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참모장의 보고를 받은 직후 곧장 움직였다.
향하는 곳은 본영 중앙에 자리해 있는 작은 천막. 빈사 상태였던 데 키타를 수용해둔 공간이었다.
그곳의 바로 근처까지 가자, 어떤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놔라! 놔! 이 비열한 제국 새끼들아!
다름 아닌 걸걸한 고함소리.
나는 천막의 입구를 걷으며 안으로 들어섰고. 그러자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놈이 날뛴다! 막아!"
"미친, 저 부상으로 이런 난동이 라니… 도대체 정말 사람이긴 한 것인지…."
"포박! 포박해!"
데키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뛰 고 있었다.
물론 날뛴다고 한들 녀석은 아까 전 전장에서처럼 수많은 병사들을 단번에 죽여버리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의 부상이 너무나도 심각했었 기에.
온몸에 칭칭 감긴 붕대에서는 거 무죽죽한 핏물이 배어 있었고, 근육 과 신경 또한 아직도 완전히 회복 하지 못해 심한 경련이 일고 있다.
그런데 어찌 움직이는 것인지. 녀석은 붙잡아 제압하려는 제국군 병사들을 손쉽게 밀치고 쓰러뜨려 가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맹장이긴 맹장이야."
저런 부상임에도 이토록 투지를 불태우다니 말이다.
나는 나직이 지시했다.
"모두 물러나."
철그럭!
데키타를 포박하려는 제국군이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선다. 나는 천천히 걸어 천막 안쪽으로 다가간다.
"벌써 일어나다니. 꽤나 회복이 빠른데. 의무장교."
"네! 군단장 각하!"
내 호출에 바로 근처에서 있던 의무장교가 앞으로 튀어나온다. 녀석에게 물었다.
"저놈 상태가 어떻지?"
"사망 직전입니다."
"… 저게?"
나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데키타 를 바라본다.
천막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놈의 모습.
콧김을 훅훅 내뱉으며 이쪽을 노 려보고 있는 꼴이, 절대 죽기 직전 상태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 팔팔해 보인다만."
저게 죽기 직전 상태라면 평소에는 얼마나 괄괄한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안된다.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데키타는 이쪽을 잠시 노려보고는, 크게 외쳤다.
"한지훈! 네놈! 죽여버린다!"
내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콰앙!
녀석이 진각을 밟으며 이쪽으로 덮쳐들었다. 허나 부상으로 비실비 실한 녀석에게 당할 내가 아니다.
나는 놈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쿠웅! 육중한 덩치가 바닥을 구 른다.
"죽인다! 죽여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키타는 재 차 덤벼들기 위해 일어서려했다.
물론,
"조용히 좀 해. 정신 사나우니까."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우득.
나는 녀석의 어깨를 지그시 내리 밟았다. 내가 베었던 왼쪽 어깨였다.
물론 놈의 어깨는 아직도 상처가 회복되어있지 않은 상태.
"크으으으으!"
녀석은 고통에 발광하며 이를 갈 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아 제아무리 데키타라 한들 참을 수 없는 고통인 모양.
나는 녀석을 밟아 눌러 제지한 상태 그대로 입을 연다.
"의무장교. 다시 말해봐. 죽기 직전의 상태라고? 전혀 아닌 거 같은 데."
방금 전 나는 데키타가 부린 난 동을 보았다.
회로가 손상되어 마나조차 운용 할 수 없는 데키타.
놈은 분명 오러를 다룰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다수 의 병사들을 압도했고, 곧 천막 밖 으로 뛰쳐나오려 했었다.
더해 적진에 사로잡혀있는 처지 임에도 불구, 전혀 기세가 죽지 않았다는 듯 크게 고함지르기도했다.
헌데 이놈이 죽기 직전의 상태라 니? 쉬이 믿기 힘든 말이다.
그에 의무장교가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저자, 데키타의 신체 상태는 죽기 직전의 상태입니다. 포션의 회복력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 요."
의무장교의 말에 나는 다시금 데 키타의 상태를 살폈다.
