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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25화 (225/390)

225화.

어둑한 방안. 두 명의 인영이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자리 해있다.

한 명의 인영은 노인의 모습을 한 이였다.

꽤나 높은 신분을 지닌 인물인 것일까. 그가 입고 있는 로브에는 온갖 화려한 장신구가 덕지덕지 발 려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알비덴.

코르자카 공화국의 대의원이자 공화국 수장인 인물이었다.

그가 나직이 입을 열어 어떤 인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크라함. 약속은 변함없는 것이겠지."

알비덴이 고개를 들어 올려 바로 앞, 테이블 건너편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검은색 로브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어떤 인물의 모습 이 보였다.

크라함.

흑마법사 학파 볼라바아의 종주.

코르자카를 구원해주겠노라고 연락 해온 이들의 수장.

알비덴이 눈가를 미약하게 찌푸리며 생각한다.

'불길한 인물이로다.'

크라함의 모습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로브는 너무나도 짙은 검은색인 지라 윤곽조차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다. 로브 밖에는 정체불명의 남색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다. 얼굴을 가 린 후드 안쪽에서는 붉은색 안광이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혹 마법사의 모습.

아마도 저 후드를 벗겨낸다면, 온갖 기기괴괴한 문신들로 가득한 그의 얼굴이 드러나리라 허나 저런 괴이한 모습임에도 이제는 그밖에 코르자카를 구원해줄 인물이 남지 않았다. 알비덴이 찌푸 렸던 눈가를 바로하고는 이어 말했다.

"그대 볼라바아가 원하는 유물. 주겠다. 그러니 우리 코르자카를 제국 놈들에게서 수호해다오. "

트웨인이 제국에게 항복한 이후 흑마법사들이 제안해왔다.

코르자카 의사당 지하에 있는 유물. 그것을 준다면 자신들이 힘을 빌려주겠노라고. 그리하여 코르자카 를 제국에게서 지켜주겠노라고 말이다.

알비덴의 말에, 크라함이 클클 웃는다.

- 잘 생각했다, 알비덴. 네놈의 코르자카. 우리가 지켜주지.

드르륵.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비덴은 고개를 들어 올려 일어선 크라함과 눈을 마주했다.

역시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흐릿하게 일렁이는 붉은색 안광 뿐.

순간 알비덴은 전신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한 쌍의 안광을 마주하고 있는 것에 불과함에도, 이토록 음험 한 기운이라니.

그만큼 크라함이 휘감은 분위기는 너무나도 불길했다.

지성체라면 모두 두려움과 공포 를 느낄만한 압도적인 존재감.

크라함이 나직이 읊조린다.

- 내 격이 지성체의 것을 벗어날 날이 그리 머지않았구나.

알비덴은 어째서 크라함이 지하 유적을 탐사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그 유물이라는 것을 노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방금 전 크라함이 읊조린 말에서, 알비덴은 어렴풋이나마 그이유를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크라함은 자신의 격을 상승시킬 수단으로 유물을 원하고 있다.

만약 크라함이 정말 유물을 손에 넣는다면. 저자는 지금보다도 훨씬 진한 존재감을 갖추게 되리라. 그리고 일개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가 되리라.

알비덴은 식은땀을 흘리며 크라 함을 바라본다.

'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그 또한 알고 있다.

사악한 흑마법사와 협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허나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순 순히 제국에게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알비덴은 코르자카의 지도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흑마법사에게 유물을 내어주려 한다.

- 곧 엘프 놈들이. 그리고 내 '그릇'이 이곳으로 오겠구나.

크라함이 나직이 중얼거린다.

흑마법사들이 적의 습격을 대비 하고 있다.

예전에 지구에 있을 적, 바닷가에 몇 번인가 가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취미가 바다낚시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낚시는 그리 재미있진 않았 지만, 저녁 무렵의 풍경 하나만은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끝없이 펼쳐져있는 지평선. 해수 면은 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반사하 며 별빛처럼 반짝였고, 커다란 태양 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간다.

때문에 나는 이번에 코르자카 공 화국으로 가서 그러한 바다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리고 내 기대는 빗나갔다.

"순 군함밖에 안보 이는데 ."

지금 나는 코르자카 공화국의 수도 카멜리의 바로 앞 해안가로 이동.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와중이었다.

해가 떨어져 노을 진 바다를 배경으로 무수한 군함의 무리가 보인다.

