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245화 (245/390)

245화.

연방 통령의 집무실.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

"그래, 발쿠롬. 정보국의 공작이 실패했다고."

- 송구합니다, 통령 각하.

그곳에서 러셀 통령은 누군가와 통신했다. 다름 아닌 연방 정보국 사령관 발쿠롬이었다.

- 다음부터는 이런 일. 결코 없게 하겠습니다.

발쿠롬의 목소리에는 죄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연방 통령이 직접 지시했던 임무를 실패했으니 .

"아닐세. 그 한지훈이다. 그 어떤 힘든 전장이라 한들, 기어이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나왔던."

허나 실패를 보고받는 러셀 통령 의 목소리에는 책망의 기색이 없었다.

"그런 놈을 상대로 한 일이었다.

게다가 엘프의 개입이라. 공작이 실패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정보국 사령관. 내 약속하지. 이번일의 실패로 자네에게 그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네. 그러니 심려 치 말게."

이번 일의 실패로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 안심시키는 통령이었다.

- 감사합니다, 통령 각하…!

"그래, 발쿠롬 정보사령관. 그럼 들어가서 쉬게."

통령의 자비로운 처사에 감격하는 발쿠롬. 러셀은 미소 지으며 통신을 끊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적막해지는 통 령의 집무실 안.

러셀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발쿠롬. 이자도 감이 많이 죽 었군. 이런 간단한 작업조차 제대로 수행 못하다니."

통령의 표정은 방금 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희미한 살기가 집무실 안을 가득 메워간다.

그가 쯧 혀를 차며 읊조린다.

"슬슬 정보국 사령관을 교체해야 할 때가 된 건가…."

그 '교체'라는 것은 발쿠롬을 처 형해 제거한 뒤 그 자리에 다른 인물을 앉힌다는 것을 뜻했다.

러셀이 시선을 돌려 집무실 한켠에 뻣뻣하게 서 있는 인물을 바라 본다.

"전쟁국 국장."

"네. 통령 각하!"

전쟁국 국장. 모든 전쟁 업무를 대리하는 자신의 측근이었다.

싱긋. 러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발쿠롬 같은 실수. 자네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믿네."

"통령각하께서 제게 부여하신 임무,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방금 전 타 부서의 요인이 '교체' 되는 광경을 지켜본 전쟁국 국장이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그가 딱딱한 표정으로 고했다.

"남부대륙을 정복해 보이겠나이다."

"그래. 그래야지 내가 직접 뽑은 전쟁국 국장이지."

더더욱 짙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러셀 통령.

그는 국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럼 어디 한번 보고해보게. 어떻게 제국을 멸망시키고, 어찌하여 남부대륙을 우리 연방의 영토로 만들 것인지."

"…네. 보고하겠습니다."

전쟁국 국장이 긴장한 얼굴로 브 리핑을 시작했다.

"참전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병력과 물자의 수송은 거의 완성단계이며…."

연방의 침공이 가깝다.

"한지훈 씨. 황제와의 독대는 잘 끝냈나요?"

내가 황제와 대화를 마치고 나왔을 때. 니디아가 그리 물었다.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리발은. 벌써 대화를 엿들어 놓고는."

"아하하. 들켰네요'?"

황제와의 대화를 니디아가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녀는 내게 요정들을 붙여놨으 니까.

"람셀과의 전쟁이 끝난 뒤 식민지 총독이 된다고 들었어요. 미리 축하해요."

역시나 그녀는 내가 황제와 나눈 모든 대화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 편리하긴했다. 굳이 설명해 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총독자리에 내정되었어."

전쟁이 끝난 뒤이기는 하지만.

이번 전쟁이 제국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람셀의 영토를 온전히 얻게 된다면, 나는 총독이 된다.

식민지 전체를 관리하는 고위 관리직이 되는 것이다.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게 될 터.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

물론 전쟁이 제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의 이야기다.

쯧 혀를 차며 말했다.

"이번 상대는 연방이야. 이전과는 힘든 싸움이 될 거야."

나는 그동안 여러 적들을 상대해 왔었다.

요한바르첸 공국, 카렌 왕국, 트 웨인 기마민족, 코르자카 공화국군. 심지어 흑마법사 크라함이 이끄는 흑마법 학파 볼라바아까지.

다양한 적을 상대했고. 그때마다 승리해 이자리까지 올라왔다.

"크루거 연방. 절대 만만찮은 상대는 아니지."

그리고 크루거 연방은 이전에 상대해 왔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적이었다.

동부대륙 전체를 일통한 거대 국가다. 그 국력도, 병력의 수도, 전쟁의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제국 의 배 그이상이니.

그만큼 강대한 적과 전면전을 벌 이게 되었다.

