 의해 붉은색 생채기들이 아로새겨졌다.
허나 그럼에도 통령은 분노를 추 스르지 않았다.
콰앙! 쾅! 콰앙!
피가 철철 흐르는 주먹으로 재차 책상을 내려칠 뿐.
한동안 주먹을 휘두르던 그가 격 노한 기색으로 크게 외쳤다.
"일개 군관 하나가 우리 연방을 가로막다니!"
한지훈만 없었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을 터였다.
연방군은 덴터에 계속해 상륙했을 터고, 도합 백만에 이르는 막대 한 전력을 투입했을 터.
못해도 연방은 남부대륙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여겼었다.
하지만 한지훈이 연방을 가로막 았다.
그는 군대를 기동해 람셀-연방 연합군을 섬멸했을 뿐만 아니라, 연 방의 교두보였던 덴터 마저 확실히 파괴해버렸다.
사실상 연방의 남부대륙 침공이 수년 전으로 퇴보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치욕적인 일.
"… 제기랄."
통령은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고, 자신의 손아귀를 감쌌다.
하얀색 손수건이 조금씩 붉게 물 들어간다. 그와 함께 통령의 격노한 기색 또한 조금씩 가라앉아간다.
"역시. 남부대륙 침공 전 놈들 부터 손봐야 하는가."
통령의 은회색 눈동자가 냉철을 되찾는다.
가라앉는 분노. 되돌아온 이성.
그가 작게 읊조렸다.
"한지훈. 그리고 엘프."
남부대륙 침공에는 이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한지훈의 능력은 범상치 않다.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제압했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용병 술로 전황을 단숨에 반전시킨다.
하지만 남부대륙 침공 시도가 좌 절된 지금으로썬, 한지훈을 어찌 할 방법이 없다.
이전처럼 대량의 군대를 상륙시키는 방법으로 남부대륙에 접근한 다면, 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된 한지훈이 그들 연방군을 상대하게 될 터이니.
이전보다도 더 심각한 피해를 입 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중앙대륙이라면 다르다.
"중앙대륙은 남부대륙보다 병력을 상륙시키기가 보다 수월하지."
똑같이 해로를 통해 상륙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거리가 다르다.
동부대륙에서 남부대륙으로 상륙 하는 것 보다, 중앙대륙으로 향하는 것이 더욱 수월했던 것이다.
하지만 통령은 그동안 중앙대륙을 침공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곳은 엘프의 영역이었기에.
인류에 간섭하지 않고, 오직 세계수와 자연을 수호하는 온화한 종족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엘프는 한지훈 편에 붙었다. 그리하여 제국에 조력하고 있다.
치지 않을 이유.
없다.
"… 남부대륙 침공 전, 엘프부터 정리해야겠어."
물론 지금 당장 원정대를 조직할 수는 없다.
이미 연방은 막대한 전비를 소모 했고, 때문에 또다시 원정대를 조직 하기에는 부담이 되었기에.
하지만 단 몇 년.
몇 년만 있다면 연방은 모든 손실을 복구할 수 있다.
이번 전쟁에서 잃었던 병사와 물 자들을 충원할 수 있다. 다시 대륙 밖으로 강대한 전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가 나직이 읊조린다.
"두고 봐라, 한지훈. 네놈의 동맹 엘프. 그리 머지않아 멸망시켜주 마."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남부대륙을 치기 전, 방해꾼인 엘프부터 정리한다.
그리 결심한 연방 통령이었다. 연방이 회복기에 진입한다.
"드디어 시나리오가 중반부를 마치고, 후반부에 들어섰네요."
세계수 앞에 있던 한 여인이 그리 읊조렸다.
여인은 신비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길게 긴 호수색 머리카락. 투명 한 피부. 그리고 뾰족하고도 기다린 귀를 지니고 있는 여인.
그녀는 두터운 안대를 하고 있었다.
"슬슬 이름 없는 별을 이곳, 중앙대륙으로 부를 때가 되었나요."
엘리스였다.
과거 한지훈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격과 힘을 희생했던 여인.
한때 엘프여왕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힘을 잃고 휴식 중인 인물이었다.
그녀가 고개 돌려 자신의 옆을 향했다.
그곳에는 현 엘프여왕이 자리해 있었다.
"니 디아."
니 디아였다.
엘븐 가디언 시절 한지훈과 보조 를 맞춰왔었고, 지금은 엘프여왕이 되어 모든 엘프를 통솔하고 있는 여인.
전 여왕인 엘리스가 현 여왕 니 디아에게 지시한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한지훈 씨를 불러주세요. 이제 이름 없는 별에게, 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줄 때가 되었네요."
엘리스의 말에 니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