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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56화 (256/390)

256화.

웅혼한 충격파가 드넓은 전장 전 역을 휩쓸었다.

후드드득.

사령부 천정에서 먼지가 떨어져 내리며, 서류가 팔랑이며 뒤섞이고, 창문이 깨져나갔다.

방금 전 다수의 광역마법이 성벽에 격돌한 여파로 일어난 일이었다.

지면에 몸을 숙였던 연방 참모들 이하나둘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사령관 각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하밀 또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천장의 먼지가 하밀의 전신을 더 럽혀, 깔끔했던 제복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제복을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꽤나 강력한 충격파였군…. 제국 의 마법사. 연방 마법사들에 비해 숙련도가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

사실 하밀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너무나도 거대한 소음과 충격파였다.

직접 마법이 발현되는 경관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성벽에서 멀리 떨 어져 있는 이곳까지 그 여파가 미 칠 정도였다니.

제국 전투마법사들의 수준이 결코 연방에 밀리지 않을 정도라 여기기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연방의 전투마법사들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오백 명.

단 오백의 전투마법사들로 이 정도의 화력을 발할 수 있을 정도라 니.

예상외였다.

'제국 마법전력의 경계도를 한 단계 상향시켜야겠군.'

하밀이 내심 그리 생각하며 몸을 추스르고 있을 때였다.

- 사령관 각하! 보고, 보고 드립 니다!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악과 당혹이 뒤섞인 휘하 참모 의 목소리.

하밀이 수정구를 주시하고, 수정구에서는 이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 뭐'?!"

참모의 보고에, 하밀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므 로 하밀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벽이 부서진다니?! 그게 가능 한 일인가?! 불가능해! 이곳 덴터 의 성벽은 고작 한번의 마법에 무 너져 내릴 정도로 부실하진 않단 말이다!"

본래 성벽이란 파괴하기 몹시나 힘든 구조물이다.

외부의 튼튼한 석제 벽돌들. 그리고 충격을 완화하는 내부 흙더미 들까지.

전략적 요충지라는 덴터의 특성 상 이곳에 설치되어있는 성벽은 유 독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본래라면 무너뜨리기 위해 하루 종일 고화력 마법을 퍼부어야 할 터.

하지만 무너져 내렸다.

고작 단 한번의 마법으로 말이다.

이유는 곧장 알 수 있었다.

- 적의 마법이, 성벽의 취약한 부분에 집중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광역마법. 괜히 광역마법이 아니다.

대량의 마나를 투입한 공격마법을 드넓은 전장 곳곳에 흩뿌려 일반 전력을 소멸시키는 마법.

말 그대로 광역을 범위로 하는 마법인 것이다.

헌데 제국군은 그 광역마법 다섯 개 분의 화력을, 성벽의 단 한 곳에 오롯이 집중시켰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 정도로 거대한 마법을 관제할 정도의 마법사 따위, 하밀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하밀의 부정 어린 생각과는 달리.

- 각하! 적 보병대가 무너진 성 벽을 넘어오고 있습니다!

성벽은 무너져 내렸고, 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예비대를 운용해 막아보겠….

- 지휘할 수 없습니다! 통신이 끊겼습니다!

- 기사! 기사들을 불러주십시오!

보고가 밀려 들어온다.

지금 전장은 혼돈에 휩싸여있다.

갑작스레 무너진 성벽, 훅 일어 난 흙먼지를 꿰뚫듯 돌진해오는 적의 병력.

연방군은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 했고, 제국군은 혼돈을 틈타 밀고 들어온다.

순간 하밀은 자신의 등허리에 불길한 감각이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한지훈. 놈이 모두 계획한 일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하밀은 마침내 한지훈의 전술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보병대를 미리 전진시키고, 보병대가 성벽 앞에 당도할 때쯤 마법사들로 하여금 성벽을 파괴한다.

보병대는 성벽이 무너짐과 거의 동시에 내부로 진입한다.

성벽 붕괴로 혼돈에 휩싸인 예비 대는 기민하게 반응할 수 없을 터.

제국군이 이를 틈타 덴터로 침입 해온다.

적의 교두보가 만들어진다.

다만 침입해오는 것은 적의 보병대뿐만이 아니었다.

