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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29화 (229/390)

229화.

- 적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추격대, 모조리 무력화당합니다. 놈들의 화력을 막을 수 없습니다! 추격이 불가능합니다!

- 기사는 아직입니까?!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수도경비단장 멜란토는 크게 소리 쳤다.

"기사는 아직이다! 손실은 신경 쓰지 말고 병력을 밀어 넣어라, 놈을 놓친다면 수도 어딘가에 숨어들 것이다. 그렇게 놔둬서는 안 돼!"

멜란토의 얼굴에 어린 표정은 상당히 볼 만했다.

당혹과 분노. 두 가지 감정이 격렬하게 뒤섞여 있는 멜란토.

감정 중 당혹은 적의 정예가 너무나도 강하단 것에서 발현된 감정 이었고, 분노는 아군이 생각 이상으로 무력했기에 솟아오른 감정이었다.

쿠웅! 몇 번이나 내려쳤는지 모르는 테이블을 재차 두드리며. 그가 다시금 크게 외쳤다.

"이 무능한 놈들아! 적의 진로를 차단하고 기동을 지연시키란 말이 야!"

멜란토가 시선을 돌려 지도를 바라본다.

수도 연안에 상륙한 십여 명의 적.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에 파고들어 움직이고 있다.

멜란토는 으득 이를 갈며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동선이야.'

어떻게 저토록 기민하게 움직이 는 것일까.

놈들은 수월하게 포위망을 돌파 하고 있었다.

천인대 병력으로 대로를 틀어막 으면 뒷골목으로 우회해서 움직였다. 기사들을 출진시켜 추격한다면 어딘가에 숨어서 흘려보냈다. 추격 하기 위해 척후조를 운용한다면 차례차례 제거해 시야를 끊어먹었다.

마치 하늘에서 지켜보는 듯. 적 아의 위치와 주변 지형지물들까지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 동선이다.

덕분에 추격은 지지부진한 상황.

벌써 놈들에게 죽거나 무력화된 병사들의 수가 일천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추격을 포기 할 수는 없다.

그들을 놓친다면 놈들은 수도 어 딘가에 숨어있게 될 것이고. 그렇다 면 수도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니.

멜란토는 지도를 잠시 노려보고 는, 지시했다.

"중앙기사단. 델라파 사거리를 수 색하라. 놈들은 그곳에 있을 가능성 이 높다."

멜란토는 계속해 수도 병력을 지휘하며 놈들을 찾는다.

적의 지휘관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 이 무능한 놈들아! 적의 진로 를 차단하고 기동을 지연시키란 말이야!

놈들의 통신이 온전히 이쪽으로 유출되고 있을 줄은.

- 중앙기사단. 델라파 사거리를 수색하라. 놈들은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이쪽을 추격하고 있는 병력의 움직임이 훤히 들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잠시 적의 통신을 도청하고 있던 마게브가 내게 말해왔다.

"한지훈 씨. 들으셨겠지만 기사단 이 이쪽 델리파 사거리를 수색하려 합니다. 슬슬 이동해야겠군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미니맵을 주시했다.

지금 우리는 적의 추격조를 뿌리치며, 놈들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있었다.

사실 몹시 힘든 일이었다.

이곳 수도에는 무려 수만 단위에 달하는 적의 병력이 도사리고 있다. 더해 도시 외곽, 연안 인근 지역은 특히나 놈들의 병력이 밀집되어 있는 곳.

당연히 이쪽을 추격하고 있는 적의 병력 또한 막대할 터. 금방 포 위되어 섬멸당하는 것이 상식적인 결과이리라.

허나,

"군단 전투지휘술 활성화."

나에게는 스킬이 있다.

이 염병할 세상이 내게 부여해준 특별한 능력.

- 띠링!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엘프의 능력과, 내 스킬이 합쳐 진다면. 적의 추격을 꽤나 수월하게 뿌리칠 수 있다.

떠오르는 홀로그램. 방대하게 확장되어가는 감각. 도시 전체의 흐름 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나는 미니맵을 보고는 지시했다.

"이쪽이야. 이 길을 따라간다면 다른 놈들은 잘 모르는 뒷골목길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포위망을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마게브가 적의 통신을 도청해 움직임을 간파하고, 내가 미니맵을 운 용해 길을 찾아낸다.

덕분에 지금 놈들은 우리를 좀처럼 몰아넣지 못하고 있었으니 .

나와 엘프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포위망을 돌파해갔다.

악연을 마주할 때가 가까워진다.

어둑한 지하 속. 조명이라고는 은은한 푸른빛을 흩뿌리는 마나등 하나에 불과한 공간.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 쓴 한 인물이 석제 바닥을 걷는다.

