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240화 (240/390)

240화.

나는 수정의 바로 앞까지 걸어 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수정은 반파 상태였다.

이곳저곳에 커다랗게 나 있는 여러 균열들. 그사이로 보이는 내부 공간까지.

작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엉망인 상태라면, 금방 꺼낼 수 있겠어."

꺼내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검을 휘두른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을 내며 격돌하는 장검과 수정.

균열이 벌어지고, 수정이 와르르르 내려앉는다. 그러자 수정의 안쪽에 자리해 있던 물건이 드러났다.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유물인가."

푸른색 구슬이었다.

그다지 커다란 크기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내 주먹만 할까. 이 무 지막지한 크기의 수정 속에 갇혀있 던 물건이라기엔 심히 작은 물건.

하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 심상치 않아 보여."

구슬에서 풍기는 기운이 너무나 도 농밀했다.

손을 뻗는 것조차 주저할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물건.

저것을 사용해 아티팩트를 만든 다면 고격의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이 조그마한 구슬의 정체 가정확히 무엇일까.

환상종의 부산물이라는 것만 알 고 있을 뿐.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구슬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건 리바이어던의 핵이다. 경솔 하게 만지지 말거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누군가 내 의문을 풀어줬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봤던 목소리.

나는 고개 돌려 방금 전 목소리 가 들려온 방향, 내 바로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 중년 여성 엘프가 서 있었다.

역시나 잘 아는 인물이었다.

"카탈리."

전 엘프 여왕 카탈리.

언제 도착한 것일까. 그녀가 내 뒤에 가만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벅, 저벅.

카탈리가 내 바로 옆까지 걸어오 며 설명했다.

"과거 모든 바다를 지배하던 전설급 환상종, 리바이어던의 핵이다.

가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나와 자연력이 담겨 있지."

그녀의 설명에, 다시금 시선을 돌려 저 파란색 구슬을 바라보았다.

전 엘프 여왕인 그녀조차 상상하 기 힘들 정도로 막대한 양의 자연력과 마나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니, 세계검의 핵심 재료이겠지."

"그래. 이제 네 개 남았다."

"네 개라…. 까마득하구만."

유물들은 세계검을 만들 수 있는 핵심 재료이며, 다섯 개의 대륙에 하나씩 잠들어있다.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앙.

방금 막 남부대륙의 유물을 취했 으니 , 남은 유물의 수는 모두 합쳐 네 개다.

그것들을 모조리 모은다면 진정한 세계검을 만들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유물, 리바이어던의 핵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보다, 내놔라."

카탈리가 손을 내뻗으며 그리 말했다. 그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 으며 물었다.

"내놓으라니? 뭘?"

"반지 말이다."

"아."

나는 내 왼손에 껴뒀던 반지를 바라봤다.

카탈리가 줬던 반지.

방금 전 크라함과의 전투로 꽤나 많은 저장량을 소모했던 것일까. 반지의 광택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나는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반지. 나한테 완전히 줬던 거 아니였나?"

"내게 의미 있는 물건이다. 네놈 에게 완전히 넘기기에는 아깝지."

카탈리는 반지를 내게 완전히 넘 긴 것이 아니였었는 듯했다.

하긴. 이토록 대단한 아티팩트를 전생의 원수인 내게 고스란히 바칠 리는 없었으니 .

나는 왼손의 반지를 빼내어 카탈 리에게 넘겼다. 그녀가 그것을 받아 살펴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부의 생명력과 마나가 모조리 증발했구나."

아무래도 반지는 가진 힘을 대부분 잃은 것 같다.

"하긴 네 격을 일시적으로나마 상승시킬 정도였으니 . 그럴 수밖 에."

그만큼 내가 반지의 힘을 많이 끌어다 썼었기에.

카탈리는 제 손에 들린 반지를 한참이나 지그시 바라보고는, 양손을 그러모아 꽉 쥐었다. 그 동작이 너무나도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문득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그 반지. 소중한 물건인가 보 지?"

"그렇다.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 다도 중요한 물건이다. 내 생명 다음으로 말이야."

아티팩트로서의 성능은 차치하고, 그녀에게 꽤나 소중한 물건인 것 같았다.