"놈들이 쳐들어오기까지 남은 유예기간은 한달."

이 한 달 동안 연방놈들과 싸울 준비를 마쳐놔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고민하고,

"… 그래. 그러면 당장 동부전선으로 가봐야겠는데 ."

방법을 결정했다.

일단 결정한 이상 행동을 지체하 지는 않는다.

"니디아. 초장거리 도약 마법진을 준비해 줘. 동부전선으로 가봐야겠 어."

나는 동부전선으로 향한다.

* * *

"한지훈이라."

커다란 천막 안. 한 노인이 그리 중얼거렸다.

하얀색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턱수염을 깔끔히 정리한 노인이었다.

실상 노인이라는 단어보다는 노 신사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외양.

그는 제국군 제복을 정갈하게 차 려입고 있었다.

"그가 우리 동부전선에 배치된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그가 서류를 뒤적인다. 한지훈의 전투보고 서 사본 서류들이었다.

노인이 읊조린다.

"과연… 이토록 대단한 전공들이 라니. 제국의 영웅이라 불리기에는 한 점의 부족함도 없도다."

노인의 가슴팍에는 제국 야전군 사령관 계급장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그가 싱긋 미소 지으며 읊조린다.

"제국을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낸 영웅, 유래 없이 출세한 최연소 군단장. 한지훈 라이젠이라.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군 그래."

노인의 이름은 가베르테 쥴리프. 제국 동부 야전군의 최고사령관인 인물이었다.

"과연 자네가 총독자리에 걸맞은 인물인지. 내가 확인해주지. 한지훈 라이젠."

그가 동부전선에서 한지훈을 기다린다.

나는 서둘러 길을 떠났다.

엘프가 준비해 준 초장거리 도약 마법진 덕분에, 목적지에 몹시 빠르 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동부전선인가."

제국 동부전선. 람셀 왕국과의 접경지역에.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더럽게 넓네."

동부전선은 평원과 산맥이 뒤섞 인 복잡한 지형이었다.

드넓은 평야. 간간히 보이는 산맥. 평야 한켠에는 가득 군용 천막 이 다닥다닥 설치되어있다. 동부군 본영이었다.

한동안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군을 이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주변 지형을 살피고 있을 때.

"한지훈 군단장 각하! 저희 동부 군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동부군 병사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사령부로 모시겠습니다. 동부 야전군 사령관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안내해 줘."

나는 그들의 안내를 받아 사령부 천막으로 향했다.

사령부는 멀지 않았다.

동부군 본영 한가운데에 설치되 어있는 가장 커다란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서자, 한 노인이 가장 상석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게, 한지훈.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하얀색 수염을 짧게 깍은, 언뜻 깔끔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었다.

노인의 제복 가슴팍에는 야전군 사령관 계급장이 자리해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가베르테 쥴리프라고 하네. 동부 야전군 사령관직을 맡고 있지."

역시나 아는 이름이었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가베르테 쥴리프]

[제국 동부 야전군 최고사령관]

가베르테 쥴리프. 동부군 최고사령관.

과거 정복전쟁 당시, 데이비드와 더불어 제국 최고의 명장이라 불렸 던 인물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척 경 례하며 말했다.

"한지훈 라이젠. 북부 13군단 군단장입니다."

"어서 앉지."

자리를 권하는 가베르테 사령관. 그에 사양하지 않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천천히 운을 땠다.

"듣자하니, 독립 작전권을 부여받았더군."

"그렇습니다."

"하긴. 독립 작전권을 받을 만도 하지. 자네정도 능력이라면 오히려 독단 전행하는 게 더 나을 테니 말이야."

부스럭, 서류를 들어 올리는 가 베르테 사령관. 그가 서류들을 훑어 보며 이어 말한다.

"한지훈, 나는 자네의 전투보고서 를 모두 읽어봤다네. 특히나 트웨인 과 카렌에서의 전투보고서를 말이 야."

아무래도 그가 들고 있는 서류는 내가 그동안 치러왔던 전투에 대한 보고서인 모양이다.

"대단하더군. 전략적 안목이 너무나도 뛰어나. 데이비드 그 꼰대같은 녀석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이유가 있었어."

익숙한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가베르테를 바라본다.

'데이비드 북부사령관.'

내 직속 상관인 인물이다.

가만히 추측했다.

'서로 친분관계가 있는건가.'

하긴, 그럴 만하긴했다. 데이비드와 가베르테는 서로 같은 계급이 자, 일개 야전군의 사령관인 인물. 서로 친분관계가 있다 한들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 .

헌데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본 것일까.

피식.

가베르테가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한다.

"나와 데이비드가 서로 친우라고 여기고 있군. 맞지 않나?"

