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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14화 (214/390)

214화.

"크아아악!"

데키타는 신음하며 자신의 옆구리를 감싸 쥐었다.

방금 전 한지훈에게 당한 부위. 그곳에서는 지금 붉은색 핏물이 철 철 흐르고 있다.

어느새 거리를 벌려 정지한 한지훈이 그에게 되묻는다.

"항복할 생각. 좀 드나?"

"나를 뭐로 보는 것이냐!"

데키타는 발악하듯 재차 전투도끼를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이번에는 수직이 아닌 수평. 그 의도끼날이 커다란 반원을 그린다. 공기가 갈려나가고, 무시무시한 굉 음이 주위를 뒤흔들었다.

허나 그런데키타의 발악마저 한지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한지훈은 자세를 낮춰 그리 어렵 지 않게 회피했다. 직후, 순식간에 데키타의 빈틈을 파고들어.

서걱!

"으윽!"

데키타의 어깨를 베어버렸다. 그 의 왼손이 축 늘어진다.

힘줄이 베었기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데키타는 절절히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길 수 없다.'

그는 새삼스레 한지훈의 모습을 바라본다. 전투마 위에 앉아, 우묵 하게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젊은 장군의 모습.

놈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분명 저 멀리서 전투마를 타고 달려와 수십에 달하는 상위 전사들 과 전투했고, 마침내 자신의 앞에 이르러 결투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여유가 넘치는 것이다.

"괴물같은 놈…!"

데키타는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 를 내뱉었다.

저게 괴물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수십의 상위 전사들을 해치운 것 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그런 격전을 겪고 난 뒤, 여유롭게 자신을 몰아넣고 있다니?

녀석은 인간이 아니다. 데키타는 그리 생각하며 한지훈을 노려본다.

그리고 그때.

부스럭. 한지훈이 품속에서 무언 가를 꺼내들었다.

붉은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유리 병. 포션이었다.

그가 포션병을 흔들어 보이며 말 한다.

"어서 항복하는 게 좋을 텐데, 데키타. 꼴사납게 기절해서 끌려가 느니 맨 정신으로 가는 게 좋지 않 나."

"네노오오옴!"

데키타는 오른손에 들린 전투도끼를 다시금 드높이 치켜들었다.

콰콰콰콰콰쾅!

데키타의 전투도끼가 지면을 두 드렸다. 쾅 터져나가는 대지. 튀어 오르는 암석파편. 흙먼지가 훅 일어나 시야를 가린다.

나는 검날에 오러를 밀어 넣는다.

"이제 끝내 보자."

어차피 자의로 항복하지 않을 것 임을 알았으니 . 이제는 정말 끝을 내야 할 때.

파앙!

전투마의 배를 박차 가속. 놈의 코앞까지 접근한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 틈을 노려오는데 키 타.

"잡았다!"

하지만 역시나. 녀석의 공격은 느렸다.

사선을 그리며 쇄도해오는 놈의 도끼날.

채앵!

쳐냈다. 내 검날이 녀석의 도끼 날을 뿌리친다.

중상을 당했기에 힘이 많이 빠졌 던 것일까.

"크윽…!"

데키타가 전투도끼를 놓쳤다. 놈 의 저 커다란 무기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곧 지면에 곤두박질쳤다.

무장이 해제된 상태. 하지만 그럼에도 데키타는 포기하지 않는다.

"오오오오!"

함성을 내지르며 오른손을 말아 쥔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하던 가. 무기가 없으니 주먹으로라도 덤벼드는 모습.

마음에 든다. 저런 성격을 가졌 기에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맹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것이겠지.

"뒈져어어어!"

놈이 주먹을 갈겨왔다. 공기를 가르며 뻗어오는 저 커다란 철권. 오러까지 밀어 넣은 것인지 푸른색 기운이 번들거린다.

맞으면 이빨 꽤나 시큰할 거다.

물론 맞지 않는다.

고개를 비틀어 피했다. 녀석의 주먹질은 내 털끝조차 스치지 못하고 흘러갔으니 .

"으윽…!"

주먹이 빗나가자 표정을 일그러 트리는 녀석. 나름 회심의 공격이었 나 보다.

나는 장검을 들어올려,

"잠깐 자라."

푸욱. 녀석의 복부 깊숙이 검날을 박아 넣었다. 날면이 물컹한 장 기를 가르며 파고드는 감각이 꽤나 불쾌하다.

검날을 비틀어 장기를 난자한다.

콰드드득.

"쿨럭."

각혈하는 데키타. 녀석은 경련하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배에 꽂힌 검날을 붙잡으나 싶더니.

털썩.

기절해 낙마해 버렸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지면을 구르는 녀석의 모습을 살핀다.

"다행히 살아는 있네."

저벅. 전투마에서 내려서 지면에 발을 대었다. 천천히 걸어 녀석에게 다가가 그 모습을 자세히 살핀다.

