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대의원님. 침입자입니다."
코르자카의 관료가 보고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이곳 대 의사당의 가장 상석에 자리해 있는 인물을 바라본다.
고풍스러운 하얀색 로브를 뒤집 어 쓴 노인.
대의원 알비덴.
관료의 보고가 이어진다.
"수도 연안에서 한 척의 배가 진 입하려 했습니다. 연안 경비대가 적의 진입을 적발, 현재 교전 중입니다."
"그래. 침입자라."
관료의 보고에, 알비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 연안에 침입자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알비덴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기에.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필시 우리의 좌표교란기를 파괴하려는 엘프 놈들이겠지. 뻔한 일이다."
흑마법사는 이곳 수도 카밀레에 좌표교란기를 설치했다. 우월한 마법 능력을 지닌 엘프들이 침투해오 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놈들은 분명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이곳으로 침투했으리라. 그것을 파괴해야만 엘프의 본격적인 전력 이 이곳 코르자카 본토에 투사될 수 있으니 .
피식. 알비덴이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고작 배 한 척에 불과한 병력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만약 적이 성공적으로 수도 안으로 잠입했다면. 그렇다면 꽤나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났을터다.
적은 소수인 만큼 분명 정예일 터이고. 그렇다면 정말로 좌표교란 기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았을 테니까.
허나 놈들은 발각당해 버렸다. 수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연안 경비 대가 놈들의 침입시도를 적발해 교 전 중.
알비덴은 확신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놈들을 격퇴 할 수 있겠지."
이곳 카멜리에는 무려 이만에 달 하는 병력이 주둔 중이다. 그리고 그 병력의 절반 가량이 수도 연안에 집중되어 있다.
침입자 놈들 개개인의 무력이 얼마나 강하다 한들, 그 많은 병력을 뚫고 좌표교란기를 찾아 파괴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야말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때문에 침입자의 등장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알비덴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다도…."
신경써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알비덴이 다른 관료에게 물었다.
"유적의 탐사작업은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지?"
그가 묻는 것은 다름 아닌 유적 의 탐사작업.
지금 이 순간에도, 크라함이 이 끄는 흑마법사 집단이 이곳 대의사 당 지하 유적에서 탐사를 진행 중 이다.
그들은 유적 어딘가에 있을 유물을 찾고 있다.
알비덴의 말에 관료가 대답했다.
"대략 절반쯤 탐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 며칠 이내에 목표했던 유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군요."
"그래. 그렇군."
알비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흡 족한 표정을 지었다.
유물.
크라함은 말했었다. 의사당 지하 어딘가에 있을 유물을 취하기만 한 다면, 자신은 지금보다도 보다 높은 격을 지니게 될 수 있다고.
훨씬 강대한 무력을 지니게 된다 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알비덴이 이끄는 코 르자카 공화국은 흑마법사와 동맹을 맺고 있다.
크라함이 유물을 얻어 강해진다 면, 제국을 상대하기가 보다 유리해 질 터.
때문에 알비덴은 크라함이 어서 유물을 찾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리 머지않았다. 우리 코르자카 공화국은 제국의 영토를 집어 삼키 게 될 거다."
카렌도, 트웨인도 결국 해내지 못했던 일. 허나 코르자카 공화국이 라면 가능할 것이다.
흑마법사와 연합해서.
그는 제국을 집어삼킬 꿈을 꾸고 있다.
알비덴이 지시한다.
"유적 탐사에 더 많은 자원을 배 분하라. 보다 많은 장비와 노동자를 투입하도록.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유물을 찾도록 해야 하니."
"알겠습니다. 대의원님."
관료가 물러가고, 알비덴은 화려한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알비덴은 대의사당에 있다.
* * *
발리스타의 투사체가 날아온다.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화살.
아니, 저걸 어찌 화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뚝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물건이었다.
통나무만 한두께, 첨단 부분에 달린 날카롭고도 묵직한 금속 촉. 더해 불까지 붙어 있다.
그것이 공기를 가르고, 묵직한 파공성을 울리며 쇄도해오고 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저 발리스타 투사체에 직격당한 다면 선체에는 단숨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이고, 뒤이어 불이 붙어 순식간에 가라앉을 터이니.
하지만 괜찮다.
"요격해!"
이쪽에도 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번쩍! 번쩍!
엘프 마법사들이 공격 마법을 발현했다.
환하게 반짝이는 푸른색 광휘. 청색 궤적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이쪽으로 쇄도해오는 발리스타 투사 체에 명중했다.
콰아앙! 쾅! 콰르르릉!
