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사령관 각하! 보고드립니다!"
한참모가 다급히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 지도를 노려보고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어올려 묻는다.
"무슨 일인가? 정보참모. 보고해 보게."
노인의 이름은 가베르테 쥴리프. 제국군 동부 야전군의 최고지휘관 인 인물.
지금 그는 한지훈의 요청대로, 이곳 동부전선에서 람셀 주력군과 대치하며 그들의 발을 묶어놓고 있는 와중이었다.
참모가 가베르테를 바라보며 고 한다.
"방금 전 비콘 통신망을 통해 들어온 급보입니다! 제2군과 3군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래…. 대승이라."
가베르테의 임가가 슬며시 움직 인다. 어느새 떠오르는 잔잔한 미소.
'한지훈이 해냈군.'
그의 얼굴에 흡족함의 감정이 퍼 져나갔다.
미소 짓는 가베르테를 향해 참모 의 보고가 이어졌다.
"적의 병력 10만을 완전히 제압. 약 8만의 적병을 처치했으며, 2만 이 뿔뿔이 흩어져 와해됐습니다."
"우군의 피해는?"
"전사상 2만. 그 외의 피해는 없습니다!"
가베르테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 열세의 전력으로, 저토록 대승이라. 역시 대단하군…."
너무나 압도적인 승리였다.
6만의 병력으로 10만을 제압했다.
훨씬 열세에 불과한 전력으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적을 상대로 승리했다. 더해 교전비 또한 1: 4로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
가베르테가 작게 중얼거린다.
"한지훈. 역시 그자는 전쟁의 신 이야."
만약 한지훈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이번 전쟁에서 제국은 패했을 것이다. 그만큼 안 좋은 상황이었다.
헌데 한지훈은 낫질작전을 계획, 실행해 성공시켰다. 기사를 이끌고 오스카의 3군을 구원했다. 적의 후 방을 갈아버리고, 지휘부를 완전히 제압해 전투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단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 그 짧은 기간에 한지훈 라이젠은 이번 전쟁의 전황을 반전시킨 것이다.
"좋아, 그럼…."
가베르테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막사 한켠에 걸려있던 지도를 바라 본다.
이곳 동부전선을 표시해놓은 지도.
제국군과 람셀군의 대치상태와, 그간 이루어졌던 산발적인 교전내 용이 곳곳에 표기되어있다.
그가 지도를 잠시 살피고는, 참 모에게 지시했다.
"람셀군에 사자를 보내 항복을 제안하라."
"항복 제안…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제 놈들은 퇴로가 막히고, 수도는 곧 점령당 할 위기이니 별 수없이 우리의 항복제안을 받아들이겠지."
동부군과 대치 중인 람셀 주력군 뒤에는 제국군 6만이 있다.
그 말인 즉, 람셀은 제국군에 앞뒤로 포위 당해 퇴로와 보급로가 차단당했다는 것.
적의 지휘관이 멍청이가 아니라 면 금세 깨달을 것이다.
이미 승산은 없다는 것을. 람셀 은 제국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가베르테가 의자 깊숙이 몸을 묻 으며 이어 말했다.
"이번 전쟁만 끝난다면 우리 제국의 일원이 될 람셀이다. 굳이 더 많은 피를 볼 필요가 없지 않나. 람셀군은 가급적 살리는 것이 좋겠지."
람셀은 곧 제국의 식민지가 될 터. 굳이 피를 더 볼 생각은 없는 가베르테였다.
"하지만… 그건 람셀군에 한정한 이야기이고."
피식. 웃는 가베르테 사령관.
그가 다시금 지도를 주시하며 말을 잇는다.
"역겨운 연방 놈들은 최대한 많이 죽여 놔야겠지."
아직 람셀령 내부, 덴터에 남아 있는 연방군의 수는 약 10만.
놈들을 굳이 살려둘 이유는 없다.
"살려줘 봤자 추후 다시 제국을 노릴 터이니."
연방의 야욕은 이 정도로 좌절되지 않는다.
놈들은 언젠가 다시금 제국과 전쟁을 벌일 것일 터. 할 수 있을 때, 최대한의 피해를 연방에게 강요해 야 한다.
가베르테가 작게 읊조린다.
