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연방 원정대의 최고 사령부.
그 넓고도 휑한 공간에 수십의 군관들이 모여 있다.
참모와 고위 군관들로 이루어진 원정대의 수뇌부들이었다.
수정구와 지도를 번갈아 주시하 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그들.
참모들이 하나둘 알려왔다.
"곧 놈들이 성벽에 조우. 교전이 시작될 것입니다."
"제국의 마법사와 기사단이 적영 측면과 후방에서 등장! 공격을 준비 중입니다!"
"제국군 보병대 전진! 약 30분 뒤 성벽에 조우, 성벽에서 교전을 치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적에게는 공성무기가 충분히 많습니다! 마법사를 운용해 미리 파괴해야 합니다!"
본격적인 덴터 공방전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움직이는 제국군의 군세.
그들이 공성병기를 몰고, 마법을 운용해가며, 성문을 파괴하고 성벽을 기어오르려 하고 있다.
"놈들의 보병 전력은 이쪽보다 훨씬 열세다! 막아낼 수 있다. 아니, 막아야만 한다!"
하밀 볼리바르 사령관이 크게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가 지도를 훑는다.
참모들이 시시각각 정리해주고 있는 군사 지도. 그곳에 적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성문을 부수기 위해 접근 중인 적의 보병대.
성문이 부숴진 후, 돌입을 대기 중인 적의 기사들.
화력 지원을 위해 전장에 나타난 전투마법사들까지 .
하밀은 전황을 읽었고.
"성벽만 사수한다면, 버틸 수 있다!"
그리 확신했다.
이쪽에는 성벽이 있다.
적의 마법사와 기사 전력이 위협 적이라 해도, 성벽과 보다 많은 일반병 전력이 있다면 막아낼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철수 시기까지는 방어할 수 있다. 그리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하밀은 적의 능력을 간과했다.
쿠르르르르….
굉음이 울린다.
마나의 울음. 적의 전투마법사들 이 고화력 마법을 준비하는 소리.
"적 전투마법단의 합동 마법입니 다! 사령관 각하, 고개를 숙이십시 오!"
"마법사! 어서 적의 마법을 파훼 …."
연방의 참모들이 그리 소리치는 그때.
콰르르르르릉!
거대한 소음이 전장 전역을 뒤흔 들었다.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다수 떠 올라 중첩되어 갔다.
떠오른 마법진의 색은 다양했다.
푸른색, 회색, 녹색, 남색.
그리고 정열적인 붉은색 까지.
제피르는 허공의 마법진을 올려다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알렸다.
"타격점을 조율하지. 전 마법단, 내게 마나를 공조하라."
그가 스태프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주르륵 흐르는 식은땀.
무려 다섯 개 전투단의 합동마법 이다. 막대한 마나가 담긴 여러 속 성의 고위 마법들. 그것들 모두 제피르 단신이 관제하고 있다.
그가 피식 웃었다.
"애송이 새끼. 어려운 주문을 해 대는군."
제피르가 시선을 옮겨, 자신의 왼손에 쥐어져있는 수정구를 바라 봤다.
통신 수정구였다.
통신 수정구에는 어떤 인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제피르. 어렵고 힘든 일인 건 안다만, 그럴 능력은 너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
한지훈. 과거 공국전쟁 시절부터 보아왔단 한 군관의 목소리.
그의 말이 이어진다.
- 다섯 개의 고위력 합동마법을, 성벽의 한 곳에 모조리 때려 박아 야 해.
한지훈은 자신에게 주문했었다.
합동마법 다섯 개. 그것들 모두 를 성벽의 어느 부분에 집중시켜 달라고 말이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
무려 오백의 마법사들이 발현하 는데다가 속성도 제각각.
그것 다섯 개를 모두 공조시켜 한곳에 집중시키라니.
관제하는 마법사에게 너무나도 많은 부담이 걸리는, 막대한 연산력 과 마나가 소모되는 일이다.
제아무리 일개 마법단의 단장인 인물이라 한들, 불가능하리라 확신할 정도로 힘겨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제피르라면 가능했다.
- 네 능력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제피르.
그는 일개 마법단장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므로.
-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단장. 과거 정복전쟁 당시 제국의 전쟁영 웅.
그의 마법에 무너져 내렸던 요새 가 몇 개였는가.
