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217화 (217/390)

217화.

"…세계정복?"

내 말에, 오스카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계 정복이라니. 너무나도 원대한 꿈 아닌가.

"이런 분위기에서 농담이라니. 자네도 참 짓궂군, 한지훈."

글쎄. 과연 농담이었을까.

나는 씩 웃으며 말해본다.

"농담 아니야. 오스카. 내가 노리는 건 세계정복이다."

과거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이미 한번 해냈던 일이다.

동부 대륙, 서부 대륙, 남부 대륙 과 북부 대륙. 그리고 중앙 대륙까 지.

그 모든 곳에 제국기를 꽂았다.

가로막는 적들을 지워버렸다.

남부 대륙에서 제국의 패권을 위협하던 여러 열강국가들.

제국군의 힘을 빌려 전멸시켰다.

동부 대륙을 일통한 초강대국 크 루거 연방.

흑마법사와 연합해 쓸어버렸다.

서부 대륙을 양분하고 있는 상인 연합과 유목연합.

흑마법사로 내분을 일으키고, 제국군을 움직여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엘프와 드워프가 자리해있는 아 인종의 땅. 중앙 대륙.

대량의 군세를 움직여 진격했다. 세계수를 파괴했다.

그 모든 적들의 잔당이 뭉쳐 만들어진 마지막 적. 북부 대륙에 뭉 친 반 제국 연합.

그들 또한 지워버렸다. 막대한 군세를 이끌고, 무수히 많은 흑마법사들을 운용해. 북부 대륙 끝단까지 밀고 올라갔다. 연합의 마지막 도시 윈터아르비엔에 제국기를 꽂았다.

모든 도시, 모든 땅, 모든 지역을 장악했다.

세계를 정복했고, 게임을 클리어했다.

이미 한번 이루어냈던 일. 다시 못하진 않을 거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섯 개의 대륙 전체를 하나의 연합으로 통일하는 것. 그게 내 목적이야."

세계정복이 진정 내 목표라고. 나는 다섯 개의 대륙 전체를 내 손 으로 통일해낼 것이라고.

마침내 내 말이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한지훈."

오스카의 표정이 다시금 진중해 진다.

그럼에도, 설마 내가 세계를 통일할 수는 없으리라 여긴 것인지.

"세계를 일통한다는 자네의 꿈. 절대 쉬운 일은 아니네."

그가 입을 열어 말한다.

"확실히 자네의 능력은 범상치 않다. 무력은 강대하고, 통솔력은 날카로우며. 전장의 안개를 꿰뚫어 보는 전략적 소양까지 지니고 있지. 허나,"

잠시 말을 멈춘 오스카. 그가 강조하듯 말한다.

"그럼에도 세계를 통일하는 건 힘든 일이다. 자네 혼자서 모든 군단을 지휘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 만약 세계를 정복할 정도의 대규모 군대를 이끌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나는 일부의 군만을 이 끌 수밖에 없다.

전선이 나뉘어질 테니까.

내가 모든 전선의 군대를 세세히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이다.

"만약 자네같은 대단한 인물이 여럿 더 있다면, 정말 세계를 일통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 지 않나."

때문에 오스카는 내가 세계를 일 통할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나 본인의 능력이 뒤떨어 져서가 아닌, 나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닌 군관이 별달리 없기에. 다른 전선을 지탱해줄 인물이 없기에.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만큼의 능력을 지닌 인물이 없다…라. 과연 그럴까? 오스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한지훈, 자네같은 군관이 더 있다고?"

"그래."

있다. 나만큼 뛰어난 전략적 소 양을 갖췄으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품은 인물이.

"정확히는, 내가 키우고 있는 중 이지."

"그게 무슨 소리…."

오스카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마이사 슈베츠. 추후 위대한 대 장군이 될 인물이 내 양녀로 들어 와 있다는 것을.

나는 문득 생각한다.

'그나저나. 마이사는 지금쯤 뭐하고 있으려나.'

- 수도 사관학교에 입교한 것을 축하한다. 신입생도들이여, 그대들은 장차….

드넓은 연병장 위. 많은 인파들 이자리해있다.

정갈한 사관생도용 정복을 입고 줄맞춰 도열해있는 이들.

그들은 다름 아닌 제국 수도 사 관학교의 신입생도들이었다.

-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손과 발 이 되어 . 우리의 조국 오르페우스를 수호….

지금은 입교식 와중. 사관학교장 의 입교 축사가 들려온다.

하지만 사관생도들은 학교장의 연설을 주의깊게 듣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이 온통 누군가에게 빼앗겨있기 때문에.

"저길 봐. 한지훈 군단장의 양녀다."

"마이 라이젠이라 하던가. 한지훈 의 양녀가 수도 사관학교에 입교했 다는 소문. 정말 사실이었어."

"… 여성인데도 장교가 되려 하는 것인가?"

"아름다운 분이로군요."

금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여성 이었다.

눈동자는 마치 호수를 담아넣은 듯한 푸른색이었고, 새하얀 피부는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이 라이젠.

수도 사관학교 이번 기수의 유일 한 여성 생도이자, 전쟁영웅 한지훈 의 양녀.

마이사는 오연히 서서 생각한다.

'사관학교.'

한지훈이 자신에게 사관학교에 가장교가 될 것을 권했다.

그에 마이사는 수긍했고, 추천장을 받아. 시험을 치러. 이렇게 사관 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이다.

- 지금부터 사관학교 입교 선서를 진행하겠다. 수석 생도. 마이 라 이젠. 앞으로.

마이사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시험을 통과. 수석 생도로 뽑히게 되었다.

마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겨 사관생도들 사이를 걸 어간다.

그러자 두런두런 들려오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

"계집에 주재에 장교가 되려 하다니. 같잖군그래."

