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두두두두두.
기사들이 달려간다. 커다랗게 울리는 말발굽 소리. 철그럭 거리는 갑주들의 마찰음. 빽빽한 숲길을 전 진하는 그들의 수가 무려 오천에 달했다.
그 최선두에는 내가 있었다.
나, 한지훈 라이젠이 가장 앞에서 기사들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피식 웃었다.
'본래는 힘든 일이지.'
양손으로 전투마의 고삐를 꽉 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 햇빛조차 완전히 가 려질 정도로 빽빽이 자라난 나무들 이 온통 시야를 가렸다.
우리 제3군이 전진하는 경로는 험지였다. 울퉁불퉁한 지형, 빽빽한 나무들. 시야는 극도로 제한되며, 말조차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난해 한지형 투성이다.
하지만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기사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미니맵.'
시선을 돌려, 시야 한켠에 드러 나 있는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어느덧 군단 단위의 지휘술 스킬을 보유하게 되었다. 얻을 수 있는 전장 정보는 이전과는 그 질이 현 격하게 달라져 있었다.
내가 있는 곳 주변으로 너무나도 넓은 지형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곳에 장애물이 있고, 어떤 곳이 기동하기 힘든 곳인지. 또 어떤 곳이 그나마 움직이기 수월한 곳인지. 어떠한 경로를 따라가야 은 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모조리 파악되었다.
덕분에 나는 기사들을 제대로 선 도할 수 있었다.
"전방에는 길이 없다! 우로 선 회!"
외치며 고삐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에 획 돌아가는 시야. 말이 방향을 바꿔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두두두두두.
그런 내 뒤를 따라오는 다른 기사들.
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역시, 제국의 기사들은 허접하지 않아."
지금 달리고 있는 곳은 결코 기 동하기 쉬운 지형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최선두에서 가야할 길을 짚어준다 한들 지형의 험난함은 그대로니까.
허나 기사들은 단 한명의 낙마조 차 없이 내 뒤를 제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긴. 모조리 베테랑 이상의 기사들이니."
그만큼 내 아래에 있는 기사들의 실력은 출중했다.
북부의 최정예기사단인 볼로냐는 말할 것도 없다.
황제의 최측근을 경호하는 황실 기사단과, 수도를 방위하는 엘리트 기사인 중앙기사단.
그리고 본래 동부군에 소속되어 수많은 전투 경험을 축적했던 다른 기사단 단원들까지.
그런 베테랑 이상의 기사들만이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이깟 험지 기동 따위에 나자빠지는 놈들이 있을 리가.
꽈악.
고삐를 굳세게 부여잡았다.
'할 수 있다.'
이 정도 페이스로 일주일만 달려 간다면 연방놈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칠 수 있다. 오스카가 이끄는 제2군과 협공해 연방놈들의 주력군을 완전히 괴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씨익.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 진다.
"아직 여유로운데. 더 속도를 높 여보자고."
기사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 어낸다면. 보다 빠르게 전장에 도달 할 수 있을 터다.
파앙!
나는 재차 전투마의 배를 박찼다. 그에 더욱 가속하는 전투마. 뒤 따르는 기사들 또한 속도를 높인다.
우리군이 울창한 숲속을 관통한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 * *
'… 대단하군.'
베르겐이 고삐를 쥐고 전투마를 몬다. 그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자신의 바로 앞, 어떤 인물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지훈 라이젠. 어느덧 제국의 영웅이 되어버린 한 청년의 뒷모습 이.
베르겐은 그의 널따란 등을 바라 보며 생각한다.
'오천의 기사들을 이토록 완벽하 게 통솔하다니.'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곳은 기동 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여겨질 정도로 험준한 지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
'한 명의 낙오조차 없었다.'
일주일 내내 가혹한 행군을 하고 있지만 단 한명의 기사조차 낙오하지 않았다.
분명 지형은 험하고, 그 속도 또한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닿아있음 에도, 오천의 기사들 중 그 누구도 낙마하거나 뒤쳐지지 않았다.
그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한지훈이 완벽하게 통솔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기사들을 다뤄본 적이 없었음에도. 그리고 분명 처음 기동해 정확한 지형을 알고 있지 않음에도.
한지훈은 완벽에 가깝게 기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장애물이 있는 지형들을 귀신같 이 피해갔다.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달릴 수 있는 지형만을 선택해 기사들을 인도했다. 가장 효율적인 속도로 꾸준히 행군했다.
그에 기사들은 예정된 시간보다 도 훨씬 빠르게 험지를 돌파해가는 와중.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이다.
베르겐은 다시금 한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한지훈…."
한때 자신이 탐냈던 출중한 인재. 당시 그는 겨우 일개 백인장에 불과했었다.