그가 지휘하는 라브리에 전투마 법단이 쓸어버렸던 적의 군단이 몇 개였는가.
제피르는 전세대의 영웅이자, 현재 한지훈이 가장 신임하는 전투마법사였다.
- 그 엘프조차 인정했던 네 재능 이다, 제피르. 너라면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겼고, 제피르는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제피르라 한 들, 무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쿨럭!"
각혈하는 제피르.
그가 부르르 떠는 손으로 연초를 꼬나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너무나 막 대한 연산력을 소모해, 차마 그럴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허나 제피르는 한지훈에게 한마디 불만을 뇌까리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애송이놈. 마음껏 굴리라고 말은 했다만, 설마 이렇게 혹사시킬 줄이 야."
그가 스태프를 더더욱 높이 치켜 든다. 그와 동시에 보다 진중한 기운을 발하는 하늘의 마법진.
다섯 개 광역마법진의 중첩이 거의 끝나간다.
"이 빚은 비싸게 치를 줄 알아 라."
- 얼마든지 비싸게 치러주지. 제피르. 뭘 원하나? 무엇이든 들어주 지.
피식 웃는 제피르. 한지훈의 물음에 대답한다.
"최고급 연초 마차 한 대 분량. 그 정도는 받아야겠어."
- 너무 싼데. 마차 백대 분량이 라도 준비해주지.
친우의 농담 어린 말에, 제피르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스태프를 내려 그었다.
"아주 좋군."
다섯 개의 광역 마법이 떨어져 내린다.
아주 정교하게 조율된 고화력 마법. 성벽의 한 곳에 모두 집중되었다.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수의 폭렬 구. 얼음창. 바람송곳. 낙뢰까지.
콰르르르르르르릉 !
연방측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
나는 개사기 스킬을 하나 지니고 있다.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군단 전투지휘술 스킬.
군단을 지휘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광활한 전장의 온도와 습도, 고 도, 세세한 지형지물들. 그리고 적 아의 병력과 움직임, 전장에서 뛰고 기는 그들의 사기까지.
대량의 정보가 뇌리 속으로 파고 든다.
그 덕분에,
"성벽의 어디가 취약한지. 잘 알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미니맵을 바라본다.
서남쪽 성벽. 전진하는 제국군의 우측 방향. 그곳의 성벽이 비교적 노후화되어 있다.
노후화되어 있는 이유는 다양했다.
불어오는 해풍. 관리 부실. 자재 투입 부족. 지형의 불안정.
모두 군단 전투지휘술 스킬을 통 해 얻은 정보들이었다.
성벽의 약점을 파악했다면 그 뒤는 뻔하다.
"모든 마법 화력을 동원한다면 무너뜨릴 수 있어."
성벽을 무너뜨리면 된다.
본래 성벽이란 파괴하기 상당히 힘든 구조물이다.
수백의 전투마법사들이 고화력 마법을 종일 퍼부어야 간신히 무너 질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지니까.
특히나 덴터는 람셀의 전략적 요 충지인 터라, 축성된 성벽의 견고함 이 꽤나 훌륭하다.
하지만 다섯 개 전투마법단이, 대단히 정교한 마법관제에 따라 성 벽의 노후화된 지점에 모든 화력을 퍼붓는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지."
내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콰콰콰콰콰쾅….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온다. 마법사의 마법이 성벽을 두들기는 소리다.
들려오는 굉음은 마법만으로 끝 나지 않았다.
쿠르르르르….
무언가 거대한 구조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드리워 지고,
- 한지훈. 내가 해야 할 일은 끝 냈다.
통신 수정구에서 제피르의 음성 이 들려온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기진맥진한 목소리.
나는 제피르를 치하했다.
"고맙다, 제피르. 역시 해낼 줄 알았어."
- 최고급 연초. 마차 백대를 꽉 채울 분량. 절대 잊지 마라.
나는 씩 웃으며 답한다.
"잊을 리가."
농담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정말로 그에게 연초 무더기를 선물 해줄 생각이다.
내 영지에서 나오는 수익이 천문 학적이기에 돈은 썩어 넘칠 정도로 많고.
제피르정도 되는 인물에게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으니까.
- 그럼 기대하지. 나는 조금 쉬 어야겠다. 너무 많은 연산력과 마나 를 소모했어. 다른 전투마법단 단장 에게 지휘권을 위임하지.