"한지훈 군단장이라면 잘 해내주 겠지."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해 봐라. 정보참 모."
화려하게 꾸며진 방안.
한 노인이 격노한 얼굴로 자신의 바로 앞을 바라본다.
"제이름이 어떻게 되었다고?"
자신의 책상 너머, 휘하 군관이 굳은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보고하러 온 참모였다.
노인이 재차 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보라했다."
하지만 참모의 입은 좀처럼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밀 원정 사령관 각하"
연방 원정군 총사령관, 하밀 볼 리바르 공작. 그에게 실패했다는 보고를 직접 고해야 한다니.
하지만 저 시퍼렇게 날 선 눈동자를 앞에 두고 언제까지나 굳어있 올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참모는 심호흡 한 뒤, 그에게 다시금 보고했다.
"… 패배했습니다! 연방 원정대 제1군이 당했습니다! 제이롬 군단장을 비롯한 모든 고급 지휘관은 현장에서 전사했으며, 8만이 전사 혹은 중상. 나머지 2만은 뿔뿔이 도주했습니다!"
"제기랄!"
콰앙!
하밀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 여파로 서류더미가 충격에 날려 팔랑인다.
격노한 하밀의 주먹질은 단 한번 으로 그치지 않았다.
콰앙! 쾅! 콰앙!
격양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이마에 울룩불룩한 핏줄까지 도드라져가며 책상에 화풀이하는 하밀 볼 리바르.
그가 크게 외쳤다.
"어째서냐! 어째서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지니고도, 고작 6만 제국군을 이기지 못 한거냐!"
제1군을 이끌고 있던 제이롬은 자신했었다.
제국군을 분쇄해버리고 승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이다.
하밀 또한 별다른 의구심 없이 그의 말에 수긍했었다.
순조로운 전황, 압도하는 병력. 전투에서는 연방군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제국군은 계속해 밀리 기만 했었다.
중간까지는 말이다.
"한지훈! 그 개자식이…!"
한지훈이 난입한 뒤부터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결국 연방군은 대패했다.
이번 전투로 연방은 10만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 5백의 전투마법사, 3천의 기사들을 잃었다.
전황의 무게추가 단숨에 제국으로 기울 정도로 너무나도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한지훈."
으득. 이를 갈던 하밀 사령관.
그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읊조린다.
"이번에는 우리 연방의 패배인 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연방의 남부대륙 침공. 승 자는 제국이었고, 패자는 연방이었다.
"치욕스럽군…! 우리 연방이 전쟁에서 패배하다니, 이래서야 통령 각하를 뵐 낯이 없다."
수많은 국가들이 병합되고 연방 이라는 거대 국가가 수립된 이후 처음으로 겪어보는 패전이었다.
하지만 하밀은 기죽지 않았다.
"제국, 그리고 한지훈. 이 치욕은 언젠가 반드시 되갚아주마."
오히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전의 를 끌어올릴 뿐.
후욱.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심호흡 하며 말을 잇는다.
"언젠가 연방과 제국은 다시금 전쟁할 거다. 그때 반드시, 한지훈 과 놈이 이끄는 군대만은 내 직접 격파할 것이야."
그는 한지훈에게 당한 만큼 되갚아주려 하고 있다.
자신이 치욕스러운 패배를 겪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 그이상으로 놈에게 복수해 체면을 다시금 세우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 일단 패배한 이상, 더 이상 이곳 남부 대륙에 있을 이유가 없군."
복수에 대한 열망과는 별개로, 이번 전쟁에서 승산이 없는 것 또한사실.
그리고 이미 패배한 전쟁에 더 이상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가 지시한다.
"당장 철수 준비하라. 전원정군, 본토로 귀환한다."
"…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그렇기에 일단은 병력을 본토로 되돌려 보낸 뒤, 재정비하려는 하밀 사령관이었다.
그가 작게 읊조린다.
"제국놈들은 일단 람셀 수도를 점령해 승리를 확정지으려 할 터. 그동안 우리군은 무사히 본토로 귀 환할 수 있겠지."
일반적인 군관이라면, 적의 수도를 함락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수도 함락이랑 전쟁의 끝을 알리는 최상의 전공이 었으니 .
아마 제국놈들은 수도를 먼저 공략하려 할 것이고, 그 틈을 타 철 수한다면 동부대륙 연방 본토로 무 사히 귀환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는 하밀 사령관이었다.
