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데키타! 정말 살아있었어!"
누르비테가 기쁘다는 듯 그리 외쳤다.
그에 맞은편에 있던거한의 장수, 데키타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한 이시여. 제 능력이 부족했기에 포로 가 되었습니다. 이 치욕은 언젠가 반드시 만회하겠습니다."
"아니. 그대가 죄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한지훈, 저자의 무력은 나 또한 잘 알고 있지. 이 몸마저 압 도한 제국의 장성이다. 그대가 버티 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
데키타의 말에 누르비테가 그리 말하고는, 시선을 돌려 천막 한켠에서 있던 나를 흘겨 본다.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정말 괴물 같은 자야."
나는 피식 웃었다.
트웨인과 제국의 전투가 일시 중 지되었다. 내가 적장인 누르비테를 무력화시키고, 종전 협상을 제안했 기 때문에.
지금 이곳은 제국군 군영과 트웨 인군 군영의 중간지점. 따로 설치된 대형 천막의 안이었다.
일시 휴전을 한 뒤, 누르비테와 데키타가 만날 자리를 만들어준 것 이다.
저벅, 저벅.
나는 천천히 걸어가 천막 안에 자리해있는 의자 위에 앉아 말했다.
"좋아. 누르비테, 데키타가 무사 한 것을 확인했으니… 일단 앉지. 알다시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 그렇지."
누르비테와 데키타가 고개를 끄 덕이고는, 천천히 걸어와 자리에 착 석했다.
나는 두 장의 서류를 꺼내들었다.
"이제 전쟁이 끝날 것이고, 트웨 인은 제국의 제후국으로 편입될 것 이다."
내가 꺼내든 것은 종전협정서. 그리고 트웨인이 제국의 제후국으로 편입된다는 봉신서류였다.
서류를 슬쩍 훑어보았다.
기나긴 장문의 글귀가 적혀 있는 서류였다. 하지만 요점만 간추리자 면 간단했다.
제국과 트웨인은 이 시간부로 전쟁을 중지. 그리고 트웨인은 제국의 일개 제후국으로 편입된다.
즉, 트웨인이 제국의 속국이 되는 것이다.
"이 서류에 도장이 찍히는 그때 부터. 누르비테, 그쪽은 제국의 공작 대우를 받게 되지."
트웨인이 제국의 제후국이 된다는 것. 그것은 황제와 누르비테간의 주종관계가 성립된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이제부터 누르비테는 제국의 제 후로서 공작 작위가 수여될 것이고, 트웨인은 제국의 속국이 되지만 자 치권을 보장받을 것이다.
"음…."
누르비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유심히 살펴본다.
한참 동안이나 서류를 살펴본 누 르비테.
그가 나직이 읊조린다.
"그래. 전쟁을 멈추고 제국의 아래에 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지. 어차피 승산이 보이지 않는 전쟁. 내 손으로 트웨인을 멸망하게 둘 수는 없으니 ."
누르비테는 오랜 숙고 끝에 종전 과제후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동맹의 4개 국가 중 하나인 카렌이 멸망한 지금이다. 승기는 제국으로 기울었고, 언젠가 트웨인은 패배할 운명이었다. 남은 것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일 뿐.
그 상황에서 내가 제안했다.
전쟁을 멈추고 제국의 아래로 들어오라고. 더해 제국의 신하가 된다면, 추후 서부 대륙 본래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지원까지 해주겠노라 고 말이다.
그에 누르비테는 수락했고, 이제는 도장을 찍는 일만이 남은 상황.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군."
아직 그에게는 의문이 남은 듯했다.
누르비테의 말이 이어진다.
"한지훈. 서부 대륙과 전쟁할 때 제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약속. 매력적인 제안이다. 우리의 고향땅을 되찾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니.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의아하 군."
"의아하다니. 뭐가?"
"종전과 자치권 보장. 그 둘만 있었어도 나는 항복했을 것이다."
사실 누르비테는 별다른 조건 없이, 종전만 할 수 있었다면 제후국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만큼 트웨인에게는 승산이 없었으니 .
"헌데 그대는 서부 대륙과 전쟁 할 때 지원까지 약속했어. 우리 트 웨인의 고향땅을 찾아준다며 말이 야. 굳이 필요한 약속은 아니었지.
어째서 인가?"
하지만 나는 그것에 더해, 서부 대륙 정벌까지 조항에 넣어버렸다.
만약 트웨인이 서부 대륙의 세력 과 전쟁을 벌인다면, 제국이 적극적 으로 개입해 트웨인을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물적으로든, 인적으로든.
그 무엇이든지.
아무리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제국이라 하나, 타 대륙 세력과 싸우는 것은 부담될 수밖에 없는 일.
"명백히 그쪽의 손해다. 제국이 무슨 꿍꿍이를 지니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고향땅을 찾는데 전폭적인 지원 이라.