무언가 추억이라도 깃든 물건일 까.

그녀가 반지를 소중히 갈무리하 고는 내게 말했다.

"그나저나 한지훈.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나와 카탈리가 맺었던 약속.

당연히 잊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코르자카 공화국. 복원시켜야지."

나는 카탈리의 도움을 받는 대신, 코르자카 공화국을 처음처럼 완전한 공화정 국가로 되돌리겠다고 약속했었다.

내가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말하 자, 안도한 것일까.

"잊지 않았다면 다행이군. 이제야 모든 미련을 버리고 중앙대륙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엘프의 숲으로 돌아간다는 소리 를 해온다.

마지막 미련이었던 코르자카 공 화국이 정상화 될 것이기 때문에, 비로소 고향으로 가 편안한 노후를 보내려 하는 것이다.

허나 안될 일이다.

"카탈리. 엘프의 숲으로 돌아 가는 건조금 미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다. 좀 더 이곳 코르 자카에 있으란거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저토록 유용한 인재를 편히 쉬게 놔둘 내가 아니다.

이어 말했다.

"코르자카를 바로잡는데 네 도움이 필요해."

"내 도움이라니?"

"공화정이라는 생소한 체계를 잘 아는 인물은 너 말고 달리 없잖아."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검을 휘두르거나, 군대를 지휘하는 등. 전투와 직접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 이다.

복잡괴괴한 정치질이나 행정일은 영 적성에 맞지 않는다.

그런 내가 코르자카 공화국의 체 계를 바로잡는다?

힘든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카탈리를 써먹으 려 한다.

"네가 한동안 대의원 노릇을 해 줘야겠어."

그녀를 대의원 자리에 올리고, 직접 체계를 정비토록 한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과거 초창기 코르자카 공화국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말에,

"그건 힘든 일이다. 한지훈."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어 주저없 이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내가 대의원이 되는 건 우리 엘프의 원칙과 위배된다. 엘프는 인간 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아. 오직 관찰자 역할을 맡을 뿐."

엘프는 인간의 역사와 정치에 결코 간섭하지 않는다.

그들이 특별히 개입할 때는, 흑마법사의 난동이나 지맥의 훼손 등 세계의 질서에 관련되었을 때뿐.

"헌데 대의원이라니. 일국의 군주 나다름없는 자리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코르자카 공화국 대의원 자리는 정치의 영역. 엘프인 그녀가 발을 남궈서는 안된다.

그들 엘프의 원칙에 위배되기에.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피식 웃으며 말해본다.

"코르자카 공화국을 직접 만든 장본인이면서. 이제와 발뺌할 셈인 가?"

이미 원칙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도 멀리 와버렸다.

"예전과 달라진 건 없다. 카탈리, 네가 이 국가를 재정비해라. 네가 처음 코르자카를 건국했을 때처럼 말이야."

이미 하나의 국가를 직접 건국했 던 그녀가 이제 와서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카탈리가 직접 이 국가를 관리해 야 한다.

직접 코르자카 공화국을 설계했 던 그녀라면, 체제를 정비해 다시 초창기 공화국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 않을 터.

카탈리가 픽 웃었다.

"결국 나보고 전부 다 하라는 거 로군."

"전부 다는 아니지. 나 또한 해야 할 일이 많아."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실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으 니까.

"황제와 협상해서 이것저것 처리 해야 해. 일단 정복한 코르자카 공 화국을 총독령이 아닌 자치령으로 만들어야 하고, 제국의 간섭 또한 억제해야 하지."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골이 아플 지경이다.

전쟁에서 제국이 승리했다. 본래 라면 이 코르자카 공화국에 총독이 파견되고, 총독령이 되어 제국의 식민지가 될 터.

막아야 한다.

황제와 협상해 자치권과 공화정 체제를 인정받아야 한다. 제국의 간섭을 최소화 해야 한다.

그래야만 코르자카 공화국이 그녀가 기억하는 초창기 완벽한 모습 으로 만들어쩔 수 있을 터이니.

내가 맡은 일의 중요성을 마침내 깨달은 것일까.

"… 할 수 있겠나?"

그녀가 표정을 굳히며 묻는다.

