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람셀 국왕의 집무실. 언뜻 정갈 하나 고풍스럽게 꾸며진 공간.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인물이 대화했다.
"반갑소. 직접 뵈는 건 처음이구 려. 원정군 사령관 하밀 볼리바르라 하오."
"…람셀 국왕 마그니우트다. 편하 게 앉지."
"고맙소."
연방의 원정군 총사령관 하밀 볼 리바르. 그리고 람셀의 국왕 마그니 우트 3세였다.
하밀이 입을 열었다.
"마그니우트. 본래라면 일국의 국왕인 그대에게 예를 갖춰야 하지만, 본국에서 람셀의 연방령으로의 편 입이 승인되었소. 이제 그대는 연방 공작이 되어 나와 같은 작위를 가지게 되었으니 혹여 말을 편하게 해도 불편해하지는 말길 바라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상관없다."
"다행이구려. 그럼, 이번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하겠소."
하밀은 그리 말하고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보좌관이 지도를 펼쳐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군사 지도였다.
람셀 전역을 표시해둔 지도.
그것을 보고는, 마그니우트는 내 심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연방의 정보력이란…!'
하밀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 보 인 군사 지도.
너무나도 정교했다. 마그니우트가 평소 보던 군사 지도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을 만큼.
아무리 동맹을 맺었다 한들, 단기간만에 저런 정교한 지도를 만들었을 리 없을 터. 분명 다른 은밀 한 경로를 통해 얻었을 것이다.
마그니우트는 고개를 들어올려 하밀을 노려보았다.
"이런 지도를 당당하게 펼쳐보이 다니. 람셀에서 첩보활동을 했다고 자백하는건가? 사령관."
"어차피 우리 연방의 일원이 될 터인데 굳이 숨길 필요가 없지 않 소'?"
이미 연방의 공작이 되기로 결정 된 지금, 첩보활동에 대해 항의하기는 힘든 노릇.
결국 마그니우트는 본래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밀이 입을 열었다.
"우리 연방은 도합 백만의 병력을 파병할 생각이요."
"백만…!"
그리고 마그니우트는 재차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머나먼 타 대륙이다. 육지를 통 해서가 아닌, 바다를 건너서 오는 것이란 말이다.
막대한 병력을 보내기에는 거리 와 지형의 제약이 너무나도 심한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
헌데 연방은 무려 백만에 달하는 대군을 람셀에 파병하겠노라고 말했다.
현존하는 국가들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지닌 연방이기에.
오직 연방만이 가능한 무지막지 한 파병 규모.
하밀의 말이 이어진다.
"이미 이십만에 달하는 병력이 상륙을 완료해, 연안도시 덴터 인근에서 대기 중. 나머지 팔십만은 한 달 뒤까지 전부 도착할 것이오."
"… 대단하군."
마그니우트는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연방에 붙기로 한자신의 선택, 틀리지 않았다.
연방은 강하며 거대하다. 그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그라면, 결코 제국에 패배하지 않으리라.
마그니우트의 입가에 희열이 번 진다.
"저정도 병력이라면, 제국을 이길 수 있다…!"
제국. 과거 정복전쟁 당시에도,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도 자신의 국가를 몰아넣었던 국가.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국력을 쇠퇴시켰던 원수.
복수해줄 수 있다. 연방의 지원 이 있다면.
그들이 모두 상륙해 전투에 참여 한다면 말이다.
연방 원정군 사령관. 하밀 볼리 바르가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함께 힘을 합쳐 제국을 멸망시 킵시다. 마그니우트 람셀 공작."
그들이 전쟁 계획을 수립해간다.
커다란 천막 안. 평소 제국 동부 군의 사령부로 쓰이던 공간.
그곳에 수십의 인영이 둘러앉아 있다.
이곳 동부전선에 모인 여러 군단 장과 기사단장, 그리고 전투마법단 의 단장들이었다.
가장 상석에 있던 가베르테 쥴리 프 동부 사령관. 그가 천막 안의 면면들을 살펴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놀라워. 제국의 전쟁영웅들이 모조리 한자리에 모여 있군."
하나같이 그 위명이 대단한 인물 들이었다.
가장 먼저, 오스카 디 로드게리 스. 북부 3군단의 군단장직을 수행 하고 있는 인물.
요한바르첸 공국과의 전쟁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협상동맹 과의 전쟁까지. 무수히 많은 전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과연 그간의 전공이 거짓은 아닌 것인지. 오스카란 인물은 꽤나 묵직 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인자해 보이는 인상. 푸근해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 부드럽게 지어진 미소.
