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쿨럭, 커헉…!"
코르자카 공화국, 중앙기사단의 3번 전대장. 호프런은 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고개를 들어올려 주변을 살 핀다.
"망할 제국 놈들… 비겁하게 기 습이라니."
주변에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뭉게뭉게 일어나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들.
바닥에는 병사들이 온통 죽어 나 자빠져 있었으며, 다급히 오러를 돋 워 방호태세를 다졌던 기사들 또한 지금 바닥을 기고 있다.
적 마법사들의 기습공격에 의해 순식간에 커다란 피해를 입었던 것 이다.
그가 크게 외친다.
"3번 전대! 전대장 호프런이다! 각 편대장은 현황을 보고하도록!"
"1번 편대장 마일럭! 저희 편대는 무사합니다!"
"2번 편대장 알레이탄. 휘하 편 대원 절반이 무력화 되었습니다."
"3번 편대장 대리 로멘. 편대장 이전사했습니다. 편대인원 거의 대부분이 무력화 되었습니다."
"4번 편대장…."
이곳저곳에서 기사들이 비척거리며 일어선다. 그들이 하나둘 보고해 왔다.
과연 마법공격은 강렬했다.
허나 기사들은 오러를 다루는 초 인들. 오러를 돋워 방비한다면,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의 타격조차 견뎌낼 수 있다.
전대장 호프런이 고개를 끄덕인다.
'남아있는 휘하 병력의 수는 약 절반.'
이자리에 오십의 기사들이 살아 남아있다.
그가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배 후를 바라본다.
성벽이 무너져 있다.
'놈들은 우리를 처치하고 내부로 진입하려 하는 것이겠지.'
자신은 저 고성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으리라는 사실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상부에서는 이곳을 방어하기 위해 다수의 기사 전대를 배치했으며, 제국 놈들이 굳이 이 고성을 노리고 있었으니 .
눈치가 있으면 금세 알아차릴 수 밖에.
철그럭. 그가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들었다.
"당장 대열을 가다듬어라! 놈들 이 이곳을 돌파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화르르륵!
오러의 광휘가 아른거리며 피어 오른다. 주변에 하나둘 일어서 있던 기사들 또한. 자세를 바로하고 오러 를 발현시켰다.
호프런 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버틸 수 있어."
당장 전투에 응할 수 있는 휘하 기사들이 대략 오십여 명. 더해 인근에는 다른 전대들 또한 있다. 그 들도 이 소란을 듣고 이곳으로 지원올 터.
반면 적의 전력은 고작해야 십여 명이라 들었다.
놈들이 제아무리 정예라 한들, 그토록 적은 수로는 자신들을 돌파 하지 못할 것이리라.
호프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그리 머지않 아 바뀌게 되었다.
콰앙!
전방에서 커다란 폭음이 터져나 온다.
마법에 의한 굉음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어떤 강대한 무력을 지닌 인물이 지면을 질러밟아 이쪽으로 도약해오는 소음.
호프런은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주변에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 를 가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쪽 으로 쇄도해오는 적이.
적은 검은색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순간 호프런의 머릿속에 어떤 인물의 소문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한지훈…."
그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서걱.
목이 절삭되고, 그의 성대가 반 으로 잘려 피거품을 터트렸으므로.
호프런의 육신이 지면에 쓰러진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사고가 가속된다. 시야 속 적의 움직임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수없이 느껴왔던 익숙한 감각.
오른손의 장검을 휘?祈?적의 목을 친다.
서걱.
튀어오른 피. 손목에 미약하게 걸리는 반발력. 목이 달아나는 것과 동시에 허망히 쓰러지는 적의 몸뚱 이까지.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나는 계속해 다리를 움직여 적들 의사이로 파고 들었다.
"… 맙소사! 전대장님!"
방금 전 내가 처치한 기사가 전대장이었나보다.
"적! 적이 돌진했다! 당장 제압 해!"
"대장님의 원수를 갚아라!"
대장의 죽음에, 다른 기사들이 하나둘 기세를 돋우며 쇄도해온다. 제 상관의 복수를 해주려 하는 모양.
어울리지 않게 대단한 전우애다.
허나 그래봤자.
'하나같이 다 느려 터졌어.'
콰앙!
다시한번 지면을 박차고 적을 향 해 돌진. 순식간에 또다른 적 기사 의지척까지 접근했다.
그러자 보인 것은 적 기사의 당황한 눈동자.
"무슨, 속도가…!"