확실히. 그의 기백과 다르게 몸 은 엉망이었다.
그 잠깐 사이에 몸에 감겨있던 붕대가 더더욱 붉어져, 이제는 거의 검은색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색으로 화해 있다. 몸의 경련은 더욱 커졌으며, 안색 또한 자세히 보 면 창백해져 있다.
"만약 포션 내성이 있었다면, 포 션의 회복력보다 출혈량이 많아 진 작에 죽었을 겁니다."
"아직도 피가 멈추진 않은 건가?"
"그렇습니다. 군단장 각하."
그 말인 즉 녀석은 피를 줄줄 흘 려가는 와중에도 목청을 돋우고 부 들거리는 몸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 무슨 피를 흘릴수록 강해지는 광전사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니, 어 지간한 기사라 한들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입니다. 보통은 손가락 까딱하는 것조차 힘들 테지요. 하지만 이자는 억지로 고통을 무시해가 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대단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포션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치명상이다.
온몸 이곳저곳이 베이고 갈라졌 으며, 장기 또한 난자되어있는 상태에서 몸을 움직였다.
엿같이 고통스러우리라.
전신에서 올라오는 날카로운 고통이 척수를 타고 올라 뇌를 휘젓는 기분일 터다.
하지만 데키타는 그 고통마저 이 겨내어 몸을 움직여 발악하고 있다. 정신력으로 고통을 밀어버린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가 알던 데키타야."
트웨인의 다른 장수였다면 생포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데키 타라는 놈은 특별하다.
내가 탐낼 정도의 인재.
나는 데키타를 내려다본다.
"망할… 개자식…!"
데키타는 고통에 오만상을 찌푸린 채 이를 갈고 있다.
하긴,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어깨가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을 이 꼴로 만들었던 내가 .
쳐 죽여버리고 싶겠지. 저 정도 의욕지거리는 오히려 온건한 편이다.
나는 놈의 어깨에서 발을 치우며 말했다.
"의무장교."
"네! 군단장 각하."
"잠깐 이 천막에서 나가 있어라. 녀석과 할 이야기가 있다."
"…각하?"
내 말에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무장교. 그가 주저한다.
아무래도 경호 하나 없이 저 포 악한 녀석과 단 둘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
나는 재차 데키타의 어깨를 밟았다. 그에 이를 갈며 고통을 삼키는 데키타.
"어서. 나는 괜찮으니까."
"…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내가 데키타를 완전히 제압하는 모습을 보자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병사들.
철그럭, 철컥. 저벅저벅.
이 비좁은 천막 안에 있던 수십 의 병사들이 빠져나간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나와 데키타뿐.
나는 녀석의 어깨에서 발을 내리고, 털썩 천막 한켠에 놓여있는 의자 위에 걸터앉았다.
"좋아. 데키타. 일단 흥분을 가라 앉히고 이야기하자고."
고개를 내려 바닥에 쓰러져있는 녀석을 바라본다.
눈동자가 마주쳤다.
느껴지는 감정은 증오와 분노, 그리고 격렬한 복수심.
녀석은 다시 이쪽으로 덤벼들지 않았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지금 녀석의 몸 상태로는 내 털끝조차 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데키타가 나직이 말한다.
"한지훈. 나를 죽여라."
자신을 죽이라고.
"네놈은 필시 내 신변을 이용해 우리 트웨인을 궁지로 몰아넣고자 하겠지."
데키타는 내가 녀석을 이용하리 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기야, 녀석은 장성급 포로다. 그리고 장성급 포로는 너무나도 유 용한 존재.
고급 정보를 얻어낼 수 있고, 포 로거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도 있으며. 혹은 전장에서 처형하는 모습을 적에게 보여 사기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
"치욕스럽게 살아 조국에 폐를 끼치느니. 이자리에서 당당하게 죽 겠다. 나를 죽여라."
부스럭.
녀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무릎 꿇고 앉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베라는 듯이.
그에 나는 재차 웃었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데 . 데키타. 나는 네 신변을 이용해 트웨인을 몰아넣을 생각은 없다."