허공에서 투사체들이 하나둘 요 격되어 비산했다.
나는 그 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프 마법사들은 우수해."
사실, 기예에 가까운 일이었다.
발리스타 투사체를 요격하다니.
인간 마법사였다면, 요격 대신 훨씬 많은 마나를 소모해 방호막을 생성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쪽으로 날아오는 투사체를 노리고 정확히 명중시키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 으니까.
하지만 엘프 마법사들이라면 가능했다. 그들에게는 뛰어난 지도자 가 있었으니까.
"제가 조준을 보조하겠습니다. 술 사들은 계속해 투사체를 요격하십시오."
마게브. 엘븐 가디언들 중 하나. 위대한 마법사.
그는 지금 동료 엘프마법사들과 마나를 공조, 공격마법의 조준을 돕 고 있다. 덕분에 공격마법만으로도 이쪽으로 날아오는 투사체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콰콰콰쾅!
폭음이 터져 나온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던 발리스타 투사체가 부서졌다. 파편이 비산한다. 나무 조각들이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마게브가 말했다.
"한지훈 씨. 일단 저희 엘프들이 발리스타 투사체를 모조리 격파하고 있긴 합니다만, 사실 여유롭진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 연안에 설치된 발리스타 탑 들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려 수십여 개에 달했다.
그 많은 탑에서 이쪽으로 쉼 없이 사격 중이었다. 반면 엘프들의 수는 고작해야 십여명에 불과하니. 투사체에 막는 것 이상의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저기 전투함들은 한지훈 씨께서 상대하셔야 합니다."
시선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둑한 야밤의 공기 너머 보이는 것은 이쪽으로 전진해오고 있는 적의 전투함들.
쯧 혀를 찼다.
"백병전으로 붙을 생각인 것 같은데."
벌서 수십 척에 달하는 전투함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전투함들의 갑판 위로, 수십 명씩에 달하는 적의 해병들이 병장기를 꺼내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놈들은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수송선을 들이받아, 배 위로 올라올 심산이다.
허나 그래봤자다.
"그래. 어디 한번 덤벼봐라."
스르릉. 검을 뽑아들었다.
내가 든 아티팩트 보검 가르강이 어둠 속에서 청색 광택을 번들거린다.
원거리 전투라면 자신이 없다.
나는 마법 따위를 배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근접전투라면 자신이 있다.
몇 명이 상대라 한들.
"모조리 죽여버린다."
화르르륵.
나는 오러를 끌어올렸다. 검날에 푸른색 광휘가 찬란하게 피어오른다.
* * *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무기 꺼내!"
해병들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들이 제각기 장검과 단창을 꺼내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앞을 노 려본다.
보이는 것은 적이 점거한 아군의 수송선. 저곳에 적들이 있다.
건너가서, 죽여야 한다.
"충격에 대비하라!"
지휘관이 그리 소리쳤다. 그에 병사들이 제각기 가진 병장기들을 꼬나 쥐고, 자세를 낮췄다. 충돌과 함께 있을 충격에 대비했다.
이윽고.
쿠우우웅!
전투함이 적의 수송선에 격돌했다. 전투함의 충각이 파고들어 적선 의 갑판이 우드득 바스라지고, 그와 함께 건너갈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지휘관이 칼을 드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전진! 전진! 제국 놈들을 죽여버 려라!"
"오오오오오오!"
코르자카 공화국의 해병들이 수송선으로 뛰어 들어갔다. 뱃머리에서 병사들이 상대편 배를 향해 뛰어 들어갔고, 측면에서는 로프를 걸 어 타고 올라갔다.
코르자카 해군은 강했다. 그들은 섬나라로 이루어진 국가. 대부분의 전투는 해상에서 이루어진다.
더해 그들은 수도를 지키는 방위 군. 공화국의 다른 해군들보다도 더욱 정예화된 그들이었기에, 충각돌 진 후 진입은 매끄럽고도 능숙했다.
"적을 모조리 죽여라!"
"마법사! 마법사 놈들도 다 죽여! 근접에서는 놈들도 별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런 정예들이었기에, 고작 십 수명의 적을 상대함에 주저가 있을 리 없다.
코르자카의 전투병들이 자신만만 하게 수송선 내부로 진입했다. 그들 이 장검과 단창을 들이밀며 전진해 간다.
직후 그들이 본 것은.
"…맙소사."
한 청년이었다.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인물.
그리고 청년이 들고 있는 장검에는 푸른색 기운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오러. 오직 기사들만이 다룰 수 있는 상격의 기운.
적의 배 안에는 오러 유저가 있었던 것이다.
"기사! 기사다!"