- 기사! 적의 기사들이 성벽 잔 해를 넘어옵니다!

- 기사단이 필요합니다! 증원을 보내주십시오!

- 예비대가 갈려나갑니다!

- 각하!

기사들이 덴터 내부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 적의 기사들이 아군의 전열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사령부 방향입 니다!

- 놈들의 목표는 사령부입니다!

베르겐이 이끄는 오천의 기사들.

연방군 수뇌부를 노리고 있다.

하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두두두두두.

기사들이 달려 나간다.

커다랗게 울리는 말발굽 소리. 드높게 치솟아 펄럭이는 제국기. 그 들 전체를 휘감아 반짝이는 듯한 오러의 광휘까지.

제국의 기사.

그것도 무려 오천에 달하는 대군 이달려나가고 있다.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한 중년의 기사였다.

하얀색 머리카락에, 반짝거리는 전신갑주에는 붉은색 킬마크가 뻑 빽이 아로새겨져 있는 인물.

베르겐 라 프랜시스.

그가 지금 제국 기사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베르겐이 전투마를 타고 달려가는 와중, 수정구를 쥐어 들고 말했다.

"한지훈. 여기는 베르겐이다. 성 벽 너머 덴터로 진입했다."

- 좋아.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물론 한지훈 라이젠의 음성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 해야 할 일. 잘 알고 있겠지 베르겐?

"물론이다. 한지훈."

고개를 주억이는 베르겐.

화르르르륵!

그가 검을 치켜들고, 더더욱 오 러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적의 사령부를 치고, 수뇌부를 몰살시켜야지."

- 맞다. 베르겐, 현장 전투는 네 가지휘해. 나는 경로를 지시하지.

두두두두두두.

베르겐이 돌진하고, 기사들이 뒤 따른다.

수정구에서 한지훈의 방향 지시 가 시작되었다.

- 우측에 적 기사들이 측면을 노리고 돌진해오고 있다. 교전하지 말 고 회피하는 게 좋겠어. 좌측으로 선회해.

- 적 보병대가 발리스타를 꺼냈다. 그전에 모조리 쳐부숴야겠지. 전방으로 돌진해. 발리스타를 쏘기 전에 적 보병대 전열을 갈아버려.

- 오른쪽을 봐라. 적 천인장이 있을거다. 그쪽을 밀어버린다면 전 열 돌파가 더욱 수월할거야.

한지훈의 지시에 따라 베르겐은 고삐를 움직이고, 목청을 돋웠다.

기사가 적의 전열을 갈아버리며 종심을 돌파해갔다.

때로는 적의 기사들을 회피하고, 때로는 보병대를 돌파하며.

순식간에 파고든다.

돌파는 너무나도 수월했다.

마치 텅 빈 진공으로 빨려 들어가듯.

제국 기사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을 돌파해갔다.

모두 한지훈의 방향 지시 덕분이었다.

베르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대단하다, 한지훈.'

한지훈의 지시는 극도로 정교했 으며 그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한지훈은 현장의 상황을 너무나 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적과 아군의 움직임. 기사들의 위치. 가로막는 적과 그들을 피하거 나 돌파할 수 있는 지점까지.

이 현장을 직접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모조리 알려줬다.

베르겐은 내심 생각했다.

'한지훈이 적이 아니라 다행이 군.'

하늘에서 고고하게 지상을 내려 다보듯, 전장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약점을 귀신같이 파고들고, 아 군의 취약점을 끝없이 보완한다.

이런 대단한 인물을 만약 적으로 만났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한지훈은 명백한 아군이 자 제국의 충신이었고 덕분에 기사 들의 사기는 끝없이 상승하고 있다.

베르겐이 외친다.

"적의 사령부는 코앞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적의 예비대를 갈아버 려라! 놈들의 어줍잖은 전열을 돌파하라!"

파앙!

그의 장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붉은색 핏물이 퍽 튀어 오른다.

적 천인장의 목이 떠오르며 혈액을 사방에 흩뿌렸다.

"제국 기사의 위엄을 보여라! 연방놈들에게 우리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는거다!"

사령부는 코앞이다.

기사들이 연방 병사들을 끝없이 죽이며 전진했다.