허나 눈가에는 지성의 빛이 또렷 했으며, 행동에는 온화한 기품이 스 며들어있다. 은은한 카리스마가 자연스레 그의 존재감을 증폭시킨다.
견실한 지장이자 덕장. 가베르테 가 오스카에게서 받은 인상이었다.
그가 시선을 돌려 다음 인물을 주시한다.
'베르겐 라 프랜시스.'
볼로냐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하얀색 머리카락을 지닌, 붉은색 킬마크가 빽빽이 박혀있는 갑주를 착용한 기사.
대단히 강렬한 기세를 가진 인물 이었다.
마치 그 무엇이든 돌파할 듯한 또렷하고도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 이다. 몸은 다부졌으며, 휘감고 있는 분위기는 날카로우니.
마치 기사라는 직업의 이상형이 있다면 베르겐이라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는 천생 무인이었다.
전장을 관통하는 맹장. 가베르테는 베르겐을 그리 평가했다.
그가 시선을 돌려 마지막 인물을 주시한다.
가베르테의 눈가가 찌푸려진다.
'…제피르.'
그가 마지막으로 본인물은 제피르였다.
라브리에 마법전투단을 이끌고 있는 고위 전투마법사.
그는 회색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입가에 연초를 꼬나물고 있었다.
뻐끔뻐끔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
가브리테는 제피르의 얼굴을 바라봤고, 볼 수 있었다.
'…웃고 있다.'
제피르는 진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 호감 가는 미소는 아니었다.
앞으로 있을 전투가 기대된다는 듯, 비틀린 미소.
확신했다. 제피르는 곧 있을 연 방과의 전쟁을 기대하고 있다. 전쟁 그 자체를 즐기는 인간인 것이다.
전쟁광. 가브리테는 제피르라는 인간을 그리 평가했다.
"군단장 오스카, 기사단장 베르 겐, 마법단장 제피르."
북부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모두 제국 전역에 걸쳐 그 위명 이 대단한 이들. 여러 전장에서 무 수히 많은 전공을 세운 전쟁영웅들 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인물의 요청 으로 이자리에 오게 되었다.
가브리테는 고개를 들어올려, 이 커다란 테이블 맞은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역시나 한 인물이 자리해 있다.
'한지훈 라이젠.'
저자가 저 모두를 이끌고 있다.
비록 나이도, 군 경력도 이중에서 가장 젊음에도 이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전공을 세워 왔다. 한 명 한 명이 영웅이라 부 르기 손색없는 이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피식.
가브리테가 웃는다.
"기대되는군."
가브리테는 본디 전쟁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저 황제에 대한 충성심과 제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군직의 길을 걸었을 뿐. 전쟁 그 자체를 혐오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허나 가브리테는 이번 전쟁이, 평소와는 다르게 무언가 기대되었다.
덕장, 맹장, 그리고 전쟁광. 그들 모두를 조율하는 한지훈이라.
과연 어떨까.
가브리테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는, 나직이 고한다.
"한지훈 라이젠. 자네의 계획을 들어보지."
이번 전쟁, 가브리테는 한지훈에 게 일임할 생각이었다.
그만큼 그는 승리의 화신이었으 니까.
만약 그가 전쟁을 직접 지휘하게 된다면 결코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브리테는 한지훈을 바라본다.
가베르테 쥴리프. 제국의 동부야 전군 최고사령관인 인물이자, 이자리에서 가장 높은 권한을 가진 이.
그가 내게 말해왔다.
"한지훈 라이젠. 자네의 계획을 들어보지."
내 계획을 들어보자고.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씩 웃으며 말한다.
"왠지, 자네가 지휘한다면 이번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 같단 말이지."
정답이다. 나는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람셀. 그리고 연방.
과거 게임 속에서 이겼던 상대였 기 때문에 놈들의 취약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 취약점을 파고든다면.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제가 지휘한다면 승리할 것이라 니. 혹시 제게 지휘권을 넘기시려는 겁니까?"
"아직은."
"…그럴 의향은 있다는 것이로군요."
"그래. 자네의 계획이 마음에 든 다면 지휘권을 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그러니 어디 한번 말해보게."
툭, 툭. 그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 펼쳐져있는 지도를 두드린다.
그가 짚은 곳은 동부전선. 다름 아닌 우리가 지금 위치해 있는 장소.
"어떤 경로를 따라 덴터를 칠 것 이고."