그가 재차 지시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어서 철수 준비를 서둘러!"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참모가 그의 명령을 받아 이행한다.
하밀이 내심 생각했다.
'설마. 제국놈들이 람셀 수도를 놔두고 이곳 덴터부터 노리지는 않을 터.'
하지만 하밀은 몰랐다.
그 '설마'를 실현시키는 인물이 제국군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철수 준비를 서두른다.
저벅, 저벅. 길을 걷는다.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드넓은 대지. 넓게 타오르는 불 길. 지면을 뒤덮듯 드러누워 있는 수많은 시체들.
제국 병사들이 연방군 병사들의 시신을 수거해 한데 모아 불태우 고 있다.
시체 타는 냄새가 너무 역겹다.
나는 계속해 주변을 둘러보고, 그런 내 옆을 따라오던 오스카가 입을 열었다.
"한지훈, 전쟁이 끝났어. 동부전 선에서 대치 중이던 람셀 주력군이 항복해왔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람셀 주력군의 항복. 이미 예상 했던 일이었다.
이미 놈들에게는 승산이 없었으 니까.
오스카의 말이 이어진다.
"람셀에게 남은 병력이란 고작해 야 수도의 치안을 지킬 정도밖에 없어. 그리고 지금 우리 6만 병력 은 놈들의 수도 바로 코앞에 있지."
고개 돌려 시선을 동쪽으로 옮겼다.
점차 어둠에 물들어가는 동쪽방 향. 지평선이 보인다.
저지평선 너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람셀의 수도 알폴리스가 있다.
"한지훈. 이 기세를 몰아 바로 수도를 치지."
오스카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려, 비로소 그와 눈동자를 마주했다.
오스카의 얼굴 표정은 퍽 여유로 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방의 대규모 군세를 물리치고, 전쟁의 승리를 거의 확정지은 상황이었으니 .
"람셀 수도를 점령하고, 놈들의 왕족과 귀족, 그리고 상위 군관들을 잡아다 처형한다면 비로소 협상동 맹과의 전쟁이 끝나지 . 그리고 자네는 총독이 될 것이고 말이야."
나는 오스카의 표정을 살폈다.
여유롭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되는 얼굴. 오스카는 지금 당장이라도 군을 몰아 람셀 수도를 치고싶어 하는 듯했다.
저곳, 람셀 수도만 점령한다면 이 염병할 전쟁이 끝나니까.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스카. 수도를 치는 건 아직 일러."
"그게 무슨 말인가? 한지훈."
내 말이 의외였던 것일까. 그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도가 코앞인데 점령을 미룬다 하니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오스카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남부대륙에는 연방놈들이 있어."
동부 연안도시 덴터, 그곳에 아직 10만에 달하는 연방놈들이 있다.
"그 수가 10만이야. 그 병력이 연방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
일단 패전한 이상, 연방군은 동부대륙으로 철수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손해를 회피하 고자 할 터.
하지만 어림도 없다.
"놈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거다. 그전에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야겠지."
"… 전쟁의 종결을 미뤄가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한지훈?"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여 가볍게 수긍 하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적의 최고사령관, 아직 잡지 못했잖아."
연방 원정군 총사령관 하밀 볼리 바르. 나는 놈을 생포해 제국 수도에서 처형할 심산이다.
물론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퀘스트를 클리어 하지 못 했지.'
시선을 돌려, 시야 속 홀로그램을 바라본다.
[서브 퀘스트]
[1. 덴터의 부두시설을 파괴하라.]
[2. 덴터의 보급창을 파괴하라.]
덴터를 파괴하는 퀘스트. 아직도 클리어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어찌되었든 상관없는 일이 긴했다. 이미 전쟁은 거의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놈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빤히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제국을 노리고 침공해온 놈들이 야. 무사히 돌아가게 해주고 싶지는 않아."
나를 노?리고 역겨운 공작까지 해 온 놈들이다. 봐줄 생각은 없다.
이번 전쟁으로 연방에게 똑똑히 알려줄 것이다.
제국은, 그리고 나 한지훈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연방의 원정대는 이곳 남부대륙에서 모조리 전멸할 것이다.
나는 덴터 공략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