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데키타! 적이 옵니다!"
데키타의 측근 전사 하나가 그리 외쳤다. 그에 데키타는 시선을 돌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으음…!"
두 눈을 부릅 떴다.
저 멀리 드넓은 초원의 지평선 너머에서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다.
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대략 천 명 정도 될까. 자신이 이 끌고 있는 상위 전사들과 거의 동 수를 이루는 적의 무리.
"기사 놈들이로군."
그리고 그들은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다. 놈들이 입고 있는 전신갑주 가 햇빛을 반사해 번쩍인다.
콰드득.
데키타는 오른손에 쥔 전투도끼 를 꽉 쥐었다. 그의 두터운 팔뚝에 힘줄이 돋아난다.
"기사 놈들. 슬슬 등장할 때가 되었지."
데키타는 적 기사들의 출격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오러를 다루는 상위 전사들을 출격시켜 전황을 반전시키 고 있었기에, 제국 측이 그에 대응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헌데 이상하다.
"… 저놈은."
데키타는 눈동자를 굴려, 이쪽으로 달려오는 적 기사들의 최선두를 바라봤다.
그곳에 이질적인 한 인물이 있었다.
뒤따르는 제국 기사들과 다르게 오직 그 혼자만은 전신갑주를 입고 있지 않았다.
더해 그의 머리색.
선명한 검은색이었다. 분명 소문 으로 들려왔던 누군가의 외양과 동 일한 모습.
데키타는 확신했다.
'한지훈…!'
화르르르륵!
그가 오러를 끌어 올렸다. 데키 타의 전투도끼에 일렁이던 푸른색 불꽃이 격렬하게 타오른다.
한지훈. 대단한 지휘술로 자신의 군단을 몰아쳤던 이. 놈이 직접 기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자신을 직접 대적하기 위해서.
"죽여버린다!"
데키타가 포효한다. 그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리고, 눈치 빠른 측근들 이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 준비! 적 기사들이 접근 중이다!"
"오러를 끌어올려라! 제국 기사 놈들을 찢어발겨라!"
"트웨인을 위하여 !"
콰앙!
데키타가 말을 몰고 돌진했다. 그런 그의 뒤를 휘하 상위 전사들 이 뒤따른다. 그들이 발하는 오러광 이 점차 그 기세를 높여갔다.
두두두두두두!
무수한 말발굽 소리. 트웨인의 상위 전사들과 제국의 기사들. 그들 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져갔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집중 스킬이 발현되었다.
시야 속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져 간다. 감각의 인지범위가 확장되었고, 사고속도가 가속된다.
왼손으로는 고삐를, 오른손으로는 장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보인다.
"오오오오오오-!"
함성을 내지르며 이쪽으로 돌진 해오고 있는 트웨인의 상위 전사들. 놈들이 쥐고 있는 병장기들에서 푸른색 광휘가 번들거린다.
오러를 다루는 적.
수없이 죽여 봤다.
요한바르첸 공국의 기사, 카렌의 황실 기사들. 그리고 흑마법사가 부리는 암흑기사새끼들까지.
무수히 많은 기사들을 쳐 죽여 봤다.
지금 내 앞으로 보이는 트웨인 상위 전사들 또한 마찬가지.
놈들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제국 놈들! 죽어라!"
트웨인 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중 가장 최선두, 다섯의 상위 전사가 동시에 나를 노리고 돌진해 온다.
피식.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너나 죽어라."
번쩍. 청색 궤적이 순식간에 시야를 양단하고, 찰나의 순간 뒤.
퍼어억!
붉은색 피 안개가 터져 나왔다. 적 기병 셋이 동시에 피를 쏟으며 낙마했다. 놈들이 흩뿌린 혈액이 내 군단장 경갑에 후드득 쏟아진다.
놈들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두두두두두.
멈춰 서지 않고 전투마를 몰아 계속 전진한다. 그 와중에 적들은 끝없이 달려들어 공격해댔다.
다양한 공격이 이쪽으로 쇄도해 온다.
복부를 꿰뚫기 위해 찔러 들어오는 창날. 내 왼팔을 노리는 도끼날. 목덜미를 가르려 하는 장검까지.
그 모든 것을 피해낸다.
