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누르비테. 절정의 무력을 지니고 있는 강자다.
기마민족 트웨인에서 가장 드높 은 무력을 달성한 전사. 트웨인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초원의 왕.
과거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누르비테 한을 수식하는 여러 칭호 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누르비테한과 대장전을 벌이고 있었다.
대장전. 흔히 게임에서 일기토라 고 표현되는 그것이 맞다.
장수들이 벌이는 일대일 기마전.
두두두두두.
두 기의 전투마가 움직인다. 하나는 내가 타고 있는 제국군 장성 용 전투마였고, 다른 하나는 누르비 테 한이 타고 있는 트웨인 민족의 명마.
사실, 전투마의 능력만으로 본다 면 누르비테의 것이 훨씬 더 우월했다.
서부 초원지대의 전투마는 빠르고, 튼튼하며, 강했다. 제국군 기사단이 운용하는 전투마 또한 우수한 종이었지만, 아무래도 기마민족이 운용하는 그것에 비해 손색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똑같이 전투마를 타고 교전하지만, 이쪽이 불리한 것이 사실.
허나 그렇다 한들.
나에게는 스킬이 있다.
[스킬 : 기마술(상급)]
상급에 달하는 기마술 스킬이.
이것이 있다면. 비록 타고 있는 전투마의 능력이 누르비테의 것에 비해 모자라다 한들. 그이상의 능력을 뽑아낼 수 있다.
나는 전투마를 타고, 누르비테의 기동에 발맞춰 놈을 추격한다.
"어떻게 제국 놈이 내 속도를 따 라오는…."
그에 경악하는 누르비테.
분명 속도로도, 체력으로도, 심지 어 지면을 박차는 힘조차 트웨인의 전투마가 훨씬 더 우월할 터인데.
제국군용 전투마를 몰고 있는 내가 그의 움직임을 ?아간다니. 당연히 경악스러운 일.
나는 피식 웃었다.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사람 이다. 멍청아."
물론 스킬빨이었지만.
말이 달린다. 나와 누르비테는 그리 좁지 않은 공간을 전투마를 타고 누비며, 접전과 이탈을 반복했다.
격렬한 마상전투가 일었다.
콰아아앙!
누르비테가 검을 휘둘렀다. 커다란 파공성을 울리며 쇄도해 오는 놈의 검날. 검신으로 쳐내 무력화 시켰다. 쩌엉 울리는 격돌음과 함께 불똥이 튄다.
나는 누르비테의 목덜미를 노리고, 검을 횡으로 그었다.
콰르르르릉!
반월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청색 궤적. 누르비테가 고개를 숙여 피했다. 녀석의 정수리 머리카락 몇을 이 서걱 잘려나간다.
직후 녀석이 내 측면을 스쳐 지나가며 검격을 가해왔다.
찌르기.
피잉!
허리를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장성용 제복의 옷깃이 서걱잘려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공간을 누비며 검합을 나눴다.
놈의 공격을 피하고 쳐냈으며, 놈은 내 공격을 회피하고 막아냈다.
푸른색 궤적이 어지러이 그어졌다. 검날이 부딪칠 때마다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오고, 웅혼한 충격파 가 대지를 뒤흔든다.
두 수장의 격렬한 전투.
전투에서 우세를 점하는 것은 나였다.
쿠웅!
"크윽…!"
내 전투마가 누르비테의 전투마 를 들이받았다. 그에 휘청이는 놈의 전투마. 녀석은 말과 함께 순간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칠 내가 아니다.
나는 검을 높이 치켜들어, 내려 쳤다.
쩌어엉!
누르비테가 간신히 검을 들어올 려 방어했다. 허나 휘청이는 전투마 위에서 그 충격을 버틸 수 있을 리 만무.
녀석의 말이 쓰러지고, 누르비테가 낙마해 지면을 구른다.
"커허억!"
누르비테가 바닥을 굴렀다. 둔탁 한 충격이 그의 전신을 두드린다. 직후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
"… 제기랄!"
하지만 누르비테는 고통에 취해 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을 노리는 적이 있었으므 로.
그가 막 몸을 일으켰을 때.
콰아아앙!
검날이 허공을 꿰뚫는다. 순간 일어났던 흙먼지가 풍압에 밀려 사 라지고, 그 틈세를 파고들 듯 푸른색 궤적이 그어진다.
한지훈의 검격. 누르비테는 반사 적으로 검신을 들어올려, 쇄도해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콰앙!
울리는 굉음.
전투마의 체중과 한지훈의 힘이 가미된 공격이 그의 장검에 틀어박 혔다.
장검이 반 토막이나 흩어짐과 동시, 누르비테의 몸이 충격에 밀려 뒤로 부웅 날아가 또다시 지면을 구른다. 흙먼지가 더욱 뿌옇게 일었다.
