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223화 (223/390)

223화.

"한지훈. 자네, 나를 대리해 서부 야전군을 지휘해볼 생각은 없나?"

다인 사령관은 그리 말하며 바로 앞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저자가 제국의 영웅 한지훈이다.

다수의 전장에서 수많은 아군을 구원하였던 인물. 제국의 떠오르는 신흥세력. 친황파 귀족의 구심점. 황제의 총애를 받는 젊은 군관.

한지훈 라이젠.

그는 서부 야전군을 구원했다.

다인이 이어 말했다.

"물론 자네에게 서부군 사령관 자리를 주는 건 아니네. 어디까지나 서부 대륙 정벌의 때. 그때에 한해 서 서부군의 지휘권을 임시 부여하 는거다."

그는 그리 말하고는 한지훈의 표정을 살폈다.

경악에 찬 얼굴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부 야전군. 무려 이십만에 달 하는 거대한 병력이다.

그 지휘권한을 일개 군단장, 그것도 같은 서부군 소속이 아닌 북부군의 군관에게 부여하겠다니.

아무리 먼 훗날에 있을 서부 대륙 정벌 때 한정이라 하지만. 파격 적인 조치인 것은 변함이 없다.

잠시 생각하던 한지훈이 입을 열었다.

"진담입니까? 다인 사령관 각하."

"진담이냐라…. 하긴, 꽤 갑작스 러운 제안이긴 했지. 하지만,"

다인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한지훈과 눈을 마주했다.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일부러 진중한 표정을 지어가며.

그가 강조하듯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충분히 숙고한 뒤 내린 결정이었네. 우리 서부군에는 자네 같은 젊고 유능한 군관이 필요하다."

이번 트웨인과의 전쟁 내내. 다 인사령관은 자신의 한계를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부군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트웨인의 전열을 부수지도, 그 들을 소모시키지도 못했다. 전쟁 내내 서부군이 했던 것이라고는 그들에게 갉아 먹혀 피 흘리며 자리를 지켰을 뿐.

전쟁의 주도권은 항상 트웨인이 쥐고 있었다.

허나 한지훈은 달랐다.

고작 일만의 기병으로 한지훈은 트웨인군의 전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놈들의 수장 누르비테를 무력화 시켰으며, 결국 극적인 종전협 상까지 진행했다.

트웨인을 제국의 제후국으로 편 입시켰다.

모두 한지훈이 해낸 일이다.

노쇠한 자신은 결코 하지 못했던일. 그가 침중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한지훈. 나는 늙었네."

다인은 이번 전쟁을 겪으며 자신 이 늙었다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다.

그는 급변하는 대륙의 정세를 차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공국의 침공, 흑마법사의 발호, 엘프의 개입, 제국 귀족우월주의 파벌의 멸망, 협상동맹과의 전쟁, 연방과의 마찰, 그리고 이번에는 서부대륙 정벌까지.

늦은 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대륙의 정세가 변화해간다.

그리고 다인은 변화에 쉽게 적응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전쟁이 대표적이었다.

기마민족 트웨인. 병력의 거의 전부가 기마병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적.

"내가 지휘하는 서부군은 새로운 전장에 적응하지 못했네. 그들의 최고 지휘관인 내가 늙었기에. 생각이 굳었기 때문이겠지."

다인은 고루한 전략을 운용했다.

군단 단위로 군을 움직였고, 군 의 편제에 별다른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오직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 려했다.

좋게 말하자면 정석대로 군을 운 용한 것이었고. 노골적으로 표현하 자면 적에게 적응하지 못해 유연하 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네는 달랐어. 기마민족을 너무나도 능숙하게 상대했지."

그는 다수의 군단에서 기병들을 차출, 트웨인을 대적하기 위핸 기병 군단을 만들어 운용했다. 커다란 성 과를 내었다.

기존 제국군 편제를 억지로 비틀고, 수정해, 적에게 맞서기 위한 최선의 군대를 만들어 전투에 투입했 던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나이를 먹어 생각이 굳은 그로서는 결코 취할 수 없는 태도.