"그전쟁영웅 한지훈의 양녀다. 연줄을 만들어 놓으면 출세에 도움이 될…."

"여성이 장교지망이라니. 신기하 군요."

마이사는 걸어가는 와중, 눈동자 를 굴려 생도들의 표정을 주시했다. 그들의 감정을 읽어본다.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무수한 눈동자. 그 눈빛들에서 느껴지는 감정 은 다양했다.

여성이 감히 군직에 몸담으려 하냐는 듯 깔보는 시선. 한지훈과의 연줄을 만들어 이득을 보고자 하는 탐욕. 그리고 순수하게 호기심을 담 은 눈동자들까지.

마이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눈여겨볼 사람은 없다.'

마이사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다. 그녀는 사람을 바라본다면 그리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 인지. 아니면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인지.

그리고 이곳의 생도들 중에 그리 특출나보이는 인재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동안 한지훈과 함께 행동하며 그 눈이 한없이 올라가 있는 수준이니.

'수석 유지.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아.'

그녀가 눈여겨볼 만한 인재가 드문 건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저벅, 저벅.

마이사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연 단의 계단을 타고 오른다. 이제는 생도 대표로서 입교 선서를 할 차례.

그녀가 단상 앞에서서 말한다.

"나, 마이 라이젠은 수도 사관학 교 신입생도 대표로서 선서합니다. 나는 제국에 충성하며…."

마이사는 제국 수도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 뒤. 그녀는 제국군 장교가 되어 한지훈을 보좌할 것이다.

오스카와의 대화를 마친 뒤.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몸을 걸터앉고, 장성용 정복 외투를 벗어 내려놓은 뒤.

멍하니 중얼거려본다.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되었어."

벌써 다수의 인재를 영입했다.

사관학교에 입교해 장교 육성과 정을 밟고 있는 마이사.

내 영지 루벤에서 아티팩트를 제작 연구하고있는 마녀 바네사.

영지의 내정을 도맡는 랑스.

여러 유용한 도움을 주는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나와 함께하고 있는 제국 군의 여러 장성과 단장들까지.

"이제 누르비테가 이끄는 트웨인 세력만 이쪽으로 끌어들인다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그리 머지않아 동부 대륙과 서부 대륙 또한 공략하게 될 것이다.

동부 대륙의 연방. 그리고 서부 대륙의 유목연합과 상인연합.

나는 그때를 대비해 충실히 인재 를 영입하고 있다.

"마이사. 그리고 누르비테."

저 둘이 있다면, 동부 대륙과 서부대륙을 공략할 수 있다.

먼저 동부 대륙.

"동부 대륙은 마이사가 맡는다."

자신의 조국이던 슈베츠 왕국이 연방에 의해 점령당해 슈베츠 연방 자치령이 되었기에. 그녀의 혈족인 슈베츠 왕가가 모조리 처형당했기 때문에.

마이사는 연방이라는 국가에 어 마어마한 복수심을 지니고 있다.

다음으로는 서부 대륙.

"서부 대륙은 누르비테가 이끄는 트웨인 왕국군이 담당하고."

트웨인이란 민족은 서부 대륙을 되찾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들은 유목연합의 다른 부족들에게 배신당해 고향을 빼앗겼으니 . 서부 대륙 고향땅을 되찾는 싸움을 벌인다면 죽기살기로 덤벼들 터.

그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인다면, 서부 대륙 공략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문득 나는 피식 웃었다.

"뭐, 아직은 김칫국 마시는 것에 불과하지만."

동부 대륙과 서부 대륙을 공략하는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이 협상동맹의 침공을 물리치고, 제국이 남부 대륙을 완전히 통일한 다음의 이야기이니.

아직은 먼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 내가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을 때였다.

- 군단장 각하! 계십니까?!

갑작스레 통신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대답한다.

"베르너. 말해라."

내 군단의 부군단장. 베르너 알 크미르. 녀석이 나를 찾고 있는 것 이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각하! 바로 군단 사령천막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이유는 곧 알 수 있게 되었다.

- 서부군에서 긴급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트웨인이 대규모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 그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장성용 제복을 다시금 갖춰 입었다.

"그렇단 말이지."

트웨인군이 대규모 공세를 감행 해 서부군을 지워버리려 한다는 것.

사실 미리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우리 북부군이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 확실시 된 이상, 전선을 두 개로 나뉘지 않기 위해 하나를 미리 정리해둬야 하니까.'

이미 누르비테는 우리 북부군을 막지 못했다.

그러니, 남은 것은 북부군이 도착하기 전 서부군을 정리한다는 선택밖에 남아있지 않을 터이니.

허나 그럼에도 예상외다.

"데키타가 패배했단 소리를 듣자 마자 서부군을 친 건가.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데."

적어도 며칠 정도 뒤에서부군을 공략하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녀석이 이끄는 군대는 거대하고, 그 정도의 대규모 군세를 움직이는 데에는 막대한 준비가 필요하니까.

헌데 누르비테는 곧장 군대를 움직였다.

데키타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 자마자, 단 며칠의 여유도 없이. 곧장군을 이끌고 서부군을 친 것이다.

그 말인 즉,

"데키타가 패배할 대비를 미리 하고 있었겠지. 누르비테."

녀석은 그런 녀석이었다.

날카로운 직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승리할 때와 패배할 때의 대응책을 준비해놓는다.

아마 누르비테는 데키타가 패배 할 때를 대비해 미리 공세준비를 마쳐놨을 것이다. 그리고 데키타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군을 움직인 것이고 말이다.

너무나 기민한 움직임.

하지만 괜찮다.

"이쪽에도 방법이 있단 말이지."

나는 발걸음을 옮겨 군단 사령천 막으로 향했다.

서부군을 구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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