조그마한 초계함. 조금 커다란 전투함. 커다란 크기의 상륙함과 전투함들까지.

과연 코르자카의 해군이라 할까. 본진에서 대기 중인 군함의 수가 무려 수천 척에 달했다.

제국 남부군이 이토록 고전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는 풍경.

내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있던 엘프 하나가 입을 열었다.

"한지훈 씨. 바다구경은 그만하시 지요. 슬슬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입을 연 것은 엘븐 가디언들 중 하나, 마법사 엘프 마게브였다. 그 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슬슬 움직여야 할 때지."

내가 바라본 방향에는 엘프 마법사십 수명이 자리해 있다. 그들 이하나둘 쥐고있는 수정구를 어루 만지며 대기하고 있다.

나는 이어 말했다.

"곧 목표로 한 배가 이쪽으로 올 거야."

머리를 맞대고 니디아와 상의했었다.

어찌하면 코르자카 수도로 무사 히 잠입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나 혼자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은신 스킬을 포인트를 소모해 상향시키면 그만이었으니까.

허나 이번에는 나 혼자서 잠입할 수는 없다. 좌표교란기를 파훼하고 마법진을 구축할 엘프 마법사들이 동행하기에. 그들을 이끌고 일국의 수도에 잠입하는 것은 꽤나 난이도 있는 일이었다.

거기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번 작전이었다.

"전리품을 실은 수송선을 빼앗는 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수도 안까 지진입할 수 있겠지."

코르자카 해군은 제국 남부해안 도시들을 약탈. 막대한 재화를 빼앗 아 본국으로 수송하고 있었다.

때문에 놈들의 수도로 향하는 수송선은 한두 척이 아니었다. 그 수송선들 중 하나를 하이잭 한다면, 그리 큰 검문 없이 놈들의 수도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노리고 있는 수송선이 이해안가 인근을 지나는 시간.

"저기 오는군요."

마게브가 그리 말했다. 그에 나는 시선을 돌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꽤나 커다란 크기의 수송 선이 보인다.

삼층 갑판, 마스트 네 개 짜리 중형 선박이 해안가 연안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좋아."

저 수송선 위에 올라타, 내부의 선원들을 제압해 위장해야한다.

철그럭. 나는 단검 두 개를 쥐어 들었다. 옆에서 있던 마게브에게 묻는다.

"마게브. 만들어놨던 뗏목은?"

"저쪽에 있습니다. 한지훈 씨."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닷가에 숨겨놨던 뗏목을 향해 걸어갔다.

* * *

"곧 수도 카멜리다."

수송선의 갑판 위. 한 병사가 그리 중얼거렸다. 그에 그와 함께 보초를 서고 있던 다른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 오랜만의 복귀야. 거의 한 달 만인가?"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배 위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

그들은 전쟁에 참전한 코르자카 해군 병사들이었다.

벌써 몇 달 동안이나 제국군과 전투를 벌였던 이들. 그들은 오래 싸웠고, 오랜만의 휴식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휴식이 이제 코앞이다.

"전리품도 많이 챙겼고. 최소한 일주일은 수도에서 쉴 수 있겠지."

병사가 고개 돌려 갑판 위 잔뜩 쌓여있는 나무상자들을 바라봤다. 무려 수십, 어쩌면 백은 넘을 정도 로 많은 수의 상자들.

저것들은 모두 제국에서 털어온 전리품들이었다.

제국 남부 해안지방을 약탈해 얻 은 막대한 수의 물건들. 어떤 것은 재화였고, 어떤 것은 사치품이었으 며. 또 다른 것들은 병장기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이 약탈품들을 무사히 수도로 이송하는 것.

갑판에 있는 병사들이 하나둘 웃으며 휴식의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때였다.

"잠깐! 무슨 소리 안 들리냐?"

보초를 서던 병사들 중 하나가 문득 그리 말했다. 그에 다른 병사들이 되묻는다.

"소리라니. 무슨 소리?"

"잘 들어봐! 뭔가 이상한 소리 같은 게…."

그의 말에 병사들이 모조리 입을 닫고, 청각에 신경을 돋웠다. 그러자 철썩이는 파도 소리 너머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떤 소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퍽, 콰직. 콰작.

마치 나무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

병사들이 표정을 찌푸렸다.

"망할. 어디 암초에라도 부딪혔 나? 배 하부에서 나는 소리 같은 데."

"괜찮아. 어차피 곧 수도다. 거기 까지는 무리 없이 항해할 수 있겠지."

