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가베르테는 눈앞의 인물을 바라 봤다.
한지훈 라이젠.
제국의 위대한 전쟁영웅. 그가 마침내 자신의 앞에 자리해있다.
꽤나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 내였다.
흔치 않은 검은색 머리카락. 더해 우묵하게 가라앉아있는 검은색 눈동자. 전신에서 풍기는 기세는 진 중했고, 눈빛은 총기를 머금어 반짝 이는 한편 날카로운 예기 또한 지 니고 있었다.
한지훈을 바라보던 가베르테는 내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자가 한지훈 라이젠. 과연, 이런 인물이었나.'
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린다.
실제로 본 한지훈의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저토록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다니.
그렇기에 가베르테는 마침내 인 정할 수 있었다.
'그동안 들려오던 소문, 절대 헛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가베르테는 그동안 한지훈 이라는 인물의 진위를 의심하곤 했었다.
들려오는 소문들이 너무나도 대 단했기에.
일개 병사가 결국 군단장이 되었다. 다수의 전선을 전전하며 결정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황제의 신임을 받아냈으며 단신 으로는 막대한 무력을, 집단으로는 강력한 세력을 만들어냈다.
마치 과거 전설 속에서나 들려오 던 영웅의 모습이 아닌가.
들려오는 소문들을 어찌 그리 쉽 게 믿을 수 있을까.
차라리 힘든 전쟁을 이겨내기 위한 황제의 프로파간다 공작이라고 여겨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문은 진실이었다.
가베르테는 기나긴 군 생활 동안 이토록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군 관을 만나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아주 짧은 대화만을 했 음에도 가베르테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자라면 해낼 수 있다.'
아무리 어렵고 위험한 임무라 한 들 한지훈은 기어이 성공시킬 것이다.
가베르테가 입을 열어 말했다.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오직 자네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한지훈만이 성공시킬 수 있는 임무를 부여할 것이라고.
그의 말이 이어진다.
"연방의 상륙거점을 파괴해주게."
그러자 한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 *
"연방의 상륙거점을 파괴하라 니……"
나는 흠칫 눈가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탐탁지 않아서 내비친 반응 은 아니었다.
다만 놀라웠을 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가베르테 사령관은 내 계획과 똑같은 전략을 세워둔 듯하다.
하지만 그런 내 반응을 무어라 여긴 건지.
"한지훈 군단장. 연방의 상륙거점을 파괴해야 하는 이유를 상세하게 알려주마."
가베르테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가 손을 뻗어 지도를 한 장 넘 긴다.
팔랑.
동부전선의 지도가 넘어가고, 그 뒤에 자리해 있던 람셀의 국가지도가 드러났다.
가베르테가 지휘봉으로 지도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연방놈들은 이곳, 덴터라는 연안 도시에 상륙해있다. 커다란 부두를 갖춘 해안가 대도시지."
그가 짚은 곳을 바라본다.
람셀령 외곽, 해안가 연안 도시 덴터. 연방에서 가장 가까운 람셀의 대도시였다.
"이곳에 연방놈들이 물자와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첩보다. 여태 까지 상륙해온 놈들의 병력만 무려 20만에 달하지."
"20만이라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연방의 참전까지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았을 터인데.
과연 한 달 뒤까지 얼마나 많은 수의 연방군 병력이 넘어올까.
제국군이 무려 50만이나 동부전 선에 밀어 넣는 이유가 바로 이것 이었다.
연방놈들이 막대한 자원을 밀어 넣고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베르테 사령관이 이어 말한다.
"연방놈들은 이번 전쟁에 막대한 병력을 투입했다. 이대로 놈들이 병력을 수송해오는걸 보고만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지. 제국은 결코 연방을 이길 수 없다."
나 또한 긍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한 달 안 으로는 지원 병력이 이곳 동부전선에 도달할 수 없다. 거리가 너무 멀어. 북부군, 남부군, 중앙군. 그들 모두가 이곳에 당도하려면 적어도 한 달 하고도 반은 필요하겠지."
허나 바로 한 달 뒤 연방의 침공 이 예정되어 있으니 , 여유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한 상황.
"만약 연방놈들이 정말로 한 달 뒤 진군해온다면, 동부전선은 순식간에 쓸려나갈 것이다."
"그러니 증원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어야겠군요."
"그렇지."
가비르테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어떻게?
"놈들의 상륙거점과, 보급창고를 파괴해서 말입니다."
내 말에 가비르테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다.
덴터는 람셀 연안지대 최대 도시다. 큰 규모의 부두와 도크를 가진 곳.
자연히 그 주위에는 대규모 보급 창 또한 건설되어 있을 터.
"한지훈. 덴터를 파괴하게. 그곳 의 부두와 보급시설을 완전히 부숴 버려야 하네. 그래야만 증원군이 올 시간을 벌 수 있어."
놈들의 병력과 물자가 수송되는 부두, 그리고 물자를 저장해놓은 보 급창을 파괴한다면 나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덴터는 놈들의 후방지역이지 요. 더해 대규모 병력과 물자가 저장되어있는 만큼 경계 또한 삼엄할 터."
덴터를 파괴하라.
말은 쉽다.
하지만 그곳은 람셀의 최후방 지역. 더해 놈들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중요한 보급로이기도 한 장소이기 도 하다.
파괴하는 일, 절대 쉽지 않다.
내 말에 가베르테 사령관이 긍정 한다.
"맞다. 제국 국방성에서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그곳에서 전투태세 를 갖춘 병력만 무려 5만. 더해 대기 중인 연방군 병력도 20만에 달 하지. 솔직히 말해 절대 불가능한 임무이네."