저벅, 저벅.

발바닥이 지면을 디딜 때마다 음 산하게 울리는 발자국 소리.

볼라바아의 종주 크라함.

그가 앞으로 걸어가며, 나직이 읊조린다.

- 롬, 베이먼. 유물의 회수는 아직인가.

- 크라함 님.

크라함의 물음에. 미리 나와 있던 암흑기사들이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본다.

롬과 베이먼. 크라함의 심복이자, 강대한 무력을 지닌 암흑기사들.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보고해왔다.

- 송구하게도, 아직입니다.

- 유물을 지키고 있던 방벽이 생각보다도 견고합니다. 파훼하는데 더 많은 제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물이 필요하다는 롬과 베이먼 의 보고.

그에 크라함은 쯧 혀를 찼다.

- 제물이 더 필요하다라. 그렇다 면 더 많은 탐사대를 보내라고 해 야겠군.

그들이 말하는 제물이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신성한 유물을 보호하고 있는 결계. 그것을 파훼하기 위해 흑마법사 들은 사람의 목숨과 영혼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저벅, 저벅.

크라함이 계속해 걸어간다. 그런 그의 뒤를 롬과 베이먼이 뒤따른다.

길고도 어둑한 지하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나오는 것은 거대한 지하 동공. 그곳에는 몹시나 많은 사람들 이 핏물을 흘린 채 죽어 쓰러져있다.

그리고 그 위에 고고히 떠올라 환한 빛을 반짝이고 있는 하나의 수정.

크라함이 수정을 바라보며 읊조 린다.

- 이번에도 이쪽을 막으려 하겠지.

그가 코르자카와 손을 잡고, 유물을 취하기로 결정했을 때. 크라함 은 엘프와 한지훈이 자신을 막기 위해 움직이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놈들은 언제나 그러했으니까.

공국에서도, 제국 수도에서도, 카 렌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크라함의 앞길을 가로막았고. 성공했다.

-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스르릉.

크라함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너무나도 진한 암흑색을 지닌 단검이었다. 마치 빛 자체를 소멸시키는 듯,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불길한 검.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읊조린다.

- 유물과 그릇을 취해, 내가 완전해지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우리 볼라바아의 손에 떨어진다.

크라함은 유물이 손에 들어오기 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붉은색 안광이 어둠 속에서 반짝인다.

우리는 계속해 움직였다.

수도의 복잡괴괴한 뒷골목을 누볐다.

때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어 다녔고, 혹은 누더기처럼 해진 로브 를 주워 입어 노숙자로 위장하기도했다. 지역을 경계하고 있던 적의 병력들을 돌파하거나, 기만하며. 계속해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가… 네가 말했던 안전가옥 인가 보네. 마게브."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앞에 자리해 있는 집을 바라보며 그리 읊조렸?

솔직히 말해 그리 훌륭한 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외벽 이곳저곳이 낙서로 가득한 허름한 집이다.

창문은 깨진 것을 붙인 것인지 온통 균열 투성이었고, 오랫동안 청소와 담을 쌓은 것인지 집 주변 여기저기에 먼지와 쓰레기가 널려있다.

게다가 집 자체의 허름함이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한들 전혀 놀라울 것 같지 않다.

그야말로 노숙자가 살기에 적합 해 보이는 폐가 일보직전의 다 쓰 러져가는 집.

다만 어째서인지. 집 바로 앞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화분에는 집과는 완전히 상반될 정도로 밝고 깨끗한 꽃들이 자라고 있다.

쯧 혀를 찼다.

"그 사람이 맞나보네."

엘프이면서 이런 환경에서 생활 할 만한 인물.

별달리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집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왔구만."

끼이익.

집의 대문이 열리는 소리. 시선을 돌려 집에서 천천히 걸어 나 오고 있는 한 인영을 바라본다.

완전히 할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외양이다.

자글자글한 주름을 지닌 이. 옷 은 집과 마치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허름했고, 머리는 반쯤 산발이다.

미치광이 노파라고 불리어도 할 말이 없는 모습.

그런 노인을 바라보며 마게브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래. 네놈의 낯짝도 오랜만에 보는구먼."

"대모님을 뵙습니다."

"오냐."

마게브를 시작으로, 그의 뒤에 도열해있던 다른 엘프 마법사들 또한 고개숙여 예를 표한다.

엘븐 가디언인 마게브가 스승님 이라 부른 인물.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이 맞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오랜만에 동족을 보니까 좋구나. 헌데…."

노파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그와 함께 그녀의 눈가에 일렁이는 강렬한 적대심.

"한지훈. 저 역겨운 인간 놈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제대로 설명해 봐라. 마게브."