"망할! 지금 우리에게는 오러 유 저가 없…."
"후퇴해!"
공화국 해병들이 뒷걸음질 쳐 물 러나려 한다.
당장 수송선 위에 올라탄 그들의 수는 고작 수십에 불과했다. 그리고 수십의 일반 병사들로는, 오러를 다루는 기사를 절대로 제압할 수 없다.
때문에 도망치려 하는 그들 해병 이었으나.
도망치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서걱!
푸른색 궤적이 그어진다.
* * *
"커헉…!"
적병을 죽인다. 내 검날에 베인 적이 핏물을 흩뿌리며 나자빠졌다.
녀석의 시체가 나무갑판 위에 쓰러 진다.
멈추지 않고, 다시 공격.
파앙!
미약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뻗어 나가는 검날. 푸른색 섬광이 번뜩임 과 함께 또 다른 적병이 죽어 쓰러 진다.
"도망쳐! 기사! 기사다!"
"본대에서 기사님을 불러야 해!"
"끄아아악!"
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하기야, 도망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고작 수십으로는 기사 하나를 제대로 감당 할 수 없을 테니.
나는 피식 웃었다.
"배 위에서 오러 유저를 마주친 것은 처음이겠지."
본래 기사들은 배에 타지 않는다. 기사의 무력이 가장 많이 발휘 되는 장소가 지상전이었으므로.
기사의 본분은 대규모 회전에서 돌진해 적진을 붕괴시키고 유린하는 것에 있지, 이렇게 배 위에서 난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오러 유저가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강한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커헉…!"
또 다른 적의 가슴팍에 검을 박 아 넣어 비틀었다.
우드득. 갈비뼈가 부서지고, 심장 이 난자되는 감촉이 손잡이를 타고 느껴진다.
검을 잡아당겨 회수.
"쿨럭! 컥, 커헉…!"
적병이 각혈하며 쓰러진다.
지금 나는 마나를 최대한 아끼며 교전하고 있다.
어차피 상대하는 적들이 다 오러 조차 다루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이 라는 걸 알고 있기에. 굳이 많은 마나를 소모할 필요는 없다.
서걱, 콰직. 우드득.
적병을 죽여 나간다.
이곳 나무갑판에는 이제 더 이상 서 있는 적 해군은 없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질척한 핏물과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는 시체 들. 그리고 비릿한 혈향과,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빈사 상태의 적들 뿐.
나머지는 모조리 도망치거나, 바다에 빠졌다.
푸욱. 바닥에서 경렬하고 있던 적병의 숨통을 끊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일단 전투함 하나는 격퇴한 것 같은데."
전투함 하나에 타고 있는 적 해 병의 수가 대충 수십에서 백여 명 정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는 전투함이 다수 남아있다.
쯧 혀를 찼다.
"해병 놈들은 그리 어려운 상대 가 아닌데, 배의 상태가 문제야."
배의 흔들림이 커진 것이 뚜렷하 게 느껴진다.
삐그덕거리는 선체. 희미하게 한쪽으로 기운 갑판. 바닥에 흐른 피 가 한쪽방향으로 주르륵 흐르고 있다.
"충각공격 때문에 선체가 기울었 어."
지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배의 하단에는 꽤 큰 구멍이 뚫려 있을 것이다.
한두 번쯤이야 큰 무리 없이 항 해할 수 있겠지만. 이런 충각공격을 여러 번이나 당한다면 배 자체가 침몰할 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한지훈 씨. 이대로 가다간 침몰 하겠군요."
마게브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래. 배 옆구리에 몇 번만 더 들이박힌다면, 완전히 가라앉겠지."
"그래서 말입니다만…."
무언가 제안할게 있는 것일까.
그가 잠시 눈을 감고 고뇌하더 니, 나에게 말했다.
"한지훈 씨께서 조금 고생해주셔 야 할 것 같습니다만."
"고생이라면."
"적의 전투함들을 요격해주십시오. 충각공격에 당해 저희 배가 침 몰하기 전에 말입니다."
마게브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무력이야, 확실히 강하다. 적 전투함에 일반 병사들밖에 없다고 친다면 모조리 상대하는 것이 가능 하긴 하다.
하지만 나는 땅을 딛고 살아간다. 전투함들이 접근하기 전에 처리 할 수 있는 방법 따위 없다.
"물 위를 걸을 수 있지 않는 이상 말이야."
"그거면 됩니까?"
"… 뭐?"
나는 놀라 마게브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마법사입니다. 그것도 엘븐 가디언인. 최고위 마법사이지요."
마게브에게 무언가 방법이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