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제국 서부군의 사령천막. 그곳에는 수십의 인물들이 자리해있다.
하나같이 정갈한 정복 차림에, 가슴팍과 옷깃에는 무수히 많은 약 장과 계급장을 덕지덕지 패용하고 있는 이들.
서부 야전군을 이끌고 있는 여러 군단장과 참모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도 위태로웠 으니까.
한 군관이 입을 열었다.
"사령관 각하. 트웨인의 총 공세 가 시작되었습니다. 놈들이 사방에서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트웨인의 공세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그에 제국 서부군은 위기에 직면한 상황.
다른 참모들 또한 하나둘 입을 열어 고한다.
"놈들은 기병 10만 기를 동원했습니다."
"이미 퇴로가 끊기고, 보급망마저 붕괴했습니다."
"버틸 수 없습니다."
각 장성과 참모들이 하나둘 침통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장창방진을 전개해 수비진 형을 꾸렸습니다만. 어딘가 뚫리기 라도 한다면, 그대로 붕괴됩니다."
"아군의 기병 수는 그동안의 격 전으로 인해 한계까지 소모되었습니다. 운용할 기병이 없습니다."
"만일 후퇴한다 한들. 기병인 놈 들의 주력을 떨쳐낼 수 없으니…."
트웨인 기병 10만. 절대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비록 제국군의 병력은 20만에 달 하지만, 그들 절대다수는 보병으로 이루어져있는 상황. 장창방진을 세 워 저항한다 한들 한계가 있다.
만약 방진의 어딘가가 꿰뚫려 균 열이 인다면. 그 순간 제국군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방법이 없다. 그에 한 군단장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가 바라보는 것은 천막의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이. 하얀색 수염을 길게 기른 노장.
"다인 사령관 각하."
다름 아닌 다인 루이 드라이퍼스 사령관이었다. 제국 서부야전군의 총사령관이자, 제국의 공작으로서 고위 귀족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
"… 으음."
휘하 참모의 물음에, 다인 사령관은 나직이 신음했다.
그로서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만큼 제국 서부군이 처한 상황은 절망적이었으니 .
오랜 군직경험을 가진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문득 그가 묻는다.
"북부군의 지원은 어찌되었는가."
"북부군은… 기병 구천과 기사 일천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보병대까지 도착하기에는 제시간에 맞출 수 없다고…."
"으음…."
모처럼 지원이 온다는 소식. 허 나 그럼에도 다인 사령관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트웨인의 기병 전력이 너무나도 위협적이다. 기병 일만이라. 그것만 으로는 보족해."
적의 전력이 그이상으로 강대했 기에.
일만의 증원이 있어봤자, 그들이 이불리한 전황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 여겨지진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참모의 말 에. 다인 사령관은 재차 표정을 바 꿀 수밖에 없었다.
"그 지원군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한지훈이라고 합니다. 사령관 각하."
"한지훈이라면. 그…."
"맞습니다. 한지훈 라이젠 백작. 저희 제국의 전쟁영웅입니다."
한지훈. 현 제국군의 살아있는 전설. 평민이라는 하찮은 출신을 극복하고, 자력으로 이십 대에 불과한 나이에 군단장에 오른 인물. 황제가 총애하는 군관이자 제국의 영웅이다.
그 한지훈이 지원군을 이끌고 오고 있다 한다.
"…한지훈이라. 그라면 혹시."
다인 사령관은 내심 기대해본다.
제국의 영웅이자 강대한 무력을 지닌 한지훈이라면, 어쩌면 이전쟁 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지 않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을 이미 여러 번이나 세운 한지훈이다.
절로 기대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 면 당연한 일.
그리고 그런 그의 기대는 배신당 하지 않았다.
- 사령관 각하.
문득, 다인 사령관이 지니고 있던 통신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농밀 한 카리스마가 스며들어있는 묵직 하고도 중후한 음성. 그에 다인이 묻는다.
"서부 야전군 사령관 다인 루이 드라이퍼스다. 그대는 누구인가."
- 한지훈 라이젠. 북부 13군단의 군단장입니다. 사령관 각하.
"… 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한지훈이었다. 이곳으로 지원을 온 군 관. 그의 말이 이어진다.
- 저희 일만의 기병 선발대는 서부전선에 진입했으며….
두두두두.
들려오는 한지훈의 음성 너머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지금 기마 상태로 통신을 하고 있는 모양.
- 적장 하나를 무력화. 놈이 지휘하고 있던 일개 군단을 와해시켰습니다. 적의 기병 이만이 통제를 잃고 흩어졌습니다.