말의 고삐를 당겨 방향을 전환했다. 오른쪽에서 쇄도해오는 검날을 왼쪽으로 선회해 피해냈고, 정면을 가로막는 적의 전투마를 앞다리로 걷어차 밀어냈다.
그리고 반격.
서걱.
창을 내찌르는 적 기병의 목울대 를 갈라버렸다.
"컥… 커헉…!"
놈은 꺽꺽이며 피거품을 내뱉으 며 낙마했다.
콰직.
장검을 휘두른 녀석의 옆구리에 검날을 쑤셔 박아 장기를 절삭했다.
"끄윽…!"
놈 또한 경련하며 낙마. 내 뒤를 따라오는 기사들의 말발굽에 다진 고기가 되었다.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수없이 쳐 죽였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핏물이 튀어 왔고, 신선했던 초원의 공기에 역겨 운 혈향이 섞여든다.
귀찮은 피라미 새끼들.
쯧. 혀를 차며 뺨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훔쳤다.
'적의 저항이 너무 강하다.'
지금의 나는 최선두. 가장 강렬 한 적의 공격을 받는 위치. 놈들의 수는 많았고, 그들 하나하나가 오러 를 다룬다.
내 무력이 제아무리 출중하다 한 들. 이쪽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데는 충분할 터.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뒤에는 기사들이 있다.
크게 외쳤다.
"베르겐!"
"보조하겠네! 한지훈!"
두두두두두.
내 배후에서 기사들이 전진해 양옆에 자리한다.
그들이 기다란 기병창을 내찌르고, 장검을 휘둘러 나를 향해 접근 해오는 적들을 밀어냈다.
"10분! 10분이네, 한지훈!"
베르겐의 당부. 반드시 10분 안에 승부를 보라는 소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해 앞 으로 달려 나간다. 그런 내 좌우를 기사들이 보조해준다.
퍼억, 콰직. 후드득.
나와 기사들이 놈들의 중앙 깊숙이 파고 들었다. 검을 휘둘러 정면 의 적을 죽이고, 내 좌우의 기사들 이 접근하는 놈들을 견제한다.
나와 기사들이 놈들의 중앙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적장의 바로 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해본다.
무지막지하게 육중한 덩치, 피로 젖은 가죽갑옷.
양 눈은 전투의 흥분으로 시뻘겋 게 충혈 되어 있으며, 꽤나 커다란 크기의 전투도끼를 한손으로 들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재차 녀석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데키타."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데키타][트웨인 데키타 군단 군단장]
데키타. 트웨인의 일군을 이끌고 있는 맹장이자, 전장에서 막대한 수 의 기병을 다루어 적을 분쇄하는 네임드 장수.
나는 녀석과 대치한다.
* * *
'한지훈.'
데키타는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있는 사내를 바라본다.
한지훈. 과연 듣던 대로의 외양 이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분위기는 날카로웠으며 오러의 색 은 진했다.
데키타는 그를 실물로 마주하자.
'놈은 강하다. 소문보다도 더더욱 '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데키타는 한지훈이 기병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리라 예상했었다.
허나 아니었다. 그는 기병을 데 키타 이상으로 잘 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약한 제국군 기병 으로 트웨인 기병대를 압도해버렸다.
데키타는 한지훈의 기마능력이 자신보다 뒤떨어지리라 예상했다.
그 또한 아니었다. 데키타는 자신이 있는 이곳까지 달려오는 한지훈의 모습을 보았기에 그의 기마능력을 알고 있다.
한지훈의 기마술은 가히 신기에 가까웠었다. 사방에서 빗발쳐오는 공격을 능숙하게 피하고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말 위에서 전투하는 것 또한 익숙해보였다.
자신의 부하들은 한지훈의 돌진을 결코 가로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곤란하군…."
데키타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접전 중인 기사와 전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이 있는 이곳까지 돌진해온 제국의 기사들. 놈들은 수장인 데키 타를 가만히 내버려 둔 채, 주변의 트웨인 전사들을 밀어내고 있다. 그 의 주변에는 도움을 줄 만한 아군 이 보이지 않는다.
난전 속 제국 기사들과 한지훈에게 포위된 듯한 형세.
그가 나직이 읊조린다.
"나를 노리기 위해. 일점 돌파를 시도했고, 성공했어."