방금 전까지 전쟁을 벌였던 속국 에게 해주는 대우치고는 파격적이다. 그렇기에 누르비테는 제국이 무 언가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닌가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썩하게도 음모따위는 없다. 그저,
"누르비테."
"… 뭔가."
"제국에게는 아군이 필요하다. 그것도 타 대륙을 잘 아는 아군이."
함께 싸울 아군이 필요했을 뿐.
툭, 툭.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 리며 말을 이었다.
"제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팽창 하고 있다. 지금이야 협상동맹과의 전쟁 때문에 국력을 소진하고 있지 만. 그것도 잠깐이지."
협상동맹과의 전쟁이 거의 끝나 간다.
카렌은 패배해 제국에 흡수되었고, 트웨인은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람셀이나 코르자카 또한. 그리 머지않아 사라 질 것이다.
"제국은 모든 전쟁을 승리할 것 이고, 이후 안정기를 거치며 이전보 다도 더욱 강력한 국력을 지니게 되겠지."
전쟁의 과실은 달콤하다.
협상동맹과의 전쟁이 끝난 뒤, 제국은 드넓은 영토와 자원을 차지 하게 될 것이고, 이전보다도 더더욱 강성한 국력을 지니게 된다. 비로소 남부 대륙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의 과정은 뻔하다.
하나의 대륙을 완전히 장악한 국가가 그다음 어떻게 행동하느냐.
이미 연방이라는 강대국이 그 선례 를 보여준 바 있다.
"우리 제국은 타 대륙으로 진출 할 거다."
"… 진지하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타 대륙 정벌이라니, 동부대륙을 통일했던 연방조차 실패한 일이다."
"연방은 실패했지. 하지만 우리 제국은 성공할 거다."
나는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나 자신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내가 있으니까."
자뻑같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내가 있다면서부 대륙을 정벌할 수 있다.
"내가 있는 한 제국은 패배하지 않아. 서부 대륙이야, 거리가 멀다는 문제만이 있을 뿐. 우리 제국의 적수는 아니지."
타 대륙 정복이라. 이미 게임 속에서 해보았던 일이다.
나는 흑마법사와 협력, 군대를 몰아 서부 대륙과 동부 대륙을 정 복했다. 다수의 국가를 쓸어버리고 그곳에 제국기를 박았다.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조력자가 바뀌었다는 것 뿐.
흑마법사 대신 트웨인과 손을 잡았다. 추후 제국이 남부 대륙을 완전히 정리한 뒤. 그들과 연합해 서부대륙을 정벌할 것이다.
"이제안은 트웨인과 제국. 양자 모두에게 이익이야."
트웨인은 고향땅을 되찾을 수 있다. 제국은 서부 대륙으로 진출하는데 유용한 아군을 확보할 수 있다.
원래 큰 먹이를 혼자 독식하려 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제국 단일로 서부 대륙을 정복하 려한다면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게임클 리어가 늦어쩔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기마민족 트웨인이 있다 면.
본래 서부 대륙에서 살아가던 그 들의 조력이 있다면.
보다 쉽고 빠르게 서부 대륙을 정복할 수 있다.
"초원의 왕 누르비테. 제국과 손을 잡아서부 대륙으로 진출하는 거다."
나는 다시금, 강조하듯이 말한다.
"우리 제국과 손을 잡는다면. 그대들은 고향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이전 전성기 때보다 도 훨씬 큰 세력을 일굴 수 있겠지."
"… 전성기 때보다도 더 큰 세력 이라."
누르비테가 고개를 들어올려 이쪽을 바라본다. 시선이 마주쳤다. 보이는 것은 그의 청색 눈동자.
나와 비슷한, 우묵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이다.
마치 내 생각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한참이나 내 눈을 바라본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당당했기에. 피할 이유가 없다.
그러자 누르비테가 피식 웃었다.
"신기하군."
"신기하다니. 뭐가?"
"한지훈. 네 얼굴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말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스스로 서부 대륙 정벌을 가능하다 여기고 있는 거다."
누르비테가 품속에서 도장을 꺼내들었다.
"나는 자신감 넘치는 인물을 신 뢰한다. 자네처럼 말이야."
"아까 전까지만 해도 검을 맞대 고 싸웠던 적이었는데, 신뢰한다라. 그 신뢰가 의심스러운걸 그래."
"오히려 검을 맞대보았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지. 자네는 허언을 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타인을 속 이려 하는 자는 더더욱 아니고."
그가 도장을 서류에 가져다댄다.
"자네처럼 대단한 군관이 이토록 당당하게 말해온다면. 믿을 수밖에 없단 말이지.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한들."
쿠웅. 누르비테가 도장을 찍었다. 협정서의 하단, 트웨인의 문양이 붉게 남는다.
"서부 대륙 정벌. 꼭 이루어졌으 면 좋겠군."
"나도 마찬가지야."