데키타는 눈을 까뒤집고 경련하고 있었다. 하기야, 옆구리와 어깨 를 베여 많은 피를 흘린 데다가 방금 전 복부의 장기를 난자당하는 치명상까지 입었으니 쇼크가 올 만 할 터.

사실 내가 의도했던 부분이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항상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쳐 죽여버리기만 했으니 .

사실 전투 자체야 마음만 먹는다 면 훨씬 빠르게 끝낼 수 있었지만. 처치가 아닌 제압인지라 예상보다 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퐁.

포션의 뚜껑을 열었다.

"대충 삼 일은 기절해 있겠지."

포션은 그 어떤 치명상을 입었다 한들, 일단 목숨만 붙어있다면 상처 를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서 포션을 섭취한다면. 최소한 사흘 동안은 정신을 못 차릴 터.

나는 포션을 녀석의 상처부위에 흘려 넣는다.

"그러게 진작 항복하라고 했잖아."

꼴사납게 기절한 채 질질 끌려갈 바에, 순순히 항복했으면 좋았을 것을고생을 사서하는 놈이다.

포션을 흘려 넣자 녀석의 상처부 위에서 기포가 부글부글 끓는다.

나는 고개 돌려 어떤 인물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베르겐!"

"… 한지훈! 끝났는가?!"

다그닥, 다그닥.

베르겐이 전투마를 타고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의 상태를 보아하 니, 그 번쩍거리던 전신갑주가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있다.

기사단장인 그가 저런 모습이라니. 내가 데키타와 결투하는 동안 꽤나 격렬한 전투를 벌인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목적은 이뤘다. 이제 후퇴하자."

"정확히 10분 걸렸군. 그런데, 한지훈. 어째서 저놈을 치료하는 건가? 혹시 저자를 살릴 셈인가?"

"그래."

나는 축 늘어진 데키타를 들쳐 매, 내 전투마 뒤에 올렸다. 철퍽 하고 핏물이 흐른다. 그 감촉이 꽤 나 기분 나쁜 것인지 내 전투마가 투레질을했다.

베르겐에게 이어 말한다.

"죽이기에는 아까운 녀석이라서 말이야."

정말 죽이기에 아까운 녀석인지 라. 이렇게 억지로 생포해버렸다.

어쨌든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친 상황. 이제는 이곳에서 이탈해야 한다.

나는 씩 웃었다.

"적장이 사라졌으니 , 이제 놈들은 사기를 잃을 것이고. 와해될 거다. 우리 군이 완벽히 승리한 거다. 이제 본대로 복귀하자고."

나와 볼로냐 기사단은 전장에서 이탈했다.

* * *

트웨인군의 본영. 야전에 설치되 어있는 커다란 천막의 내부. 그곳에는 십 수명의 인물들이 비콘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에 전신에는 근육질이 그득한 인물들.

그들은 다름 아닌 트웨인군의 군단장들이었다. 적게는 일만, 많게는 수만의 기병들을 통솔하는 장군들.

그들은 어떤 소식을 보고받는 와 중이었다.

- 패배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패전 보고.

비콘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대패입니다. 기병 일만 삼천 중 육천이 전사했으며, 천 명이 행 방불명. 살아서 복귀한 육천의 병사들 중 그 삼 분지 일은 심각한 중 상을 입었습니다. 데키타 장군의 생 사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번 제국 북서부 평원의 전투결 과. 압도적인 제국의 승리였다.

제국군의 지휘능력이 너무나도 탁월했다.

그들은 일만의 기병을 효율적으로 운용했으며, 상대적으로 수적 우 위를 지니고 있던 트웨인 기병대의 공격을 차례차례 격파했다.

결국 전장 전체를 장악했고, 마침내 그들의 수장이던 데키타마저 제압해버렸으니 .

- 현재 살아남은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복귀하는 중입니다.

트웨인군의 사기가 밑바닥까지 떨어쩔 수밖에 없었다.

이후 데키타 군단은 사실상 와 해. 그들은 통솔을 잃고 뿔뿔이 흩 어져 도망쳤다.

이제 저들 중 아직 전투의지가 남아있는 이들은 서부전선 트웨인 군으로 복귀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도망쳐 다시는 군으로 돌아 오지 않을 것이리라.

트웨인의 군단장들이 침통한 기 색으로 하나둘 입을 열었다.

"제국 놈들. 설마 기병전으로 우리를 압도할 줄이야."

"이전에 알고 있던 그 제국 놈들 이 아니야."

"병사에게 보고를 듣기로는, 제국 군은 이전과 다르게 기병 일만을 한 명의 장군이 통제한다 하더군."

"놈들의 전투교리나 기병편제가 바뀐 것인가?"

"아니. 지금 우리와 교전 중인 제국 서부군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아마도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북부 군 놈들에 한정한 변화라 봐야겠지."

"여하튼. 북부군 놈들이 위협적이 라는 것은 확고한 사실이다."