"사령관 각하! 대피하셔야 합니다!"

혼란스러운 연방 원정대 사령부. 고위 참모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해왔다.

"기사들이 우리군의 종심을 뚫고 쇄도해오고 있습니다!"

"곧 이곳 사령부까지 당도할 것 입니다!"

"각하! 각하께서는 저희 원정대 의 최고지휘관이십니다! 적에게 신 변을 빼앗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어서 대피하십시오!"

피하라고.

최고지휘관인 하밀 볼리바르, 그대만은 목숨을 보전해야 한다고 말이다.

합당한 말이었다.

하밀 볼리바르는 연방 원정군의 수장이자, 고위 귀족이며. 통령의 측근이었다.

이곳 덴터에 있는 병사 및 장교 들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물.

그러니 죽게 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서 연방 본 토로 보내야한다. 그리고하는 휘하 참모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휘하 참모들의 말에 하밀은 나직이 대답했다.

"대피하라니. 어디로?"

그의 말에, 대피를 요청하는 참 모들은 하나같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원정대는 완벽히 포위당해 있는 상황이었다.

육지에서, 바다에서.

지상에서는 적의 병력이 도시를 포위하고 있다.

수만에 이르는 적의 병력이 바로 코앞에 있고, 그이상 20만에 이르는 병력이 동부전선에서 이곳으로 행군중이다.

바다에서는 적의 전투함대가 해 상을 봉쇄하고 있다.

놈들이 덴터 인근 해역을 감시하 며,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틈조차 만들지 않고 있다.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것이냐?"

그에 하밀은 재차 물을 수밖에 없었다.

육지로 간다면 또 다른 적의 부대를 조우할 뿐이요. 바다로 간다면 금세 격추당해 침몰할 것이 뻔했다.

단 하나 있다면 초장거리 도약 마법일 터인데.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초장거리 도약은 고위 마법. 하물며 대륙과 대륙을 이동하는 일이다. 최소한 수 시간에 달하는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당연히 준비되지 않았다.

아군 마법사들은 적의 마법전력을 견제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으 니까.

도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연방 원정대는 이곳 덴터에서 완 벽히 갇힌 것이다.

으득. 하밀이 이를 갈았다.

"제국놈들. 놈들은 처음부터 우리 를 가둬 몰살시킬 생각이었다."

해상을 봉쇄하고 지상에서 밀어 닥친다.

그야말로 , 그 누구도 동부대륙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의도가 절 절히 담겨있는 병력전개였다.

제국군은 연방 원정군을 완전히 몰살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다.

"… 염병할."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리는 하밀 사령관.

그는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연방은 제국에 패배했다."

확실한 패배였다.

막대한 전비를 소모했음에도. 20만이라는 거대한 군세를 동원했음 에도. 오랜 기간 준비했음에도.

연방은 동부대륙 진출에 실패했고,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통령께 어찌 보고해야 할지. 아니, 어차피 보고할 수도 없겠군. 내 가죽거나 포로 신세가 될 터이니."

그가 체념해 그리 읊조리는 그때.

콰앙! 철그럭, 철컥, 콰직!

소음이 울렸다.

전신갑주를 입은 무리가, 이 건물의 문을 박차고 내부를 소탕하는 소리.

아래층에 있을 경비병들의 비명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온다.

"… 곧 오겠군."

하밀은 천천히 고개 돌려 사령실 의 입구를 바라본다. 누군가가 등장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직후.

콰앙!

문이 박차 열렸다.

그 뒤로 등장하는 것은 역시나, 가슴팍에 제국의 문양을 박아 넣은 일단의 무리들.

제국 기사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선두에서있던 이.

하얀색 머리카락에, 전신갑주에는 킬마크가 빽빽이 아로새겨져있는 인물.

적 기사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이 가입을 열었다.

"반갑소. 연방의 원정군 사령관."

하밀의 목덜미에 검날을 들이미는 중년의 기사.

그가 이어 말한다.

"제국 볼로냐 기사단장, 베르겐 라 프랜시스라 하오. 순순히 포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만. 하밀 볼리바르 원정군 사령관."

하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에 진한 절망이 드리워진다.

하밀은 포로가 되었고, 연방은 패배했다.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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