놈들은 내 움직임에 전혀 따라오 고있지 못하고 있다.
나는 놈의 옆구리, 갑옷 장갑판 과장갑판 사이 작은 틈을 노리고 검날을 박아버렸다.
지체하지 않고 검날을 비틀었다.
콰직. 우드득.
기사의 척추뼈가 단절되고, 장기 가난자되었다.
"끄아아아악!"
놈 또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다.
"녀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혼자라고 방심하지 마! 포위해 서 처치…."
포위진을 구성하려는 적 기사들. 허나 놈들은 나를 몰아넣을 수 없다.
그만큼 너무나도 막대한 무력의 차이가 있었으므로.
적을 쳐 죽여갔다.
"놈이 그쪽으로 간다! 조심해!"
"어떻게 저토록 빠른 속도를…."
"아아아악!"
쉬운 일이었다.
압도적인 민첩으로 파고 들어, 칼날을 급소에 정확하게 박아버린다. 검날을 비틀어 뼈를 부수고 장기를 찢어발긴다. 놈들의 목을 베 어 핏물을 쏟게한다.
이미 내 무력은 범인이 닿기에는 너무나도 드높은곳까지 올라있다.
하물며 이깟 기사 오십여 명 따 위. 처치하는데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다.
서걱!
"크아아악!"
기사를 베어버렸다. 가슴팍에 기다란 자상을 입은 녀석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털썩.
뒷걸음치던 녀석의 발목에 시체 가 걸려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놈이 고개를 들어올려 이쪽을 바라본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맙소사, 네놈의 이름은…."
"내 이름같은 걸 알아서 뭐해."
"네놈은 제국의 악마, 한…!"
나는 재차 검을 휘둘렀다.
파앙!
산뜻한 파공성과 함께, 마지막 기사의 목이 베였다. 놈의 머리통이 핏물을 흩뿌리며 허공으로 솟아올 랐다.
직후 푸확 터져나오는 핏물.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야."
떠올랐던 머리통이 지면으로 낙 하해 지면에 떨어짐과 동시, 앉아있 던 놈의 몸 또한 기울어져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방금 죽였던 놈이 마지막 적이었다. 혼란이 가라앉고 적막이 찾아왔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고는 읊조렸다.
"이쪽 구획은 거의 다 처치했나."
보이는 것은 적 기사와 병사들의 시체들. 놈들이 흘린 핏물이 바닥을 적시고, 역겨운 혈향이 주위를 그득 메우고 있다.
멀쩡히 서 있는 적은 없다.
그렇게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한지훈 씨! 역시, 볼 때마다 대 단하군요. 단신으로 적 기사 수십 을…"
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게브와 마법사들이 다가왔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내부로 진입하지. 해 야 할 일이 있으니까."
"… 네! 어서 가지요."
나와 엘프 마법사들은 시체들을 밟아 넘어, 고성 안으로 진입했다.
좌표교란기가 점차 가까워진다.
- 크라함 님.
어둑한 지하 속. 무수한 시체와 커다란 수정이 자리해 있는 공간.
암흑기사 하나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크라함의 심복 중 하나인 롬. 그가 자신의 주인인 크라함에게 고했다.
- 좌표교란기가 있던 외곽 고성에서 교전이 일어났다 합니다. 알비 덴이 흑마법사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롬의 목소리가 음울하게 퍼진다. 그에 가만히 서서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던 이. 크라함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의 붉은색 안광이 로브 속에서 번들거린다.
크라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벌써 좌표교란기가 어디에 있는건지 찾은 건가. 생각보다 빠르 군. 적어도 삼 일은 버틸 수 있으 리라 여겼는데 .
- 아무래도 놈이 어디선가 정보 를 얻은 것 같습니다.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좌표교란기. 발로 뛰어서는 결코 찾기 쉬운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으니까.
헌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지훈과 그의 일당들은 좌표교 란기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냈을 뿐 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곳까지 접근했던 것이다.
크라함이 쯧 혀를 차며 읊조린다.
- 카탈리. 그 뾰족귀년이 정보를 넘긴 것이겠지. 이곳 지맥의 위치는 녀석밖에 모르고 있을 테니. 뭐, 상관없다.
크라함은 다시금 시선을 돌려 바로 앞의 수정을 바라봤다.
- 놈들이 움직이는 것이 예정보 다 빠르지만. 그래도 내가 유물을 취하는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
수정에서 일렁이고 있던 푸른색 기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유물을 지키고 있던 방벽이 거의 파훼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 곧 내 손에 유물이 들어온다. 그리고 어쩌면 그릇까지도.
