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 엘프들이 이곳을 향해 진격해 옵니다!
코르자카의 수도 중앙에 있는 거대한 건축물, 대의사당. 그곳에서 커다란 음성이 터져 나와 드넓은 홀을 왕왕 울렸다.
코르자카군 고위 장교들의 보고였다.
들려오는 보고가 한둘이 아니었다.
"엘프 전사의 수는 약 오천!"
"지상군, 막아라! 막아! 놈들이 대의사당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란 말이다!"
- 막을 수 없습니다! 적이 너무 강합….
"염병! 흑마법사들의 지원은 아직인가?!"
- 지하 유적에 내려가 있는 크라 함이 응답하지 않습니다. 모든 통신 채널이 단절….
"마법사! 마법사를 긴급 수배해! 전투마법사가 아니라도 좋다. 일반마법사라도 징병해 어떻게든 맞상 대 시키란 말이야!"
끝없이 밀려드는 고위 군관들의 보고.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장성 급 군관들의 고함 섞인 명령까지.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는 사람들 의 음성은 저마다 다급함과 경악이 섞여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엘프 전사가 수도에 소환되다 니. 그것도 그 수가 수천이라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가히 상대 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여겨질 정도의 군세가 수도에 도착했으니까.
엘프 전사 수천의 등장이란 그 정도의 의미였다.
그들 하나하나가 기사에 상응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다. 헌데 그 수가 무려 수천이라 한다.
그 말인 즉 기사 수천 명이, 그것도 코르자카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수도 카멜리에 등장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인 것이다.
대의원 알비덴이 나직이 읊조렸다.
"모두 끝났군."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코르자카군의 지상군은 약하니까.
고급 전력인 기사들과 몇 없는 전투마법단은 모조리 제국과의 전쟁에 투입했다. 그들은 제국의 남부 해안지방에 상륙해 교전을 이어나 가고 있는 상황.
이곳 본토에 남아있는 고급 전력 의 수는 극히 적었다.
전투마법사는 아예 없었고, 기사 들은 몇몇 요충지를 지키는 소수인 원과 대의사당을 수호하는 중앙기 사단이 고작이었다.
헌데 그중앙기사단이 갈려나갔다. 엘프의 압도적인 숫자와 무력 에, 말 그대로 쓸려나가게 되었다.
이제 그들을 막아낼 수 있는 전력 따위. 지금 수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비덴 대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 드넓은 홀 내부의 모습을 둘러본다.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놈들이 코앞까지 도달했습니다!"
"흑마법사와의 연락은 아직인 가?!"
"… 승산이 없습니다."
"제기랄! 병력을 어떻게든 끌어 모아!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지연이라도 시켜!"
정신없이 교신하고 지시하는 고위 군관들과 장성들. 알비덴은 그들을 잠시 주시하고는, 쯧 혀를 찼다.
'무능한 것들.'
알비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화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코르자카의 군관들은 그가 지시 하는 것, 무엇 하나 제대로 완수한 것이 없었다.
수도에 침입하려는 와중 적발된 적 십여 명. 연안 경비대에게 제거 하라 지시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연안 경비대는 전투함 다수를 잃었을 뿐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놈들이 수도 도시 내부로 잠입을 성공했다.
도시 내무에 숨어든 적들을 제거 하라는 알비덴의 엄명.
역시나 완수되지 못했다.
이만에 달하는 병력과 천여 명의 기사들이 철저히 수색했지만 놈들 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결국 코 르자카군은 놈들을 놓쳐버렸다.
좌표교란기가 설치된 외곽 고성을 사수하라는 그의 명령.
그 또한 실패했다.
배치했던 병사와 기사들이 갈려 나갔다. 놈들은 손쉽게 고성 지하까지 내려가, 교란기를 파훼했다. 엘프들의 대규모 초장거리 도약 마법 이 발현되었다. 이제 놈들의 수는 수천으로 늘어났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거늘.'
사실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놈들이 아직 엘프를 부르지 않았을 때. 고성을 침입했을 때. 도시 어딘가에 숨어있을 때. 그리고 막 연안에서 발견되었을 때.
그때 놈들을 찾아내 사냥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놈들은 엘프 전사들을 소환했고, 코르자카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 알비덴은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허나 그렇다 한들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그가 아니었다.
"수석 마법사."
"네. 대의원님."
알비덴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바로 옆에서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코르자카 공화국의 수석 마법사 림 돌만이었다.
코르자카 공화국 마법부의 수장 인 인물.
그에게 지시했다.
"탈출 작업은 어찌 되었지?"
"… 결국 포기하시는 겁니까?"
"그래. 엘프 전사 수천이다. 막을 수 없지 않나."