"거짓말이로군."
"거짓말은 아니야. 이야기가 길어 질 터인데, 일단 그전에."
나는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들었다. 유리병 속에서 번들거리는 붉은 색 액체. 일반 기사나 장교들에게 보급되는 포션과 달리, 꽤나 상등품 의 물건이다.
"치료부터 하지."
나는 그것의 뚜껑을 따 녀석의 어깨에 부었다.
주르륵. 주르륵.
녀석의 몸에 붉은색 액체가 흐른다. 그것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부 글거리는 기포를 일며,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의 속도로 상처를 치유해 갔다.
"데키타."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말한다.
"너. 내부하가 돼라."
데키타를 영입할 때다.
"부하라고? 네놈의?"
치이이익. 연기가 일어난다. 데키 타의 온몸에 아로새겨졌던 자상이 천천히, 허나 확실하게 치유되어가 기 시작했다.
어깨의 힘줄이 재생되었다. 복부속 엉망이 된장기들 또한 제자리 를 찾아갔다. 신경의 이상과 근육의 통증이 가라앉아 갔으며, 전신에 일 었던 피로 또한 점차 그 자취를 감 춰갔다.
일반 포션에 비해 훨씬 막대한 효능. 상등품 포션의 힘이었다.
데키타는 이를 갈며 말한다.
"네놈. 무슨 꿍꿍이지?"
"꿍꿍이라니."
"한지훈. 나는 네놈의 소문을 들었다."
데키타는 지닌 성격이 단순했고 생각이 깊지 않았으나, 전장에 떠도는 소문들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데키타는 한지훈에 과한 여러 소문을 똑똑히 들었다.
"네놈은 포로를 잡지 않는다 들었다."
이미 제국과 전쟁 중인 국가들에서 꽤나 유명한 소문이었다.
"평상시에는 포로를 잡지 않고, 만약 포로를 잡는다 한들 결국 모든 정보를 추출하고 죽여버릴 뿐. 절대 편히 살려두지 않지."
한지훈은 포로를 잡지 않는다.
카렌의 군주였던 라피엘 데이고 르 카렌. 분명 생포할 수 있었는데 도 현장에서 처치해 버렸다.
한지훈이 붙잡았던 소수의 고위 장성들과 카렌의 행정관들. 심문과 정을 거쳐 정보를 추출해낸 뒤 모조리 처형해버렸다.
크라그 연대의 연대장. 더스틴 크레이그. 사로잡혀 모든 정보를 토 해내고 처형당했다.
지금까지 한지훈의 앞에 마주했 던 장성이나 군관들 중. 무사히 살아남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한지훈이다.
"헌데 나를 부하로 영입한다고?! 개소리!"
때문에 데키타는 한지훈이 자신을 부하로 영입하기 위해 생포했다는 소리 따위. 결코 믿지 않았다. 그만큼 녀석은 적에게 자비 없는 인물로 유명했으므로.
헌데 자신을. 그것도 적으로서 서로 날붙이를 맞대며 전투했던 이 를 부하로 영입한다라?
'나를 이용해 뭘 꾸미고 있는 거냐! 놈!'
분명 무언가 흉계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전장에서 그토록 대단한 지략을 보인 한지훈이다.
그런 놈이니 만큼, 무언가 계략을 세우고 있다고 여기는 데키타였다.
데키타의 말에 한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그래. 인정하지. 데키타, 나는 너를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역시! 네놈은…!"
"하지만."
데키타의 말꼬리를 자른 한지훈. 그가 이어 말한다.
"하지만 트웨인에 해가 되는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트웨인에게는 훨씬 이득이 되는 일이지."
"… 그게 무슨 말이지."
"데키타. 나는 너희 트웨인 민족에 대해 꽤나 자세히 알고 있다."
덜그럭. 한지훈이 의자에서 일어선다.
더 높아진 시야.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데키타는 위를 올려다본다.
"트웨인 기마민족. 본래 서부 대륙, 유목연합의 맹주였으나 부족간 내전에서 패배했으며, 살던 고향을 다른 부족들에게 빼앗겼지."