"… 뭐?! 그게 사실인가?!"
다인 사령관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떳다.
고작 일만의 기병이다. 그것도 그 개개인이 트웨인 기병대에 비하 여가진 무력이 뒤떨어지는 이들.
그들을 운용해 무려 이만의 적을 와해시키다니. 너무나도 놀라운 일 이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 그리고 지금은, 적의 수장. 누 르비테가 있는 사령천막을 향해 진격 중입니다.
"한지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누르비테를 노린다고?!"
-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다인 사령관은, 그리고 천막 안에서 통신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군관들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적의 수장을 노린다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방금 전 격전을 치르며 많은 전력을 소모했을 터이니, 일만에 훨씬 못미치는 병력밖에 없을 터인데.
그럼에도 한지훈은 적장을 치겠 노라고 말하고 있다.
- 다인 사령관 각하. 트웨인 기 병군단들을 최대한 붙잡아 주십시오. 그 틈을 노리고, 제가 적의 수 장을 치겠습니다.
한지훈이 병력을 이끌고 나아간다.
우리는 갈리사 군단을 돌파한 뒤 계속해 전진했다. 추격해오는 놈들 의 잔당을 떨쳐내고, 계속해 대열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얼마나 진격했을까.
"저기! 적의 사령천막이다!"
마침내 우리는 도달할 수 있었다.
그나마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커다란 천막이다. 천막 위로는 트웨 인의 국기가 드높이 솟아 펄럭이고 있으며, 천막의 주변에는 여러 군단 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저 천막이 트웨인의 사령천막이 리라. 그리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에 있겠지."
트웨인의 수장. 십 수만 기병들의지휘관. 쇠퇴한 기마민족의 수호 자.
"누르비테 한."
놈이 저곳에 있다.
내가 그렇게 천막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군단장 각하!"
휘하 기병 연대장이 크게 소리쳐 알렸다.
"적이 등장합니다!"
사실 연대장의 외침이 없었더라 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 내가 주시하고 있는 사령천막 뒤에서, 적의 기마 병력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선두에는 어떤 인물이 자리해 있었다.
간소한 가죽갑주를 입고, 청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화려한 오러 의 광휘를 돋우고 있는 인물.
놈이 기병들을 이끌고 내리막을 달려 이쪽으로 쇄도해오고 있다.
나는 입가를 비틀었다.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 누르 비테."
대뜸 대화를 요청한다 한들 순순 히 받아들일 누르비테가 아니다. 일단은 녀석을 무력으로서 굴복시켜 야 제대로 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을 터이니.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하고 뽑히는 검날 위로 오러가 이글거리며 타오르기 시작 한다.
"자, 일단 싸워보자."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내 사고가 가속된다.
"저자가 한지훈이로군."
누르비테는 말을 타고 달려 나가 며 앞을 노려봤다. 보이는 것은 이쪽으로 쇄도해오고 있는 적의 무리. 대략 수천의 기병들과 천여 명의 기사들이다.
누르비테는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어떤 인물을 노려본다.
"한지훈."
과연, 듣던 대로의 외양이었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검신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오러의 광휘는 화려하고도 격렬 했으며, 무지막지한 위압감을 전신에 두르고 있다.
그런 놈이 최선두에서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다.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리라. 놈 은 저 제국의 영웅. 막대한 무력을 지녔으며, 그동안 차마 믿기 힘들 정도의 군공을 다수 세워왔다.
분명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이 니.
하지만,
"이기는 것은 이쪽이다. 한지훈."
누르비테 자신 또한 평생 동안 초원을 누비며 실력을 키워온 강자다. 절대 패배하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검을 뽑아들었다. 화르륵 타오르는 청색 광휘가 검신을 휘감 는다. 그의 기세가 상승해간다.
누르비테는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크게 외친다.
"덤벼라, 한지훈!"
그가 돌진했다.
누르비테가 이쪽으로 달려든다.
놈이 검을 뽑아들었다.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녀석의 검날. 그곳에 오러의 광휘가 휘감겨 격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덤벼라, 한지훈!"
직후 터져 나오는 놈의 목소리. 녀석의 고함이 이 대지를 쩌렁쩌렁 울린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덤벼주마."
파앙! 전투마의 배를 박차고.
두두두두두.
말이 가속한다. 내 시야가 더욱 빠르게 앞으로 쇄도해 갔다. 그리고 곧 교차의 순간.
파앙!
놈이 검날을 내뻗었다. 주욱 그 어지는 청색 궤적.
꽤나 재빠른 검격이다. 내가 아닌 다른 제국군 군관이었다면 단칼에 목을 베었을 일격.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쩌어엉!