그가 유물을 얻을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저기 빛이 다 죽어가는 수정 내부에 자리해있는 유물. 그것을 얻는 다면 크라함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대한 힘을 지니게 되리라.
- 롬. 알비덴이 우리 흑마법사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했지.
- 그렇습니다.
- 놈들의 요청을 묵살하도록.
- …그렇다면 코르자카는 멸망하 게 됩니다만.
좌표교란기가 파괴된다면 수도 안에 엘프의 군세가 소환될 것이다. 그리고 코르자카의 육상 전력은 너무나도 빈약하다.
그들은 엘프 전사들을 막을 수 없다.
엘프 전사들이 소환된다면. 순식간에 대의사당이 쓸려나갈 것이고, 코르자카의 상위계층인 의원들이 모조리 죽어나갈 것이다. 국정기능 이 완전히 마비되고 만다.
코르자카라는 국가 그 자체가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그에 크라함이 클클,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 상관없는 일이다. 애초 내가 놈들과 손을 잡길 제안한 것도 이유물을 얻기 위함이었으니 . 유물만 얻을 수 있다면 놈들이 멸망하던 말던 신경 쓸 가치가 없으니 .
- 그렇습니까.
사실 크라함은 코르자카 공화국을 도와주려는 마음 따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유물을 얻기 위해 잠시 구 슬렸을 뿐.
롬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흑마법사들은 출 격하지 않고 대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그리고 더 많은 제물들 도 준비하도록. 방벽의 파훼가 곧이다. 어서 빨리 유물을 내 손에 넣 고싶군.
- 명령을 따릅니다. 나의 주인이 시여.
부스스스….
* * *
롬이 검은색 안개를 두르며 사라 졌다. 크라함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이자리를 이탈한 것이다.
크라함은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해, 점차 거뭇하게 물들어가는 수정을 바라보며 읊조졌다.
- 어서 와라 한지훈.
그는 대의사당 지하 유적에서 한지훈을 기다린다.
나와 엘프들은 고성 안으로 진입했다. 지하로 향하는 길을 찾아 아래로 내려갔다. 기다란 복도를 걸었다.
그러자 그곳에도 적이 있었다.
지하 복도.
생각보다도 꽤나 많은 수의 적이 창과 칼을 들어올려 이쪽을 막아서려 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놈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지훈 씨! 마법이 준비되었습니다! 옆으로 나오십시오!"
마게브가 그리 외쳤다. 그에 나는 몸을 옆으로 던져 사선 밖으로 벗어났다. 직후, 번쩍!
환한 폭광이 터져나왔다. 마침내 발현된 마법공격. 푸른색 궤적이 어 둑한 지하공간을 가로지르고.
콰콰콰콰콰쾅!
커다란 폭음이 울려퍼졌다.
"크하아아악!"
"아악! 악! 아아익'!"
그에 내 앞을 가로막고있던 적 병사 수십이 단번에 갈려나갔다.
놈들의 파편이 복도 벽면과 바닥, 그리고 천장까지 튀어댔다. 주변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천장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참 역겨운 광경이네."
천장에 철퍽 들러붙은 혈액과 인체파편들이 방울져 뚝뚝 떨어져내 린다.
아무리 피에 익숙한 나라 한들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징 그러운 광경.
그렇게 내가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한지훈 씨. 거의 다왔습니다."
마나를 추스르고 있던 마게브가 다가와 그리 말했다.
그가 저 앞쪽, 복도 끝에 자리해 있는 커다란 대문을 손끝으로 가리 키며 말을 이었다.
"저 대문 뒤에 좌표교란기가 있을 겁니다. 그것을 파훼하기만 하면…."
"엘프 전사들이 지원온다는 거지. 나도 알고 있어."
저 문 뒤에 있을 좌표교란기만 파훼한다면, 첫 번째 퀘스트가 클리 어된다.
"자, 가자."
저벅, 저벅.
나와 엘프들이 성큼성큼 걸어 복도를 가로질렀다.
피가 고여 철퍽거리는 지면을 밟고, 방금 전 쓸려나간 시체무더미를 넘어. 문까지 도달했다.
그 문짝을 열고 안으로 진입.
벌컥!
문을 열자 내부의 광경이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염병할 흑마법사 새끼들."
작게, 하지만 진한 증오를 담아.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