"그런 것 같습니다만."

"전혀 아니야. 놈은 내 라이벌이었다. 제국 수도 사관학교에서부터 항상 수석을 두고 다투었지."

아무래도, 데이비드와 가베르테는 그리 친밀한 사이는 아닌 듯했다.

오히려 경쟁하는 관계.

"그 악연이 이렇게 머리가 허옇 게 물들 때까지 이어질 줄은 나도 놈도 몰랐겠지만."

하지만 그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었다.

서로의 호승심을 자극해 둘 모두 에게 상승효과를 가져다주는.

가베르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 으며 말한다.

"잡소리가 길었군. 한지훈, 여기 동부전선의 현황을 알려주마. 작전 참모. 지도 준비해주게."

그의 말에 지도를 가져오는 참 모. 역시나 커다란 전략지도였다.

표기된 날자는 몇 주 전 것.

그가 지도를 지휘봉으로 짚어가 며 말했다.

"람셀의 전력은 거의 소탕되었다. 놈들은 대규모 보병군을 운용하고 있다만. 병력운용과 장비가 허술해. 덕분에 전쟁을 압도적인 우세로 이 끌고 있었지."

그의 말에 나는 지도를 살폈다.

확실히, 람셀의 움직임은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아마도 무수히 많은 패배를 겪으며 소극적으로 변화 한 것이리라.

"전쟁의 승리가 가깝다, 그렇게 생각했었지. 바로 몇 주 전까지는 말이다."

가베르테는 지도를 바라보며 그리 말하고는, 쯧 혀를 찼다.

"연방놈들이 개입해 오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팔랑. 뒤로 넘어가는 지도. 그러자 몇 주 전 것이 아닌 지금 당장 의 동부전선 현황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몇 주 전 제국군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던 것과 다르게 지금 전선 현황은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가 전선 곳곳에서 벌 어진다.

가베르테가 이어 말했다.

"연방새끼들이 놈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오고 있다. 정체불명의 마법사와 기사들이 전장에 등장했어. 더해 적병의 무장 수준 또한 급격히 증강되었다."

정체불명의 마법사와 기사들이란, 연방이 몰래 지원한 고위 병종들일 터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쉬는 가베르테.

"국방성에서 들어온 첩보다. 약 한달 뒤, 연방놈들이 본격적으로 남부대륙을 침공해온다 한다."

이미 들었던 소식이다.

"남은 한 달의 여유기간동안 연 방놈들의 침공에 대비해야한다. 그래서 원군이 오고 있지. 자, 이걸 보게."

내게 어떤 서류를 건네는 가베르 테. 그것을 받아 읽어봤다.

"이미 북부군과 남부군, 그리고 중앙에서 오고 있는 증원군들 명단이다."

내가 받은 것은 동부전선에 배치 되는 증원군 명단이었다.

증원 규모가 척 보기에도 많아 보인다. 서류 전체가 부대명으로 빽 빽이 메워지고 있는 꼴이었으니 .

"동부군을 주축으로, 북부와 남부, 중앙의 증원이라…."

잠시 살펴보고는, 가베르테에게 물었다.

"증원오는 병력이 도합 어떻게 됩니까?"

"대충 25만정도가 증원될걸세. 북부 10만, 남부 10만, 중앙 5만.

이곳 동부전선에 도합 50만의 병력 이모이지."

나는 그거대한 규모에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야전군에서 지원온 병력이 도합 25만. 이미 동부전선에 배치 된 병력이 25만. 둘 모두를 합친다 면 무려 50만이라는 괴랄한 숫자가 나온다.

50만의 병력이라.

제국군 절반에 상응하는 막대한 규모의 병력이었다.

이토록 대량의 병력이 고작 하나의전선에 배치되다니.

하지만 상대할 적을 생각해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그 연방놈들과 싸우게 될 테니. 그 정도 병력은 있어야겠지."

이곳 동부전선에서 상대할 적은 다름 아닌 크루거 연방이었다.

50만. 막대한 수지만, 이 정도로 대량의 병력이 있다 해도 패배할 수 있다.

적 또한 그에 꿀리지 않을 정도 로 대규모 군세를 운용할 것이 당 연하기에.

"역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회전이 일어날 것이다."

50만의 제국군. 그리고 그에 거의 상응하는 람셀 연방 연합군.

너무나도 무지막지한 규모의 전쟁이다.

과연 이번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인명이 사라질까.

그때 문득.

"한지훈 군단장."

입을 여는 가베르테 사령관. 그 가 나와 눈을 마주쳐오며 말했다.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오직 자네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과연 무슨 부탁일까.

나는 가베르테 사령관을 지그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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