제국 북부군이 이곳으로 남하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제국 서부군과의 전투에만 집중해야 할 상황에, 무려 십만에 달하는 군대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니.

게다가 놈들은 단 한번의 전투 로 데키타 군단을 와해시켜버렸다. 그만큼 놈들이 정예라는 소리.

그들 군단장들로선 뾰족한 해법 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떤 인물을 찾는다.

"한. 어찌해야 합니까?"

"앞으로 어찌해야할지. 알려주십시오."

가장 상석에 있는 인물.

과거 서부 대륙에서 ?겨날 때 부터, 남부 대륙 한켠에 자리를 잡아 세력을 불린 지금까지 그들을 이끌어온 위대한 군주.

누르비테 한.

군단장들이 그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묻는 것이다.

그에 누르비테가 나직이 입을 연다.

"북부군은 위험하다. 놈들에게는 기세가, 사기가. 그리고 영웅이 있으니 ."

"영웅이라 한다면."

"한지훈 말이다."

누르비테의 말에 군단장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주억였다.

한지훈. 협상동맹의 전쟁에서 가장 이름을 날린 군관이 있다면 바로 그 한지훈 라이젠이었다.

과거 십인장 시절부터 군단장이 된 지금까지 그 규모와 환경을 가리지 않고 무수히 많은 전공을 세 운전쟁영웅.

그 한지훈이 북부군의 일각을 담당하고 있다.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누르비테가 이어 말한다.

"하지만 서부군은 약하지."

누르비테의 눈동자가 움직여, 천 막 안에 설치된 커다란 지도로 향 한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큼지 막한 전략지도. 정밀도는 제국군에 비해 한참 뒤떨어졌지만. 그럼에도 군사용으로 사용하기에 전혀 무리 가 없는 물건이다.

툭.

누르비테가 지도의 한켠, 제국 서부군 군영을 짚으며 말한다.

"북부군 놈들이 오기 전. 놈들을 밀어버린다."

"밀어버린다면. 설마…."

"전군을 운용. 대규모 공격을 감 행해 놈들을 지워버릴 것이다. 북부 놈들이 온 뒤 오직 놈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누르비테는 제국 서부군을 향한 총 공세를 기획했다.

북부군이 도착한다면 그들은 양 면에서 압박당하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트웨인은 패배할 수밖에 없을 터.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누르비 테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서부군을 지워버리려 하는 것이다.

"총 공세를 준비하라."

그들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준비 한다.

"대승! 대승입니다!"

나는 제국군 본영으로 돌아왔다.

피로 물든 경갑을 벗어 내려놓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몸을 물로 씻어냈다. 깔끔한 새 정복으로 갈아 입었다.

직후 내 전용 천막에서 쉬고 있을 때 들어온 보고.

"모두 한지훈 군단장님의 지휘 덕분입니다!"

승전 보고였다. 나는 정복의 단추를 마저 채우며 물었다.

"그래서. 전사자 수와 중경상자 수는?"

"기병들 중 전사 일천이백! 중상 이천삼백입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동자를 굴 려 홀로그램을 확인한다.

[임시합류 : 8,967] (중상 : 2,371)(전사 : 1,283)

사실 부대 정보창에서 보았기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물어봤다.

그동안 나는 부대 정보창을 일부러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 게임같은 홀로그램창에, 게임 속 데이터 같은 숫자 문구들을 자주 들여다보면.

과거 블랙 오케스트라 때처럼 병사들을 그저 살아있는 존재들이 아닌 게임 속 유닛으로 볼 것 같았기 에.

나는 전투결과를 항상 구두로도 확인했다.

"전사자가 천이백. 중상자가 이천 삼백이라…."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하지만 보고해오는 참모장의 표정은 밝았다.

"적의 기병 육천을 토벌했고, 일 천의 포로를 확보했습니다!"

교전비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아군 기병은 천이 죽은 반면, 적은 육천이 죽고 천이 사로잡혔다.

교전비가 1: 6에 육박하는 수준이 었으니 . 엄청난 대승이 아닐 수 없다.

이쪽의 병사 하나가 죽을 때 이쪽은 적병 여섯을 처치했다는 것이 니.

그만큼 내지휘는 성공적이었고. 트웨인을 제대로 물리칠 수 있었다.

문득 참모장이 말한다.

"아, 그리고 군단장 각하. 각하께 서 생포해 오신 적장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참모장은 데키타에 대 한 것을 말하려 하는 듯하다.

그가 나에게 알려왔다.

"그 적장 포로. 방금 전 깨어난 듯합니다."

"… 벌써?"

나는 차마 믿지 못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그 정도의 중상이라면, 설사 포션을 사용했다 한들 삼 일은 정신을 잃어야 정상일 터인데.

헌데 녀석은 고작 반나절 만에 깨어났다 한다.

"더럽게 터프한 녀석이네."

역시 과거 게임 속에서 활약했던 네임드 유닛이라는 것일까. 녀석의 터프함은 장난이 아니다.

"일단 만나러 가봐야겠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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