누르비테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눈가를 찌푸린다.
그리고 직후.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누르비테는 찡그렸던 눈을 억지로 뜨고, 힘 겹게 상체를 일으켜. 바로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적이 있었다.
"… 한지훈."
한지훈 라이젠. 놈이 전투마에 탑승한 채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있다.
누르비테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 으키려했다. 허나, 욱신.
"크윽…!"
그는 재차 표정을 찌푸리며 무릎 꿇었다.
막대한 고통. 방금 전 그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한지훈의 공격에 의해 낙마하고, 직후 그의 기마돌격에 의해 재차 바닥을 굴렀으니 .
전신의 뼈마디 곳곳과 내장이 진 탕이 되어있을 터. 이렇게 의식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 것이다.
"좋아. 드디어 무력화 되었네. 이제 드디어 여유롭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어."
저벅. 한지훈이 전투마에서 내려 와 지면에 발을 디뎠다. 그가 여유 로운 발걸음으로 쓰러져 있는 누르 비테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였다.
"한이시여!"
"우리의 군주를 보호하라!"
"오오오오오!"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트웨인 기병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지훈과 누르비테는 대장전을 벌였고, 결과는 누르비테의 패배.
그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트웨 인 전사들이 아니었다. 그에 그들은 자신의 군주를 구하기 위해, 한지훈 의 앞으로 난입하려 한다.
물론 제국군 또한 그들의 난입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군단장 각하를 보호하라!"
"볼로냐 기사단! 전진! 결과에 승 복하지 않는 저 무식한 놈들을 밀 어버려라!"
"가라! 단장님을 따르라!"
두두두두두두.
양 진영에서 기병무리가 달리기 시작한다. 서로의 수장을 보호하기 위해, 일기토가 벌어지며 잠시 중지 되었던 난전이 다시금 벌어지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만! 모두 멈춰라."
농밀한 마나가 실린 웅혼한 목소리가 공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음성 의 주인은 역시나 한지훈.
그가 천천히 검을 뽑아들어, 오 러를 돋웠다. 청염이 이글거리며 타 오른다.
한지훈이 검날을 누르비테의 목덜미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트웨인. 물러나라. 접근한다면 바로 베겠다."
"네놈! 감히…!"
"닥쳐. 나도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바로 풀 어주지."
한지훈의 말에 주춤하는 트웨인 기병들. 그들이 잠시 혼란에 빠지고 는, 되묻는다.
"정말, 물러난다면. 누르비테 님 의 생명을 보장할 것이냐?!"
"그래. 여기, 포션도 주지. 잘 봐라."
한지훈이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안에 찰랑거리는 액체는 역시나 붉은색 포션. 그가 뚜껑을 개봉해 누르비테의 손에 쥐였다.
"마셔라. 누르비테."
"…네놈. 무슨 속셈이지? 나를 죽일 생각이 아닌 건가? 너희 제국 은 분명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 여 겼다만."
"일단 몸부터 회복한 뒤 말하지."
누르비테는 표정을 찌푸리고는, 얌전히 포션을 받아마셨다. 이후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그의 상처들.
한지훈이 주었던 것은 최상급 포 션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토록 빠른 회복효능은 말이 안된다.
그가 고개 돌려 제국군 진영 쪽을 바라보며 지시했다.
"제국군 기병대와 기사들. 너희들 도 물러나 있어라. 나는 여기 누르 비테와 대화할 일이 있다."
"한지훈! 이게 지금 무슨 일인 가?! 나는 이런 이야기는 전혀 듣 지 못했다네!"
물러나라는 말에, 제국군 진영 속에서 어떤 인물이 말을 타고 앞서나왔다. 볼로냐 기사단의 단장 베르겐이었다.
그가 되묻는다.
"갑자기 대화라니. 트웨인의 군주 를 죽여 놈들의 지휘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그대의 계획 아니었나?! 한지훈!"
베르겐이 추측하기에, 한지훈의 계획은 단순하고도 확실했다.
트웨인 군주의 제거.
10만 전 병력을 통솔하는 최고 지휘관이 바로 저 다름 아닌 트웨 인의 군주 누르비테 한이다.
지휘체계가 뒤떨어진 트웨인의 특성상 누르비테가 죽고 난다면 각 군단은 서로 공조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움직이게 되어 지리멸렬하게 될 터.
그것을 노리고 한지훈은 이곳 트 웨인의 사령천막까지 돌진했다 여 겼다.
헌데 무언가 따로 노리는 것이 있는지. 한지훈은 지금 누르비테와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려하고 있으니 .
베르겐이 당황하는 것은 어찌 보 면 당연한 일. 그에 한지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나중에 이모든 일이 정리된다면 제대로 말해주지. 그러니 베르 겐, 일단은 물러나줬으면 하는데 ."