"그래. 푹 쉬어라, 제피르."
싱긋 웃고는 이어 말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끝 나있을 거다."
이번 전투가 아닌, 이전쟁 자체 가.
제피르가 피식 웃는다.
- 애송이 주제에 꽤나 자신만만 하군 그래. 그럼 네녀석을 믿고 자 러 가보겠다. 통신 종료. 앞으로의 일을 모두 맡기지.
수정구가 가라앉고, 지휘천막 내부에 적막이 찾아온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읊 조렸다.
"성벽은 부쉈다."
제피르가 분투해준 덕분에 성벽 의 일부를 무너뜨렸다.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이제는 그 구멍 속으로 전력을 밀어 넣어, 적의 내부를 진탕내기만 하면 될 뿐.
내가 지휘한다면 몹시나 쉬운 일 이다.
내 휘하에는 믿음직한 군관들이 많았으니까.
수정구를 들어올렸다.
"오스카. 제1파는 어찌되었지?"
- 완벽하게 계획대로군. 제1파가 도달하기 직전 적의 성벽이 무너졌다.
성벽의 파괴, 그에 맞춰 전력의 투입. 모두 전투 전 치밀하게 계획 된 일이었다.
- 이제 나는 병사들을 이끌고 성 벽 너머에 교두보를 확보하지.
"그래. 조금만 버텨라. 곧 베르겐 이 이끄는 기사들이 도착할거다."
- 좋군.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적이 혼란에 빠져있는 그때.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는 무너진 성벽잔해를 넘어 적의 예비대를 밀어버릴 거다.
그가 성벽 너머의 교두보를 만들 때까지 걸리는 시간. 약 10분.
나는 또 다른 인물에게 통신한다.
"베르겐. 지금 오스카가 성벽 너머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중이다."
이번에 통신을 연결한 인물은 베 르겐 라 프랜시스. 내 대신 오천의 기사들을 통솔하고 있는 이.
그에게 지시한다.
"십 분이면 적의 예비대를 배제 하고, 기사들이 진입할 공간을 만들 수 있을거다. 가서 날뛰어."
- …모두 자네의 계획대로 돌아 가는군. 대단해, 한지훈.
베르겐의 감탄한 목소리.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이번 전투는 모조리 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그만큼 내가 세운 전투계획은 꽤 나 치밀하고도 정교했다.
'제파식 전술.'
다른 말로는 파상공격.
다수의 공격제대를, 정교하게 조율된 타이밍에 맞춰 순차 투입하는 전술이다.
나는 세 개의 파를 구성해 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미니맵을 바라보며 읊조린다.
"제1파. 제피르가 이끄는 전투마법사들."
보병대가 성벽 바로 앞까지 접근 하는 것에 맞춰, 막대한 화력을 일 점사.
적의 성벽 일부를 파괴, 제2파의 집입로를 만든다.
"제2파. 오스카가 이끄는 보병대 전력."
무너진 성벽을 따라 내부로 진입 한다.
미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적의 전력을 배제하고, 후속 병력이 도착 할 교두보를 만든다.
내부의 적 예비대를 제거해 돌파 구를 확대, 3파의 돌격 여건을 확보한다.
"제3파. 베르겐이 이끄는 기사 오천."
1파와 2파가 확보해둔 돌파구를 통해 진입.
막강한 기동력을 살려 적의 종심을 돌파, 적영의 심장부를 노린다.
적의 전열을 뒤흔들고 사령부를 파괴해 지휘체계를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승리를 확정짓는다.
사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세 개의 제파가 정교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승리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전략이니.
단 하나의 제대라도 임무를 성공 시키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성공했지."
휘하 군관들을 믿었기에. 그리고 내지휘 스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적을 계속해 뒤 흔들고, 적장을 사로잡는 일 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제 가볼까."
적장을 사로잡고, 이번 전쟁의 종식을 알리는 영광스러운 때가 곧 이다.
그때까지 이곳 지휘소에서 처박 혀 있을 생각은 없다.
내가 직접 나서 적장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전쟁이 제국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을 널리 선포할 것이다.
나직이 읊조렸다.
"하밀 볼리바르. 연방 원정군 사령관. 생포해 수도에서 처형한다면 볼 만할거야."
나는 발걸음을 옮겨 지휘소 천막 밖으로 나섰다.
전쟁의 끝이 가까워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