검신을 들어 올려 막아냈다. 날 과 날이 맞부딪쳐 불꽃이 튀기고, 커다란 쇳소리가 울린다.
방금 전 접전으로 확신했다.
'역시 강해.'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들 중, 대적자 한스를 제외한다면 가장 강한 적이 아닐까.
그만큼 누르비테의 무력은 대단 했고, 검날의 검로는 유려했으며, 날이 공기를 가르는 속도는 무시무 시했다.
그러나,
'내가 더 강하지.'
시스템의 가호를 받아 절정의 무력을 달성한 나다. 밀릴 이유가 없다.
두두두두두.
나와 누르비테의 전투마가 교차 해 멀어지고, 나는 고삐를 잡아당겨 급선회. 방향을 바꿔 뒤돌아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누르비테와 마주한 정면. 녀석 또한 내 옆을 스쳐지나가자마자 기수를 돌려 되 돌아본 것이다.
"듣던 대로구나, 한지훈! 과연 만만치 않아!"
놈이 더더욱 오러를 돋웠다. 보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검날. 공기가 진동하며 굉장한 위압감을 흩뿌린다.
"이것 또한 막아 보거라!"
녀석이 달려온다. 나 또한 말의 배를 차 재차 가속. 놈을 향해 돌진해갔다. 또다시 접전의 순간.
콰아아앙!
검날과 검날이 맞부딪혔다. 번쩍 터져 나오는 청색 폭광. 커다란 굉 음이 지면을 뒤흔든다.
마상전이 계속되었다.
"대단하군."
베르겐은 그리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 한지훈이 이끄는 제국 군과 누르비테가 이끌고 나오는 트 웨인 기병대가 맞부딪혔다. 순간 치 열한 전투가 시작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가 전투 를 중지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한지훈. 그리고 누르비테."
그들의 수장이 서로 검합을 나누 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압 도적인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에. 차마 검을 휘둘러 그들의 싸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콰앙! 콰르르릉!
두 강자가 전투마를 몰며 검을 휘두른다.
검날과 검날이 맞부딪치며 굉음을 터트렸고, 오러 서린 검날이 공기를 절삭하며 강대한 충격음을 사방에 흩뿌렸다. 웅혼한 기세가 주변을 자연스럽게 압도했다. 병사들이 그 광경을 숨죽여 주시한다.
베르겐은 한지훈과 누르비테의 모습을 차례로 살폈다.
'먼저. 누르비테.'
과연 트웨인의 수장이자 가장 강 대한 무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인 가. 그의 무력은 심상치 않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선명한 궤적 이 허공을 갈랐고,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공기가 진동하며 강렬한 기 세가 주변을 휩쓸었다.
베르겐은 그의 무력을 보고는 상상해본다.
'나라면, 저자와 전투했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누르비테의 기마능력은 베르겐 자신을 완전히 압도했다. 전투마를 제 손발처럼 다루었고, 격렬한 기동중에도 자세가 너무나도 안정적이었다.
어디 그뿐이었는가.
누르비테의 검격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위력적이었다. 그의 검날에 일렁이는 오러는 농밀하게 응축되어 있었고, 강화된 신체의 움직임은 기민하고도 힘이 넘쳤다.
'10초 정도.'
만약 자신이 누르비테와 전투한 다면 고작 검격 두세 번, 채 10초 조차 버티지 못한 채 목이 떨어지 리라. 베르겐은 그리 생각했다. 그만큼 누르비테의 무력은 대단했다.
허나 더욱 대단한 인물이 있었으니 .
'한지훈. 정말 괴물이 다 되었군.'
베르겐이 시선을 돌려 한지훈의 모습을 주시한다. 그 또한 전투마를 타고, 전투기동을 펼치며 누르비테 와 검합을 나누고 있다.
일단, 보이는 실력은 비등했다. 그 누군가가 더욱 압도하고 밀리는 모양세 없이 비슷하게 싸우고 있었 으니 .
하지만 오랫동안 한지훈이란 인물을 관찰해왔던 베르겐은 알고 있었다.
'여유가 넘치는군.'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이끌어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누르비테와 다 르게, 한지훈의 표정은 너무나 편안 해보였다.
아직도 여력이 있다는 듯, 혹은 그저 상대의 실력을 판단하고 있다는 듯. 한지훈은 적당히 그를 상대 하고 있던 것이다.
베르겐은 직감했다.
'한지훈의 승리다.'
누르비테가 한지훈을 이기는 그림은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베르겐은 그 자리에서서 결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