연방놈들이 우르르 상륙해오는 거점이다. 그 정도의 병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그곳을 파괴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임무인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이번 전쟁을 보다 유리하게 이끌 어 가기 위해서, 그리고 제국군 증 원 병력이 전선에 도착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한지훈. 그래서 오직 자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 이네."
가비르테는 그리 말하고는 다시 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주름 사이로 보이는 진청색 눈동자. 언뜻 보기에는 차갑지만 한편으로는 이지적이다.
"너무나 어려운,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임무. 자네 전문이지 않나?"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전투. 극 도로 어렵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
확실히 내 전문이다.
"자네밖에 해낼 수 있는 인물이 없어. 황제폐하께 독립 작전권을 받은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탁 해보지."
독립작전권을 지닌 나는 가베르 테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그저 '부탁'할 수 있을 뿐.
그리고 가베르테는 내게 부탁하고 있다.
그가 눈을 감아 심호흡하고는, 다시 떠 이쪽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보다 진중한 빛을 머금고 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해 온다.
"덴터를 파괴해, 연방의 전쟁준비 작업을 지연시켜다오. 해주겠나? 한지훈 군단장."
거절할 생각 따위, 당연히 없다.
나는 씩 웃으며 말한다.
"병력과 물자는 넉넉히 지원해 주셔야 합니다. 가비르테 동부 사령관 각하."
노신사의 얼굴이 펴진다.
그러자 직후,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1. 덴터의 부두시설을 파괴하라.]
[2. 덴터의 보급창을 파괴하라.]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 * *
"방금 전 한지훈 군단장을 만났다."
동부야전군 사령관 천막. 한지훈 이 빠져나가 적막해진 공간 속, 가 베르테 사령관은 통신 수정구로 누 군가와 대화했다.
대화하는 상대 또한 가베르테만 큼이나 높은 직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데이비드, 네놈 말이 맞았다. 확실히 예사 인물은 아니더군. 내 평생 그토록 강한 분위기를 풍기를 사내는 처음이었어."
데이비드 컴벨 하비에르 공작. 제국 북부 야전군의 최고사령관인 인물이었다.
가베르테처럼 하나의 야전군, 수십만 장병의 지휘권을 지니고 있는 고위 장성.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가베르테. 한지훈은 절대 평범한 일 개 군관이 아니다. 괜히 제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지.
데이비드의 말에 가베르테는 고개를 끄덕인다.
한지훈 군단장에 대한 칭찬. 평소였다면 수긍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한지훈이라는 인물을 마주하고 나니, 가베르테는 부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 데이비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문득 가베르테가 말한다.
"자네가 부럽군. 데이비드."
- 부럽다니. 무엇이?
"한지훈이라는 훌륭한 후계자를 둔 것이 말이야."
피식. 가베르테가 미약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자네, 한지훈을 내심 다음 야전 군사령관 후보로 생각해둔 것이 아닌가?"
- 당연하지.
가베르테의 말에, 데이비드는 클 클 웃으며 대답했다.
- 한지훈이 내 후계자가 아니라 면, 그 누가 나다음으로 북부군을 이끌 수 있을까.
가베르테는 데이비드가 이번 전쟁이 끝난 뒤 북부 야전군 사령관 직을 한지훈에게 넘기리라 예상했고,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한지훈만큼 무수히 많은 전공을 세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낸 군관 은 그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야전군 사령관이 되지 못한 다면 그 누구도 되지 못하리라.
- 내다음 후계자는 한지훈 라이 젠이다. 연방놈들을 물리친 뒤 나는 은퇴할 것이고, 한지훈이 내다음으로 북부군을 지휘할거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볼 만하겠 군."
"하지만… 모두 이번 전쟁을 제대로 이겨낸 다음이겠지."
한지훈은 비상할 것이다. 지금보 다도 더더욱 높은 자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허나 그것은 이번 전쟁이 끝났을 때의 이야기.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한지훈의 비상도, 그가 지키고 있을 제국도 없어진다.
가베르테는 나직이 읊조렸다.
"한지훈이 잘 해내줘야 할 터인 데."
그가 연방의 교두보를 파괴한다 면, 제국에 승산이 있다.
반면 한지훈이 임무를 실패한다 면 앞으로의 전황은 어려워질 것이다.
가베르테는 한지훈이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 놀라운데."
가베르테의 지휘천막을 나온 뒤. 나는 내게 배정된 군단장 천막에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가베르테 동부 사령관.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눈동자를 굴려 아직도 시야 한켠에 자리해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람셀의 해안도시 덴터. 그곳의 부두시설과 보급창을 파괴하라는 서브퀘스트 내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결단력은 있다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발상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적의 진군을 지연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적의 진로를 틀어막고 보급망을 파괴하는 일이니.
허나 보통의 지휘관이라면 쉬이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려 수십만 병력이 도사리고 있는 적의 전략적 거점을 치는 일이다.
보통의 지휘관이라면 무모하다 여겨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가베르테는 달랐다.
그에게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그만큼 의 이득이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 고 있다.
그렇기에 내 능력을 믿고 이토록 어려운 임무를 던져준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덴터 파괴라. 어찌해야 할까."
덴터를 파괴하는 일. 확실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라면 할 수 있다.
나는 다른 군관들과는 달리, 다양한 것들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전우들을 불러들여 볼까."
그리고 그 다양한 것들에서는 인 맥과 세력원들이 포함되어있다.
피식 웃었다.
"이런 어려운 임무이니. 제대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 야지."
겉으로 들어나는 일이기에 엘프는 부를 수 없지만, 그동안 제국군에서 쌓아놓은 인물들이라면 기꺼 이 와줄 터다.
라브리에 마법전투단의 단장 제피르, 북부 제 3군단 군단장 오스카, 볼로냐 전투기사단 단장 베르 겐. 그리고 그 외다른 내지인들 과 세력원들까지.
오랜만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수정구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