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252화 (252/390)

252화.

"적의 지휘부다."

말을 타고 달려가는 와중. 고개를 들어 올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불타 이글거리는 널따란 대지 위. 죽어 나자빠져있는 수많은 병사들의 시체 너머, 커다란 천막이 보였다.

방금 전 마법의 여파에 휩쓸렸던 것인지 불이 붙어 가열차게 타들어가고 있는 천막. 그곳의 주위에는 수십의 군관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피식 웃었다.

"역시 지휘부를 옮기려고 하는 군."

하지만 어림도 없다.

놈들이 지휘부를 옮기고 다시금 체계를 바로세우는 것보다 우리가 녀석들의 참모와 군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이 훨씬 빠를 터이니.

말의 배를 박찼다.

콰앙!

전투마의 뒷발이 지면을 박찼다.

이전보다도 더더욱 가열차게 가속하는 전투마. 적 참모진들의 얼굴 이 순식간에 다가온다.

"제국의 기사다!"

"… 엎드려! 치인다!"

"기사라니, 무슨…!"

놈들의 지척까지 쇄도하는데 찰 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

내 전투마의 앞발이 놈들을 걷어 찬다.

퍼엉!

"끄아아아아악!"

적 참모 하나의 복부가 말발굽에 치여 날아간다.

놈은 입과 코에서 진한 핏물을 토하며 지면에 곤두박질 쳤다. 팔다 리가 기괴하게 꺾인 것이 퍽 아파 보였다.

그이후에 일어난 일.

너무나도 뻔했다.

"적 지휘관을 모조리 죽여 버려 라!"

"명령을 받듭니다! 한지훈 군단 장 각하!"

일방적인 학살.

퍼억, 콰직. 우드득. 콰앙!

기사들이 달려들어 놈들을 참하기 시작했다.

전투마의 말발굽에 치여 날아가고, 기병창에 꿰뚫려 주저앉고.

겨우 도망치는 적 참모들도 기사 들이 끈질기게 추격해 확실히 처치 해 버렸다.

지휘부 천막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놈들의 지휘부 깃발이 잘려 주 저 앉는다.

우리는 연방군 제 1군의 지휘부 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 마법공격, 발현. 확인했습니다!

제2군 지휘부 막사.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대성공입니다! 적의 후방 전력 이 초토화됩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활기와 총기 가 충만했다.

이전처럼 경악하지도, 당황하지 도, 그렇다고 체념해 축 늘어지지도 않는 목소리.

그럴 수밖에 없다.

- 한지훈 군단장, 기사 5천을 이 끌고 적의 후방을 급습. 초토화된 전열을 순조롭게 돌파합니다!

- 지휘부 타격! 교전 중입니다!

전장에 영웅이 나타났으니까.

여태까지 몇 번이나 기적적인 승리를 이뤄내 제국의 멸망을 막아냈 던 인물, 한지훈 라이젠 후작이 전 장에 등장했으니까.

- 적의 지휘부가 완전 제압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직접 전투에 참여했으니 결과는 뻔한 일.

- 적의 최고지휘관을 사로잡았으 며, 휘하 참모들을 모조리 처형했습니다.

- 지휘부를 불태웠습니다.

한지훈은 성공했다.

대규모 마법을 발현하고, 직접 기사를 이끌고 적의 지휘부를 급습했다. 적장을 사로잡고 참모들을 목숨줄을 모조리 끊었다. 놈들의 통신 망까지 무력화 시켰다.

즉, 대가리를 완전히 없애버린 것이다.

"… 대단하군. 한지훈."

가만히 통신을 듣고 있던 오스카 군단장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수정구에서 옮겨져,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다름 아닌 전략지도.

이곳 동부전선과 람셀의 중부지 방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해둔 대형 군사지도였다.

그가 지도를 바라보며 읊조린다.

"정말 성공시킬 줄이야."

본래였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계획이었다.

일주일 만에 그토록 험난한 지형을 돌파, 우회해 오다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지훈은 성공했다.

5천의 기사들을 이끌고 울창한 숲과 바위산을 넘어, 늪과 진창을 건너. 마침내 오스카가 이끄는 제 2군을 구원하러 왔다.

덕분에….

- 비콘을 파괴했습니다. 이제 적의 통신망은 완전히 무력화되었습니다.

- 연방군의 지휘체계가 소멸합니다.

연방놈들의 구심점을 완전히 제 거할 수 있었다.

군대의 중심이 될 지휘부도, 그곳에서 전투를 주도하고 병력을 지휘할 참모진도, 그들의 명령을 전파 할 통신망도. 그 무엇조차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말인 즉.

"이제 연방군은 더 이상 군대라 고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단 말이지."

군이란 결국 상명하복으로 이루 어진 거대 집단. 개개인의 무력이 제아무리 출중하든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럴듯한 병장기를 꼬 나쥔 도적집단과 다름이 없으니 .