코르자카 공화국 또한. 다른 국가들처럼 위급상황 시 타 국가나 안전구역으로 도주할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준비되어 있었다.
코르자카 공화국 같은 경우엔 마법진이었다.
만일 외적의 침입에 의해 의사당 이 점거당 할 위기에 대비해, 이곳 대의사당 어딘가에 초장거리 도약마법진을 미리 준비해놨던 것이다.
마법사 림돌만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쩔 수 없군요. 탈출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대 의원님."
저벅, 저벅.
림돌만이 앞장서고 알비덴이 뒤 따른다. 알비덴은 으득 이를 갈았다.
"흑마법사 놈들. 결국 도움은 하나도 안 되었군."
엘프들이 습격해 온 이유는 흑마법사와 협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정작 위급 상황인 지금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알비덴이 이어 중얼거린다.
"그 불길한 놈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크라함의 흑마법사 세력만 있다 면, 제국과 엘프를 상대로 버틸 만하다 여겼다.
하지만 그들 코르자카는 배신당 했고, 이제는 멸망을 목전에 둔 상황.
후회는 언제나 늦다.
"일단 목숨을 건지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은 자신의 목을 보전할 길을 찾아야 할 때. 알비덴은 고개를 가로젖고는 림돌만을 뒤따른다.
허나 그때였다.
"… 이런."
"림돌만. 무슨 일이지?"
앞장서던 마법사가 갑작스레 멈 춰 섰다. 그에 그이유를 묻는 알 비덴. 그에 림돌만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다급히 고해왔다.
"마법진과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대의원님."
"…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알비덴은 마법의 지식이 그리 많 지 않았기에, 지금 림돌만이 하는 소리를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림돌만이 이어 말한다.
"초장거리 도약 마법진이 파훼되 었다는 소리입니다."
"마법진이 파훼되었다니… 어떻게…."
"아무래도 엘프의 마법기술이 저희를 아득히 앞서는 것 같습니다."
주르륵. 알비덴의 이마에 식은땀 이 흐른다.
"마차를 이용해 탈출하셔야 합니다."
알비덴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예고했던 대로.
코르자카 공화국군은 우리를 막 지 못했다.
"엘프! 엘프를 막아라!"
"조금이라도 더 지연시켜!"
적의 군관들이 크게 소리 지른다. 꽤나 패기 넘치는 모습.
하지만 패기 넘치는 것은 뒤에서 뒷짐지고 고함이나 외쳐대는 저 군 관나리들뿐 일반 병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도, 도망쳐! 엘프야! 엘프라고!"
"으아아아악!"
적의 병사들이 들고 있던 장검과 장창을 바닥에 던지고 도망친다. 기 껏 만들어놨던 방진은 순식간에 무 너졌으며, 가로막았던 대로는 순식간에 구멍투성이 인파로 전락한다.
나는 작게 지시했다.
"마게브. 갈겨."
"그렇게 하지요."
번쩍!
환하게 반짝이는 청색 마나광. 직후 어둑한 공기를 꿰뚫듯 쏘아진 공격마법의 궤적.
마법은 적의 전열에 명중했다.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온다.
콰콰콰콰콰쾅!
땅이 진동하고, 커다란 흙먼지 기둥이 후욱 솟아올랐다. 적병의 파편무더기가 허공으로 부웅 떠올랐 다가, 후드드득 떨어져 내렸다.
"끄아아아아아!"
"아악! 아아아악!"
직후 들려오는 소음은 고통에 찬 비명과 고함소리뿐. 예의 적 군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도 방금 전의 마법에 휩쓸려 죽어버린 모양.
이쪽을 가로막는 적 병력을 쓸어 버리는 것. 엘프와 합류하고 진군하 며 벌써 십 수 번이나 반복되었던 일이다.
철그럭, 철그럭, 철그럭.
엘프 전사들이 위풍당당하게 진군했다. 그들이 피투성이 지면을 밟 아가며, 가로막는 적의 전력 모두를 배제해간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떤 구조물이 보였다.
"여기가 대의사당이다."
겉보기로는 신전같은 모습이다.
커다랗게 지어진 대리석 건물. 마치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기라도 하려는 듯, 쓸데없이 화려하고도 드 높게 지어진 꼴이 우습다.
나는 이어 말했다.
"저기 안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면 돼."
이 대의사당 안에 수십에 달하는 의원들이 있다.
코르자카 공화국의 지도층. 과거에는 시민들이 선발한 지식인이었 으나, 지금은 그저 부만을 갈구해 부패해버린 권력집단.
나는 계단을 올라 문짝을 발로 찼다.