명백히 제국의 국익에 반하는 내용이었다.

정복한 국가를 식민지로 삼지 않 고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엘프에게 거의 군주나 다름없는 대의원 자리를 내어주다니 말이다.

본래라면 거의 반역이라 불러도 할 말 없는 내용.

일반적인 군관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내 이름은 그리 가볍지 않으니까 말이야."

제국의 전쟁 영웅이자, 황제의 최측근이며, 제국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나라면.

영 불가능한 협상은 아니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내 말뜻을 알아들은 것인지, 카 탈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네녀석 만 믿겠다, 한지훈."

나는 시선을 돌려 그녀의 얼굴표 정을 바라봤다.

카탈리의 얼굴에는 이전에 없던 신뢰의 기색이 드러나 있다.

비록 전생의 원수인 나지만. 이렇게 흑마법사의 세력을 토벌했고, 적극적으로 공화국 복원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으니 .

그녀에게 나름의 신뢰를 산 것이다.

솔직히 조금은 뿌듯했다. 과거의 업보를 어느 정도 만회한듯한 느낌 이었기에.

나는 씩 웃고는, 작게 읊조렸다.

"이제 이곳에서의 볼일은 모두 마무리 된건가."

코르자카 공화국에서 해야 할 일 들을 모두 마쳤다.

좌표교란기를 파훼했고, 의원놈들을 모조리 처치했으며, 결국 흑마법사의 세력을 몰아냈다.

놈들의 수장 크라함을 처치했다. 목표했던 유물 또한 회수했다.

맡은 모든 임무를 완수한 상황.

"돌아갈까."

이제는 제국 수도로 귀환할 때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지하 유적을 빠져나갔다.

"황제 폐하! 보고드립니다."

제국 황실의 알현실. 그 넓고도 화려한 공간에서, 한 인물이 입을 열었다.

제국 국방성 장관 카디르였다.

그가 맞은편의 인물에게 보고했다.

"한지훈 라이젠 경이 모든 임무 를 완수했습니다. 코르자카 공화국 의 모든 의원들을 처치했으며, 지하 의 흑마법사들까지 몰아냈습니다."

다름 아닌 한지훈의 임무성공 보고.

짧게 요약된 말이었지만. 사실 너무나도 위대한 업적이었다.

고작 십여 명의 엘프들만을 데리고 수도에 잠입.

무수히 많은 적의 방해를 뚫고, 놈들의 심장부를 급습했다.

코르자카의 의원들과 흑마법사들을 모조리 처치했다.

너무나 위험하고도 무모한 임무.

하지만 한지훈은 성공했고.

그 여파는 결코 적지 않았다.

"남부전선이 정리된 것입니다."

실상 한지훈이 코르자카 공화국 과의 전쟁을 종결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수만, 수십만의 병사들과 수천 척의 군함이 치열하게 싸우던 남부 전선을 그 혼자서 정리해버린 것이다.

"그래. 한지훈이…."

제국의 황제, 아르테니아는 대견 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짙은 미소 를 지어보였다.

한지훈.

자신의 측근이자 제국의 위대한 영웅.

그는 이번에도 보란 듯이 어려운 임무를 완수해 보였다.

새로이 위대한 업적을 세웠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더 이상은 미룰 필요가 없군."

아르테니아가 자신의 바로 옆에서있던 인물. 내무성 장관을 향해 물었다.

"내무성 장관. 내가 지시한 일은 잘 처리되었는가?"

"지시한 일이라 하신다면."

"한지훈의 승작 말이네."

이미 황제는 한지훈의 승작 작업을 지시해둔 상태였다.

그가 씩 웃으며 읊조렸다.

"이제 한지훈 백작이 아닌 후작 인가."

한지훈이 제국 수도로 복귀한다 면, 그의 승작식이 거행될 터다. 그의 작위가 백작에서 후작으로 한단 계 위로 상향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향되는 작위에 맞춰 새로운 봉토와 권한 또한 하사될 터.

"성대한 환영회를 준비하거라."

황제는 한지훈의 기뻐하는 얼굴 이내심 기대되었다.

아르테니아는 제국 수도 황궁에서 한지훈을 기다린다.

그의 승작식이 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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