누르비테가 손을 뻗는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전쟁이 종료되었다. 트웨인이 제국의 제후국으로 편입되었다.
- 띠링!
[서브 퀘스트 - '서부군 구원'을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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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그램이 떠오른다.
"그래. 자네가 바로 그 한지훈이 로군."
트웨인과 협상이 종료되고. 나는 서부야전군 군영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자 어떤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인 루이 드라이퍼스. 서부군 사령관 직책을 맡고 있지. 반갑네 한지훈 라이젠. 우리 제국의 위대한 영웅이여."
다름 아닌 다인 서부군 사령관이었다. 하얀색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는 노장.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다인 루이 드라이퍼스]
[제국 서부야전군 최고사령관]
역시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알 고있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거물인 인물이었으므로.
제국 야전군 사령관 정도쯤 되면 네임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척 경례하고, 다인은 피식 웃고는 손을 내민다.
"우리 군을 구원해준 영웅에게 어찌 경례씩이나 받을 수 있겠는 가? 자, 악수나 하지."
나는 경례를 풀고 그와 악수했다. 다인이 내게 테이블에 자리를 권한다.
거리낄 것도 없기에, 가서 앉았다.
"자네 덕분에 우리 서부군은 무 사할 수 있었다네. 서부군의 수장으로서 다시 감사를 표하지."
그가 다시금 감사를 표한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제국의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겸손하군."
이후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별 내용은 없었다. 그저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찌하여 트웨인과 종 전협상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일 뿐.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다인 사령관이 한숨을 푹 내쉰다.
"한지훈. 우리 제국 서부군을 어찌 생각하나. 이번 일을 겪으며 자네가 느낀바가 많았을 터인데."
"서부군이라…."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솔 직하게 말한다면 무례가 될 것이었 으므로.
그런 내 기색을 금새 알아챈건지. 그가 말을 더한다.
"알고 있네. 한심하게 보였겠지. 전투기록을 본다면 항상 패퇴에 패 퇴만을 거듭. 기마전으로는 이길 수 없고, 보병방진은 금세 파훼당한다. 그저 피를 흘려 자리를 사수하는 것이 고작일 뿐인 군대. 이번 전쟁에서 보인 서부군의 현실이었지."
확실히 그러했다.
트웨인과의 전쟁에서 서부군이 보인 능력은 너무나 형편없었다. 전 장을 장악하지 못했고, 보급품은 수시로 약탈당했으며, 심지어 마지막 에는 궤멸의 위기에 처하기도했다.
눈에 띄는 활약은커녕, 마지막에는 타 야전군에 의해서 구원받기까지 했으니 .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제국 서부 군은 약하네."
제국군은 강하다.
그들은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기병과 일개 보병대에 이르기까지. 준수한 품질의 장비를 지급받으며 잦은 훈련과정을 거친다.
잘 관리된 정예군.
타국에서는 제국군을 그리 평한다.
하지만 모든 제국군이 강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제국 동부군과 북부군은 정예군 이지. 전투경험이 풍부하니까. 그리고 과거 정복전쟁 때 활약했던 장 교들이 많았으니까 말이야."
제국 북부군과 동부군은 정예군 이었다.
과거 정복전쟁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가 이루어졌던 곳이 그곳이었 기에. 그리고 협상동맹과의 전쟁 이전 크고 작은 국지전이 가장 많이 이루어졌던 곳이 북부와 동부였기 에.
일개 병사부터 고위 장성까지. 두루 많은 전투경험을 지니고 있으 며, 단련되어있는 것이다.
"허나 우리 서부와 남부는 다르 지. 우리에게는 전투경험이 부족했 다네."
반면서부와 남부는 달랐다.
서부와 남부의 상대는 트웨인과 코르자카.
트웨인은 정복전쟁 전까지만 해 도 일개 야만족 부족 취급을 받았 던 세력이었고, 코르자카 또한 이번 전쟁 이전에는 그저 허약한 해적집 단이라 여겼었다.
때문에 북부, 동부와 달리. 서부 와 남부는 비교적 허술했다. 전투경 험 자체가 다른 야전군에 비해 뒤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전투경험이 부족한 군대는 필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훈련에 집중한다 한들 실 전만 하지 않기 때문에.
허접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정 예라고 부르기에는 모자란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네."
한동안 서부군의 사정을 설명하 던 다인 사령관.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했지. 추후 제국은 서부대륙 정벌을 시도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때 서부 대륙으로 향하는 군대는 아마도 우리 제국 서부야전 군이 될 것이겠지."
그럴 것이다. 서부대륙에 가장 가까운 군대가 바로 서부군일 터이 니.
높은 확률로 서부야전군이 서부 대륙 정벌에 동원되리라.
"하지만 이대로라면서부군은 크 나큰 피해를 입을 터."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토록 밑밥을 깔았던 것일까.
나는 다인을 바라보고, 그는 길 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한지훈, 자네…."
그의 제안을 들은 직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