"서부 대륙은 전혀 새로운 전장 이 될 걸세. 나같은 늙은이들은 그곳에서 쉽게 적응할 수 없어."

제국군은 언젠가 서부 대륙으로 향할 것이다.

그때 만약 다인 사령관이 계속 서부군을 지휘한다면, 이번 전쟁과 같은 일이 다시금 펼쳐질 것이다.

새로운 전장. 새로운 적. 다인이 이끄는 서부군은 고전하리라.

하지만 한지훈이라면.

"그곳에서 금세 적응하겠지."

아직 젊기에 생각이 열려 있는 그라면. 보다 능숙하게 군을 이끌 수 있을 것이리라.

다인 사령관은 그리 여겼고, 그렇기에 다시금 제안한다.

"서부 대륙 정벌, 자네가 지휘하 게. 한지훈 라이젠. 우리 제국의 찬 란한 등불이여."

한지훈은 다인 사령관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이건 예상외인데."

터덜터덜. 나는 다인 사령관과 대화를 마친 뒤, 천막 밖으로 나와 내게 배정된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는 와중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본다.

대화를 꽤나 오래해서인지 이미 하늘에는 완연한 밤하늘이 자리해 있다. 촘촘히 박혀 반짝이는 별빛이 아름답다.

나직이 중얼거려본다.

"서부 야전군이라."

까놓고 말해서, 그리 매력적인 군대는 아니다.

같은 제국군이라 한들 북부군보 다는 훨씬 정예도가 떨어진다. 전투 경험은 일천하고, 군관들의 수준 또한 그저 그런 수준.

타국에 비해서는 나름 제대로 된 군대라 하겠지만. 그동안 북부군을 지휘하며 한껏 올라간 내 눈을 만족시키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

하지만,

"그 수가 20만이나 되지."

지금 내가 지휘하고 있는 북부 제 13군단. 총원 수가 2만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다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리하여 추후 20만을 직접 내 손으로 지휘할 수 있게 된다면.

당연히 보다 수월하게 서부 대륙을 정복할 수 있다.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내 정보."

오랜만에 불러보는 정보창.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한지훈][북부 제 13군단장]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상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50]

[민첩 167]

[내구 77]

[체력 64]

[마나 134]

(남은 포인트는 80pt 입니다.)

홀로그램이 떠오른 뒤. 나는 멍 하니 중얼거렸다.

"역시. 스킬을 상향시켜야 해."

추후 20만 명을 지휘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 능력은 아직 20만에 달하는 대군을 완벽히 통솔 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눈여겨보는 것은 상태창 속 어떤 스킬이었다.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내지휘술 스킬의 등급은 '군단'.

아직 야전군 등급이 되지 않았기 에, 설혹 서부군을 지휘한다 한들 완벽하지는 못할 터다.

물론 과거 게임 속에서 그보다 더욱 많은 대군을 움직여 세상을 정복했던 만큼, 막상 병력이 주어진 다면 다른 사령관들보다 더욱 잘 지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20만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통솔하게 되었으니 .

슬슬 지휘술 스킬 상향을 위해 포인트를 모아놔야 하리라.

(남은 포인트는 80pt 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모아야 하는 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내가 그렇게 정보창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서부사령관과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네요. 한지훈 씨."

저벅.

누군가가 음영에서 걸어 나온다.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이는 것은 역시나 익숙한 얼굴. 기다란 초록색 머리카락, 녹색 눈동자.

나는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니디아. 오랜만인데."

엘프 여왕대리 니디아. 그녀가 갑작스레 등장한 것이다.

저벅, 저벅. 그녀가 천천히 다가와 이쪽과 보폭을 맞춘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여기 온 거지? 무언가 볼일 이 있나."

어떻게 이 삼엄한 경계를 뚫고 내가 있는 곳까지 접근했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과거 황궁에서조차 내 숙소 까치 찾아왔던 그녀다.