데키타와 한지훈의 시선이 마주했다. 그리고 데키타는 한지훈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이 일었다.
"결국 살 터전을 잃은 트웨인은 남부 대륙으로 피난. 그 와중 적성 부족들의 추격을 받아 부족의 절반 가량이 전멸. 가까스로, 남부 대륙 서부 초원지대에 정착."
그야. 저토록 우묵하게 가라앉아 있는 눈동자라니.
생각을 읽기는 힘들지만, 무언가 짙은 호소력이 있는 듯한 눈동자다.
"너희 트웨인은 농사 지을 땅이 필요해서. 부족원을 먹여 살릴 식량 이 필요해서 전쟁에 참전했지."
그리고 이어진 한지훈의 말에, 데키타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지훈이 말하고 있는 내용. 자신의 부족 트웨인의 역사다.
한때 서부 대륙의 최대 부족이었 던 트웨인. 하지만 유목연합의 다른 부족들이 배신했고. 싸웠으며. 패배했다. 그들은 남부 대륙의 빈 땅. 드넓으나 황량해 아무도 살지않는 대륙 서부 초원지대에 정착했다.
그것이 바로 이십 년 전.
이십 년의 세월동안 트웨인의 인구는 점차 늘어갔고. 식량이 부족해 졌다. 결국 그들은 농사지을 땅을 얻기 위해 제국령을 노리고 침공해 갔다.
이것이 그들 트웨인이 협상동맹 측과 함께하게 된 계기.
한지훈이 씩 웃는다.
"요는. 땅이 필요하단 거지."
확실히 그의 말 대로였다.
트웨인은 농사지을 땅이 있다면 제국과 전쟁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불어난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식량이었으므 로.
허나 그게 그리 쉽게 해결되는 이야기일 리가.
데키타는 순간 그의 말에 몰입했 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술을 씹어 제정신을 차린다. 그의 입가에 붉은 색 물방울이 맺혀 흘렀다.
"그래. 그걸 알아서 어찌하겠다는 건가?"
데키타는 알고 있다.
"네놈의 그 잘난 제국이 우리에 게 농사지을 땅이라도 주겠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제국 본토 는커녕, 네놈들이 점령한 카렌의 땅 또한 한 뼘조차 주지 않겠지."
오르페우스 제국은 탐욕스러운 국가다.
잊어서는 안된다. 바로 십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국은 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대량의 군대를 일으켰고, 수많 은 약소국을 멸망시켰으며, 다수의 열강을 축소시켰다.
바로 그 제국이다. 그런 그들이 트웨인을 위해 자신이 차지한 영토 를 나누어 주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전쟁이다. 한지훈. 오직 제국과의전쟁만이, 우리 트웨인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거다."
그렇기에 데키타는 제국과의 전쟁밖에 답이 없다 여겼다.
탐욕스러운 제국. 농사지을 옥토 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트웨인.
그들은 충돌할 운명이었고, 이미 충돌하고 있다.
허나 어떻게 된 일인지.
"글쎄. 과연 그럴까."
한지훈의 생각은 그와 전혀 다른 듯하다.
"제국의 영토를 넘기는 것, 그리고 카렌 총독령의 영토를 넘기는것. 둘 다 불가능한 일이지. 그곳은 어디까지나 오롯이 우리 제국의 땅 이니까. 하지만…."
잠시 호흡을 고른 한지훈.
그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서부 대륙이라면 어떨까."
"서부 대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
"너희 트웨인. 옛 영토를 되찾고 싶지 않나?"
데키타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리고 한지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데키타. 너희들의 군주 누르비테를 설득해라. 제국과의 휴전을 성사 시켜라. 그리한다면."
털썩. 한지훈이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연다.
"나는. 그리고 우리 제국은. 너희 트웨인의 서부 대륙 정벌을 지원할 거다."
한지훈은 협상동맹의 침공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의 너머. 서부 대륙 정벌까지 시야에 넣 고 있었다.
한지훈은 데키타를 지그시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