모든 것은 수장인 자신을 노리기 위해 한지훈은 기사들을 이끌고 전 열을 돌파했고, 마침내 자신이 있는 부대 중앙에 도달한 것이다.
이죽. 데키타가 입가를 비틀어 비웃는다.
"하지만 비열하군. 나 하나를 죽 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혼자 서는 이길 자신이 없나보지? 한지훈."
데키타는 한지훈이 기사들과 협 공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아니. 너를 상대하는 건 나 혼자다."
한지훈이 부정한다. 그가 천천히 전투마를 몰아, 간격을 좁혀오며 말했다.
"기사들을 이끌고 온 건너와 나 의 결투에 다른 전사들이 개입하지 않게하기 위해서다."
"오만한 놈이로다. 결투라니, 네 놈 혼자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는 거냐?"
"그래. 하지만 검을 맞대기 전에 제안 하나 하지."
철그럭. 한지훈이 검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는다. 그의 화려한 보검이 햇살을 받아 화려하게 빛났다.
그가 입을 열었다.
"데키타. 항복해라. 목숨만은 보전해주지."
"… 그게 무슨 소리이지. 놈."
내 말에 데키타의 눈동자가 번들 거렸다. 방금 전 내가 한 항복제안 이 그의 심기를 긁은 듯하다.
나는 재차 말한다.
"말 그대로. 항복하라는 소리다."
사실, 처음에는 죽이려고했다.
하지만 내가 상대하는 것이 데키 타임을 알게 된 그 순간. 나는 놈을 생포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만큼 죽이기에는 아까운 인물 이었으니까.
과거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데키타][연합 서부 4군단 사령관]
["한지훈, 네놈을 죽여 누르비테 님의 원수를 갚겠다!"]
["다 쳐 죽여버려라! 제국 놈들 도, 흑마법사도! 모조리 다!"]
놈은 무식한 빡대가리였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 병군단을 움직여 전열을 휘젓고, 그 커다란 전투도끼를 휘두르는 것뿐.
전략을 다루는 장군이라기보단, 병력을 이끌고 적을 치는 선봉장에 가까웠던 이.
'하지만 그래서 치명적이었지.'
확실히 녀석은 전략이나 전술에는 그리 능숙하지 않았다. 허나 단순 기병들을 운용하는 것에는 발군 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
녀석이 기병들을 이끌고 출격하는 순간 연합군의 사기는 상승했고, 놈이 돌진해 아군의 전열을 휘저으 면 이쪽의 사기는 급락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본능대 로 행동하던 인물이었음에도. 일군 의 수장자리를 꿰찰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추후 내가 '계획'을 완성했을 때.
세력원으로 있다면 유용할 녀석.
때문에 나는 놈을 살려 부하로 영입하고자 한다.
허나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녀석 이 아니었다.
"항복이라! 헛소리!"
부웅.
놈이 그 커다란 전투도끼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격하게 타오르는 오러의 존재감이 꽤나 위압적이다.
"나는 항복하지도, 패배하지도 않는다!"
마나어린 음성이 커다랗게 터져 나왔다. 공기가 진동해 피부가 저릿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저 불같은 성격을 지닌 놈이다. 당연히 항복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터.
하지만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대충 빈사상태로 만든 다음 포 획해야겠네."
죽기 직전 상태로 만들어 정신을 잃게 한다면. 놈을 무력화시켜 무난 하게 생포할 수 있다.
"…개자식!"
녀석이 전투도끼를 내려찍는다.
나는 재빨리 말의 배를 박차 가속.
전투마가 움직이고, 직후 방금 전 내가 서 있던 장소에.
콰콰콰콰쾅!
전투도끼의 날이 틀어 박힌다. 커다란 굉음이 일며 지면이 부서졌다. 땅이 흔들린다.
꽤나 강력한 일격. 허나 강한 공격은 그만큼 강한 반동을 불러오는 법.
놈은 그 일격을 가하느냐 자세가 무너져 빈틈이 드러난 상태.
그 빈틈을 노리고, 놈의 측면으로 신속히 파고들었다.
"뭣..!"
데키타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그리고 그때.
나는 검을 뻗었다.
"일단은, 옆구리."
퍼억.
데키타의 허리춤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