"하지만,"
"이미 황제 폐하께 허락까지 맡 은 일이야."
베르겐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황제에게까지 미리 허락을 구해놨던 일이라 한다. 베르겐은 그동안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다 하나, 일개 기사단장에 불과한 그가 무어라 따지기도 힘든 일.
결국 베르겐은 고개를 끄덕여 수 긍할 수밖에 없었다.
"… 꼭 제대로 설명해주게. 한지훈 군단장."
"그래. 약속하지. 일이 정리되는 대로 알려주지."
베르겐이 다시금 제국군 진영으로 되돌아간다. 직후 한지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서로 떨어진 양 진영의 모습. 제국군과 트웨인군이, 한지훈과 누르비테를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다.
한지훈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 는, 누르비테에게 통신수정구를 건 네며 말한다.
"누르비테. 받아라. 네 부하였던 데키타다."
"…데키타가 살아있다고?!"
누르비테의 눈이 크게 떠졌다.
"창병방진! 차례로 돌파당합니다!"
"출격할 기병부대가 부족합니다! 빌어먹을, 놈들이 우회기동합니다! 4군단의 빈틈을 파고듭니다!"
"예비대! 예비대가 필요…."
"장창과 화살이 부족하다! 보급 대! 당장 물량 수송해!"
제국 서부야전군의 사령천막. 그곳에서는 여러 참모와 군단장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표정은 다급했고,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몹시 부산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트웨인 기병 놈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장창방진이 무너집니다! 진형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트웨인 기병대가 그들 서부군을 공략하고 있었으므로.
트웨인 기병대가 마침내 제국군 과 대규모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이다.
미리 예상했던 대로 제국 서부군 은 트웨인 기병대의 공세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에게는 기병이 없습니다!"
기병이 없었기 때문에.
공격 우선권이 있는 기병의 특성 상, 일반 보병대는 그들에게 있어 허접 쓰레기들에게 불과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병은 적의 주위를 배회하며, 허점을 탐색해 그곳을 파고 들어가면 된다. 반면 보병대는 그저 기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 쳐들어오는 적을 막아내기만 할 뿐.
때문에 지금 서부군의 모든 것이 몹시 빠르게 파괴되어가는 와중이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었다.
병력은 트웨인 기병대에 의해 짓밟혔다. 보급창고가 약탈당했다. 식량 또한 탈취당했으며, 사기마저 저 아래 밑바닥에 처박히고 있었으니 .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장담할 수 있다. 아무리 길게 버틴다 한들, 사흘은 절대 넘길 수 없을 것이리라. 천막 안에 자리해 있는 참모들은 그리 생각했다.
그들이 하나둘 표정을 찌푸린다.
그때였다.
- 서부 사령관 각하!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휘하 군관의 목소리였다.
그에 자리의 가장 상석에 있는 이. 다인 루이 드라이퍼스 서부사령 관이 통신수정구를 집어들고 대답 한다.
"다인 서부사령관이다. 통신관. 무슨 일이지?"
- 놈들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다인 사령관이 되묻는 그때.
부우우우우우.
저 멀리,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서 길게 이어지는 뿔피리 소리가 불려왔다.
그리고 뿔피리가 불려오는 방향 은 단 한 군데가 아니었다.
부우우우우---.
부우-. 부우우우-.
사방, 말 그대로 동서남북 사방에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 그리고 직후 이변이 일기 시작했다.
- 정말 트웨인 기병대가 철수합니다! 그들이 교전을 멈추고 퇴각 하고 있습니다!
-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 겁 니까?! 사령관 각하!
- 놈들이 물러납니다!
서부전선. 제국 서부 야전군과 전투하고 있던 트웨인의 10만 기 병. 그들이 일시에 철수하고 있다.
다인 서부 야전사령관은 직감했다.
"한지훈. 그자가 정말, 뭔가 해낸 건가?!"
갑자기 트웨인의 군대가 철수하는 이유. 분명 그이유밖에 없을 터다.
적의 사령천막으로 향했던 한지훈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성공시켰다. 그에서부군을 공격하던 트웨인 들이 대번에 기수를 전환. 철수하고 있는 것이리라.
다인이 나직이 중얼거린다.
"제국의 영웅이라. 솔직히 반신반 의 했다만 인정할 수밖에 없군. 한지훈 라이젠. 그자는 진정 우리 제국의 영웅이야."
어떤 일을 해낸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자는 정말로 전멸 직전에 처해 있던 서부군을 구원, 10만 트웨인 기병군단을 회군시킨 것 이다.
"대단하군. 한지훈 라이젠."
다인 사령관은 서쪽을 바라본다. 적의 사령천막이 있을 방향. 그곳 어딘가에 한지훈이 있을 터다.
다인 사령관은 서부군 사령천막에서 한지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