"재수 옴 붙었군."

"뭘. 오히려 좋은 일이지. 수도에서 배를 수리하는 동안 지상에서 더 쉴 수 있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그렇네."

병사들은 이 나무 바스라지는 소음을 그저 암초에 의한 충격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꿈에도 몰랐으리라. 이 소음이 침입자가 배의 측면을 기어 올라오고 있기에 생긴 소음이라는 것을.

그들의 명줄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 * *

배의 측면을 기어오른다.

방법은 꽤나 단순하고 무식했다.

필요한 것은 짧은 단검 두 개뿐. 콰직.

단검을 나무로 된 벽에 꽂아 넣 는다.

한 발자국 기어올라, 다시금 콰 직. 다른 손으로 단검을 박는다.

왼쪽과 오른쪽을 교차해가며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마치 빙벽등반과도 비슷한 일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양손의 피켈대신 단검 두 개를, 빙벽 대신 배 의외벽에 박아서 기어오른다는 것 일까.

피식 웃었다.

"확실히 내 신체능력이 정상은 아니구나."

솔직히, 예상보다도 너무나도 수 월했다.

가파른 배의 측면을 기어오르는 일이다. 다소 힘겨울 거라 예상했었 는데, 그런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몸뚱이는 너무나도 쉽게 벽면을 타고 올라갔다.

무려 삼 층 갑판짜리 거선의 외벽을 타고 오름에도 땀 한 방울 나지 않다니.

그만큼 내 능력치가 너무나도 진 보해있기 때문일 터다.

콰직. 단검을 꽂아 올랐다. 거의 다 올라왔다. 배의 난간이 손에 닿 는다.

나는 손을 뻗어 난간을 붙잡고 는, 단숨에 몸을 끌어올려 갑판 안쪽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 으음?!"

그곳에 초병이 있었다.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던 것 일까. 녀석이 한손으로는 성냥을, 다른 한손으로는 연초를 손에 쥔 채. 이쪽과 눈을 마주친 상태였다.

"무슨?!"

놈이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한다.

설마 이 야심한 밤, 배의 외벽을 기어 올라온 미친놈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얼타는 것은 잠시뿐.

"치, 침입자다! 침입…!"

녀석이 크게 소리 질러 다른 병사들에게 내 등장을 알리려 한다.

물론 녀석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퍼억.

"커헉…!"

방금 전까지 외벽을 기어올 때 ?던 단검이, 놈의 목에 쑤셔 박혔 기 때문에.

손목을 비틀어버린다. 단검의 날이 돌아가며 녀석의 성대를 난자했다.

"꺽…끄륵…!"

놈이 목과 입에서 피거품을 일으 키며 쓰러진다.

쿵. 경련. 질척하게 흘러 갑판을 더럽히는 놈의 핏물.

나직이 읊조렸다.

"일단 한 명."

이 수송선의 규모를 볼 때. 적어도 삼십 명, 많게는 오십 명까지 이 안에 타고 있을 것이다.

많은 수다. 그놈들을 은밀하게 하나씩 처치해야 하니. 다른 인물들 이라면 꽤나 힘겨운 일이리라.

허나 내게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스킬 : 은신술(하급)]

나에게는 은신술 스킬이 있으니까.

파앙! 단검을 휘둘러 핏물을 흩 뿌렸다. 이미 핏물로 질척한 목제 갑판 위, 붉은색 물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이어 중얼거려본다.

"선장이랑 선원 몇 빼고 다 죽이 면 되겠지."

배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필수 인원들 빼고 모조리 죽인다면. 이 배를 온전히 장악할 수 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삐그덕, 하며 울리는 나무 비틀리는 소리. 그와 함께 다른 초병을 발견했다.

바로 근처에서 제 아군이 죽었음에도 비명을 듣지 못했던 것일까. 놈은 태평하게 저 밤바다를 바라보 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철썩이는 파도 소리 덕분에 방금 전 비명소리가 묻혔던 것 같다.

뭐, 내게는 좋은 일이다. 덕분에 이쪽의 침입이 들키지 않았으니 .

나는 녀석의 바로 뒤까지 소리 없이 다가가, 목덜미에 검날을 들이 밀며 말했다.

"이제 두 명."

콰직.

놈의 목에 단검을 박아넣어 비를었다. 놈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절명한다.

나는 수송선의 선원들을 하나씩 처리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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