콰앙!
커다란 문짝이 터져나간다. 그러자 내부의 경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적이다! 적이 벌써 이곳까지 왔…."
"의원님! 다른 방향으로 탈출하 셔야…."
"경비대는 어디 있나!"
탈출이라도 준비하고 있던 것일까.
하얀색 로브를 뒤집어쓴 의원 놈 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을 인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다른 군관 들도.
나는 지시한다.
"타냐."
"그래. 한지훈."
"코르자카 의원의 수는 모두 88명이다. 다 찾아서 죽여버려."
타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면을 박차 도약했다.
파앙!
앞으로 쇄도하는 그녀의 신영.
그 뒤를 따르듯 다른 엘프 전사들 또한 앞으로 돌진한다.
이후 일어난 일은 뻔했다.
서걱! 콰직!
엘프 전사들이 의원과 그들을 보호하려던 측근들을 모조리 베어 죽 여나갔다. 놈들이 핏물을 흘리며 쓰 러진다. 그들의 하얀색 로브가 검붉 게 물들어간다.
물론 나 또한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 서 있을 생각은 없었다.
파앙!
"커헉….!"
검을 휘둘렀다. 적의원을 베었다.
코르자카 공화국의 수뇌부가 죽 어나가기 시작한다.
작게 읊조렸다.
"대의원 놈은 어디있지?"
놈만은 꼭 찾아서 죽여버려야 한다.
나는 적을 하나둘 베어나가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대의원님! 여기 마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허억, 헉!"
알비덴은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 나갔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대의사당 뒤편에 자리해있는 정원. 그곳에 수십 대의 마차들이 자리해있다.
모두 의원들이 평소 타고 다니던 마차들이었다. 알비덴은 그중 가장 선두에 있는 물건, 자신의 커다란 사두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마차. 마차에만 탄다면, 어떻게는 이 지옥같은 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다!'
방금 전 그는 대의사당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그동안 자신이 본 것은 참혹한 광경이었다.
뾰족귀 엘프 놈들이 들이닥쳤다. 도주를 위해 밖으로 나가려던 의원 과 그들을 수호하던 군관들을 순식간에 도륙해버렸다.
의사당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 들이 모조리 죽어나갔다. 시선이 향 하는 곳에는 언제나 시체가 있었고, 새찬 숨을 들이킬 때마다 코에선 비릿한 혈향이 머리끝까지 파고들었다.
후욱, 그가 크게 숨을 내쉰다.
'살아나온 것은 천운이었다.'
알비덴이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 다름 아닌 운이었다.
정말 운 좋게도, 알비덴은 마차 까지 가는데 다른 엘프 전사들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휩쓸 고 간 흔적들을 스쳐지나왔을 뿐. 동선이 엇갈렸던 것이다.
그에 마침내 알비덴은 자신의 마차가 있는 곳까지 왔고. 그리하여 ,
"말씀은 들었습니다, 당장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덜컹!
알비덴은 다급히 마차에 오르고는 가방을 옆자리에 집어던졌다. 가방에서는 찰그락 소리가 났다. 도주 하면서 챙겨온 금화들이었다.
그가 닦달했다.
"당장! 당장 출발해!"
"알겠습니다!"
마부가 마차를 출발시키기 위해, 채찍을 드높이 들어 올리려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기 있었네."
갑작스레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서걱!
직후 들려오는 것은 무언가를 가 르는 절삭음. 그에 한창 가쁜 숨을 고르고 있던 알비덴은 고개 들어 앞을 바라봤고,
"맙소사….!"
차장 밖, 마부의 목이 잘린 것을 보게 되었다.
털썩.
마부의 몸뚱이가 천천히 기울어 마차 밖으로 떨어진다. 주르륵, 마차 안으로 튀었던 핏방울들이 흘러 내린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마부가 뒷모습이 가렸던 시야 너머, 어떤 인물 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가 마지막이다. 알비덴, 다른 의원 놈들은 엘프들이 모조리 다 죽였어."
여유로운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청년.
청년의 머리색은 검은색이었고, 눈동자색 또한 머리색과 동일한 새 카만 암흑색이었다.
저런 외양, 이전에 소문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 한지훈…!"
제국의 악마 한지훈.
그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 바로 앞에 나타난 것이다.
덜컹.
한지훈이 마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알비덴은 죽음의 공포에 어깨를 떨고, 한지훈이 쯧쯧 혀 를 차며 말했다.
"그러게 흑마법사같은 놈들이랑 손을 잡지 말았어야지."
알비덴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낼 성대가 반으로 갈라져버렸기 때문에.
퍼억!
그의 목에 기다란 장검이 박혀들 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