그에 내 눈가가 찌푸려진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카탈리]

[전 엘프 여왕]

오랜 악연을 만났다.

카탈리. 과거 엘프 여왕이었던 인물.

그녀는 현존하는 모든 엘프들 중에서 가장 오랜 삶을 살아왔다.

[카탈리]

[전 엘프 여왕]

["더러운 인간 놈들! 신성한 마법 으로 전쟁과 학살에 매달리는, 이 비열하고도 잔혹한 족속같으니라 고!"]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엘프이면서 노안을 가졌으니까.

과거 게임 속에서 보았던 모든 엘프들은 젊은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보다 아득히 긴 수명을 지 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직 그녀만은 완벽한 노인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기나긴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었으니 .

그녀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카탈리]

[전 엘프 여왕]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그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종족에 게 마법을 전해주지 않았을 것을."]

그녀의 나이는 족히 수천 살은 될 터다.

아득한 먼 옛날, 신화시대의 인물이었으니까.

인류가 아직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 때부터 살아왔던 인물. 국가가 없고, 지성이 없으며. 마물과 경쟁 하며 근근이 생존하던 인류에게 처음으로 마법을 전파했던 이.

그녀는 인간을 가엾게 여겨 마법을 전수했고, 인류는 문명을 이루었다.

그리고 전쟁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수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벌였다. 서로 죽고 죽였다. 승자는 패자를 착취했고, 패자는 승자의 노예가 되었다.

오직 파괴와 정복만을 갈구하는 인류.

카탈리는 실망했다.

지성체인 인류에게 마법을 전파 한다면, 발전과 화합을 이끌어 낼줄 알았는데 . 결국 주로 마법이 쓰 이는 것은 전쟁에서였으니까.

이후 그녀는 여왕직을 내려놓고 남부 대륙의 끝단, 코르자카 섬에 은거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까지나 은거 할 수는 없었다.

[카탈리]

[전 엘프 여왕]

["하지만 한지훈. 너는 그 가중스 러운 인간 놈들 중에서도 최악이다. 역겨운 흑마법사 놈들과 손을 잡은 것으로도 모자라, 세계수를 오염시키고, 마침내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다니!"]

내가 온 대륙을 전화로 뒤덮어버렸기에.

때문에 카탈리는 나를 증오했다.

그녀가 혐오하는 종족 인간이면서, 세계수를 오염시켰고, 결국 거대한 전쟁을 벌여 세상 그 자체를 멸망시 켜 버렸으니 .

하여튼, 그만큼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엘프 노인이다.

당연히 드높은 격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

"한지훈. 정말,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구나. 이 잔혹한 학살자야."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말인 즉 이번 생에서는 초면에 불과함에도. 나에게는 막대한 증오 심을 지니고 있을 것이란 소리.

저벅, 저벅.

그녀가 천천히 걸어 이쪽으로 다 가온다. 직후 그녀의 왼손과 오른손. 두 양손에서 각각의 기운이 일 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에는 청아한 푸른색 기운 마나. 그리고 왼손에는 온화한 녹색 기운 자연력.

그녀는 마나와 자연력을 동시에 운용해 고위급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다름 아닌 나.

"네놈을 죽이겠다."

그녀의 양손이 이쪽으로 뻗어진다.

만약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바로 최고위급 대마법이 발현될 것이 고. 그렇다면 이 구획 전체와 함께 내 몸이 쓸려나가 소멸하리라.

목숨의 위기인 상황.

하지만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염병할 할망구. 그 지랄 맞은 성격은 여전한 것 같은데."

그녀가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팔짱을 끼며 말한다.

"이미 내가 엘프와 협력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않나? 마법은 치우지 그래. 늙었으니 마나 양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아껴야 하지 않겠어?"

"… 쯧."

그녀는 혀를 찬다.

확실히 내 말이 맞았기 때문에.

카탈리는 여왕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 은거하고 있지만. 엘프들과 의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리지는 않았었다.

때문에 내가 엘프들과 협력해 흑마법사를 토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터.

허나 그럼에도, 좀처럼 증오심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인지.

"… 한지훈. 이모든 일이 끝나면 반드시 네놈을 죽여버릴 것이야."

"퍽이나 ."

그녀는 다시금 나를 죽이겠노라 고 선언해왔다.

그래봤자다. 당장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그저 과거의 악연을 떠올리며 증오심을 돋울 뿐.

뭐, 악연은 악연이고.

일단은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게 먼저다.

"과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해 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말이야."

나는 허름한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휴우!"

긴장한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마게브와 다른 엘프들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내 뒤를 따라왔다.

이제는 긴 대화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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