오스카가 가만히 현재 전황에 대 해 생각해 보고 있을 그때.

우우우웅….

한창 보고가 들려오던 수정구가 어두워지다 다시금 점멸한다. 새로운 통신이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 오스카. 적의 대가리는 완벽하 게 부숴놨다.

오스카는 그의 말에 씩 웃으며 답했다.

"고맙다, 한지훈. 구원해줘서."

- 뭘. 내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

한지훈 또한 웃는 것인가. 피식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 그럼, 오스카. 이제부터는 그쪽 도 좀 도와줘야겠어.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다. 우리가 모루 가 되어주마. 마음 놓고 날뛰어라."

- 고맙군 그래. 그럼 통신 종료. 이번 전투가 끝나고 축배나 들지.

"그러도록 하자고."

통신이 끝났다. 가라앉는 수정구.

오스카가 천천히 입을 연다.

"자, 다들 들었을거다. 계획대로 한지훈이 적의 수뇌부를 박살내버렸다."

오스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 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제2군에 소속되어있는 여러 장성들과 참모 들이 도열해있다.

오스카는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 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였다.

'한지훈이 합류했다고 이토록 분위기가 바뀌는군.'

한지훈의 등장 전까지 이곳 지휘 막사 내부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암 울했었다.

만연해있던 패색.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보병대를 전진시키겠습니다. 3군이 적의 뒤를 완전히 점거했으 니… 포위망을 구성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요."

"한지훈 군단 측의 전투마법사와 공조해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우익 부터 부순 뒤 천천히 밀고들어간다 면, 손쉽게 적의 측면을 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의 기병대를 막아보겠습니다. 놈들만 떼어낸다면 전열을 제대로 가다듬을 수 있을 터이니."

참모와 고급 장교들이 하나둘 자신감을 되찾았다.

물론, 아직 연방 측의 병력은 8만 가까이 남아있어 방심할 순 없다.

하지만 놈들에게는 이제 머리가 없다. 한지훈이 부숴버렸기 때문에.

"어차피 지휘체계가 붕괴해 각자 도생하고 있는 놈들입니다. 기껏해 야 백인대나 천인대 단위의 저항만 이 있을 뿐. 군단규모의 기동은 절대 할 수 없겠지요."

"손쉽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전황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좋다.

잘 통솔된 4만, 그리고 통일된 명령 없이 분분히 움직이는 8만의 싸움. 4만이 더욱 유리한 법이다.

오스카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연방놈들을 마저 쓸어버려라."

지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명령을 따릅니다! 군단장 각하!"

"우익을 맡고 있는 천인대들을 호출해라. 명령을 전파해야 해."

"통신관! 당장 3군과 연결해라. 그쪽의 전투마법사들과 공조할 것 이다."

참모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승리가 확정되었다.

연방 제1군의 최후미. 본래 빼곡 히 들어선 막사와 커다란 지휘부 천막이 자리해있던 공간.

하지만 그곳에는 이전의 모습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천막이 갈기갈기 찢어져 불 타고 있다. 바닥에 연방군 병사들의 시체들이 무수히 깔려있다.

그들의 핏물이 흙바닥에 스며들 어 진흙이 된다. 비릿한 혈향과 매 캐한 탄내가 후각을 자극한다.

대지 곳곳에 불길이 일어나고, 자욱하게 일어난 연기가 시야를 흐린다.

한때 적의 심장부였으나 지금은 그저 대량의 병사들이 나자빠진, 죽음이 그득한 장소.

그곳에서 나는 기사들을 지휘했다.

"베르겐. 우측을 주의해라. 슬슬 발리스타로 그쪽을 견제할 것 같으 니까. 적당히 치고 좌로 선회해."

왼손에는 수정구를, 오른손에는 장검을 쥐고. 시선은 바로 앞을 바라본다.

내 앞에는 홀로그램이 떠올라있다.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것은 부대 정보창과 미니맵들.

지휘는 쉬웠다.

"황실 기사단, 그리고 중앙 기사단. 중앙으로 돌진. 그쪽에 적 기사단장이 기동을 지휘하고 있다. 갈아 버려."

- 임무를 수령했다. 한지훈 군단 장.

"동부 테롤리아 기사단은 좀 더 전진. 속도를 높여라. 측면에서 연 방의 기사놈들이 돌진해올거야. 그전에 그 위치에서 벗어나야 해."

-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군단 장 각하!

쉬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내 스킬이 사기적이니까.

앉은 자리에서 드넓은 전장의 모든 것을 파악한다.

지형. 적의 위치. 양 측의 병력. 개개인의 사기. 그리고 전체적인 전투의 흐름까지.

모조리 느껴진다.