허나 지금의 그는 수없는 사선을 넘어, 천인장과 군단장을 거쳐.
제국의 영웅이 되어 있다. 오천 의 기사들을 이끌고 앞서나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사람 보는 눈이 없었군. 저런 대단한 녀석을 고작 일개 기사로 만들어 내 아래에 품고자 했다니."
한지훈은 고작 일개 기사의 그릇 이 아니다. 베르겐은 그리 확신했다.
한지훈 라이젠은 지금보다도 더더욱 찬란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 대륙 전체를, 어쩌면 타 대륙 까지 그 영향력을 떨칠 정도로 대 단한 인물이.
베르겐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작게 읊조렸다.
"네 뒤를 받쳐주마, 한지훈. 언제 까지든지."
그는 드높이 올라가는 한지훈의 영원한 아군이 되어줄 생각이었다.
기사단이 전진한다.
험지가 거의 끝나간다.
"연방놈들의 공세가 거셉니다!"
람셀 수도방향으로 전진하던 제 2군. 그곳의 지휘부에서, 참모장이 절규하듯 외쳤다.
참모장의 목소리에는 절망의 기운이 진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군단장 각하!"
"예비대 투입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버틸 수는 없습니다. 기껏 해야 반나절정도 적의 진격을 저지 할 뿐입니다."
"측면! 적 기병대 돌진!"
"…마법 공격입니다!"
제2군이 약 일주일가량 행군했을 때, 연방 원정군과 마주쳤다.
무려 10만에 이르는 연방의 대군세가, 오스카의 6만 군세를 공격 해온 것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병력이 갈려나가고 있습니다! 오스카 군단장 각하!"
"정면이 무너지고, 측면이 꿰뚫렸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사상자의 수가 벌써 2만을 넘었습니다."
제2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제2군의 역할은 적의 주력군을 유인하는 미끼역할.
적극적 공세를 취했으나 마법사 도, 기사도 많지 않아 한계점이 분명했다.
반면 연방군은 그 병력이 거의 두 배에 가까운데다, 마법사와 기사 들을 비롯한 고급 병종을 충실히 갖추고 있었으니 .
오스카가 이끄는 제 2군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진형이 무너지고, 병력이 갈려나 가고 있다.
"군단장 각하! 이대로 가다간 전 멸입니다!"
"퇴각하십시오! 지금이 후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에 참모들이 퇴각을 요청한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뒤로 병력을 물리자고 말이다.
"…퇴각이라."
오스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주변의 군관들을 바라보았다.
휘하 군단장과 그들이 이끌고 있는 참모들. 그들의 얼굴 표정에는 하나같이 초조한 기색이 떠올라있다.
전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있던 기사와 마법사 대다수가 전사하거나 전투 불능 상태.
남아있는 것은 일반 보병과 기병대 뿐. 전황의 반전을 이끌어낼 여력이 없다.
이자리에서 계속해 연방과 싸운 다면 전멸할 수밖에 없는 노릇.
그나마 남아있는 4만 병력이라도 보전하기 위해서는 퇴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퇴각은 없다. 지원군이 올 때까 지, 이자리에서 계속 버틴다."
"각하! 어째서…!"
"장병들의 목숨을 헛되이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오스카는 결코 퇴각을 지시하지 않았다.
계속해 항전하라고,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으라고 강요할 뿐.
그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한지훈이 곧 도착할 것이다."
"… 이미 통신이 끊긴지 3일째 입 니다! 제시간에 도달할리 없습니다!"
"오스카 군단장 각하. 다시 한번 명령을 재고해주십시오!"
참모들이 거의 절규하듯 그리 외쳤다.
오스카는 입술을 짓씹었다.
'한지훈. 정말 늦는 것인가….'
예정된 시각이 거의 다 되어간다. 하지만 한지훈의 통신은 아직까지 들려오고 있지 않았으니 .
그를 굳게 믿고 있던 그조차 점차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아니. 한지훈은 반드시 올 것 이다.'
허나 오스카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오스카. 그 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자리를 지켜라. 한지훈 라이젠은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할 것이다."
"… 각하!"
계속해 자리를 지키라는 오스카 의 말에, 참모들이 재차 무어라 항 변하려 할 때.
- 오스카. 믿어줘서 고맙구만.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수정구가 갑작스레 점멸하며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뭣…!"
"설마…!"
참모들이 경악성을 삼키는 소리 를 배경으로, 오스카는 잔잔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한다.
"그래. 믿고 있었다, 한지훈."
- 연방놈들의 뒤통수를 칠거다-오스카, 호응할 준비는 제대로 되있 겠지?
"놈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끌어보 지."
한지훈 라이젠이 이끄는 오천의 기사들. 그들이 적 후방에 난입할 준비를 마쳤다.
* * *
"… 제2군의 피해가 심각해."