사방이 뻥 뚫린 이런 군영이라. 그녀가 잠입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을 터.

그녀가 내 물음에 대답했다.

"알려줄 것이 있어서요."

"알려줄 것이라. 굳이 통신이 아니라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니디아가 엘프 여왕대리가 된 이후, 나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적 이 없었다.

그만큼 그녀가 바빠졌기 때문에.

항상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때도 통신을 나눴을 뿐. 과거처럼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헌데 어째서인지. 지금 엘프의 여왕대리인 그녀가 이곳에 등장했다.

과연 어떤 사실을 알려주려 하기에 내게 직접 모습을 보인 것일까.

그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한지훈 씨. 당신도 알겠지만, 이번 협상동맹과의 전쟁은 이로써 제국의 승리가 확실시 되었어요."

"뭐,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국은 이로서 협상동맹과의 전쟁에서 확실한 승기를 거머쥐게 되었다.

카렌.

제국에게 완전히 정복되었다.

트웨인.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제국의 아래에 들어오게 되었다.

네 개의 전선 중 두 개가 정리된 상황. 덕분에 제국은 서부군과 북부 군, 그리고 중앙군을 나머지 두 개 의 전선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앞으로 몇 달 안에 완전히 승리 하게 되겠지."

압도적인 우세를 손에 넣게 되었다.

애초 동부군과 남부군만으로 서로 비등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와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북부와 서부군까지 가세한다면, 놈들이 버틸 수 있을 턱이 없다.

허나 무언가 이변이 있는 것일 까.

"네.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엘프는 어떤 정보를 얻은 듯하다.

저벅.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니디아를 주시했다. 그녀의 뒷말을 기다린다.

니디아는 잠시 이쪽을 바라보더 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도 이미 반쯤 예상하고 있었을 텐데요. 한지훈 씨. 람셀과 코 르자카는 이대로 패배할 생각이 없어요."

"설마."

"네. 맞아요."

니디아는 말한다.

"람셀과 코르자카가 외세를 끌어 들이려 해요."

쯧. 절로 혀가 차졌다.

"지긋지긋한 놈들."

녀석들은 항복하지 않고 계속해 전쟁을 이어나가려 한다. 그것도 외 세를 끌어들이면서까지 말이다.

내가 묻는다.

"외세라면. 연방? 아니면서부 대륙?"

"뭐. 연방도 있지요. 동쪽 람셀에서는 연방과 동맹을 맺으려 해요. 아직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이지요."

"람셀은 연방과 손을 잡았고. 그렇다면 코르자카는?"

코르자카 공화국. 남쪽의 섬나라. 남부 대륙의 다른 군주정 국가들과는 다르게, 독특하게 공화정을 채택 해 운영되고 있는 국가다.

뭐. 그래봤자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었다는 건 다른 국가들과 비슷했지만.

니디아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 한다.

"코르자카 공화국은…."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엘프 여왕대리인 그녀가 이곳까지 온 이유.

엘프는 본래 인간끼리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엘프들이 이전까지 지켜져 왔던 관습을 깨고, 전쟁에 개입할 때는 오직 하나뿐.

"코르자카 공화국은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어요."

"염병."

절로 욕지거리가 나온다.

예상대로였다. 코르자카는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았다.

그녀가 이어 말한다.

"한지훈 씨. 아직 흑마법사의 세력은 코르자카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았어요. 그전에 막아야 해요. 카렌의 참사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돼요."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코르자카가 흑마법사와 손을 잡 기 전. 그들의 수뇌부를 완전히 정리해야 해요."

니디아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녹색 광휘가 일렁이는 통신 수정구.

그녀가 수정구를 내게 건네며 말을 잇는다.

"코르자카의 수장. 알비덴 대의원을 처치하죠. 저희 엘프를 도와주세 요, 한지훈 씨."

외세가 전쟁에 개입했다.

그리고 엘프 또한. 다시금 이전쟁에 참여했다.

확전의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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