"베르겐. 그쪽으로 우리 제 2군 이 파고들거다. 그전에 적의 전열을 조금 뭉개놓으면 더 적은 손실 로 측면을 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알았다. 내게 맡겨라, 한지훈!

내지휘에 적이 압도되어간다.

통솔된 명령을 잃고 하락해가는 적의 사기. 반격 극치까지 상승한 아군의 사기.

적의 병력이 빠르게 감소해가고, 놈들의 전열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린다.

이 정도면,

"승리하겠지."

애초 내가 적의 지휘부를 타격할 때부터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투였다.

나는 한참동안 통신하며 병력을 지휘했다. 전장을 읽고, 전투를 조율했다. 기사들을 쉬지 않고 기동시키며 연방놈들을 마저 쓸어갔다.

그렇게 내가 지휘에 몰두하고 있을 때.

"… 한지훈."

문득, 누군가가 내 이름을 입에 담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들려 온 방향을 바라본다. 바로 옆이었다.

"한지훈. 그게 바로 네놈이었 군…."

내 이름을 입에 담은 것은 다름 아닌 적장, 지금은 포로 신세로 전 락한 이.

"제이롬. 내가 통신하는 걸 엿듣 고 이름을 캐낸건가. 음흉하군 그래."

제이롬 아르피니움. 연방군 제1군의 군단장인 인물이자, 10만의 병력을 통솔하던 최고지휘관.

놈은 의자에 팔다리가 묶여 포박 당해있는 상태였다.

그가 으득 이를 갈며 읊조린다.

"연방 전쟁국에서 누누이 듣던 이름이었지. 한지훈 라이젠. 제국의 악마라고 불리는 악독한 인물."

"제국의 악마라… 오랜만에 듣는 이명인데."

"듣자하니 악마처럼 검은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던데."

그가 눈동자를 데굴 굴려, 내 얼굴을 바라본다.

녀석이 입가를 비틀며 말한다. 마치 비꼬는 듯이.

"확실히, 검은색이군. 이질적이고 기분 나쁜 외양이다. 악마라는 별명 이 확실히 어울리는군 그래."

"주름 자글자글한 노인네가 외모 품평하는 것만큼 추한 게 없어. 제 이롬."

"한지훈. 어째서 연방에 붙지 않았나."

제이롬이 문득 그리 말했다.

"연방 통령께서 직접 네놈을 수 하로 거두려 제안했다 들었다. 어째서 거절한거지?"

"지랄. 그게 제안이었냐. 협박이 었지."

내 측근과 인맥을 인질삼고는, 연방에 귀의하지 않다면 죽여 버린 다했다.

헌데 '제안'이라니.

참고상한 제안이다.

놈이 내 비꼼을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연방은 강하다. 이깟 제국보다 훨씬 거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단 말이다."

"그래서?"

"연방의 힘이 두렵지 않은가?"

그가 눈에 힘을 준다. 강해보이 려는 듯이.

"연방의 대군세가 밀어닥칠 거다. 한지훈, 지금은 비록 네놈이 승리했지만 언젠가 제국은 멸망하고 연방의 일개 식민지로 전락할거다."

"그래?"

전혀 아닐거다.

내가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놈이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내게 말해온다.

"나를 풀어주고, 연방으로 귀의해라. 그렇다면 연방 통령께서도 네놈 의 공을 높이 사, 그분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뭘 말하나 했더니 목숨 구걸이 었나."

피식.

나는 입가를 비틀어 웃고는, 장검을 들어올렸다.

쨍한 햇빛을 반사해 환하게 빛나는 장검의 검날.

제이롬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 인다.

"네놈…! 나를 죽일 셈이냐! 나는 연방군 고위 군관이다! 이몸을 처 형한다면 추후 네놈도 무사하지 못 할…."

"글쎄. 무사할 것 같은데."

제이롬 아르피니움. 사실 나는 놈을 제국 수도로 이송한 뒤, 공개 처형 하려고했다.

보여줘야 했으니까.

제국군이 연방군을 압도했다고. 연방의 고위 군관마저 사로잡아 처 형해버린 것처럼. 연방을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언젠가 있을 연방과의 전면전을 대비해 미리 제국민의 사기를 끌어 올려놓고자 했던 내 안배였다.

하지만 놈의 저 칭얼대는 개소리 를 듣다보니 .

"못 봐주겠구만."

조금 질려버렸다.

"…그리고 더 높은 놈이 있으니까."

제이롬의 위에는 원정군 총사령 관 하밀 볼리바르가 있다.

기왕 공개처형 하는 거, 보다 높은 놈을 처형대 위에 올리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제기랄! 안 돼 이…!"

내가 진정 자신을 처형하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제이롬이 발버둥 치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녀석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검을 내려쳤기 때문에.

퍼억!

녀석의 머리통이 떨어져 지면을 구른다.

전투는 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