그가 지도를 홅는다. 동부전선을 가리키던 가르비테 손가락이 움직여 향한 곳은 덴터. 연방 원정군의 교두보인 해안가 도시.
"어떤 비책으로 수십만의 병력을 돌파해 놈들의 부두와 보급창을 파괴할 것인지."
달그락.
그가 손을 뻗어 장기말을 집었다. 커다란 깃발모양. 군단기다.
그것을 수십 개나 쥐어든 그가, 지도 위에 하나씩 모형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연방놈들은 이미 덴터에 상륙해 있는 상황이다. 그 수가 무려 20만."
붉은색 깃발이 덴터 위에 놓인다. 그 수가 열 개. 대략 20만에 달 하는 병력이 그곳에 자리해있다.
"물론, 람셀군도 무시할 수 없지. 람셀의 20만 주력군은 현재 우리와 대치상태."
그가 다시 모형을 배치한다. 이번에는 동부전선. 우리의 주둔지 바로 앞에, 붉은색 깃발모형 열 개가 새로이 세워진다.
"적의 수는 도합 사십만. 십만도 이십만도 아닌 사십만이다, 한지훈."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이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적의 병력은 증원되고 있지. 연방에서 원정군을 계속해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연방의 지원은 고작 20만으로 끝나지 않을 터다.
최소한 오십만. 아니, 내가 아는 연방놈들이라면 백만에 달하는 병력을 밀어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놈들의 국력은 강대하고 남부대륙에 대한 야욕은 상상을 초 월하니까.
"한지훈. 이전에도 말했지만 다시 강조하지. 이번 전쟁은 역사상 유래 없을 규모가 될 것이다."
제국군은 북부군과 남부군을 돌려 동부전선을 보강하려 한다. 연방 은 대량의 원정군을 파병해 람셀을 지원하려 하고 있다.
"양측이 합쳐 도합 백만. 어쩌면 그이상의 병력이 격돌할지도 모르 지."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가베르테 를 바라보았다. 그가 잠시 심호흡 하고는 말을 잇는다.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다를 것이다. 작전술의 단위도, 전략의 규모 도."
이전의 전쟁들은 국가와 국가 간 총력전이라 한들 양측이 합쳐 기껏 해야 십만 단위에 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허나 제국과 연방. 두 거대한 국가가 맞붙게 되었다. 투입되는 병력의 양이 기존보다 훨씬 거대해졌다.
운용하는 병력의 수가 다르면, 그에 맞춰 전략을 바꿔야 하는 법.
"하지만… 솔직히 말하지. 우리군 은 그 정도로 거대한 군대를 운용 하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전략이랑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 오로서 완성된다.
그렇기에 제국은 강군이었다. 과거 정복전쟁 시절, 그리고 지금 협 상동맹과의 전쟁으로 단련되었으니까.
병사들의 무력은 강인해졌고, 장 교들은 유능해졌다.
그만큼 군을 이끄는 데에는 경험 의 축적이 중요한 요소.
허나 이제 일어날 전쟁은 기존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백만의 군대가 격돌하는 전투라 니.
그런 경험을 지닌 군관이 있을리 없다.
'나는 있지만.'
싱긋 미소지었다.
가베르테의 말이 이어진다.
"허나 자네라면. 이런 거대한 전쟁이 처음임에도, 능숙하게 지휘를 해나갈 것 같군."
맞다. 능숙하게 이끌어나갈 자신 이 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처음이지만, 과거 블랙 오케스트라를 플레이 할 때는 훨씬 거대한 전쟁을 지휘했었 으니까.
'고작' 백만 규모라. 쉽다.
"그러니 말해보게, 한지훈. 자네 의 계획을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속에서 지도를 꺼냈다. 미리 준비해뒀던 물건이었다.
본래라면 가베르테를 따로 만나 제안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판을 깔아주니 이자리에서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천천히 지도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이 계획의 이름은… 낫질 작전입니다."
2차대전기 독일군의 명장, 포위 전과 기동전의 대가. 에리히 폰 만 슈타인이 프랑스 침공 당시 사용했 던전략.
낫질 작전.
나는 그것을 적당히 수정해 응용 할 생각이다.
"이 방법이라면, 2주일 안에 연 방의 상륙거점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구의 역사에서 그 효과가 톡톡히 증명된 전략이다.
씨익 웃었다.
"람셀은 5주 안에 무너지고, 연 방 원정군 놈들은 몰살당 할 겁니다."
실제 프랑스는 6주만에 무너졌다.
나는 5주만에 무너뜨릴 것이다.
가베르테가 지도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