나는 통신을 끊고는 그리 읊조렸전열이 흔들리는 것으로도 모자 라, 기사와 마법사 대다수가 전투불 능에, 병력의 삼분지 일이 날아가 버린 상황이었으니 .
하지만 우리군이 밀리는 것도 이제는 끝이다.
나는 비콘을 조작했다.
우우우웅….
푸른색 광휘를 흩뿌리는 비콘의 수정구. 다시금 통신이 연결되었다.
- 클클클. 애송아, 제시간에 도착했나 보구나.
그러자 곧장 들려오는 익숙한 웃음소리. 제피르였다.
나는 그의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제시간에 도착했어. 그쪽 은?"
- 우리 전투마법사들도 초장거리 도약 준비를 마친 상태다. 비콘은 제대로 설치했겠지?
"통신하고 있는걸 보면 모르나?"
일단 마나 통신이 연결되었단 것은 목표했던 지점에 비콘을 제대로 설치했다는 소리.
우리 제3군은 제시간 안에 목표 지점에 도달했고, 비콘까지 완벽히 설치했다. 그리고 동부전선에서 대기 중이던 제피르는 미리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준비중이던 상태.
그 말인 즉,
- 그쪽으로 당장 가지.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의미였다.
번쩍! 번쩍! 번쩍!
화려한 광휘가 비콘 주변에서 일 렁이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환한 빛무리. 그 빛무리들을 헤치고 하나 둘 등장해오는 인영들.
제피르가 이끄는 오백의 마법사 들이 도약해온다.
"자, 연방놈들을 쓸어버릴 준비는 끝났나?"
가장 먼저 도착한 제피르가, 품 속에서 연초를 꺼내 꼬나물며 그리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우리가 돌 격할 때에 맞춰서 광역마법을 퍼부 어 줬으면 좋겠는데 . 가능하나?"
"물론, 문제없지."
제피르가 마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
그가 커다란 스태프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일렁이는 마나의 잔향. 광오한 기운이 주변 공간을 장악해 간다. 환한 푸른색 빛이 일렁인다.
"라브리에 전투 마법단, 폭렬폭풍 마법을 준비하라. 100중첩이다."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선명한 붉은색 마법진. 하나씩 중첩되어가며 광역마법의 세기를 높여가기 시작한다.
광역마법을 준비하는 것은 제피르가 이끄는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도 라브리에 놈들에게 질 수 없지. 셰르베야 마법단. 얼음세 례 마법 준비. 똑같이 100중첩으로 간다."
"카이살 전투마법단. 마나포션을 섭취하라. 광역마법을 준비하겠다."
"분더 전투마법단…."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전투마법단들 또한, 하나둘 마나를 끌어올리며 광역마법을 퍼부을 준비 를 마쳐가고 있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한다.
"그럼, 이제 우리도 돌진 준비를 해야겠지."
고개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오천의 기사들이 전투 마에 탑승한 채 도열해있다.
그리고 도열해있는 기사들 너머로 보이는 것은 저 멀리 오스카의 제 2군과, 연방군 10만이 대규모 회전을 벌이는 모습.
"마법사들이 광역마법으로 놈들 의 후방을 쓸어버리고, 우리 기사들 이 초토화된 뒷통수를 마저 갈아 버릴거다."
지금 우리는 연방놈들의 후방에 있다. 그곳에서 적의 전열에 마법을 퍼붓고, 뒤이어 기사들이 돌진해 파고들어간다.
그 결과. 물 보듯 뻔하다.
"놈들의 지휘부부터 확실히 부숴 버릴 수 있지."
연방놈들의 대가리부터 부술 수 있다. 그리고 그 수가 아무리 많든, 지휘부 없는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니.
오천의 기사와 오백의 마법사들 로 그리 어렵지 않게 정리해버릴 수 있을 터.
크게 외친다.
"기사단! 돌진 준비!"
철그럭, 철컥.
기사들이 다시금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들이 투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하나둘 오러를 돋웠다. 청색 광휘가 그들의 장검에, 기병창에, 그리고 그들의 전신을 휘감았다.
전투의 기미를 알아차릴 것일까. 전투마들 또한 하나둘 투기를 끌어 올린다. 놈들이 콧김을 내쉬며 투레 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크게 외쳤다.
"전기사! 돌진! 내 뒤를 따르라! 연방새끼들을 쓸어버린다!"
파앙!
전투마의 배를 박찼다. 직후 녀석이 튀어나가듯 앞으로 쇄도해간다.
물론 돌진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두두두두두두!
오천의 기사들. 그들이 내 뒤를 따라 하나둘 출격했다. 말발굽소리 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마침내, 오스카를 구원하고, 연방 놈들을 쓸어버릴 때가 왔다.
이번 전투로 전쟁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